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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1월 23일 여느 때처럼 아침에 출근을 하면서 소연평을 바라봤었다. 아침 해가  아직 뜨지 않았지만 동이 트는 모습에 오늘 사격이 정상적으로 실시될 것을 알았다.  드디어 오후가 되어 사격이 시작되었고 준비한데로 2문은 사격에 미참가하고 혹시 모를 적의 도발에 대비하여 사격태세를 유지한 채 4문이 사격을 실시했다. 또한 다른 모든 중대원은 각자 임무수행 위치에서 대기하였고, 사격은 절차에 의해 정확히 진행되고 맑은 하늘에 한 가닥 선을 그리며 정확히 표적 위치에 명중했다.


2개 관측반 모두 명중을 통보하고 ATT 우승을 확신하며 마지막 임무를 수행하던 중 4포에서 안전 통제관 역할을 수행하던 포술담당으로부터 격발 불량을 보고 받고 천천히 불발탄 처리절차를 시행 하라고 지시를 했다. 다른 모든 포반은 4포가 사격이 끝날 때까지 숨죽여 기다리고 있던 중 쾅! 하는 파열음이 들렸고 상황실에 있던 모든 대원은 무엇인가 이상한 느낌을 받았는지 나를 가만히 쳐다봤다.
 
나는 직감적으로 뭔가 잘못됐다 판단하고 1층으로 올라가 포상을 바라봤다. 바로 눈앞에는 연병장을 지나 방음벽 틈으로 2포의 모습이 보이고 까만 연기가 중대를 완전히 뒤덮고 있었다. 아주 짧은 시간에 주둔지 주변과 마을까지 포탄이 파열하는 모습이 보였고 여기저기서 화염이 일어나는 모습을 보고 신속히 상황실로 들어가 중대 소산과 방독면 착용을 지시하였다.   그리고 부대장님께 주둔지 포탄 낙하 상황을 보고하고 장비 소산을 시키겠다고 건의했다.
부대장님은 신속히 소산을 지시하셨고 나는 행정관과 포술담당, 정비담당에게 상황파악과  피해현황을 파악해서 보고하도록 지시했다. 포반의 소산완료 보고가 들어오기 시작했고 다시 상황실 밖의 상황을 살폈다. 연기의 색깔이나 아무런 냄새가 없었다. 다시 상황실로 내려와   방독면 해제를 지시했을 때 부대장님의 사격준비 지시 명령이 내려왔다.

 

포탄이 낙하되는 상황에서 즉각 사격준비를 지시했다. 우리 중대원들은 차분하면서 대담하게 사격을 준비했고 6포, 5포가 사격준비 완료 보고를 했다. 6포는 얼마나 화가 났던지 3번이나 “사격 준비 끝!”을 외쳤다. 나는 그 때까지만 해도 적의 기습포격으로 피해 상황이 아직 파악이 되지 않아 우선 준비되는 대로 부대장님께 보고를 했고 잠시 대기하라는 동안 2포가 사격준비가 끝났다는 보고를 받았다. 내 눈으로 본 2포의 모습은 분명히 큰 부상을 입었거나 장비파괴로 임무가 불가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2포가 우렁찬 목소리로 사격준비 끝을 외칠 때 고마움과 자신감이 넘쳐났다. 그래서 부대장님께 3문이 사격준비가 끝났다고 정정보고를   하였고 부대장님은 “사격해!” 라고 단호하게 명령하셨다.

 

그리고 사격을 하는 도중 통신이 되지 않는 1포와 3포는 유선 복구조를 투입시켰다. 언제  어디서 포탄이 날아올지 모르는 상황이지만 전명준 병장은 두려움 없이 바로 달려가 포반의 유선을 개통시켰고 화염에 휩싸인 1포 인원들을 포 밖으로 유도했다.

 

첫 번째로 적을 향해 사격을 하는 우리는 긴장감 보다는 자신감에 찬 모습이었고 적의 기습에도 중대장의 지시에 따라 침착하게 소산을 하고 다시 사격준비를 해서 대응을 한 것이었다. 사격 중에 4포로부터 3포에 부상자가 있는 것 같다는 보고를 받았고 20발을 더 사격하라는 부대장님의 지시가 이어지고 또다시 재타격을 실시했다. 
그러던 중 행정관으로부터 3포 인원이 귀가 잘 들리지 않는다는 보고를 받았고 1포 화재가 크다는 보고를 받아 1포는 즉각 화재를 진압하도록 지시했다. 잠시 후 3포로부터 무전을 받았다. 3포 반장의 목소리였다. “수동으로 사격임무에 가담하겠다”는 보고였다. 나는 환자를 파악했고 “모두 이상 없습니다.”라는 포반장의 보고에 더 힘이 나고 고마웠다. 그리고 적의 2차   사격이 있었고 포병 레이더로부터 사격요구가 들어왔다. 우리를 포격한 적을 찾아낸 것이었다.
 
나는 바로 표적전이를 지시하고 다시 사격을 준비했다. 이번에는 4문이 사격에 가담하게 되었고 또다시 포탄이 떨어지는 중에 3차 사격을 실시했던 것이다. 그리고 적 포탄에 의해 갑자기 정전이 되었고 통신이며 포대 통제기이며 작동이 되지 않는 암흑 속에서 상황실 인원들은 비상조명을 켰다. 나는 신속히 비상 발전기를 가동하도록 지시했고 적 포탄이 비산하는 가운데도 김영훈 상병은 발전기를 가동시켰다. 다행히 발전기가 가동되고 모든 장비가 정상으로 돌아왔고 “사격 끝!” 보고와 함께 정적이 흘렀다.

 

조용한 가운데 나는 상황실에서 올라와 주변을 둘러봤다. 여기저기 화재로 인해 검은 연기와 화염으로 뒤덮히고 간부들과 중대 본부의 해병들은 병사에서 소방호스를 모조리 끌어 연결해서 1포상의 화재를 진압하고 있었다. 또한 추가적인 포격이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포반원들은 계속해서 사격준비태세를 유지토록 지시하였고 나머지 병력들도 계속해서 탄약고 주변과   포상 주변의 화재를 진압하며 포반의 피해사항을 보고 받고 추가 도발에 대비했다.


갑작스런 적의 기습 포격으로 선제 타격을 받은 중대가 적의 포탄에 목숨을 걸고 개인의  임무에 충실하고 상·하간에 서로를 챙겨가며 긴박한 상황에서도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임무를 수행해 준 중대원! 우리 해병들이 너무 고맙고 자랑스럽다. 그리고 살아줘서 고맙다.

