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일본 요코하마에는 일본과 교전을 벌이다 자폭한 북한 무장 공작선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오래된 사건도 아닌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런 사건이 있었는지 조차도 기억하지 못하는 게 현실입니다.

그렇다 보니 일본이 북한에 대해서 가지는 공포심 또는 혐오감의 본질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측면이  생기게 됩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일본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던 북한 공작선과 일본의 교전 사건을 소개합니다. 


전투의 시작
2001
12월 22일 일본 연안경비정은 한 수상한 배를 추적하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밀항이나 밀수 선박으로 알고 추적했지만 결국은 정선을 거부하고 총격전을 벌이게 됩니다. 단순 총격전이 아니고 RPG 로켓 공격까지 가하면서 저항 아닌 전투를 벌이던 공작선은 결국 도주가 불가능 하다고 판단되자 결국 자폭하게 됩니다.

일본 순시선과 간첩선

북한 간첩선을 추적하는 일본 순시선


사실 북한 공작원들 사이에서 남한 침투는 어려운 일로 성공을 큰 자부심으로 삼지만 일본 침투는 아주 쉬어서 그 성과를 그렇게 크게 취급하지 않는다고 하기도합니다. 그토록 쉽다는 일본에 대한 북한의 침투공작이 들통난 사례가 바로 저 전시된 공작선 사건입니다.


사실 김정남의 일본 밀입국 사건에서도 드러났지만 일본 밀입국에는 대단한 공작이 필요한 일도 아니긴 합니다. 다만 특별한 임무 그러니까 민간인 납치나 무기 반입 반출 또는 마약거래 등에는 공작선의 침투가 필수적이겠지요.

 

아래 동영상은 사건 당시의 실제 교전 장면입니다. 처음 추적 시점에는 단순한 밀수선으로 알고 추적을 시작하지만 필사적인 도주와 북한 간첩선의 선제 공격으로 상황은 전투로 변질되게 됩니다.

동영상의 마지막 장면 도주를 포기한 간첩선이 자침하는 것으로 끝나게 됩니다. 만화가 아니고 현실에서 자폭으로 끝을 내는 모습은 북한 정권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일본의 전시물로의 전락
이 배는 이듬해 2002년에 인양되고 지금은 요코하마 전시관에 전시되게 됩니다. 이 사건은 전쟁의 위협에 만성이 우리와는 다른 일본인에게 충격으로 다가오게 됩니다.

  

 
영상 말미에 보면 일본은 이 점이 정당방위였다는 사실을 꼭 강조하고 있습니다. 침략의 업보이기도 하고 자위대라는 이름 그대로이긴 하지만 사족이라는 느낌은 지울 수 없습니다.
다음은 현제 전시 중인 간첩선의 모습과 인양직후의 사진들입니다.

교전 상황

교전 당시의 열상화면


간략한 사건 개요를 보여주는 안내문 입니다. 우리도 그렇지만 이런 류의 사건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있는 관광자원입니다.

전시관의 모습입니다. 일본은 간첩선 하나를 위해서 저런 집까지 지어 주는 정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아마 저 배가 북한에 정박해 있는다면 저런 호사를 누리지는 못했을 겁니다. 우리 동해안에는 잠수함 조차도 저런 집이 없는데 말입니다.

아마 실제 간첩선의 유지비보다도 저 전시관의 유지비용이 훨씬 클 거 같습니다. 일본까지 와서 비싼 주택도 마련하고 월세 한푼 안내고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한 상팔자를 사는 저 간첩선에서 참 아이러니를 느낍니다.

지울 수 없는 의문
물론 차가운 바닷 물속으로 사라진 북한 공작원들의 죽음 앞에서는 무엇을 위해서 그들이 자폭을 했는가 하는 의문을 지울 수 없습니다. 자신들의 마약판매와 자폭이 조국과 민족을 사랑하는 애국이요 애족이라고 생각했을 까요? 아니면 기계적인 훈련의 결과였을 까요?

요코하마 전시관

북한 공작선의 마이 하우스


공작선 전시관 내부

안내와 관람을 위한 시설


일본인들에게는 저 총탄 자국 하나 하나가 큰 충격으로 느껴질 겁니다.
총탄 자국

총알 구멍이 슝슝


사건 개요도


자폭 했기 때문에 상부 구조물은 온전하지가 않습니다. 잠수함 사건 때도 그렇지만 말로만 듣던 자폭이나 자결을 감행하는 모습을 보면 뭐라고 말을 해야 될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간첩선 상부

간첩선의 선수 모습


김일성 배지

수령 아바이와 최후를 김일성 희장

아래 사진은 자폭용 타이머입니다. 저런 장치를 사전에 준비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이미 자폭이 명령되어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만화도 아니고 실제라니...

저 전시장을 찾는 외국인들 눈에는 저 자폭 장치가 사건보다도 더 충격으로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자폭용 타이머 만화냐? 좌측 상단 글씨



간첩선의 주무장은 zpu-2 기관포였으며 이후 사진에도 나오지만 각종 로켓 발사관등의 중화기로 무장하고 있었다. 저런 무장을 한 배를 타국의 영해로 침투시키는 북한의 무감각함에는 참 어이가 없습니다.

zpu-2

주무장인 14.5mm 기관포 zpu-2


치열한 교전상황을 말해주는 총탄작국이 선명한데 최근의 서해 교전에서도 그랬지만 소화기 공격만으로는 배를 침물 시킬 수 없다는 것을 다시 보여준다.

총탄자국

총알로 벌집이 됐다


배에 실려있던 각종 무기들의 사진입니다. 그 유명한 7호 발사관부터 대공용 미사일까지 정말 중무장을 하고 있었습니다.

간첩선 무장

일본인 입장에서는 정말 무서울 거다.

무반동총

이 무기들이 정확하게 사용됐다면 순시선도 큰 피해를 봤을 것이다.

각종 소총

각종 소화기도 잔뜩


여기서는 생략했지만 이 선박은 모선으로 내부에는 고속 침투용 자선을 싫고 있었으며 우리가 이전 간첩사건에서 잘 알고 있는 수중 침투용 잠수정도 실려 있었습니다.

간천섭 구조

침투용 잠수정도 있었다.


자폭까지 했지만 숨길 수 없는 진실
마지막으로 아래 나와있는 전화기로 인해서 저 선박의 실체가 들어납니다. 휴대전화기의 통화기록으로 한국인 유모씨(57)가 저 간첩선에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밝혀내는데 이 사람은 이미 일본 야쿠자로부터 도난 차량들을 구입한 혐의로 일본 경찰에 체포된 인물로 은행계좌에는 야쿠자 자금 수백만엔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 간첩선은 결국 일본에서 마약거래를 했던 것으로 의심받고 있는데 저 유모씨는 한국, 일본, 북한을 오갔던 것으로 보아서 단순한 마약 밀수꾼이 아니라 북한의 간첩으로 보입니다. (요즘 세상에 간첩이라고 하면 비 웃는 사람이 많지만 우리 주변에는 아직도 걸어다니는 돈다발들이 많이 있는게 현실입니다.)

  1. 자유아시아방송 2009.11.24 02:01 신고

    잘 읽었습니다. :) 이 글 링크를 자유아시아방송 Delicious account에 추가합니다.



최근의 유입 키워드 중에 황당한 유입이 바로 제목처럼 [간첩이 되는길]이었다. 아니 스파이도 아니고 간첩이 되고 싶다니 무슨 생각으로 검색을 한걸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유입 키워드를 살펴보면 종종 직접 답을 해주고 싶은 내용을 검색하는 경우도 있지만 저처럼 황당한 검색을 하는 사람들도 종종 볼 수 있다.

간첩이라는 말은 그쪽 업계(검은 안경에 검은 양복)사람은 사용하지 않는 용어다. 일상에서는 적국의 정보요원이라는 뜻으로만 통용된다. 좋은 뜻으로는 사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저 키워드만 보면 적국의 정보요원이 되어서 우리 기밀을 팔아 넘기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뜻이 되기 때문에 황당히기 이를데 없다고 하겠다. 결국 북한의 정보원이 되겠다는 뜻인데...

설마 돈을 많이 벌고 싶어서?
흔히 간첩 사건이 나면 보이는 착각 중에 하나가 북한 간첩이 되면 공작금 조로 돈을 많이 준다고 착각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간혹 상당한 거액을 주는 경우도 있었지만 냉전시대 미국이나 소련조차도 그렇게 넉넉한 공작금을 지급하지는 않았다. 심지어는 껌값이 경우도 종종 있었다.

새련되고 멋진 간첩생활을 기대한다면 그건 착각이다. 영화속에서나 첨단 장비와 멋진 모습의 간첩이 존재할 뿐이다. 실상은 예상을 깨는 허접함과 허술함으로 무장한 간첩이 대부분이다. 심지어는 적국의 노숙자가 되어서 임무를 수행하라고 할지도 모른다.

긴첩질의 현실이 이렇게 폼나지도 돈을 많이 주지도 않다보니까 저 서두의 기사처럼 직원(?)모집에는 각종 협박과 음모가 동원되게 된다. 저런 미인계와 협박은 아주 표준적인데 특히 요즘은 중국이 많이 사용하는거 같다.

수년전에는 저런 종류의 협박을 당한 일본 외교관(소속이야 외교관이지만)이 자살한 사건도 있었다.

자 간첩이 되는 길을 알려준다
저 유입키워드가 진심이라고 생각하고 북한의 간첩이 되는 길을 한번 생각해보자. 일단은 자신이 쓸모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최근의 북한은 단순한 월북은 받지 않고 돌려보낼 정도로 매정해졌다. 아마 자진 월북해올 정도의 지적 수준(지상 낙원이라는 말은 그들도 안 믿는 말이다)이라면 북한에서도 필요없다고 판단하는거 같다.

그렇다면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어야만 채용해준다는 말인데.... 북한이 특히 좋아하는 부류는 정치 조직과 연계된 사람들을 특히 좋아한다. 현실적으로 그외의 부류가 북한과의 어떤 관계를 가질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기도하고 그런 사람 만이 정치 사상 때문에 북한정권에 충성한다는 믿음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간첩선

도주 중인 실제 간첩선 욺직이는 로또..


우리측 정보요원이 되는 길을 찾는 것을 잘못 검색한거라면 공부열심히해서 국가정보원 공체에 응시하면 되겠다. 물론 특채도 있다. 국가정보원 홈페이지에서 직원 모집 공고가 수시로 나온다.

취업전선의 대학생이라면 이미 알고 있겠지만 공무원 중에서도 고급직장이라서 입사는 정말 어렵다. 업무는 영화나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일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미리 답해주는 센스
저 기사처럼 적국의 간첩( 정보제공자 )이 되라는 협박을 당한다면 어떻게 처신하는게 현명한 방법일까? 저런 미인계에 위한 협박 또는 공금횡령이나 업무상의 실수 ((?)등으로 협박을 당하게 된다면 이때는 자국 방첩기관과 접촉하면 간단하다.

얼마전에는 독일 정보기관이 이런 문제로 구설수에 올랐는데 해외에서 미성년자와 성매매를 자행한 극회의원들을 감시했던 사실이 들통났기 때문이다. 독일에서도 치명적인 범법행의지만 그 점보다는 협박의 재료가 되어서 적국의 간첩이 되는 사실을 막고자하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자신의 비밀을 감시당하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 독일 정보기관은 한바탕 곤역을 치뤘던 것이다.

자수하여 광명찾는 길은 당연히 위험이 따르지만 이미 자신이 자초한 잘못이라면 최선의 방법은 저 방법뿐이다. 방첩기관은 여러분의 잘못에는 관심이 없다. 간첩으로의 활용과 효용에만 관심이 있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 국가정보원 소비자 상담실 전화번호는 111번이다.

그리고 사실 일상 생활에서조차도 혼자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처한다면 솔직하게 정면대결하는 쪽이 일을 정리할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인 경우가 많다.

1부에 이어서...

스포일러가 가득 들어있는 글입니다. 개봉한지 오래된 영화임으로 별 상관은 없다고 생각하지만요

영화는 실제 인물과 사건을 왜곡했지만 정말 잘 만들어졌다. 따라서 그냥 실제 인물 없이 허구의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영화를 보는 편이 마음은 편하다. 더욱이 원작 소설이 탄생한 배경을 또 알고 난다면 말이다.