 

우리는 단 한명의 인명피해도 없이 이렇게 건재하며 평소 우리가 외치던 ‘대한민국 국가대표 포병중대’라는 자부심을 더욱 실감하였고 우리의 영토와 국민에게 해를 끼친 북괴군에 대한 적개심은 중대장인 나를 비롯해 중대원 모두가 하늘을 찌르고 적이 추가 도발한다면 모조리 가루로 만들어 버리겠다는 강력한 의지로 가득 차 있다.

 

제7포병중대 3포반장 하사 김영복

금일에 평가 ATT평가 사격이 계획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오전부터 사격준비 및 사격대비 비사격 임무를 실시하였다. 오후 13시 30분부터 평가사격이 되었고, 초탄은 우리 3포가 수정임무 사격을 실시하였다. 마지막 사격을 실시하는 도중에 4포가 불발이 나서 FDC에 불발보고를 하였다.

 
그때 우리 포반은 사격이 다 끝나서 기상반장이 수고했다고 마무리 잘하라는 말을 하고 4포로 이동 후에 전장정리를 하는 도중에 갑자기 우리 포반에“쾅”하면서 포탄이 떨어졌다. 그래서 일단 밖에서 격발기를 정리하고 있는 김진혁 일병을 포 내부로 들어오라고 지시하고 포반원들에게 엎드리라고 지시를 하였다.

 
그런데 그 당시에 사격이 막 끝나고 해치들이 모두 열려 있는 상태에서 파편들이 위에서  떨어지고 옆에서 들어오고 뒤에서도 들어오고 있었는데 귀 옆에 파편을 맞아 피가 나고 있었고 상병 임진규에게 상단 해치와 측면 해치를 닫으라고 지시를 하였다. 그리고 해치를 모두 닫고 나서 포반원들에게 괜찮냐고 물어보며 환자를 파악하였고, 포반원 모두 무사해서 안도의 한숨을 돌리고 천만다행이면서 하늘에 감사했다.

 
그리고 나서 장비를 살펴보았는데 전시기에 고장코드에 불이 들어와서 확인을 해보니 구동제어기에 불량 코드가 보였다. 그래서 이대로는 포기할 수가 없어서 일단 장비를 소산시키고 정확히 장비를 재점검하고 자동은 불가하여 반자동으로 사격을 실시하겠다고 중대장님에게 보고를 하였다.

 
맞고만 당할 수 없어 억울하고 분노에 차올라서 포반들과 신속히 탄과 장약을 준비하여   전방포상에 나가서 반자동임무로 3차 사격에 가담하여 사격을 실시하였다. 솔직히 무섭기도 했지만 우리 3포 포반원들을 살리고 싶었고 우리 포반원들이 있어 살 수 있었고 우리 포반원들에게 정말 감사하고 영원히 잊지 못할 2010년 11월 23일이 될 것이다. 
적 포탄이 낙하 되어도 우리 중대는 각 직책별로 임무수행을 하였고, 한 명도 다치는 인원이   없어 하늘에 감사하다. 기준포 3포는 절대 죽지는 않는다 한 번 더 적 포탄이 날아오는 순간  강력한 대응을 하여 북한을 가루로 만들어 버릴 것이다.

 

제7포병중대 자주포 조종병 상병 박태민

11월 23일. 이 날은 휴가를 나가는 날이었다. 모든 걸 마치고 배터에 가서 표를 끊기 위해 매표소 앞에서 기다리는데 배가 보이기 시작하는 동시에 마을 쪽에 포탄이 한두 개 떨어지더니, 소나기가 오듯 수십 발의 포탄이 마을을 뒤엎었다.

 
순식간에 건물들이 날라 다니고 이곳, 저곳에서 불이 나기 시작했다. 민간인들은 도망치란 소리에 일사분란하게 반대편으로 뛰기 시작했고, 사격하는 중대마다 전화를 받지 않고, 북한쪽에서 쏜 실상황이라는 걸 듣고 휴가자들은 콤비를 타고 당섬 분초로 일단 대피해 있다가   휴가자들 각 중대로 복귀하라는 전화를 받고 콤비를 탔는데 중대와는 거리가 있는 곳에서  포7중대는 여기서 가라고 했다.

 

 
처음에 당섬 분초로 대피하면서 우리 중대 위치를 제일 먼저 확인 했는데. 검은 연기와 불이 나고 있어 걱정을 하고 있었는데, 내리자마자 중대로 뛰어가는데 어느 정도 뛰니깐 숨도   심하게 차고 코도 따갑고 해서 걷고 뛰고 반복하면서 중대 위병소에 들어서니, 사람들은   보이지 않고 포상 쪽과 주변 산에서는 불이 나고 있었고, 건물 안으로 들어오니 식당 쪽 천장이 무너져 있었다. 상황실로 바로 가보니 중대장님은 분주하게 사격을 지시하고 계셨다.

 
그러다 잠깐 틈을 타 전투복으로 갈아입고 불 끄는 곳으로 가서 호스를 가져오고 물이 나오지 않아 휴지통 등을 이용해 물을 퍼 나르다가 어느 정도까지 진압을 했지만 산 쪽에는 계속 불이 번지고 참으로 비참해 보였다. 그리고 다시 상황실로 내려가 있는데 하나포 반장님이 허겁지겁 내려와 날 찾더니, 포옹을 하였다. 그리고 반장님과 같이 포로 뛰어 올라가 임무수행을 하였다.  

 

의무실 예방의학담당 하사 이재선

23일 아침 어느 때와 다름없이 관사에서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고 나와 같은 버스를 타고 가는 선후임들에게 인사를 하며 시작하였다. 부대에 도착하고 나서도 어느 때와도 하나 다름없이 평화롭다면 평화롭고 계획된 일과가 진행되었다. 그날 오후 우리 부대 사격훈련이 시작되었고 그때까지만 해도 몇 발을 사격하였는지 세어보면서 북한의 연평도 도발이라는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날지는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그 순간 우리 부대가 사격하는 소리가 아닌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다른 느낌의 진동이 느껴지기 시작하였다. 당황도 잠시 당시 행정관님의(상사 송영복) ‘엎드려’란 소리에 모두 엎드려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당시만 해도 어리둥절해 하며 단지 오발이라고만 생각하였고 정확한 상황이 파악되지 않았을 때 또 다시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앞산에 폭발이 일어났고 진동이 느껴졌다.

 
행정관님의 ‘실전상황이야 뭐야’라는 말에 ‘실제 상황인 것 같습니다’라고 보고하고  주변상황을 살필 시간도 없이 북한의 무차별한 폭격을 계속되었고 1차 폭격이 끝나고 서둘러 의무실로 복귀하였으나 항상 평화롭고 우리가 집처럼 생각하던 의무실은 폭격에 따른 파편으로 수십 장의 창문이 깨져있었다. 
현실을 느낄 새도 없이 환자가 발생하였다는 연락이 왔고 정비소대 하사와 수색팀장이 환자가 발생하였다고 올라왔다. 안내에 따라 환자발생지역으로 치과군의관님을 비롯한 나와 몇 명의 대원들은 들것을 들고 달려가 보니 그곳은 드라마·영화·뉴스에서 보던 처참한 실제 전쟁 현장이었다.

 
자신의 야전상의 내피를 벗어 지혈을 해주는 대원, 소리치며 의식을 잃어가는 전우를 부르는 대원 등 모두가 파편으로 인해 고통을 호소하고 동시에 출혈이 심하였다. 대량전상자 처치법에 따라 즉각 처치하여야 하는 환자를 찾아 지혈을 하고 부상부위를 살펴보고 있을 때 다른   의무요원과 전투병들은 들것을 이용해 후송하였고 나와 거동이 가능한 일부환자는 마침 도착한 AMB를 이용하여 의무실로 향하였다.

 

다시 도착한 의무실에서는 모두가 바쁘게 응급처치를 하고 있었고 항상 깨끗하고 정리정돈이 잘 되어있던 응급실은 한순간에 피바다가 되었다. 나와 같이 온 대원은 팔과 다리가 아프다고 하였는데 정확한 환부를 찾으며 군화를 벗겨보니 군화에 담겨있던 피가 쏟아졌고, 얼굴에  파편을 맞아 입술주위가 다 찢긴 환자도 있었다. 간단한 응급처치를 끝내고 환자를 파악하기 시작했다.

 
평소 부대TTT훈련으로 대량전상자처치법 연습을 지속적으로 실시한 우리 의무요원들은  의무실장님의(대위 김혜강) 지시에 따라 응급처치표를 작성하고 환자를 즉각, 지연, 최소,  기대로 구분함과 동시에 환자들을 좀 더 안전한 장소로 옮겼다. 
그리고 계속적으로 환자 인적사항 및 부상부위를 파악 중 또 다시 폭격이 시작되었고 우리 모두 엎드려 대피하던 중 대피하지 않고 들것에 눕혀있는 김영철 일병의 손을 붙잡고 있는 해병을 보게 되었다.

 
2차 폭격이 끝난 후 응급처치가 완료될 중 지휘통제실 및 상급 부대에 상황 관련 전화가 계속 왔고 또 다른 장소에서도 발생한 환자들이 지속적으로 후송 되어 왔다. 2차 폭격 당시 의무실 뒤편으로 불이 번져 유류고 쪽으로 불이 번지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나와 몇 명 대원들은 소화기를 들고 불을 끄는 등 일촉즉발의 상황이 지속적으로 발생하였다. 그 뒤에 환자후송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고 최소처치환자를 뺀 나머지 모두를 안전하게 해군 2함대 의무대로 후송을 보낼 수 있었다.

 
몇 시간에 걸친 폭격과 환자 분류 및 처치, 후송을 겪고 난 의무실의 모습은 말 그대로   처참하였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상황과 모습에 그 누구도 먼저 말을 꺼내지 못했고 암담한 현실만 눈앞에 있었다. 하지만 그 날의 해군 해병대 연평부대 우리 모두는 최고였고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군인 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아들이었다.  

 

의무실 의무병 이병 윤성문

2010년 11월 23일 포 훈련을 하고 있던 중 알 수 없는 소리가 들려오고 땅이 울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이것도 훈련인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연기가 피어오르고 동기가 파편에 맞는 것을 보고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여기저기에서 포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와 공포는 물 밀 듯이 나를 엄습했다.

 
환자가 발생했다는 연락을 받고 의무실로 돌아와 보니 의무실은 파편에 맞아서 유리창이  다 깨진 상태였다. 의무실로 들어가고 조금의 시간이 흘렀을 때 환자를 후송해야 한다는   명령을 받았다. 환자를 후송하기 위해 밖으로 나가는데 하늘에서 눈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러다가 내가 죽는 것은 아닐까’라는  공포가 한 번 더 밀려오고 심장이 어느 때보다 빨리 뛰기 시작했다. 환자가 있는데 도착하고 환자의 상태를 파악했다. 너무나 참혹했다.   여기저기에서 환자들의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환자들의 신음소리는 나를 더 공포에 떨게   했지만 환자를 후송해야 한다는 생각에 공포가 조금씩 사라졌다.

 
의무실에 환자를 후송하고 응급처치를 시작했다. 하지만 그때 또 다시 2차 폭격이 이어졌고 의무실 사람들도 모두 엎드렸다. 계속되는 포격 속에 환자들에게 응급처치를 한다는 건 쉬운 게 아니었다. 
환자를 수도병원으로 후송을 나섰다. 환자들은 RIB에 옮기고 해상전진기지를 거쳐 참수리호까지 옮기는 동안 연평도에서는 불이 섬을 집어 삼키고 있었다. 2함대에 도착하고 환자들을 헬기로 후송했다. 의무대원들은 헬기에 타지 못하고 버스로 수도병원까지 갔다.

 
모든 취재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병원에 들어가니 부상당한 대원들의 가족들이 응급실 앞 로비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환자들의 부모님들과 친척들의 얼굴은 너무나 슬퍼보였다.   내가 너무 미안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 부대원들의 빨간 명찰과 전투복을 보고 상황이 어땠냐며 묻기 시작했다. 이런저런 말에 대답을 해주고 사람들이 빠져나가자  몸에 힘이 빠져 축 늘어져 버렸다.

 
환자들을 입실시키고 연평도를 돌아왔을 때 의무실의 모습과 연평도의 모습은 참혹했다. 우리가 더 강해져야 북한이나 타 국가의 위협을 안 받고 우리 땅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을 몸으로 깨닫는 하루였다. 타 부대에서 증원 부대가 오면서 복구 작업이 시작되고 전기가 들어오기 시작했을 때 마음이 조금씩 놓이기 시작했다. 

 

의무실 의무병 이병 강병욱

연평도에 입도한지 3개월이 지났다. 항상 평화롭기만 하였던 이 섬에 그날의 참사가 생길 줄은 어느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다.


2010년 11월 23일 화요일, 이날은 부대에 포사격 훈련이 예정되어 있었다. 당시 당직을 보다가 한 꼬마 아이와 그 아이의 어머니가 진료를 받으러 왔다. 아이에게 처방된 약을 짓고 있는데 아이가 포 소리로 인해 무서워하는 것을 보았다. 그 모습을 보니 아름답고 좋은 소리가 아닌 섬뜩한 포 소리를 듣는 아이가 너무 안쓰러웠다. 아이에게 약을 주며 잘 가라고 인사를 한 뒤 당직을 다시 보았다.