탕웨이색계의 왕자즈는 남자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영화에 집중해보자

왜 이선생은 자신의 목숨을 살려준 왕자즈를 구해주지 않았나?

실제 역사적 사건에서는 영화 같은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는 개미 눈곱만큼도 찾을 길 없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는 왕자즈의 사랑으로 목숨을 구한 이선생이 왜 왕자즈의 처형을 지시했을까? 자기가 책임자이니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사랑하는 애인 목숨도 구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영화 속의 대사를 보면 그 문제에 대한 이선생의 위험한 입장이 나온다.

 

색계 호텔3년후 그들의 재회는 충격적이다.

바로 왜 그들에 대해서 알면서 진작 자신에게 보고 하지 않았느냐는 이선생의 힐난에 그의 부하가 한 말 “두 분의 관계에 확신이 서질 않아서….... 물론…... 지금은 확실해 졌고”라고 말하는 부분이 답이다.

 

부하 직원이 왕자즈 일당에 대해서 보고하면서 이선생 자신도 감시대상이었으며 왕자즈와의 관계를 의심받고 있었다는 것을 이야기한 것이다.

 

마지막에 이선생이 부하직원이 주는 반지를 보면서 하는 “내 꺼 아니야!란 말은 그 시점에서는 이미 왕자즈에게 준 선물이라는 이야기를 하는 줄 알았지만 마지막 처형 집행을 보면서 그 말은 자신의 안전을 위해서 그녀와의 관계를 완전하게 부정하는 말이라고 해석하게 되었다.

 

왕자즈를 구명하는 행동은 바로 이선생 자신이 함께 죽자는 의미일 뿐이었다는 것이다. 영화에서 이선생은 왕자즈를 구명할 수 없는 입장이었고 더 이상 고문당하지 않도록 심문을 종료하고 빠른 처형을 집행하는 방법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사랑을 왕자즈에게 보답한 것이다.

 

양조위와 탕웨이시선 묘하다.

이선생은 정말 친일파이며 매국노인가?

적어도 영화 속에서는 이선생의 진정한 정체에 대해서 약간의 의문을 남겨 놓는다. 바로 미군이 제공한 무기를 가로챘지만 일본군은 아직도 그 무기를 찾고 있다는 짧은 이야기가 그 부분이다. 일본의 괴뢰정부라면 당연히 그 무기를 일본에게 줬어야 했을 텐데 말이다.

 

이 부분은 이안감독이 기존에 중경정부와 남경정부에 대한 보편적인 정치판단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고도 보인다.

 

색계 중문 포스터정말 색계라는 주제를 보여주는 포스터

실제 주인공의 이력을 참고해서 마음대로 상상력을 발휘해볼 수 도 있다.

개인적인 망상으로는 이선생은 미국이 제공한 무기를 중경정부 손에 들어가기 전에 빼돌려서는 공산당에 넘겨줬다고 생각해본다.

 

그가 이중스파이로 국민당 중경정부에 잠입하고 다시 남경정부로 잠입한 공산당의 애국적 스파이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실제 인물은 중경정부와 공산당의 스파이를 모두 체포 처형했지만 영화에서는 중경정부의 전쟁만을 이야기한다..

 

아마 이런 장치는 감독이 중국 본토 개봉을 위한 작은 아부였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편집과정에서 아부가 심하다는 판단으로 두리뭉실하게 전달 됐을 수도 있다고 무책임하게 추측해본다. (원작 소설 – A4 13장짜리 소설을 30년 동안 써서 1980년에 탈고했다고 한다. –은 왠지 문장이 끊긴다고 한다. 아마 원작자는 남편에게서 뭔가 더 많은 이야기를 들었겠지만 그 내용을 담는데 정치적 부담을 느낀 건 아닌가 하고 생각해본다. 우리가 현대사를 다룰 때 느끼는 압박처럼 말이다.)

 

중국 본토인 시각으로 색계를 보면 영화 초반에 흐르는 애국주의적 맹세에 꽤나 공감하는 듯 하다. 그래서 영화의 결말(애국이 전혀 아님으로... 아마 영화 속의 연극 마지막처럼 영화의 처형 장면에서도 중국만세라도 외치면서 끝나길 기대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영화는 상을 못 받았겠지만 말이다.)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겪게 된다고 한다.

 

트로피와 이안감독정치 줄타기 실패

이안감독의 약간은 갈팡질팡하는 듯 한 정치적 태도가 그래서 심정적으로 이해된다. 하지만 이안감독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색계는 매국노 영화로 중국에서는 판정 났다. 이안감독은 중국 공산당에게 망설이지 말고 좀더 아부했어야 했을 거 같다. ^^

아직도 항일전쟁시절의 군벌들과 정치적 이해득실이 시퍼렀게 눈뜨고 있는 중국이니 말이다. 중국 인민들이 그들(군벌과 공산당)을 좀더 객관적으로 보게 되는 시절은 언제쯤 올지 모르겠다.

 

중국 정부가

대만 감독이 연출한 영화 '색계(色戒)'가 심각한 정치 문화적 문제를 야기한 때문이라고 간략히 설명하면서, 중국내 전 매체에서 탕웨이와 '색계'에 대한 모든 언급을 금하라는 처분이 내려온 상태라고 전했다.

 

중국 언론들은 또 '색계'가 중국의 독립운동 가치를 폄하했으며, 당시 장제스, 마오쩌둥과 대립하며 상하이 친일정부 수립을 추진했던 왕징웨이(汪精衛) 정부를 찬양했다고 덧붙였다.

 

중국 언론들은 이 영화가 목숨을 걸고 독립운동에 나섰던 1940년대 전후 중국 청년들의 애국활동을 왜곡했다는 비난과 함께, 중국의 기강을 흔드는 대만의 정치적 야욕이 영화 속에 일부 반영됐다는 혐의도 제기하고 있다.



  1. 어멍 2009.04.23 11:40 신고

    아부의 제 1 원칙
    '하려면 화끈하게 하라'

    하지만 영화의 전체적인 톤이 섣불리 화끈하면 오히려 코미디가 되었거나 오히려 불경이나 괘심죄에 걸렸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드네요.

    개인적으로는 아직 중국에 남아있는 군벌의 영향력, 흔적이 궁굼하군요.

    • 어멍 2009.04.23 17:38 신고

      그렇군요. 어디든지 지방유지, 실력자, 토호세력이 있지만 생각보다 분권화, 토착화, 파편화되었다고 봐야하겠네요. 생각보단 군이 강한 것 같기도 하구요(당에 비해 상대적으로)

    • 어멍 2009.04.24 16:50 신고

      황제와 제후라...봉건제네요?
      1당 독재 공산주의식 봉건제라고 해야 하나요?(하긴 이젠 전통적인 공산주의라고 말하기도 뭣하지만...)

  2. 김쫑 2011.09.19 12:22 신고

    제가 찾던 분석글이 바로 이 블로그에 있었군요!!! 죄다 정사씬에만 초점을 맞추고 사랑이 어쩌니 저쩌니 정도에서 그치는데 과연 그정도만으로 대작이라는 평가를 받았을까에 대해 의심을 계속 품고 있었습니다. 올려주신 글 잘봤습니다~! 덕분에 영화를 이해하는 데에 큰 도움을 받았네요^^

  3. 2014.07.06 19:41

    비밀댓글입니다

  4. 유쾌상쾌 2014.11.10 00:17 신고

    부하 직원 장면을 이해 못 하고 봤었는데..-.-"
    이제 이해가 되네요 잘 봤습니다

 

뒤 늦게 색계(色戒)를 봤다. 개봉(2007)한지 벌써 수년이 흘러버린 영화였지만 계속 미뤄 오다가 이제서야 영화를 보게 됐다. 아무래도 에로가 강조된 홍보덕분에 영화에 대한 흥미가 떨어졌던 게 원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영화 홍보전문가에게 해주고 싶은 말 하나 작품성을 강조하면 장사가 안되고 에로를 강조하면 장사가 된다는 생각은 버리자 인터넷에 에로는 질리도록 넘친다 그것 때문에 극장 갈 사람 이제는 없고....

 

영화를 보고 나서 이안감독에 대한 부러움 섞인 욕지기가 나올 정도로 영화는 잘 만들어졌다. 난 남의 뛰어난 창조적 능력을 보면 질투심이 용솟음 친다. 실상은 쌀리에르도 못되면서...

 

그래서 이안감독에 대한 찬사의 의미로 처음으로 영화 이야기를 포스팅 해보려고 했지만 가뜩이나 블로그의 포스팅 주제가 난잡한데 되지도 않는 영화 평론까지 하면 난잡함이 지나칠 거라는 걱정에 주제를 색계(色界가 아니고 정식 제목은 色, 戒라는 사실) 속의 스파이 전에 한정하기로 했다.

물론 영화의 주 내용이야 주인공들의 위험하고 애절한 사랑 이야기이고 첩보전 이야기는 그런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위한 무대 배경에 지나지 않지만 말이다.

 

먼저 이 영화의 실제 주인공들 -영화 속의 인물이 아니고 역사 속의 인물들-을 살펴보자. 개인적으로는 영화를 보면서 극 중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이 실제 인물일 거라고 짐작했는데 역시 실제로 존재했던 인물들의 이야기였다.

 

색계 영화속의 실존 인물

여주인공

탕웨이 좡자즈와 정핑루

여주인공은 실제 인물을 모사했다

영화 속의 여주인공 왕자즈(탕웨이 분)는 정핑루(鄭蘋如 1918- 1940)라는 인물이 실제 모델이라고 한다. 30년대 상하이 사교계의 꽃이라고 불릴 정도의 미모와 인기를 누렸다고 한다. 실제로 장개석(蔣介石: 1887-1975)의 중경정부 스파이 활동을 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상하이의 교수출신 검사이며 어머니는 일본인이라고 한다.

 

그녀는 상하이 정법학원(법과대)에 재학 중 良友(좋은 벗(?))’라는 잡지의 표지모델이 되면서 상하이 사교계의 주목을 받게 됐다고 한다. 이런 그녀에게 중경정부 첩보조직(조사통계실)의 천바오화가 접근해 항일운동에 동참할 것을 설득했다고 한다. 처음에 그녀는 일본인을 상대로 정보를 수집하는 일을 하게 된다. 일본인 혼혈 여성에게 중국에 애국하라는 요구를 하다니 싶지만 일반적으로 흔한 포섭대상이다.
일본인 입장에서도 혼혈이라는 이유로 쉽게 마음을 열고 그녀를 대했을 것이다.

 

남자주인공

이선생 이목성의 실제 모습

양조위는 너무 미남이다. 고문할거 같은 딩모춘의 모습.

영화 속의 남자주인공 이묵성(黙成)( 량차오웨이 분)은 영화 서두에서 언급되는 괴뢰 왕정웨이(汪精衛)정권의 첩보기관 ‘76의 책임자 딩모춘( 1901~1947)이다. (영화에서 괴뢰라고 칭해서 그렇지 엄밀하게는 국민당 남경 정부이고 정치적 해석에 따른 평가는 승자의 몫이기 때문에 남경정부는 괴뢰가 됐다. 이안 감독은 이부분에 대한 정치적 해석을 했고 그게 중국정부의 심기를 크게 건드리고 만다.)

 

76호의 의미는 남경정부의 방첩본부가 상하이 제스필드로 76호에 위치했기 때문에 그렇게 불렸다. 달리 말해서 본부의 주소가 76호이기에 76호라고 불린 것이다.

 

그는 중국 공산당에 입당했다가 다시 중경정부 조사통계실에서 근무를 하고 다시 남경정부에서 일을 하게 된 특이한 인물이다. 국민당과 공산당의 관계를 생각해보면 그의 행적은 변절이라고 말하기 충분하다.

 

이런 이력을 가지고 있는 그가 국민당과 공산당의 첩보조직에 크나큰 위협이 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실제로 그는 도살자’, ‘색정광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영화 속에서야 그래도 매력적인 인물로 그려졌지만 사진을 보면 저 별명 쪽에 가까운 얼굴이다.