 
그런데 14시 20분 경 갑자기 꽝하는 소리와 함께 의무실이 흔들리고 유리창이 깨졌다.   순간 나는 바로 방탄모를 쓰고 당황하여 어쩔 줄을 몰라 하였다. 그러는 사이 의무실 앞에 있는 건물에 포탄이 떨어졌고 그 파편과 진동으로 의무실이 아수라장이 되었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도 모르겠고 뭘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당황하고 있는데 2층에서 입실환자 2명이 내려왔고 그제야 나는 내가 의무병인 걸 인식하고 우선 그들을 진정시켰다. 그리고 곧 치과 군의관님이 내려오시고 우리들을 방사선실로 대피시킨 뒤 우리들을 진정시키셨다.

   
포 소리가 잠잠해지자 갑자기 전화가 계속 울렸고 환자가 생겼다는 보고가 계속 왔다.    그 사이 간부들과 의무병들이 오고 환자가 왔다. 그 환자는 머리에 파편을 맞아 상처가 많이 깊었다. 머리가 너무 아프다고 죽을 것 같다고 하며 환자는 극도의 흥분 상태였다. 우선 그의 상처를 세척하면서 그를 진정시켰다. 그리고 그의 상처를 지혈하였다.

 
그리고 故 문광욱 일병을 비롯한 많은 환자들이 의무실에 왔고, 의무실은 신음소리와 피로 가득 찼다. 지나가야 할 통로마다 환자로 가득 차 의료물품 전달은 잘되지 않았다. 실장님과 문세인 상병은 서로 번갈아가며 故 문광욱 일병에게 CPR을 실시하고 있었고 나머지 요원들은 다른 환자들에게 응급처치를 하였다. 나는 수액을 놓기 위해 환자에게 주사를 꽂으려 했지만 너무나 떨려 실패를 하였다.

 

옆에 계신 군의관님께서 대신 주사를 놓고 나는 마무리를 하였다. 발목에 파편이 박혀 발목이 휘고 상처가 깊은 한 해병의 신발을 벗겨 처치를 하려고 했는데 환자는 너무 고통스러워하였다. 신발을 벗기니 상처가 너무 심하여 얼른 상처 세척을 한 뒤 지혈을 하였다. 어떤 해병은    흉부에 생긴 상처에서 장기가 보였다. 그래서 얼른 보고를 하고 처치를 하였다.

 
환자를 처치하는 동안 2차 포격이 시작되었다. 정말 무서웠다. 모두들 처치를 중단하고   책상과 의자 밑으로 숨었다. 살고 싶었다. 하지만 환자를 살려야만 했다. 북한이 포를 쏜다고 모두 대피하라는 방송이 들려 왔지만 모두들 방송을 무시한 채 환자를 처치하였다.

 
의무 물자가 떨어지자 물자를 옮기기 위해 1, 2층을 왔다 갔다 거렸다. 언제 포탄이 떨어질 줄 몰라 두려웠지만 잠깐 이었다. 의무물자를 전달하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그러다   의식을 잃고 죽어가는 문광욱 일병을 보았다. 그를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랐다. 두려웠다.    몸 색깔이 파랗게 변해가고 있는 그에게 다가가기가 두려웠다.

 
환자 후송을 위해 의무실 밖에 있던 창고에서 들것을 들고 와야 했다. 정말 밖에 나가기가 싫었지만 발은 벌써 창고 쪽으로 달리고 있었다. 들것을 들고 의무실로 돌아오는데 몸이   무거워 속도가 좀처럼 나지 않았다. 언제 포탄이 내 옆으로 떨어질 줄 몰라 들것을 버리고 의무실로 들어가고 싶었지만 환자들을 포기하기 싫었다. 들것을 옮기고 문광욱 일병을 보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하얀 천으로 덮여 있었다. 정말 화가 났다. 북한이 무엇이길래 이렇게 한 인생을 빼앗아 가는지 도대체 왜 이 수많은 사람들을 다치게 하고 공포와 불안에 떨게  하는지 우리가 무엇을 잘못 했고 저들이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었다.

 
환자 후송이 시작되었다. 4인조로 들것에 환자를 올려 AMB에 환자를 옮겼다. 피 범벅이 된 AMB는 배터로 후송을 하러 갔고 그사이 환자를 재정렬 하고 군의관님들은 환자들을 진료하였다. 깁스를 씌우기도 하고 파편을 빼기도 하였다. 그리고 모든 환자들에게 항생제를 한방씩 놓았다. 후송을 갔던 AMB가 돌아오고 2차 후송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故 문광욱 일병의 시신도 후송 되었다. 그를 AMB에 싣는 동안 정말 죄송하였다 살리지 못해서 차갑고 파랗게 변한 그를 차마 볼 수가 없었다.

 

갑자기 펑하는 소리가 들렸다. 의무실 옆 건물인 교육대의 연료탱크가 터지고 교육대는   순식간에 불바다가 되었다. 우리는 바로 가지고 있던 소화기를 모두 모아 주위의 불을 진화시켰다. 그리고 마지막 환자를 후송한 뒤 일은 일단락되었다.

 
하늘은 연기 때문에 어두웠고 해는 저물어 갔다. 모두 지쳐있었다. 전부 앉아 뻗어있었다.  연평도는 언제 포탄이 떨어졌냐는 둥 고요하였다. 하지만 그 고요함 속에 공기는 화약 냄새와 연기로 인해 목이 따가울 정도로 매캐했다. 나는 유리창 밖으로 보이는 연평도를 보았다.   그때 보았던 연평도는 한마디로 지옥이었다. 
불타는 연평도를 보며 생각했다. 우리가 얼마나 잘못하였기에 이렇게 많은 이들이 다치고 공포에 떨어야 했는지 우리는 그들을 위해 쌀과 비료와 소 등을 보내 주었다. 하지만 그들에게 돌려받은 건 수십 발의 포탄이 아니다. 수많은 생명과 아름다운 연평도 그리고 대한민국의 평화를 빼앗아 갔다.  

 

군종과장(목사) 대위 하승원

굉음이 울리고 눈앞에서 포탄이 떨어졌습니다. 마을에서 연기가 올라왔고, 시선이 닿는 곳곳에 탄흔이 보였습니다. 급히 올라간 의무실은 이미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아이들이 누워있었습니다. 복도에는 아이들이 흘린 피가 흐르고 있었고, 응급실 안쪽에는 서서히 숨이 멎어가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피로 얼룩진 손을 잡고 기도를 해주었지만, 아이의 숨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들, 곧이어 추위와 불안함에 쌓여있는 그들에게 해줄 수 있는 건, 기도 밖에 없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도 지혈이 되지 않아 피가 계속해서 흘러도, 오히려 저를 보며 웃어주는 해병의 모습에 얼마나 제 자신이 무능력한지 깨달았습니다. 두 명의 전사자. 그 중에 한명은 연평도에 와 처음으로 상담과 기도를 해주었던, 매주 인사하며 장난치고 함께 예배드리던 아이였고,  한명은 제 눈앞에서 숨을 멈추었습니다.

 
군종장교. 군인이며 종교인인, 그러나 종교인과 군인의 사이에서 끊임없이 혼란스러워 하는 존재. 포격사건이 있은 후, 쉬지 않고 아이들을 만나고, 위문품을 전달하고 무언가를 하지만, 정말 제가 이들에게 힘이 되는 지, 알 수 없었습니다. 21명 중 1명이 죽고 5명이 다쳤던  정비소대에 처음 찾아갔을 때, 그들의 눈을 보며 저는 말문이 막혔습니다. 힘내자는 말을   횡설수설 하듯이 하고 나오는데, 그들의 눈이 잊혀지질 않았습니다. 마음이 너무 다시 올라갔습니다.

 

 “내가 기도해줘도 될까?..” 조심스레 기도하고 눈을 떴을 때, 눈물을 흘리는 해병을 봤습니다.

 
아직도 귀에 포탄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습니다. 아이들의 눈빛이 잊혀 지지 않고 눈만 감으면 의무실 찬 바닥에 누워서 웃으며 저를 바라보던 해병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저는 솔직히 이 곳 연평도가 처음 겪는 군대입니다. 그래서 잘 모르는 것도 많고, 눈치도 없고, 군이 어떤 지 잘 모릅니다. 할 말 안할 말이 어떤 것인지 조차, 잘 모르는 너무나 부족한 사람입니다.

 

이번 일이 터지고 나서는 군종장교의 역할을 생각합니다. 저는 우리 부대원들이 다치지   않길 바라고, 그들이 마음이 다치질 않길 바라고 몸이 건강하길 바랍니다. 이를 위해서 기도하고 만나고 이야기하고 들어주고 용기를 주고 위로를 주고 싶고, 그렇게 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번 일을 통해서 군종장교 또한 군인이라는 사실을 크게 느꼈습니다. 전쟁이 일어난다면, 군종장교 또한 부대와 생사고락을 같이 해야 한다는 것과, 이를 위해서 훈련되어져야 한다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본부중대 행정관 상사 한훈석

'10. 11. 23. 화요일 14시 35분 청명한 초겨울 하늘에 검은 흉악한 포물선이 그려지고 서해5도 중 가장 평화롭고 아름다웠던 연평도가 무간지옥과 다를 바 없는 아비규환으로 물들기 시작한 것은 찰나의 순간이었다.


이 날은 해상 사격훈련이 있는 날이라 대원들에게 거점작전에 대하여 교육을 하고 난 뒤 행정병과 함께 중대 건물로 내려와 서류를 챙기고 있었다. 그리고 이어서 귀에 익숙한 포성과 함께 임시건물인 컨테이너가 흔들거리기 시작했다. K-9사격이 있을 때면 으레 있는 일이였기에 “행정관님, 오늘 7중대가 어마어마하게 때려 붓는 것 같습니다”라고 경상도 사투리로 너스레를 떠는 행정병에게 실소를 띄며 서류를 들고 부대본관으로 출발하려 하는 도중이었다.

 
햇살이 부서지는 연평도 바다를 창가로 바라보고 있는데 멀리서 연기가 보여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하여 상황병에게 물어보려 하는 순간 대기를 찢어발기는 굉음이 들리고 컨테이너가 미친 듯이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즉시 상황병에게 상황실을 폐쇄할 것을 지시하고 행정병과 상황병을 이끌고 소산진지로 향하였다. 
잠시 승파관 벽에 기대어 상황을 판단하며 마을을 둘러 본 순간 중대를 벗어날 때만 하여도 설마 하였던 일이 벌어졌다. 아름다운 우리의 연평도가 북한군의 기습공격으로 화마에 휩싸이고 있었던 것이다. 동서남북 할 것 없이 눈이 가는 모든 곳에는 잿빛연기가 하늘로 불타오르고  있었다.

 
상황이 정확하게 파악되고 나니, 반드시 대원들을 살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우리는 급히 발길을 거점진지로 돌려 이동하는 와중에 부대본관에 들러 아직까지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업무를 보고 있는 참모부서 간부들에게 상황을 알려 모두 거점으로 이동할 것을 전파하고 나서 다시 거점까지 질주 하였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지만 철모 위로 들리는 포탄소리는 당장이라도 등 뒤에 떨어져 나와 대원 두 명을 덮칠 것 같았기에, 나만 믿고 따라오는 대원들이 있었기에 움직이지 않는 다리를 의지로 이끌어 모두가 무사히 소산하였다.

 

거점입구에 도착하여 한숨 돌린 순간 등 뒤로 들리는 폭음소리에 뒤를 돌아보자 불과 5분전까지 내가 있었던 승파관에 포탄이 떨어져 있었다. 전신에 소름이 돋는 아찔한 순간이었다. 나의 판단이 조금만 늦었어도 나의 목숨뿐만 아니라 대원 두 명을 부모님의 곁으로 돌려보내지 못할 뻔한 위기의 순간을 무사히 넘겼음에 평소 신을 믿지 않는 나였지만 그 순간만큼은 신이 존재함에 감사를 드렸다.


아직도 쿵! 쿵! 울리는 폭음이 뇌에 꼽혀서 빠지지 않았는지 심장소리처럼 계속 귀에서 울렸다. 먼지와 섞인 방사포 연기가 하늘을 덮어 구름을 삭제 시켰다. 참담했다. 거점에 앉아 생각을 했다. 진짜 전쟁이 일어나나 하지만 나는 싸울 것이고 살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앉아 있었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2차 사격이 시작 됐고 거점이 심장박동처럼 계속 울렸다. 중대원들은 크게 동요 했지만 간부들의 지시로 안정을 찾았고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19시경 마을의 화재를 진압하라는 지시가 내려졌다. 나는 제독차의 물로 마을의 화재를 진압하고자 하는데 나는 자원을 했고 급수장에서 물을 채운 뒤 마을로 갔다.
포를 맞은 흔적을 지우기 위해 애쓰는 사람은 없었고 거리는 하늘을 향해 치솟는 불길만이 우리를 반겼다. 화염을 향해 제독차의 살포총이 갔다. 마을에 맞은 포와 그 위에서 사는 화염 그리고 그것을 잠재우기 위해 애쓰는 분대원들이 겹쳐졌다.