 

그들 남녀의 관계

딩모춘의 방첩활동에 위협을 느낀 중경정부 조사통계실은 정핑루에게 딩모춘에게 접근하라는 지령을 내리고 1939년에는 그에 대한 암살명령을 내린다. 영화에서처럼 그녀의 집 앞까지 오지만 다른 일을 이유로 집안에 들어오지 않음으로써 실패로 끝난다.

 

그 해 1221크리스마스 선물로 모피 코트를 사주기로 하고 그녀와 딩모춘이 모피 가게에 들어섰지만 뒤따라 들어오는 남자에게서 수상한 느낌을 받은 딩모춘은 영화에서처럼 바로 뛰어 달아난다.

 

딩모춘은 다시 나이트 클럽에서 만남을 약속하지만 그 약속은 이미 상황을 파악한 딩모춘의 함정이었다. 정핑루는 약속장소에서 76호의 행동대원들에게 체포되고 만다.

 

최후의 모습

정핑루 1940 2월 중순 22살의 나이로 상하이 교외의 벌판에서 총살을 당하고 만다. 딩모춘은 전후 일본 부역혐의로 체포되어 1947 7 46세의 나이로 난징 교도소에서 총살당한다.

 

색계 국내 포슽터

영화는 영화다 사랑하는 사이라니..

실제 그 이후

정핑루의 막내 여동생은 영화 개봉 후 자신의 언니는 영화 속의 인물과 전혀 다른 순수한 애국투사였다고 울분에 찬 성명을 발표했다고 한다. 실제로 정핑루는 처형직전까지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서 입을 다물었고 아버지는 이듬해 병사했고 그녀의 남동생은 전투기 조종사로 일본군과 싸우다 전사했다고 한다.

 

사실 실제 역사인물을 보면 영화 속의 인물들은 상당히 왜곡됐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미화되고 더욱이 사랑에 빠진 걸로 묘사하다니 남은 가족이 느꼈을 분노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된다. 마치 논개가 일본 적장과 사람에 빠져서 동반자살했다고 미화하는 모습을 보고 우리가 분개하는 것처럼 말이다.

2부에서 계속 됩니다.....

영어로는 safe house 또는 safehouse라고 표기되는 안전가옥 흔히 뉴스 등에서는 안가라는 약칭을 많이 사용하는 안전가옥에 대해서 알아보자. 안전가옥이라고 하면 흔히 안전한 집을 연상하기 쉽다. 하지만 안전가옥이라는 존재는 단순히 안전한 집을 뜻하는게 아니다. 이제 그 안전가옥을 자세히 알아보자.

안전가옥 - 안가 - safehouse - 초대소 - 아지트

저 단어들은 모드 한가지 목적의 시설을 뜻한다. 바로 철저한 보안이 있는 시설이다. 우리가 가장 최근에 접했던 안전가옥 이야기는 이명박대통령이 취임전에 머물던 시설 때문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저 위에 사진은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 전에 머물렀던 삼청동의 안가(안전가옥)의 모습이다. 원칙상 존재 자체가 비밀이어야 되는 안가지만 정치적 목적으로 사진과 위치 등 자세한 정보가 공개 된거 같다.

일반적으로 안전가옥은 국가기관이나 특수 정보기관 등이 비밀 유지 등을 위해 이용하는 집을 뜻한다. 따라서 일반 보안시설들 그러니까 청와대나 각급장관의 공관 등은 비밀이 아니기 때문에 안가라고 할 수는 없다.

실상 가장 유명한 안가는 박정희 대통령이 마지막 술잔을 기울였던 궁정동 안가라고 할 수 있다. 영원히 역사에 남게 된 이 시설은 국정원의 전신인 중앙정보에서 관리하던 시설이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저 사건으로 고급 술의 대명사가 되어 버린 시바스리갈이 보인다.

저 때 중앙정보부에서 관리하던 요인용 안전가옥은 12채가 있었다고 한다. 그 대부분을 김영삼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철거해버린다. 안전가옥이라는 시설 자체는 철저한 보안이 생명이다. 가장 확실한 보안이란 무었일가? 존재 자채를 지우면 그게 가장 철저한 보안이다. 시설이 노출되지 않는 다면 경비원 할아버지 한 분만 있어도 그 시설의 경비는 보장 될 수 있다. 따라서 일반적인 안전가옥은 그 존재 자체가 비밀이다.

안전가옥은 왜 필요한가?

박정희 대통령이 최후를 술자리에서 맞으면서 안가의 이미지는 상당히 퇴패적인 곳으로 인식되는 부작용을 낳았다. 하지만 안전가옥이라는 곳은 보안을 요하는 일들을 편리하게 행사하기 위한 시설이다.

예를 든다면 대통령이 외부인사를 만나서 의견을 듣고 싶을 때 이용할 수 있다. 청와대에서 면담할 경우에는 출입 사실이 기록에 남고 여러곳에서 지켜보는 눈이 있기 때문에 그 사실이 누출되기 싶상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측근이 싫어하는인사를 대통령이 만나고 싶다면 어디서 만나야 겠는가?

비공식적인 개인적인 행사를 치루기 위해서도 안전가옥은 필요하다. 대통령도 개인 사생활이 필요하고 개인적인 휴식이 필요하다. 청와대에서 벌어지는 일은 아무리 사적인 행위라고 하더라고 세상의 이목을 끌고 공적인 평가를 받을 수 밖에 없다.

예를 들어서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자 신분으로 이용했던 삼청동 안가는 금융연수원 맞은펴에 있으면서 청와대와 직접 연결되어 있는 시설이라고 한다. 테니스 코드가 잇는 정도만 특이하고 방이 4개 있는 일반 가정집 수준의 시설이라고 한다.

물론 안전가옥 답게 방탄유리와 도청 방지시설 등이 갖춰져 있고 24시간 CCTV로 주변이 감시된다는게 좀 다르지만 말이다. 물론 이런 이야기는 순수한 정치적 목적의 안전가옥을 이야기한거다.

존재가 들어나지 않는 안전가옥

간첩 원정화 사건에서도 그랬고 현재 북한에서는 황장엽씨가 머물고 있는 안전가옥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서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과거 이한영씨의 암살 사건을 겪은 우리 정보당국에서는 황장엽씨의 안전을 위해서 이 안전가옥은 철저한 비밀로 하고 있다. 이런식으로 첩보활동과 관련된 안전가옥은 철저한 비밀로 관리 되고 있다.
CIA 안전가옥

무지막지하게 거대한 CIA 훈련장


미국 CIA의 경우를 보면 소련의 스파이가 망명을 하면 그가 진짜 망명자인지 위장 망명자인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철저한 감시설이 있는 안전가옥에서 상당기간을 신문하고 조사했다고 한다. 이 안전가옥의 경우 실내 벽은 물론이고 정원의 바위나 나무에까지 카메라와 도청장치가 장치가 교묘하게 설치되어 있어서 24시간 감시와 기록을 했다고 한다.

북한이 남파간첩들을 교육하는데 사용하는 초대소도 일종의 안전가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알려진 안가들

1993년 김영삼 대통령이 취임하고 기존에 정치적 목적으로 운영되던 안전가옥들을 대대적으로 정리하면서 일단에게도 안전가옥이 공개되게 된다. 박정희 대통령이 최후를 맏았던 안전가옥을 포함해서 청와대 인근에 있던 12개의 안가가 대거 정리되면서였다.  당시 궁정동에 6개, 청운동에 3개, 삼청동에 3개 그리고 나머지는 구기동과 한남동 등에 있었다고 한다. 현재 일부 안가는 비서실장이나 헌법재판소장의 공관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오늘은 최덕근 영사님이 국가와 조국을 위해서 일 하시다. 살해되신 날입니다. 그분이 조국의 적과 싸우다 차디찬 아파트 복도에서 살해 당하신 날이기에 그분의 명복을 빕니다.

러시아정부에서는 사건을 단순 강력범죄로 분류하고 영구 미제 사건으로 넘겼다다고 합니다. 이런 종류의 사건에서야 흔한 일이긴 하지만 아쉬운 마음 금할 수가 없습니다.

다시 한번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최덕근 영사님의 사건 

벌써 사람들의 관심이 식어가고 있는 여간첩 원정화 사건 가려졌던 부분들이 차츰 들어나고 있다.

사건 초기에는 원정화라는 여자가 상당히 소심하고 평범한 여자인 것처럼 알려졌었기 때문에 저런 인물이 간첩이라는 점에 의문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다. 아무래도 간첩이나 스파이라고 하면 대단히 똑똑하고 멋진 사람 그도 아니면 무지막지하게 냉혹하고 무서운 사람이라고들 생각하기 쉽기 때문이지만 겉 모습에서는 오히려 보통 사람과 다를 바 없이 평범한 모습이어야 된다는 첩보세계의 기본 룰인 것을 보통 사람들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런 악당을 기대했나요?


거기에는 과거 국내 정보기관이 검은 선글라스에 검은 양복으로 맨인블랙(사실 그 인물의 전형은 FBI Gman의 모습이지만)을 흉내 내고 폼을 요란하게 잡아서 위압감을 주려고 했던 게 한 원인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원정화만 해도 처음에 알려진 모습과는 전혀 다른 인물이라는 게 최근의 보도 내용이다.

 

꼬리를 잡다.

원정화 사건의 첫 제보자는 원정화가 고용했던 조선족 가정부라고 한다. 원정화가 불법 체류하는 조선족 가정부를 고용하고 있었다는 사실도 흥미롭지만, 일하는 모습이 원정화의 마음에 안든 다는 이유로 그 가정부를 수시로 구타했는데 그 방법이 정권 찌르기 옆차기 등등으로 과격했다고 한다. 가정부는 저런 일반적이지 않은 폭행방법과 수시로 드나드는 중국에서의 이상한 행적으로 보통 사람이 아니라고 의심하고 수가기관에 재보했다고 한다. 암살지령을 심약해서 실행 못하고 체포 되는 것이 무서워서 신경안정제를 먹었다는 이야기와는 전혀 다른 인물의 모습이라고 하겠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람들이 원정화의 얼굴에 관심이 많았던건 이런 모습을 기대한 듣


 

순애보 주인공 황중위

황중위가 간첩인 사실을 알고 자수를 권하면서 죽어도 사랑한다고 하자 원정화가 죽으라면서 자신이 가지고 있던 수면제를 줬고 황중위는 이를 먹고 응급실까지 실려 갔다고 한다. 결국 사랑에 빠진 황중위를 원정화는 완전히 농락한 것이다. 마타하리나 김수임식의 로맨스를 연상했다면 큰 착각을 했던 건데 완전한 미인계의 전형인 여자다. 더욱이 남자들을 손아귀에 넣는 방법은 소주 7병이라는 대단한 주량을 무기로 대상자와 술을 먹고 관계를 형성했다고 한다. 결국 그녀는 남자들이 쉽게 넘어갈 수 밖에 없는 전략과 전술을 능수 능란하게 구사했다.

 

멍청한 우리측 정보요원

처음에 알려진 우리측 정보요원과의 관련으로 일각에서는 2중 간첩이라는 의혹을 받고 또 다른 일부에서는 함정수사 의혹을 재기하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는 도대체 한 대상에 대해서 중구난방으로 접근한 이 정보요원의 정체가 의심스러웠었다. 한 명의 정보원에 저런 식으로 다른 접촉 루트가 있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상황이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그들이 사기꾼이라는 의심을 했는데 최근 보도에 따르면 이들은 정보사령부 장교라고 한다. 정보사령부에서 했다면 충분히 저런 바보스러운 행동이 이해가 되지만 왜 국내에서 정보사령부가 저런 정보활동을 하는가 하는 건 참 한심스러운 모습이다. 대북 정보전에서 국가안전기획부와의 경쟁관계라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별로 어렵지도 않은 정보를 국내에 있는 탈북자를 통해서 얻으려 했다는 행태는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다. 기실 정보사령부 장교라면 상당한 엘리트임에도 원정화의 역정보 공작에 당하기 딱 좋은 먹이 감이 됐다는 것이 그 결과이니 말이다.