벽이 허물어지고 곳곳에 불이 번졌는데 소방차가 1차적으로 많이 꺼놓은 상태에서도 우리는 계속 불을 껐다. 마을을 향해 방사포를 던진 북한에 대한 적개심이 끓어오르기도 24시가   넘어 하루가 지나갔다. 하루가 참 길었고 거점으로 돌아오는 길은 짧았다. 하루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았는데 달이 점점 낮아지는 모습을 봤다. 연평도의 수많은 별들이 무슨 일이라도 있냐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듯 했다.


나는 담배를 태우며 하늘로 향하는 연기 속에서 14시 34분에 떨어진 포의 자취를 볼 수   있었다. 내 두 눈에 박혀있는 2010년 11월 23일은 계속 정지 한 채 두 눈에서 잠자고 있다. 하루를 맞이하는 태양을 보며 북한의 도발에 대해 생각을 한다. 우리는 지지 않았다.     그 때를 지우는 일은 내 인생의 과제일 것이다. 

 

본부중대 인사병 병장 백종협

2010년 11월 23일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6시30분 총기상과 동시에 조별과업 정렬을 떠났다. 간단한 인원 파악 및 국군도수체조, 조별과업을 부여받고 해산을 한 뒤 근무표를 확인했는데, 근무표를 보니 13시 ~16시까지 주간 3직 근무였다. 오늘 14시에 대 해상사격훈련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훈련에 참가 하지 못하는 마음 한구석에는 꺼림칙함이 있었다.

 
점심을 먹고 난 뒤 난 근무 준비를 하고 중대원들은 방탄복을 준비하고 무장을 몸에 맞게 최적을 하고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13시 근무 진입 후, 후임병인  김태우 해병과 평소와 같이 근무를 서고 있었다.

 
그 때, 14시 35분 헬기장에서 ‘씨~웅 꽝’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순간 “무슨  소리지” 하고 그 방향을 쳐다보았다. “포 7중대의 K-9 자주포 사격이 왜 이렇게 크고, 큰 진동으로 느껴질까”라고 생각할 틈도 주지 않고 마을에서 포탄 소리가 2회 들렸다. 흰 연기가 무섭게 피워 오르고 있었다.

 
나는 선임근무자로서 후임 근무자를 이끌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김태우 상병과 함께 배수로 달려가 몸을 피했다. 배수로 들어가 있는데, 폭음과 충격파에 대비해 중대에서 교육받은 복지부동 자세를 취했다. 자세를 유지하고 있는데 위병소 배수로 바로 옆 탄약반에서 ‘꽝’하는 소리가 들리는 동시에, 배수로에는 진동이 울리면서 위병소 창문이 깨지고, 내가 엎드리고 있는 머리 위로 총알 같은 파편이 흩어졌다. 나는 가슴이 뛰고 순간적으로. “아! 전쟁이 났구나!, 도대체 어디서 날라 온 포탄인가!, 포탄은 언제까지 떨어지는가! 어떻게 하면 살아남을 수 있는가!, 나는 절대 저 포탄에 맞지 않는다!” 등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배수로 바닥에는 전투복과, 얼굴이 젖어 들 만큼 물이 흐르고 있었지만, 나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폭음 소리가 멈춘 뒤 나는 위병소 전화기로 중대에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아니나 다를까 전화기는 먹통이었다. 나는 상황이 어떻게 된 것인지 알아보기 위해 거점으로 가는  도중 중대 들릴 생각을 했다. 그리고 김태우 상병에게 긴장 하지 말고, 침착하자며 아무 일도 없을 거라고 재차 말하고 중대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정신없이 뛰어갔다.

 

사실 김태우 상병보다 내가 더 겁에 질려 나 자신의 마음의 안정을 찾으려고 이렇게 격려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중대로 가니 이미 중대는 소산을 마치고 텅 비어 있었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중대의 잔류인원을 다시 확인하고 혹시나 있을 화재에 대비하여 김태우 상병과 함께 중대의 차단기를 모두 내렸다.

 
그 순간, 나는 중대로 뛰어오는 중 탄약반 주위에 불길이 번지기 시작 했다는 것이 떠올랐다.김태우 상병과 나는 포탄이 떨어질까 두려움이 밀려왔지만, 불길을 그냥 방치하면 걷잡을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죽지 않는다는 신념으로 소화기를 들고 불이 번지기 시작한   탄약반으로 달려갔다. 탄약반 앞에서 소화기를 뽑고 진화를 시작했다. 초기 진압을 하는 도중 옆에서 소화기를 들고 목사님이 달려오셨다. 두려움을 안고 있던 나는 목사님이 오시자 마음이 안정되고 자신감이 생겼다. 화재를 진화한 후, 거점으로 뛰는 도중 나는 내 뺨을 때리면서  마음속으로 “정신 차려야 한다”며 계속 되새겼다.

 
거점으로 들어가니 마침 중대장님과 행정관님이 위병소 근무자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아무 이상 없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살아있어서 고맙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이렇게 나를 신경 써주고 관심을 가져주신 분들이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15시 20분경 북한의 2차 포격이 시작되었다. 거점 입구와 가까이 있던 중대는 거점 안쪽으로 위치를 옮겼다. 거점 안에서 지진과 같은 진동이 울렸다. 나는 거점이 무너지는 것은 아닐까 하고 걱정이 되었고, 후임들의 눈빛에는 두려움이 가득 차 있었다. 나 또한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중대의 선임병으로서 겁에 질린 표정을 보이게 된다면 후임들에게 좋지 않다고 판단해 오히려 후임들에게“걱정하지 말라며, 이 상황에서 살아남게 되면 우리는 영웅이 될 꺼라고, 북한군과 한번 싸워 멋지게 영웅이 되자”고 후임들을 격려 했다.

 
그 뒤 몇 시간동안 더 이상의 포격을 이루어지지 않았다. 적의 포격이 멎자, 부대본부 주위가불타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중대장님은 선임병 몇 명을 뽑아, 밑으로 내려가서   모든 소화기, 등짐펌프, 물수건, 방화벨트 구성하기 위한 삽과 대비를 가져오라고 지시했다.  
방화벨트를 구성할 곳은 지금 연평부대에서 제일 중요한 지휘통제실 주위, 거점, 거점 발전기였고, 불을 끄지 않는다면, 모든 곳에 불이 번지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나와 몇몇 인원들은 중대장님의 지시를 받아 지통실 주위에 삽과 대비, 등짐펌프로 지통실과 거점 발전기로 더 이상 불이 넘어 오지 못하게 방화벨트를 만들었다.