 

사건을 바라보면

최근 알려진 사실을 놓고 볼 때 원정화라는 여자는 처음 알려진 것과는 상당히 다른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결코 불행한 인생여정으로 남한 사회에 흘러 들어와서 반쯤 억울하게 간첩의 굴레를 쓴 그런 인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마 재판 과정에서는 이런 이야기로 자신을 변호하겠지만 그녀는 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파멸로 이끌었고 국가 안보를 심각하게 위협했다고 하겠다. 더욱이 비슷한 유형의 용이자 한 명은 중국에서 잠적했다고도 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어디를 찍은 사진일까? 정보사령부 사진이다.(어디지??) 출처 :서초구


그리고 정보사령부는 정신 좀 차려야 한다. 다른 정보기관과의 경쟁만을 의식해서 본연의 장점을 망각하고 어설픈 일을 벌여서 망신을 사고 안보를 위험한 처지에 놓는단 말인가? 개인적으로도 정보사령부의 어설픈 보안의식을 목격한 바 가 있어서 더욱 그들의 분발을 촉구하는 바이다.

  1. 닭똥 2017.11.09 18:31 신고

    정신차려라 조작이다고 곧나온다 ㅋㅋ

최근 김정일 와병설이 나돌 고 있다. 일반 민주 국가의 통수권자의 신병도 국가 기밀에 속하지만 중병일 경우 그 비밀 유지 기간은 아주 짧을 수 밖에 없다. 국가 안보에 심대한 영향을 끼치는 만큼 비밀유지도 중요하지만 국민이 상황을 파악 할 수 있는 알권리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참 드문 자연스러운 모습


하지만 북한 같은 폐쇠 사회에서 김정일 같은 고위층의 신병은 최후의 순간까지도 극비 정보로 취급되게 된다. 과거 냉전시절 러시아는 고위층 사망을 수개월 씩도 숨기곤 했다. 미국은 여기에 대항해서 여러가지 분석수단을 강구 했고 이런 수단은 김정일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적용되고 있다.

전문가

일단은 김정일이라는 인물에 대한 전문가가 필요하게 된다. 자주 보면서 그의 일거 수 일투 족을 이해하고 분석할 수 있으며 미세한 변화도 감지해 낼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의 걸음걸이 하나 목소리 하나 피부색 하나 이런 모든 정보가 분석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일상에서 다른 사람의 기분이나 신체 상황을 쉽게 알 수 있다. 얼굴만 봐도 너 어디 아프냐? 너 감기 걸렸구나.. 너 요즘 살좀 쩠네! 할 수 있는 것처럼 김정일에 대해서 세밀히 관찰을 한다면 이런 사실을 알 수 있게 되는데 의학적 정보를 바탕으로 분석하게 된다면 좀더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정도 까지 알고 있나..(심한가??)

예를 들어서 좋아하는 음식이나 평소의 음주 습관 같은 등의 부가적인 정보들을 첨가하면 말이다. 우리도 쉽게 김정일 걸릴 수 있는 병은 예측 할 수 있다. 노년으로 접어들 고 있는 나이, 아버지의 지병(가족력), 운동을 안하는 습관, 비만상태, 폭음, 과로, 정기적인 암검사 뻔한 병명이 나오게된다. 실제로 현제 알려진 병명이 뇌졸증이다.

국정원에는 실제로 저 일만을 담당하는 전문가가 있다고 한다. 평생을 김정이란 바라 보고 흉내 내고 사는 걸로 알려져있다.

수집

전문가의 분석은 사실 추측이고 가설일 뿐이다. 이 가설을 다른 증거들로 사실임을 입증해야한다. 여기에는 스파이와 감청이라는 요소가 필 수 적이다. 앉아서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김정일 측극에 접근하는 정보원이 우선 필요하다. 역공작의 위험은 있지만 상당히 신뢰할 만한 정보들을 얻을 수 있다. 알려지 바에 따르면 우리측 암호명 흑금성 같은 요원이 그런 경우이다. 간혹 미제의 스파이라는 이름으로 제거되는 북한 고위 인사들 중에도 단순한 누명이 아닌 사람이 있을 수 있다.

휴민트라고 칭해지는 우리가 쉽게 상상하는 스파이 활동이 가장 우선이고 이 부분에 있어서는 미국도 우리 정보기관에 의지한다고 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 만큼 보여주면 많이 보여주는 거다.

감청 각종 유무선 통신 내용을 분석해서 내용을 알아 내는 것이다. 흔히 생각 할 때는 '어디가 아프다.'같은 직접정인 정보를 연상하기 쉽지만 정보전의 세계에서는 그런게 아니다. 김정일이 거동이 불가능하다라는 정보를 확인하는 방법은 김정일 경호대의 이동과 이에 따른 무전 신호가 감청되느냐 아니냐를 보면 된다.

교류

다른 나라의 정보기관과의 정보 교류 이 부분은 상당히 중요한 일이다. 아무리 능력 좋고 돈 많은 CIA도 전세계에 요원을 운영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각국 정보기관들은 서로 싸우기도 하고 정보를 주고 받기도 한다. 일종의 거래를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프랑스 의료진이 김정일을 치료하기 위해서 초청된다면 그 사실은 프랑스 정보기관의 협조로 국정원이 알 수 있게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참 소박한 가족

안다고 다 말은 안한다.
하지만 저런 사실들을 확실히 파악할 수 있다고 결코 발표되지는 않는다. 내가 뭘 알고 있는지 모르고 있는지를 숨기는 것이 정보전쟁에서 승리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적은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을 확인하면 그 정보가 어떻게 들어갔는지 확인하고 그 구멍을 막으려고 들 것이고 모르고 있는 사실을 확인하면 안심하고 활동할 것이기 때무이다.

간혹 국정원이 억울하게 뒤집어 써야되는 무능력의 굴레는 어쩔 수 없는 요소가 있다.
작년에 국내에는 작게 보도됐던 내용이지만 제미교포 박일우씨가 FBI에 체포되는 일이 있었다. 국내 보도로는 체포 이유가 위증 혐이였는데 미국측 보도에 따르면 미국 거주자가 타국에 정보원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미국 정부에 등록을 해야하는데 이 부분을 어겼기 때문이라고 한다.

박씨는 대북사업(평양 소주를 미국에 수출하는 일)을 하면서 얻은 정보를 한국 정보기관에 금전적 대가를 받고 넘겨왔다고 하는데 사건의 이면을 생각하면 참 미묘한 점들이 많다. 일단 이 사건은 미국 FBI 본부차원에서 이루어진 작전이고 2003년부터 감시를 시작해서 2005년 부터는 도청과 밀착 감시(미행이라고 보통 말하는)를 해왔다고 한다.

2005년 부터 이루어진 도청의 대상은 우리 정보기관과의 통화였는데 특별한 라인을 통해서 우리 정보기관과 나눈 통화는 감청에 실패했다고 한다. 우리 정보기관도 실력이 있다는 소리라 약간 뿌듯하기도 하지만 대면접촉(접선이라고 보통 말하는) 장면이 FBI의 감시에 포착(영화에 흔히 나오는 찰칵 찰칵과 원격 도청)됐다고 한다.

감청된 내용은 북한 관리가 살충제와 마취제, 수의학 관련 제품을 구해달라고 요청했다는 정보라고 알려졌는데 이런 일에서 저런 물품들이 단순한건 아니라고 생각하는게 옳다. 중국시장에서 쉽게 살 물건을 요청하지는 안았을 거라는거다.

체포된 박씨는 FBI의 심문과정에서 우리 정보기관과의 일을 부인했고 이점이 위증(좀 이상하지만 국내 언론 보도 상으로는 그렇다.) 혐의가 된거같다. 미국측 보도에 따르면 박씨는 왜 자신에게 북한 정보기관일을 안 물어보고 한국 정보기관일을 심문하는지 되물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도 묻고 싶은 질문인데 우방국가의 작전을 대놓고 깨버린 미국 정보기관의 목적은 뭘까? 무슨 정보에 무슨 일이 있었던걸까? 이쪽 일은 표면에 나오는 정보는 항상 외곡되니 보도 내용만 가지고는 알수가 없다.

동아일보는 이 사건에 관련해서 사설까지 써 놓았던데 잘못된 정보에 기반하다 보니 또 실수를 했다. 2007년에 체포됐지만 FBI작전은 2003년부터 시작됐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그런식의 추측은 안했을 텐데말이다. 논설의원분들이 너무 정치적 색 안경을 끼고 봤던지 미국을 너무 우방이라고 생각한 나머지 이쪽 일을 너무 몰랐던거 같다. 그런 일은 국정원에 문의라도 하고 사설을 쎴으면 하는 희망사항이 있다. 참고로 국가정보원 소비자 상담실 전화번호는 111이다. 논설 의원쯤 되면 2차장 핸드폰 번호도 알텐데 말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냉전시절 가장 가치있는 전향 스파이로 손꼽히던 '유리 이바노 비치 노센코(Yuri Ivanovich Nosenko )'가 향년 81세의 나이로 미국에서 사망하였다고 한다.

그는 스위스에서 1964년에 미국으로 망명한 KGA 고위 간부이며 특히 케네디 대통령을 암살한 오스왈드의 상관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는 망명후 4개월간 이중 스파이가 아니라는 사실이 증명 될때까지 클린턴에 있는 극비의 안전가옥에 연금되어 있어야만 했다고 한다. (이런 안전가옥은 수 많은 도청장치와 감시카메라로 둘러 쌓여 있고 끊임없는 심리적 압박을 가하는 곳으로 악명이 높다.)

그의 사망 소식이 알려지자 마이클 헤이든 CIA국장은 그의 헌신에 감사하는 편지를 보냈다고 하는데 이런 모습은 우리 나라에 비해서 이런 사후관리가 잘 되는 편인거 같다.

생전에 그는 수차례에 걸처서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과 KGB의 관련성에 관하여 거짓말 탐지기까지 동원하는 심문을 받았지만 오스왈드는 KGB요원이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케네디 암살과 관련해서 CIA와 KGB는 이직도 계속 핑퐁을 치고 있다.)

"Why should I be afraid?" he replied. "I was a soldier."

2007년 6 27일 새벽 1시 한 억만장자가 런던 사이드워크가에 있는 그의 아파트에서 추락한다. 4층 발코니에서 추락한 그는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 떨어저 즉사하고 말았다. 그의 죽음은 곧 전세계 정보기관과 언론 관련 블로그들에서 많은 논란을 이르킨다. 물론 우리는 관심 가지는 이가 아무도 없었지만 말이다. 더욱이 건너편 건물에 있던 한 목격자가 사망자가 지중해계 남자 2명과 함께 있는 것을 봤다는 증언을 함으로써 타살 의혹은 더욱 높아졌다. 또한 그의 아들도 아버지의 타살 가능성을 주장했다.

그의 이름은 아쉬라프 마완(Ashraf marwan)으로 환갑을 넘긴 나이지만 특별한 지병이 있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는 이집트 사다트 대통령의 사위이자 헤롯 백화점 소유자 모하메드 알 파예드(다이에너 왕비의 시아버지가 될뻔한 그 사람)의 사업파트너이기도 했다. 한 마디로 요약하면 부와 권력을 모두 가진 부자였다.


사업가의 두 얼굴

그저 성공한 사업가로 보이는 그의 죽음에 왜 많은 정보기관과 언론 그리고 블로그에서 그렇게 많은 관심을 가졌던 것일까? 그건 그가 알려진 가장 성공적인 2중 스파이 중 한 명이있기 때문이다.
 