 

주요 시설물 주위 3m를 삽과 대비로 나뭇가지, 잎들을 제거 하고 그 주위에 등짐펌프로 물을 뿌려서 완벽한 방화벨트를 만들었고, 불이 번져 오는 곳들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불을 껐다. 큰 불을 거의 끈 뒤에도 혹시나 불씨가 다시 살아나 불이 다시 번질까봐 2시간 동안이나 지켜보며, 다시 살아나는 불씨들을 제거했다. 화재를 진화하고 거점으로 들어가니 22시가 지난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중대 총원은 밖에서 고생하는 대원들을 생각하며 행정관님을 비롯하여 총원이 식사를 하지 않고 대기하고 있었다. 정말 위급할 때야 말로 전우애가 최고조에 오른다는 것이 사뭇 느껴졌다. 
다음날 새벽 위병소 근무에 임하게 되었다. 근무 중, ‘피~웅’이란 소리만 들어도  후임근무자와 정색을 한 뒤, 북쪽 하늘을 쳐다보는 버릇이 생겼고 포탄이 언제 떨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생겼다. 하지만 적의 예기치 못한 도발에도 해병으로서, 연평부대원으로서, 본부중대원으로서의 내 자부심과 이 나라를 내 손으로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은 흔들림이 없다.

 
난 오늘도 주어진 임무들이 내 전우와 나라를 지킨다는 마음가짐으로 최선을 다했고, 앞으로도 11월 23일 뜨거웠던 그날을 떠올리며, 내가 가졌던 생각과 마음들을 뼛속 깊이 새기고,    적의 어떠한 도발에도 목숨을 걸고 싸울 것이다. 우리는 반드시 이긴다!

 

인사과 일보담당 중사 안준오

뒤돌아보면 마땅히 기여한 바도 없으며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다는 생각이지만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준 인사과 간부들에게 감사하고 교훈으로 간직하고자 수기를 기록합니다.


우리 연평부대 인사과는 그날도 여느 때와 같이 각자가 맡은 임무의 수행을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인사과장과 관사담당은 군 주택 시설물 확인을 위해 마을 인근에 산재 해 있는 군 주택 시설물 점검을, 보임담당은 사격훈련 관측 업무를, 출도담당은 선착장에서 휴가자 통제 중에 있었으며 행정담당은 22일 휴가를 출발하였으나 늦은 시간 인천에 도착하여 23일 고향으로 향하였다. 각종 감사 자료를 정리하고 밖으로 나와 보니 멀리 당섬 선착장에는 평소처럼 여객선이 입항하고 있었다. 평화롭고 소박한 섬마을의 풍경은 그때까지였다.


멀리서 포사격을 하는듯한 소리가 들려왔고, 이내 “슝”하는 소리와 함께 헬기장 부근에  포격이 가해졌다 그 순간 머릿속은‘혹시 오발인가’최소사거리? 고각의 최대화? 앞뒤가   맞지 않았고, 머리가 혼란스러워지는 찰라 마을과 부대시설 주변으로 연속적으로 적 포탄이 떨어졌다. 도발이 가해지고 있음을 확신하고 근무담당과 제2회의실 주변의 인원들을 대피시설로 이동시키며 달려가 인근 대피소 총안구를 통해 주변을 관측하였다.


그 시각 임무수행을 마치고 복귀 중이던 인사과장과 관사담당은 포격이 어디에 떨어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민간인 보호를 위해 어린이집의 어린이들과 교사, 길거리에서 공황상태에 빠진 주민 및 어린이 등 수 십여 명을 대피시설로 이동시켰고, 출도담당은 선착장에서 휴가대기자를 버스 승차책임자에게 인계하여 각 부대로 복귀시키고 지통실로 돌아 왔다.


그 자리에서 우리 팀은 급히 임무를 분담했다. 우리의 임무는 전투행위가 아니라 적 공격으로부터 주민의 안전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근무담당이 먼저 도착한 버스로 출발했고 나는 혼자 주차장 주변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중 1차 포격으로 발생한 화재를 진압하기 위해 이동하던 중사 박용철을 또 다시 포격이 가해질지 모르니 대피호로 이동할 것을 지시하였다. 
잠시 후 버스 도착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주차장에 나와선 순간 또 다시“슝”하는 소리가   들려 건물 안으로 몸을 피하는 동시에 부부대장실 쪽으로 떨어진 포탄에 의한 파편더미가 건물 속으로 쏟아져들어 왔다.

 

파편 가루가 채 가라안기도 전 본관 앞으로 선착장 업무를 마친 출도담당의 차에서 내린 헌병근무자를 불러 건물 내부로 대피 후 또 다시 포탄이 본관 주변에 떨어졌다. 잠시 뒤 포격은  멈추었고 소강상태인 것으로 예상한 나는 버스가 오지 않은 것으로 보아 문제가 생긴 것으로  판단하고 먼저 출발하여 주민과 연평어린이집 대피를 담당한 중사 정용균에게 연평 초등학교도 확인해줄 것을 요청하려는 순간 휴대전화가 불통인걸을 확인, 건물 밖으로 나와 문자 메시지를  통해 의사를 전달하고 헌병근무자와 지통실로 이동 헌병대장에게 신변을 인계한 후 전시업무로   전환 피해현황 및 사상자 파악에 나섰고 그러면서 부대의 피해상황이 속속 확인되었다.

 
전·사상자 가운데 故 서정우 하사는 22일 환한 웃음으로 만난 기억이 있어 너무도 가슴이 저려 왔다. 잠시 후 또다시 포격이 가해져왔고 우리 모두는 각자의 임무수행을 위해 쏟아지는 포탄사이를 거침없이 달렸다.
연평도 적 포격은 이렇게 지나갔고 그날 저녁에도 우리 인사과는 조를 나누어 대피시설에 있는 주민들의 안전과 인원수를 확인하고 긴급물자를 지원토록 부대에 건의 지원하였다.

 
그날 밤 대부분의 주민들이 지원에 나선 병원선, 해경정 및 개인선박을 이용해 섬을 빠져나갔다. 24일 인사과 간부들은 부대 통제에 따라 남아있던 민간인 170여명을 개인 차량 및 부대차량을 이용하여 선착장으로 이송하여 해군함정에 탑승시켜 인천으로 대피시켰다. 이때의 상황은 마치 성경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를 연상케 할 정도였다. 다행이 휴가 중이던 행정담당이 인천항에서 주민들을 안전하게 안내하여 임시 대피소로 이동하였다.
혹시 몸이 불편하거나 대피소식을 듣지 못해 마을에 남아있을 주민들의 소재를 파악하기 위해 불이 켜진 건물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이상 유무를 확인하고 인적사항을 기록하여 추가도발에 대비하였다. 그 이후로도 사실상 치안공백상태에 빠진 마을 및 군 시설을 중심으로 순찰을 실시하는 등 임무를 이어나갔다.