사망 정황은 이런 그의 이력과 함께 관심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했다. 부검에서 사인이 뇌동맥류파열이라는 결과가 나왔지만 정보기관의 보복성 암살이라는 의심은 지울 수가 없었다. 그 의혹을 받는 기관은 이미 수 차례 보복성 암살을 저지른 이력이 있는 모사드 였기 때문이다. 런던 경시청은 그가 사망 당시 신발을 신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단순한 추락사라는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과연 그는 어떤 인물인가? 처음 대중에게 그의 존재가 알려진 건 2002 9월이었다.  런던의 역사가 아론 브레그먼이 이스라엘의 최고위 첩보원에 대한 힌트로서 “the in-law”(며느리, 사위 누구냐 너는..)라고 말하면서 시작되었다. 이집트 언론은 즉각 이에 반응해서 그 인물을 추적하기 시작했고 곧 마완이 그 용이자로 지목되었다. 하지만 그가 스스로 이스라엘 정보기관인 모사드에 접근해서 스파이가 됐다는 주장에 많은 의문이 따랐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인물 좋고 능력 좋고


부유한 사업가이며 대통령(당시 사다트는 군 사령관이었고 전쟁 이후 그 인기로 대통령이 된다.)의 사위인 인물이 왜 스스로 조국을 배신하고 파멸의 위험이 큰 스파이가 되었겠는가? 결국 많은 추측들이 난무하게 된다. 모사드가 그의 영국 사업을 도와주었다는 즉 막대한 사업의 이권 설이나 가족(처가)간의 불화같은 개인적 문제 또는 순수한 사상적 이유 등이었다.

 

이러한 공개와 소란 속에서도 이상하게 이집트 정부는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았다. 마완은 스파이 행동이 발각되었을 때 응당 따를 법적 조치나 은밀한 보복도 받지 않았으며 2003년에는 마완 자신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공식적으로 혐의를 부인하기까지 했다. 그러던 와중 2004년 모사드의 감시망에 한가지 정보가 포착된다. 그건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으로부터 환대를 받는 마완의 모습이었다. 상황은 명확해지기 시작했다.

 

이에 아론 브레그먼은 단 하나의 결론만이 남아 있다고 주장했다. 마완은 2중 스파이인 것이다. 하지만 객관적이고 명확한 증거는 없었다.

 

마완의 알려진 스파이 활동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자 2004 10 9일 이스라엘 제이라 중장은 이스라엘 최고의 첩보원 암호명”The Source”가 마완이라고 공식적으로 밝히게 된다. 그에 따르면 마완은 1969년 모사드와 처음 관계를 가지면서 런던에 있는 이스라엘과 요르단의 비밀 접촉 거점이었던 병원에서 이집트의 기밀 문서를 건내주었다고 한다. 그 이후 헤롯 백화점에서 쇼핑을 위장하여 모사드 비밀 요원과 3일에 1번꼴로 접촉하면서 스파이 활동을 해왔다는 것이다.

 

마완은 이런 활동의 대가로 런던에 있는 모사드 안전가옥에서 5만 파운드 씩을 받았다고 한다. 이때 종종 당시 모사드의 최고 책임자인 즈바이 자미르를 면담했고 마완의 진술은 녹음되어 이스라엘 수상에게 직접 보고 되곤 했다고 한다. 이쯤이면 마완은 모사드 최고의 스파임 중 하나임이 틀림 없다고 하겠다.

 

이상한 정보

 

1973 4월 마완은 이집트와 시리아가 그 해 5 15일 이스라엘에 대해서 기습공격을 감행할 것이라는 정보를 제공한다. 하지만 그날은 그저 평온한 하루였을 뿐이었고 어떠한 공격 징후도 없었다.
그럼에도
이스라엘은 마완의 정보에 따라서 긴급 전투준비를 해야만 했고 그 준비에는 35백만 달러라는 막대한 비용이 소모되었다. 마완은 다시 6개월후 (윰키프로 전쟁이 발발하기 직전이다.) 자미르 정보부장을 새벽 2시 30분에 깨워서 런던으로 호출하다. 마완은 자미르 정보부장에게 일출경의 공격을 경고했고 이 정보는 즉각 이스라엘 내각에까지 전달 되었지만 이 또한 사실이 아니었다.
마완은 전쟁이 발발하는 순간까지 계속적인 역정보와 조작된 경고를 발하면서 이스라엘 군을 혼란스럽게 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나이먹고 보니 중동 아저씨의 모습


저 공작의 결과로 윰키프로 전쟁은 철저한 보안과 전략적 기습을 성공 시킨 이집트와 시리아의 우세로 시작되게 된다. 비록 전쟁 중반 이후의 상황은 초반과는 달라졌지만 말이다.
 

모사드 바보가 되다.

 

하지만 이 모든 내용은 마완이 2중 스파이라는 결론을 내리기에는 직접적인 증거가 되지 못했다. 결국 이런 모든 의혹은 마완의 장례식이 이집트 고위 성직자의 주관하에 그것도 국장으로 치루어지면서 결론이 나고 만다. 장례식에 참석한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은 “(마완은) 아직은 밝힐 때가 되지 않은 애국적이고 영웅적인 행동을 했다.”라고 기념사를 남겼다. 이 자리에는 오마르 슬레이만 이집트 정보부장도 참석했다.

마완은 한 작가와의 마지막 통화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고 한다.
"이스라엘의 보복이 두렵지 않소?"라는 질문에 "내가 왜 두려워 해? 나는 군인이요!"라고 답했다고 한다.
하나도 부러울 거 없는 부와 권력을 가졌으면서도 조국을 위해서 목숨을 건 마완의 저 말은 가볍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토록 명성이 드높은 모사드도 저런 인물이 설마 위험한 작전을 펼치리라고는 생각을 못해서 역공작에 당했다고 조심스럽게 추측해본다. 그리고 그의 죽음은 모사드의 비밀기록이 해제될 때까지 의문으로 남게 되었다.
일부 진보적인 사고를 한다는 사람들이 이번 간첩사건에 대해서 여러가지 물타기를 하고 있다. 정치적으로 보면 현정권이 궁지에 몰리는 시점에서 국면전환용으로 사용되는게 마음에 안들기 때문에 그러는 것도 있겠지만 자신들도 모르게 공작에 이용당하고 있는건 아닌가 하는 우려도 생긴다.

이런 생각을 하는 이유는 통일된 논리를 적용하기 때문인데 이전 경험에서 그런 논리가 나중에 보면 공작차원에서 나온게 원 출처인 경우가 종종있었기 때문이다.

보위부 소속이 이상해?

이런 류의 일에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보의부 소속이라는게 엉뚱하다는 의견을 먼저들 피력한다. 법률의 엄격하게 활동 범위가 정해진 CIA와 FBI조차도 종종 싸움이 나는데 보위부에서 파견했다고 이상한가? 물론 보위부도 대남공작을 할 수 있는 조직이다.

저런 딴지는 대북정보전은 안기부에서 하는거지 무슨 경찰이 하냐는 무지한 소리와도 같다. 지금 현재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경찰조차도 대북정보전을 했고 별도의 조직이 있다. 수년간의 정치적 상황에서 경찰의 그런 조직은 약해졌겠지만 아직도 존속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된다. 개인적으로도 약해지는게 옳다고 생각한다.

노래방에서 시작해서?

중국노래방이 첫 활동 무대라는 사실에 상당히 우습다는 모습을 보인다. 이또한 무지한 소리다. 심지어는 영화나 소설조차도 첩보전은 저런 곳을 무대로 많이 펼치는데 말이다. 술집처럼 경계심 없이 다양한 정보원에 접근 하기 좋은 곳은 없다. 더군다나 술이 가지는 효과로 인해서 평소에 가지는 조심성 조차도 흐트러지기 때문이다.

더욱이 중국의 노래방이라는 곳은 중국에 나가있는 대부분의 한국남성들이 모여드는 곳이기 때문에 첩보전을 펼치기에는 아주 매력적인 곳이다. 개인적인 경험으로도 그곳에서 오고간 대화들이 지금 돌이켜 보면 참 위험한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돈벌어 주는 간첩이라서?

흔히 하는 착각이다. 스파이 활동을 하면 공작금이 나오고 돈을 팍팍 쓰고 다닐거라고.. 하지만 전세계 대부분의 스파이들은 풍족한 공작금을 받지 못한다. 부자나라에서 돈에 매수된 스파이들 조차도 놀랄만한 껌값을 받고 일한 예가 많다.(나중에 다룰 주제 중에 하나다.) 스파이를 유지하는데 그렇게 많은 돈이 안들 수 있는거다. 특히 고정간첩 장기간 잠복하거나 하는 스파이이의 경우 직업을 가지고 돈을 벌어서 생활하는게 일반적이다.

취득한 정보의 가치에 대해서는 여러가지로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군 장교의 전화번호를 수집한게 그렇게 우수은 정보는 절대 아니다. 군부대 전화번호나 주소를 보안사항으로 두는 이유는 그게 중요한 정보이기 때문이다. 군전역자들은 다 알고 있는 하찮은 정보도 정리되고 체계적으로 수집되면 중요한 정보가 된다. 군장교의 전화번호는 유사시 역정보 공작에 가장 기초적이고 중요한 수단이된다. (이런 류의 이야기도 나중에 다룰 예정이다.) 소련은 미국 전화번호부 수집이 가장 기초 정보습득 활동이었고 소련 자신은 전화번호부를 국가 기밀로 취급했다.

황대위(아마도 대위진인거 같은데..)

사랑에 빠저서 신고 못했다는 사실이 또한 우습게 들리나? 뭐 사랑에 안빠저 봤으면 우습게 들릴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랑에 빠저서 불구덩이로 들어간 예는 부지기수다.(뭐 이것도 다룰예정..) 하지만 단순히 사랑 때문이라고 생각할 필요도 없다. 백색스파이에서 이야기했지만 이미 알아도 신고할 수 없는 상태에 처한 부분도 분명히 작용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언론이나 여기 저기서 마타하리 언급하는 경우가 많은데 정말 마타하리를 알고 하는 소린가 궁금하다. 아마 마지막 사형대에서 누드로 총살 당했다는 소리만 알고 있는거 아닌가 싶다. (당연히 마타하리는 다룰 중요한 소재다.)




이번 간첩 사건에서의 이중간첩 이야기를 정리해보고자 한다. 먼저 우리 정보기관의 정보활동을 이야기하려고 하는데  이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혹시라도 현재 활동하는 분들에게 누를 끼치는 일이 있을가 조심스러운 면이 있다는 것을 밝힌다.

필자가 이쪽 정보를 실제로 많이 알고 있거나 한건 아니지만 단편적인 정보를 가지고 분석했을 때 예기치 못한 내용이 엉뚱한 정보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1996년10월 1일 밤 러시아 블라디보스톡 최덕근영사가 귀가 도중 아파트 앞에서 괴한의 총격을 받고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건이 발생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최 영사를 살해한 범인은 북한 공작원이라는 보도가 나오기 시작했는데 이유는 최 영사가 국가안전기획부 소속 백색 요원(이미 다룬주제)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해외주재하는 기자들은 백색 요원과 친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만큼 이전부터 그의 신분을 알고 친분도 있었을 것이기 때문에 사건이 발생하자 마자 저런 보도가 나오게 된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고인이 되신 최덕근영사

필자가 알기로 우리측 정보요원이 활동중 사망하고 이런 사실이 공식적으로 보도된 첫번째 사건이 저 사건이다. 국정원 로비에는 CIA를 참고해서 로비에 추모비가 하나 있다. 작전중 사망한 요원들을 기리기 위한 검은색 비석인데 사망 연도만이 적혀 있을 뿐 이름이나 어떠한 다른 내용도 없다 오직 사망한 요원 한명에 하나의 금색 별만이 달릴 뿐이다. 현재까지 45개의 별이 달려 있다고 한다. 그 말은 우리가 모르는 동안에 순직한 정보 요원이 45명이나 된다는걸 뜻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위의 사진은 CIA에 있는 별이다. 국정원하고 비교하면 국정원은 검은 대리석에 좀 큼직한 별을 달고 조명도 어두워서 CIA와 많이 대비되는 모습이다. 짐작으로는 국정원이나 CIA나 정직원만 별을 단거라고 추정된다. 계약직(갑,을,병,정..)을 포함하면 별로 도배하는 사태가 벌어질지도 모르겠다. 정직원은 죽을 가능성도 낮은데 이레 저레 계약직은 서럽다.

현재 우리 정보요원들의 주 활동 지역은 중국,러시아가 가장 치열한 걸로 알려지고 있다. 북한이나 남한 인사의 활동이 자유롭고 양국의 접촉도 많은 만큼 당연한 일이다.

원씨 이야기로..

2003년 3월, 서울에서 우리 측 정보 요원 이 모 씨가, "북한의 군사 기밀을 파악해달라"는 제의를 받았는데 조건은 "협조하면 딸 양육을 책임지고 매달 500만 원씩을 지원하겠다"라고 한다.

저 짧은 문장에서 이모씨가 정말 정보 요원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도 정보쪽 신분증 들고 다니는 사람을 만난적이 있는데 이후 그 사람의 언행을 보고 신뢰도가 대폭 반감한 적이 있다. 뭐 다른측면의 신분은 확실한 사람이라 국정원에 확인하면 되지만 구지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는 못했다.(취미 생활이려니 했다..) 참고로 청와대를 사칭하면 청와대에 전화해서 문의하면된다. 혹시라도 비밀이 어쩌구 저쩌구 하는 말은 믿지 말자 그럴거면 신분을 밝히지도 않는다.

2004년에는 우리 측 정보기관 요원 김 모 씨가 북한 여권 사진을 촬영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북한에서 중국으로 건너온 어머니 여권 사진을 찍어 전달했다고 한다. 그 이후 김모씨와도 내연의 관계를 가졌다고 하는데

저 짧은 문장에서도 저 김모씨의 신분도 의심스럽다. 북한 여권 사진이라면 중국에서 흔하게 촬영할 수 있는 사진인데 구지 저럴 필요가 있었을 까하는 생각이 든다. 더군다나 잠자리까지 같이 했다니 말이다.

중국에서 활동하는 우리 백색요원이나 그 아래의 계약직들을 생각(?)해보면 저 이모씨나 김모씨는 진짜 우리측 요원이 아니라는 생각이든다.  저런 사기꾼들은 어설푼 부탁으로 자신의 신분에 대한 의심을 지우려고 한다. 한 사람에 대해서 이요원 저요원이 접근한다면 국정원 요원은 따로국밥인가? 말이 안된다.

나오는 이야기들을 볼 수록 북이나 남이나 좀 어설픈 모습들이 보이는거 같다. 아마 내가 스파이 영화를 너무 많이 본 영향인거 같다. 진짜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서 활동하면서 벌이는 일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측면이 강하니까 말이다. 이런 말이 있다.. "실패한 작전은 보도가 되지만 성공한 작전은 보도가 안된다."(다른 말로 보면 무능한 요원은 보도돼고 유능한 요원은 보도 안된다..)

물론 다른 이야기도 있다. 국정원의 고위 간부들간에 벌어졌던 스켄들을 보면 저런 사람들이 국가안보를 지키는 핵심기관의 간부란 말인가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들기도 한 일이 있으니까 아무튼 진실은 좀 먼 곳에 있다고 하겠다. 언론 보도가 흥미위주로 스켄들 위주로 흘러서 원씨가 상당히 우수워 보이지만 다른 측면으로 보면 그렇게 허술한 존재는 아니었던거 같다.

이중 간첩(Double agent)

최근에 채포되서 주목을 받는 간첩사건에서도 이중 간첩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뭐 쉽게 설명하면 양다리 간첩이다. 이쪽 정보도 저쪽에 넘기도 저쪽 정보도 이쪽에 넘기는 스파이.. 물론 아주 공평한 스파이는 공정한 심판처럼 양쪽에 동등한 수준의 정보를 제공하기도 한다. (놀랍겠지만 세계평화를 위해서 진짜로 그런 경우가 있다. 유명한 월남 귀순자 한분도 스파이는 아니지만 그런 목적으로 귀순하기도 했다.)

하지만 스파이가 축구심판도 아니고 그럴 필요가 있겠나? 이중 스파이라는 건 어디까지나 양쪽 정보기관에 연결된 라인이 있어서 자기편이라고 생각한다는 거지 실제로 양쪽에 공정하게 대하는 스파이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대표적으로 알려진 이중간첩 이수근(논란은 있다.)


실제로는 상대쪽 정보기관에서 역공작 차원에서 스파이를 상대방에게 대놓고 심어 놓는 방법이 대부분이다. 위장 귀순, 변절 등이다. "나 우리 기관(정부)에 삐졌으니 나를 받아 주시오.. 충성을 다하겠소.."
이럴 경우 정보조직이 아주 멍청하거나 스파이 능력이 출중해서 덜컥 받아주는 일도 있지만 대부분은 집요한 심문을 하게된다. 종종 고문도 해가면서 진짜인지를 확인한다. 이중 간첩은 너무 위험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래 인물처럼 너무 능력이 출중해서 적국의 대통령 사위가 되는 경우도 있다. 과거에 밝혀진 일이니까 아는 거지 지금도 세계 구석 구석에 모르는거다. 대한민국 정보기관도 저정도로 뛰어난 요원을 가졌지만 정치적 혼란으로 날려먹은게 얼마전이다. 암호명 흑금성..(나중에 다룰 것을 약속한다. 내막을 알면 분통 터질 것이기 때문에 혈압약을 미리 준비하고 읽어야 될거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왼쪽은 이집트 대통령 오른쪽은 그의 이중간첩 사위 모사드가 괜히 유명한게 아니다.(나중에 다룰 인물.^^)

이중 간첩은 왜 위험한가?

스파이는 모두 위험하지만 성공적인 이중간첩은 파괴력이 어마 어마하다. 왜냐하면 그 사람 혼자서 전쟁의 승패를 개전 전에 결정해 버리기 까지한 저 위의 전설같은 존재가 있기 때문이다.

이중 간첩은 보통 상대방 정보기관에 라인을 가지게 되기 때문에 보통의 간첩이 접근 못하는 상대방 정보기관의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이 열리게 된다. 군사시설 사진 몇장 하고는 차원이 다른 정보를 취할 수 있게 되는 거다.

또한 상대 정보기관이 얻고 싶어하는 정보를 계속 제공하면서 신뢰를 높인 후에 졀정적인 역정보를 흘림으로써 적을 큰 혼란으로 몰아 넣을 수도 있다.

최고 단계에 이르르면 적이 심어 놓은 스파이 조직을 파악해서 한번에 와해시킬 수도 있다.

이중 간첩의 코미디

이렇게 유용하고 멋진 이중 간첩을 마구 남발하고 싶어지지 않는가? 하지만 이중 간첩은 양날의 검이다. 적에게 귀순한 우리측 스파이가 계속 우리에게 충성하고 있다는걸 확신할 수 있는가? 일반적으로는 배신을 전제로 활용하게 된다. 안 그랬다가는 너무 위험하기 때문이다.  배신하는 순간 저 이중 간첩의 위험요소가 그대로 우리편에 적용이 되기 때문이다. 첩보전에서는 믿음이라는 것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미국과 러시아가 냉전을 벌이면서 어마 어마한 스파이들이 피를 튀기면서 전쟁을 하던 중에 보면 그런 예가 많았다. 미국의 공작으로 러시아가 자국 이중 스파이를 의심하고 소환하고, 이 스파이는 귀국하면 신변이 위험함을 알고 미국으로 망명해버리는..

더 웃기는 경우는 너무 성공적으로 활동을 해서 저 놈 우리를 배신한거라는 의심을 사서 재거된 경우까지 있다. 냉전시대에 미.소간에 전부 실제로 있던 사실이다.

이번 간첩사건에서의 이중 간첩문제는 너무 어설픈 면이 많다. 다음편에서는 그 문제를 이야기 해보겠다. (이야기 수위에 대해서 좀 고민하고 있다.)

본문에 앞서서 현재 나온 단편적인 기사들을 기초로한 필자의 상상이라는 점을 먼저 밝힙니다. 자백을 받았음에도 수사결과 발표에는 의문스러운 점들이 많은데 몇가지 참고적인 이야기와 그 이면의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일반적인 스파이 수사의 특징

일반적으로 저런 정보관련 수사발표는 모든 진실을 발표하지 않습니다. 수사결과 발표나 재판과정까지도 첩보전의 연장선이이기 때문입니다. 첩보라는건 미확인 정보를 뜻합니다. 확인이 된 내용은 정보라고 칭하지 첩보라고 칭하지 않습니다.

첩보원들의 교차 검증을 통해서 검증이 되었을 때만 정보가 됩니다. 첩보는 신뢰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최대한 확인을 하려고 하고 방첩기관에서는 이 확인을 최대한 막으려고 하는데, 수사 발표나 재판중의 증거에서 이를 확인 해버리면 첩보가 아닌 정보가 되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따라서 최대한 첩보가 정보로 등급이 상향되는 일을 막기 위해서 수사나 재판과정에서도 정보전을 계속 전개하게 됩니다. 이런 이유로 종종 간첩이 확실하고 증거도 가지고 있지만 조작이라는 누명을 써도 벗어 날 수 없는 일이 발생합니다. 이렇게 몰아 부칠 경우 우리측 정보기관은 가지고 있는 정보를 증거로 내새워야 되는데 그건 정보기관의 자폭이지요. 벙어리 냉가슴앓기 입니다.


원정화 사건의 특징

사용자 삽입 이미지
원정화라는 인물의 인생역정은 한편의 드라마입니다. 간첩교육을 받고, 도둑이 되고, 탈북을 하고, 다시 간첩이되고... 그런데 사건을 자세히 보면 원정화의 활동이나 행적은 조무라기 행동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고정 간첩이면서도 자기가 간첩이라고 누설을 했다던가 실질적인 전문 간첩으로서의 능력도 떨어지고 다만 성공적인 미인계를 통해서 기초적인 정보를 습득했다는 점정도입니다.

하지만 앞에서 언급한 수사의 특징을 투영해보면 눈길을 끄는 특징이 보입니다. 사건은 크게 보도되고 문제가 되지만 등장 인물중에 별로 언급이 없는 인물 원정화의 계부라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에 대한 단편적인 정보는 "대남공작기관 고위 간부 출신인 원정화의 계부 김모(63·구속)"라는 겁니다. 문장만을 보면 이 사람도 탈북자라고 추정이되는데 상황으로 봐서 탈북한지 오래됐을 거고 우리 정보기관이 주시할만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는 겁니다.

여기 저기 기사를 통합해보면 저 사람은 원정화의 윗선이고 이미 활동한지 오래된 고첩이라고 추정되는데 이상하게 언급되는 정보가 없습니다. 결국 원정화야 깃털이고 진짜 사건의 핵심은 저 계부라는 사람이라고 추측할 수가 있습니다. 정치적 상황을 고려해볼 때 시간이 좀 지나면 대규모 2탄 발표가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만약에 이 추정이 진실이라면 2탄은 원정화 사건은 연예인 스켄들급으로 만들어 버릴겁니다.

새로 추가된 기사로 나온 계부에 대한 정보는 다음과 같습니다.
평양 미술대 조각학과를 졸업 2006년 캄보디아를 통해 입국한 탈북자이며 보위부의 공작원 교육을 받았으며,  김씨 누나의 딸이 북한 최고인민회의 김영남 상임위원장의 아들과 결혼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합니다. 또한  합수부는 김씨에 대한 혐의를 공개하지 않았고 기소할 때 발표하겠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제가 이전 글에서도 언급했어야 하는데 놓친 부분이 윗 내용을 정리하면서 생각이 났습니다. 탈북자들 중에는 자신의 북한에서의 사회적 지위를 과장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남쪽에서의 대우가 달라질 거라는 기대에서지요. 이런게 이번 사건에서 빵!하고 터지는 황당한 사태도 염두에 둬야 합니다.


약간의 추가

혹자는 왜 간첩사건을 터트리냐 역정보용으로 둬야지 너무 정치적 목적이 보인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당연히 정치적 목적은 포함이 되는게 이런 류의 사건입니다. 하지만 모든 간첩사건을 조용히 처리해서 역정보용으로 쓰는건 아니지요. 분위기 환기도 시켜야하고 지금처럼 세상에 간첩이 없다고 큰 소리 치는 사람들에게 경고도 해야되고요.(북한정권이 가난해서 간첩을 못 보낼거라는 소리도 있는데 핵폭탄 만드는데 그깐 간첩이요? 007영화를 많이 봤는지 모르겠지만 간첩은 푼돈으로도 운영가능하고 심지어는 돈을 벌어다 주기도 합니다.)

미국이나 해외국가도 간첩사건은 많이 발표합니다. 그 사람들이 역정보전이나 그런걸 모를리가 있겠습니까? 이번 원정화 사건으로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믿음(북한의 위협은 과정된 거짓이고, 평화로운 세상을 괜히 겁주는 거라는)이 깨짐으로 물타기 하는 분들이 많은거 같습니다. 우리가 북한의 무력침공을 쉽게 물리칠 능력이 된다고 해도 총 한번 쏴보지 못하고 무너질 수 있는게 첩보전입니다. 북한정권은 이 점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스파이이 이야기를 주제로 쓰면서 이와 관련된 내용을 올려 볼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벌써 사건이 터지고 말았네요. 탈북자로 가장한 37세의 여성이 경찰관과 결혼하고 군 간부들과 내연의 관계를 가지면서 군배치나 사진등을 북한에 넘겼다고 합니다.

2004년 북한에서 정식으로 간첩교육을 받고 군 안보관련 강연을 빌미로 드나들면서 각종 정보를 취득하고 내연남인 소령이나 대위 등으로 부터도 정보를 취득해서 북한에 넘겨줬다고 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여자 스파이의 대명사 마타하리


사실 10수년 전까지만 해도 자주 보도되던 간첩관련 소식이 최근에는 없는 이유를 정치적인 목적으로 해석하는 분들이 인터넷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데 사실은 정치적인 이유보다는 침투방법이 달라졌다고 보는게 합당할 것입니다.

과거에는 공장원이 국내에 침투할 방법은 비합법적인 방법을 통해서 넘어오거나 아주 소수가 일본 재일 교포를 통해서 들어와야만 했기 때문에 감시나 색출이 상대적으로 손쉬웠던게 사실입니다. 아주 특수한 김수일(깐수교수)같이 중동인으로 위장해서 합법적인 신분으로 10년이상 암약하는 고정간첩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소수의 감시 대상에 속했기 때문에 통제가 손쉬웠다는 측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중국, 러시아와 수교를 하면서 상황은 급변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조선족이 불법채류자의 신분으로 국내에 거주하고 중국과 동남아의 해외노동자까지 넘처나는 상황에서 북한이 불법적 신분으로 국내에 간첩을 남파해야될 필요성이 없어진겁니다.

불법채류자이지만 표면상 합법적인 신분으로 국내에 거주하면서 과거의 필수 품인 단파라디오나 무전기도 필요 없이 몸만 오면 되기 때문에 간첩이라고 채포될 가능성은 거의 없어진 환경이 됐다는겁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한국의 마타하리 김수임(최근 논란이 있다.)


여러분 주변에 불법채류자가 있다고 해서 이상하게 생각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과거에는 담배값이나 버스요금을 모르거나 북한말을 무의식적으로 쓴다면 간첩으로 의심하고 신고하라고 했지만 이제 그런 사람은 주변 부지기수 인게 현실입니다. 이 사람들은 중극으로 매일 저녁 전화하고 이메일 주고 받고 카메라로 사진도 찍고 남파 간첩과 구분할 방법이 없습니다.

더욱이 군부대 주변 음식점에서 서빙을 한다면 뭐 과거에 목숨걸고 남파되어서 어둠속에서 긴장하면서 활동하던 선배들은 그냥 추억거리가 된거지요. 더욱이 인터넷만 들여다 봐도 각종 군사 정보가 넘처나는 상황이니까요.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호기심으로 정밀한 인터넷 검색을 한적이 있는데 깜짝 놀랄 만한 정보가 튀어나오기도 하더군요. 정보사령부 부서명과 간부들의 신상정보가 튀어 나오더군요. 기밀수준이 무서울 정도의 정보사 정보가 저런식으로 굴러다니는 보안수준이 대한민국 인터넷 환경이지요.

군사정보 취득은 사실 간첩활동에서는 기초이기도 하고 덜 위험하기도 합니다. 정말 위험한건 내부 교란이 손쉽게 먹히는 환경입니다. 백색간첩편에서도 언급했지만 합법적인 신분이라면 공작대상에 접근하고 영양을 끼치는 건 너무나 손쉽습니다. 더군다나 훈련을 받은 경우에는 말할 것도 없지요.

서두에서 언급한 사건이 그걸 증명합니다. 군 장교들이 그런 정보를 간첩인줄 알면서 넘겨줬다고 생각하기는 힘듭니다. 저런 상황에서 일반인이야 얼마나 손쉽겠습니까? 실제로도 인터넷에서 그런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진보적 이야기한다고 좌빨 이런 소리 하자는게 아니고 직간접적으로 영향권하에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인터넷 환경에서 최소한 저런 목적을 가진 세력에게 이용 당하지 안을 방법은 정확한 정보만을 취사습득할 수 있는 영량과 관련 정보에 대해서 배경지식을 충분히 가지고 있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그럴 정성이 없다면 무시하는게 방법인데 현실적으로 가능할가는 저 자신도 의문스럽습니다.

ps. 이 여간첩에 대한 자세한 정보가 새로 취득되어서 첨부합니다. 활동이 생각보다 하드하고 영화 한 편이네요.

▲1989∼1992 = 원정화 남파공작 훈련. 부상으로 감정제대(의병제대)

▲1998 = 보위부 공작원으로 포섭된 뒤 중국으로 파견

▲1999∼2001 = 연길ㆍ훈춘 등 재중 보위부에서 탈북자ㆍ남한사업가 등

100여명 납치 관여

▲2001.10 = 재중 북한 보위부로부터 남한침투 지령을 받고 조선족으로

위장한 뒤 위장결혼으로 남한 잠입

▲2001.9∼2006.12 = 재중 보위부로부터 수회에 걸쳐 6만달러 공작금 수령

▲2001.10∼11 = 양주ㆍ서울 등 미군기지 6곳 사진촬영

▲2001. 11 = 국정원에 탈북자로 위장자수

▲2002.10∼2006.12 = 14차례 중국으로 출국, 재중 보위부를 방문해 국내활동상

황 보고 및 지령수령

▲2003 = 대북정보요원의 활동내역 파악 및 중국 유인, 남한정보기

관과 연계된 남한사업가 포섭

▲2004 = 대북정보요원 2명 살해

▲2005 = 국정원ㆍ하나원ㆍ대성공사 위치 파악, 군장교 포섭 후 군

사기밀 탐지 및 중국유인 관여

▲2005. 5∼9 = 경기지방경찰청ㆍ국군기무사령부 내사 착수

▲2006 = 황장엽 위치 파악,남한 비전향 장기수.부대위치.군장교

인적사항 파악,군 안보강연, 안보강연 탈북자 파악

▲2007. 7 = 황모 대위, 원정화가 재중 보위부에 팩스로 보고한 서류

를 폐기하는 것을 도움

▲2007. 9 = 황모 대위, 원정화가 보위부 공작원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미신고

▲2008. 5 = 황모 대위, 원정화에게 군 안보강사로 활동하는 탈북자 명

단 제공

▲2008. 7.15 = 경기지방경찰청ㆍ국군기무사령부 여간첩 원정화 체포

▲2008. 7.17 = 원정화 `위장 탈북 및 남파' 자백, 구속

▲2008. 7.22 = 수원지검ㆍ경기지방경찰청ㆍ국군기무사령부ㆍ국정원 경기

지부 합동수사체제 가동

▲2008. 7.24 = 합동수사체제, 원정화로부터 남파간첩 김모씨ㆍ황 대위

혐의에 대한 진술 확보

▲2008. 7.27 = 원정화 양아버지 김모씨, 황 대위 체포

▲2008. 7.29 = 김모씨, 황 대위 구속

▲2008. 8.27 = 원정화 구속기소, 황 대위 구속기소

신동아 보도에 따르면 우주인 고산씨가 문제가 되어서 탈락됐던 이유는 러시아와의 스파이 전쟁 때문이라는 의혹이 보도됐다.

처음 고산씨 소식을 들었을 때 전해지는 상황으로 보아서 이면에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스파이전쟁의 러시아측 보복차원에서 이루어진 일이라는 게 요좀인데 단순하게 이런 식으로 설명을 하면 이런 류의 사건에 대해서 사전 지식이 없는 분의 경우 이해하기가 어려울 거라고 생각된다.

본 글에서는 백색 스파이에 대해서 간략하게 다뤄 보겠다. 종종 기회가 닫는데로 이야기 분량을 늘려볼 생각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간첩선은 금덩어리다.. 포상금 1억


백색 스파이 -- 명함 파서 다니는 스파이

스파이 혹은 간첩이라고하면 일반적으로는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무기나 독침을 가지고 다니는 사람을 상상하기 쉽지만 실상 대부분의 스파이는 당당하게 명함을 가지고 다니면서 자신이 스파이임을 공지하고 다닌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백색 스파이는 미대사관에 CIA인데 미대사관 5층에 위치하고 있는 지역조사과(ORS)로 20여명의 직원이 3교대로 근무한다고 한다. 모든 첩보조직의 기본 업무인 국내 간행물의 번역이 주요 업무로 매일 랭리(CIA본부)로 이들 자료를 보고한다고 한다.

미 대사관의 공식적인 스파이 조직은 이처럼 ORS(Office of Regional Study:지역조사과), FBIS(해외방송청취반), DIA(미국방정보본부), 501정보부대, OSI (Office of Special Investigation:미공군방첩수사대) 등 다양한 조직이 활동 중이라고 한다.

과거 박정희대통령 시절 한.미간에 외교적 대립이 심했던 시기에는, 미 대사관에서 청와대를 직접 도청하는 바람에 상당한 문제가 된적도 있다. 미 대사관에서 청와대가 가시거리에 있고 따라서 레이저광선을 이용한 도청이 용이했고 우리는 아직 거기에 대응 책이 부족하던 시절의 이야기다.

러시아와 중국 일본도 당연히 공식적인 스파이를 파견하고 우리도 주요 국가 대사관에 동일하게 스파이를 파견하는데 각각의 국가들은 일종의 쿼터제가 있어서 우리가 파견하는 공식적인 스파이 활동을 보장하는 만큼 다른 나라의 스파이 활동도 보장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일이 용인되는 이유는외교활동과 스파이활동의 구분이 불분명한 선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상호 국가의 정보 교류라는 긍정적인 부분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파이활동이 과도하게 되어서 상대국에 심기를 거스르거나 너무 성공적이어서 타격을 입게되면 외교관 신분의 공인된 스파이를 스파이 활동을 이유로 추방하게 되는데 이 때 벌어지는게 상호 추방전쟁이다. 고산씨 경우가 이런 경우에 해당됐다고 한다.

러시아 대사관의 외교관이 우리측 대학총장을 통해서 성공적인 활동을 했고 우리 방첩기관에서 이 대학총장을 조사하면서 문제가 됐다고 한다.

백색 스파이의 무서운 점

명함주는 스파이는 생각외로 강력한 힘을 가지는데 이유는 대놓고 상대국가의 정보를 캐고 다닐 수 있고 정보원의 포섭도 공식적으로 대놓고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물론 명함에는 스파이 냄새나는 그런 직함은 없고 대사관 참사니 영사니하는 직함이 적혀있거나 유수의 언론사 기자 등등이 적혀있다.

포섭의 대상이 되는 사람은 저런 직함을 가진 사람이 자신에게 접근해서 친분을 쌓고자한다면 아무런 의심도 없이 응하고 더군다나 적극적인 호감까지도 갔게 되는데 너무 당연한 인간적 모습이라고 하겠다. 자신이 포섭됐는지도 모르고 친분에 따른 호의 또는 잘난척 하고 싶은 얇팍한 마음 등으로 유용한 정보를 넘겨 주게 된다. 일반적인 상황에서야 이정도로 계속 이용해먹겠지만 유사시 적극적인 스파이 활동이 필요하다면 이런 관계를 무기로 사용하기도한다.

바로 호의적 정보제공이 협박의 재료가 되는 상황이다. 네가 우리가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면 네가 우리에게 정보를 제공했던 과거를 폭로하겠다고 위협하는 것이다. 이 사람이 정부 요직으로 발탁될 기회가 있을 때 이런 위협은 치명적인 위협이된다. 때에 따라서는 내가 전에 너에게 줬던 용돈은 우리 정보부에서 제공한 돈이다. 너는 이미 스파이 활동으로 돈 받은 간첩이다. 돈 더줄테니 협조해라.. 등이나.

방첩기관은 장식품은 아니다

국가안전기획부를 필두로 하는 기관들은 이런 상황을 구경만 하고 있지는 않는다. 안 그랬다가는 주요 인사들이 이런 저런 상처를 입고 나라의 근간이 흔들릴 터이니 말이다. 방첩기관은 그들의 행동을 주시하다가 대상 인사에게 각종 경고를 하게된다. 부드러운 경고부터 무서운 경고까지... 모든건 기록으로 남고 국가직 인사에 반영된다.(현재 우리의 혼란한 정치 상황 때문에 이 부분이 유명무실해진 우려스러운 부분도 있다. 정치사찰이라는 말이 키워드다.)

중요하지 않은 일을 하는 일반인이 이런 사실을 다 유의한다는건 과잉이라고 하겠지만 또 많은 분들이 보안감사대상이고 보안교육을 받는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그냥 지나칠 수 있는 부분은 아니기도 한 것이 현실이다.

하도 요즘은 과거의 간첩 사건들을 조작으로 이야기하는 일이 많아서 옛날 기억을 더듬어서 간첩사건 하나를 올려본다. 사실 이런 무장간첩사건은 보통사람에게는 충격적이고 기억에 오래 남지만 실상 위협적인 사건은 고정 간첩사건이다. 하지만 이 고정 간첩사건은 정치적인 문제까지 얽혀서 참 복잡하다.

모 거물 정치인의 측근이 북한으로 부터 명백한 공작금을 받아서 전달했지만 그 측근만 간첩죄를 뒤집어 쓴경우라든가.. 뭐 이런 문제는 그냥 나중에 역사가 말하라고 하고 이번 글은 재미로 읽어보자


84년 대구에서 있었던 사건이다.

대낮에 한가로운 미용실에 갑자기 괴한이 침입해서 권총으로 미용실 여주인과 식당종업원등 2명을 살해하고 1명에게는 부상을 입힌 후 자살하는 사건이 있었다.

백주 대낯에 권총 살인이라니 경찰은 난리가 날만했다. 아마 처음에는 탈영병의 치정사건쯤으로 생각했고 신문보도도 그러했다. 하지만 그 자살한 인물을 조사한 방첩기관의 발표는 이외였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남파간첩의 필수품 난수표


무장간첩이 자살했다. 이유는? 목적은? 솔직히 말이 안되는 사건이다. 남파 무장 간첩이 난데 없이 미용실에 침입해서 처음보는 여자들을 살해하고 자살하다니.. 발표는 접선에 실패한 간첩이 자폭한거라고 됐지만..

이런 첩보전에서 표면적인 보도만으로는 진실을 알기 힘들기 때문에 상상의 나래를 한번 펼처보자..

저 사건 이후 한참 후에 이런 일이 있었다. 안기부 요원들이 동내 야산에서 총격전을 벌이면서 간첩을 추적했던 사건이다. 고정간첩의 비트를 감시하면서 접선책을 체포할려고 했지만 실패하고 총격전을 벌이면서 서울 인근 야산에서 액션영화를 찍은 것이다. 더군다나 체포하러간 우리측 요원만 부상을 입고 말았다. 이건 숨길 수가 없었다. 뒷산에서 총소리가 나는데 가만 있을 사람이 어디 있겠나?

알게 모르게 영화같은 일이 벌어지는게 저쪽 현실이고 대한민국의 특수한 환경이긴 하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저 간첩이 진짜 간첩일까? 사실 간첩 아닌 간첩도 많은 시절이었던 시절이라 확신할 수는 없다. 예를 들면 실미도 사건 처럼 우리측 요원이 사고 친걸 수도 있다.

또다른 일은 저 야산에서의 사건처럼 우리측 작전이 있었지만 실패하고 저런 결과를 내놓고는 그걸 은폐했을 수도 있다는 거다.

아무튼 세월이 흘렀으니 저런 사건에 대해서도 진실을 알려줬으면 하는 기대가 있다. 저 미용실 사건은 1984년 9월 24일 대구 동구 신암2동에서 있었던 사건이다.

자본주의권에서 가장 유명한 스파이는 007 제임스 본드다. 그러나 제임스 본드는 실존 인물이 아니고 영국의 유능한 정보원을 토대로 만든 영화 속 인물이다. 사회주의권에서 가장 유명한 정보원은 구 소련의 리하르트 조르게다.

정보원은 죽어서도 이름을 남기지 말아야 하는데, 조르게는 조국 소련을 구했다는 이유로 모스크바에 동상까지 세워졌다. 그리고 그가 ‘결정타’를 먹인 일본에서는 2003년 ‘스파이 조르게’라는 영화가 만들어지고 NHK가 특집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방영했다.

조르게는 1895년, 지금은 소련에서 독립한 아제르바이잔의 수도 바쿠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독일인, 어머니는 러시아인이었다. 그는 네 살 때 부모를 따라 독일로 건너가 살다가 1914년 발발한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3번이나 부상하고 의병제대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독일에서는 공산주의가 팽창했는데 공산주의 운동을 억누르기 위해 우파 독재로 등장한 것이 바로 히틀러의 나치당이다.

독일 청년 조르게는 공산주의를 선택했다. 1926년 그는 모스크바에서 국제공산당 중앙위원이 되고 이후 신분을 감춘 채 공산주의를 위한 첩보원으로 독일과 영국 프랑스 등을 돌아다녔다. 아버지의 조국을 버리고 어머니의 조국이자 사상의 조국인 소련을 위해 일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1930년 그는 기자 신분을 가진 일본인 공산주의자 오자키 호스미를 만나는데, 이듬해 그로부터 일본이 만주를 지배하기 위해 만주사변을 일으킬 것이라는 중요한 첩보를 얻었다. 1933년 오자키는 일본으로 돌아가 총리실에서 촉탁으로 근무하게 됐다.

1938년 히틀러는 오스트리아를 무혈 합병하고 이어 체코를 협박해 게르만인이 많이 사는 체코의 주테덴 지방도 무혈 합병했다. 이렇게 되자 영국과 프랑스는 물론이고 공산종주국을 자부하던 소련이 독일의 행보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1939년 히틀러는 그를 두려워하는 소련을 상대로 ‘두 나라는 싸우지 말자’는 독소(獨蘇) 불가침조약을 맺었다.

공작원 조르게

그러고는 바로 폴란드를 침공했는데 이때 소련도 함께 침공해 양국은 폴란드를 나눠 가졌다. 폴란드는 영국 프랑스와 방위조약을 맺고 있었다. 영국과 프랑스가 독일에 선전포고를 하자, 히틀러는 재빨리 기갑부대를 투입하는 전격전을 펼쳐 개전 보름만에 파리를 함락하는 쾌거를 올렸다.

히틀러는 철저한 반공주의자였기에 전세계에 반공을 확산하고자 했다. 1937년 독일은 공산주의 운동으로 골머리를 앓던 이탈리아, 일본과 ‘방공(防共)동맹’을 맺었다. 그리고 1940년 이 동맹을 군사동맹으로 발전시켰다. 반공을 모토로 내건 히틀러가 주변국을 침략해 전세계가 전쟁 분위기로 치닫던 시기, 조르게는 공산주의자라는 신분을 감추고 독일의 언론사에 들어갔다.

조르게는 일본어 등 5개국어에 능통했다. 1938년 그는 독일 언론사의 합동 특파원 자격으로 일본으로 건너가 옛 전우 오자키를 만났다. 전운은 동북아에서도 감돌았다. 독일의 동맹국인 일본은 1937년부터 중국을 공격하고 있었다(중일전쟁). 일본은 자국이 필요로 하는 자원 조달을 방해하는 미국 영국 네덜란드에 대해 적개심을 드러내고 있었다.

1941년 4월13일 일본은 소련과 ‘서로 싸우지 않는다’는 중립조약을 맺었다. 일본은 소련과는 싸우지 않고 중국과 미국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등이 장악하고 있는 동남아 쪽으로 전선을 확대하려고 한 것이다. 그러나 소련 처지에서 본 일본은 반공주의가 매우 강하고 1905년 러일전쟁에서 패배를 안겨준 대적(大敵)이었다. 중립조약을 맺었다고 하지만 일본에 대해서는 한 치도 방심할 수 없었다.

이러한 때 국제공산당 비밀 간부인 조르게는 오자키를 통해 일본이 소련을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는 첩보를 빼내 이를 타전했다. 그러나 소련은 조르게가 보내온 정보를 신뢰하지 않았다. 일본은 독일의 동맹국이었으므로 독일 정보가 많았다. 조르게는 독일이 독소불가침 조약을 무시하고 1941년 6월20일 소련을 공격하기로 했다는 정보도 타전했다. 그러나 스탈린은 이 정보도 무시했다.

독일은 날씨 때문에 이보다 이틀 늦은 6월22일 소련을 공격했다. 이때부터 소련은 조르게의 보고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스탈린은 신뢰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조르게의 보고가 있었던 덕택에 소련은 독일군의 공격에 무방비로 당하지는 않았다. 독일의 공격을 막아내느라 정신이 없는 소련은 조르게의 보고처럼 일본이 동쪽에서 소련을 공격하지 않길 바랐다. 이때 조르게를 ‘일본은 소련이 아니라 미국을 공격할 것 같다’는 첩보를 보냈다.

조르게의 보고가 맞기를 노심초사하며 기다렸는데 1941년 10월18일 조르게가 일본 공안에 체포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일본 공안은 국가 기밀이 새는 것을 알고 방첩활동을 강화하다 조르게에 주목했다. 일본 공안기관이 감시에 들어가자 조르게도 위험이 다가오고 있음을 인식했다.

그는 중국을 거쳐 소련으로 도주할 생각도 했으나 아주 사소한 일 때문에 행동에 옮기지 않았다. 혼자 살던 그는 일본 무희(舞姬)와 사랑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어느 날 밤 그는 무희를 만나러 가려다 한 협조자로부터 “감시자가 가까이에 있다. 도피하라”는 쪽지를 건네받았다. 그는 이 쪽지를 소각했어야 한다. 그러나 애인을 만나야 한다는 마음에 그냥 감으로써 일본 공안은 이 쪽지를 입수했다. 그리고 그를 체포해 이 쪽지를 근거로 취조함으로써 그간 벌인 스파이 활동이 드러나게 되었다.

조르게를 체포한 일본은 계획대로 1941년 12월7일 미국함대가 있는 하와이와 미국의 식민지인 필리핀, 그리고 영국의 식민지인 말레이시아와 프랑스 식민지인 베트남, 네덜란드 식민지인 인도네시아를 동시에 공격했다. 이때부터 소련은 조르게의 보고가 확실하다고 보고 일본의 공격에 대비해 동부에 배치한 군대를 서쪽으로 옮겼다. 그리고 1942년 여름 시작돼 그해 겨울을 넘겨 끝난 스탈린그라드(지금은 볼고그라드) 전투에서 독일군의 공격을 막아냈다.

전세(戰勢)를 바꾸다

그리고 이어진 쿠르스크 전차전(1943년 2월)에서 독일 전차군단을 괴멸시킴으로써 결정적 승기를 잡았다. 미국과 영국군이 주도한 노르망디 상륙작전은 소련군이 쿠르스크 전투에서 승리해 독일군을 구축(驅逐)하기 시작한 1년4개월 이후 펼쳐진 것이다. 비슷한 시기 미국과 맞붙은 일본도 열세에 몰렸는데 이때 조르게는 간첩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1944년 일본과 소련은 간첩을 맞교환하자는 논의를 했다. 그러나 스탈린은 이를 거부했다. 맞교환으로 조르게가 돌아오면 조르게의 보고를 믿지 않음으로써 독일 침공을 허용한 자신의 실수가 드러날까 두려워한 것이다. 맞교환 논의가 중단되자 일본은 조르게와 오자키 등을 처형했다.

그러부터 25년이 흘러 스탈린마저 사라지자 소련은 조르게를 ‘전쟁의 향방을 바꾼 인물’로 평가해 영웅칭호를 내리고 그의 동상을 모스크바에 세웠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