연평어린이집 유아들과 수 십 여명의 민간인을 대비시킨 인사과장과 관사담당, 적 포격 순간에도 관측소를 점령하여 임무를 수행한 보임담당, 민간인의 대피계획을 실천한 근무담당, 선착장의 동요를 막고 휴가자를 포함한 민간인을 대비시켰던 출도담당, 연평도 적 포격 소식을 듣고   고향땅을 밟아 보지도 못한 채 휴게소에서 다른 차와 미래해운 선박을 이용 복귀한 행정담당  이들의 질주가 있었기에 피해현황파악, 민간의 안전, 육지로의 안전한 철수, 빠른 안정화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곳곳에서 많은 연평부대원이 강한 동료애와 근성을 보여주었으나 사기를 드높여야할 순간에 잘잘못을 논하는 이들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들에게 말하고 싶다.


“우리는 포격의 순간에 최소한 자신의 안녕을 위해 자세를 숙이지는 않았다.”


전투현장에는 사기충천한 연평부대원이, 불타는 마을에는 인사과 팀이 달리고 있었다. 

 

포7중대 기상반장 중사 신 용 한

2010년 11월 23일. 날씨는 어느 날보다 좋았다. 난 오늘도 평상시와 동일하게 보급업무를 수행하고 오후에 있을 중대 ATT평가 사격 통제관으로써 탄종, 신관, 장약, 발수를 확인한 후 사격 시 15분전에 3포상으로 이동하여 사격준비 상태 및 3포 인원들에게 장비 이상 유무와 안전 교육을 실시한 후 중대 ATT마지막 사격 최선을 다하라고 격려한 후 3포 2번 포수인 김진혁 일병과 포상 후면으로 이동하여 사격대기를 하고 사격 시 한발 한발 체크를 하고 마지막 발수 사격을 한 후 포반장에게 장비 이상 유무와 뇌관, 들기고리를 확인 후 반납 하라고 지시하였다.


 이동 전 갑자기 격발기에 이상이 있다며 넷 포 불발이라고 96K로 송신되어 무슨 일인가 하여 넷 포로 이동하는 중 2분 후 맑은 하늘에서 쉬~우~웅 소리가 가까이 들리며 3포상 정면에 둥~! 하는 소리와 함께 엄청난 불꽃이 튀었다. 그리고 하나포상, 병사 쪽에서도 둥~! 펑~! 하는 소리와 연기가 나기 시작하고 5초 후에 66고지 능선에 여러 발의 적탄이 떨어졌다. 난 순간 적 폭격이라고 생각하여 주위를 둘러보고 주위에 사진을 찍고 있던 정훈하사를 데리고 넷 포상 환풍구 쪽으로 들어가 대피하고 있었다. 얼마 후 정훈하사가 정훈관이 넷포상 위에서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고 하였다.


 난 다시 확인 하기위해 바깥쪽으로 나와 확인을 하였지만 정훈관은 없었다. 적탄 소리가 줄어들기 시작하여 난 정훈하사와 둘포상 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하였다. 갑자기 K-10 포상에서 정훈관이 보여 정훈하사를 정훈관에게 가라고 지시하고 난 기상반으로 이동하였다. 도착 후 기상병을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난 다시 정비반으로 이동하였다. 몇 몇 대원들이 있었다. 그 후 중대장이 96K로 대원들을 통제하라는 지시를 하였고, 난 인원들을 통제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다시 적탄소리가 들리기 시작하였다. 이제 마을 쪽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였다.


 최초의 적탄에 피격당한 하나포상에는 화재가 발생하였지만 적탄 때문에 이동할 수가 없었다. 몇 분이 지나자 사격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하나포상에는 엄청난 화재가 발생중이였다. 난 박진관해병과 기상반에 있는 소화기를 들고 하나포상으로 이동하여 화재진압을 시도하였지만 소용이 없었다.

우리는 다시 정비반으로 뛰기 시작하였다. 상황이 어느 정도 정리되고 얼마 후 중대장이 적탄으로 전기가 차단되어 발전기를 가동 중인데 유류보급을 지시하여 박진관 해병과 다시 유류탱크로 이동하여 휘발유를 들고 상황실에 휘발유를 건내주고 다시 정비반으로 이동하여 중대원, 간부들과 하나포상 화재진압을 하였다.

 

이번 연평도 폭격과 피격을 당하여도 열심히 싸워준 우리 대한민국 대표 K-9중대 총원에게 감사하고 자랑스럽다. 영원한 포7중대 화이팅!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우리측 간첩이면서 2중 간첩임이 알려졌지만 아무 문제가 안됐던 암호명 흑금성이 구속됐다는 뉴스에 텔미 살짝 놀랐습니다.

2009/01/13 - [숨겨진 이야기/간첩 또는 스파이] - 이중간첩(double agent)이란 무었인가?
2009/01/13 - [숨겨진 이야기/간첩 또는 스파이] - 김정일을 감시하는 방법

두 포스팅에서 이미 언급된 그 였는데 이번 구속 소식은 미묘한 2중간첩의 줄타기에서 실 수가 있었던거 같습니다. 이런류의 사건에서는 공개되지 않는 정보들이 많은 만큼 이후의 소식이 기다려집니다.

문제는 현역장성이 잔전계획 5027을 유출했다고 하는 부분인데 실제로 그랬다면 이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건 스타크래프트에서 내 지도 다 공개하고 전쟁 시작하는 것과 같으니까 말입니다.

하지만 정상적인 2중간첩 풀레이였다면 줘야될 먹이감을 잘 못 골랐거나 정보부처 내부에서 문제가 생긴 사건일 수도 있습니다. 스스로 노출하고 스포트라이르를 자청하는 에이전트이니 정보기관 내에서 흑금성을 싫어하는 사람이 많기는 할겁니다.

이번 천암함과 관련되어서 군의관에 대한 오해로 보이는 이야기가 들려서 당시에 읽고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있어서 아래 글을 함께 해봅니다. 참고로 본 수기는 군 내부 공모전의 글로 알고 있습니다. 읽는 분들은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2002년 6월 29일 토요일. 나는 터키와의 월드컵 3, 4위전을 앞두고, 축제 분위기 끝물의 애틋함이 괜히 섭섭해서 이런저 런 월드컵 이야기를 하며, 동료들과 노닥거리며 퇴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웬걸? 갑자기 구내방송이 나오고 분위기가 어수선해 졌다. 이윽고, TV에서는 연평도 앞바다에서 양측 해군 간에 교전이 있었다는 보도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국군수도병원 전 군의관을 비롯한 장병들은 퇴근을 미루고 대기상태로 남 겨졌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를 보낸 후, 헬기를 통해서 환자들이 후 송 중이라는 소식이 들리는 가운데 필요 인원만 남기고 나머 지는 퇴근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북방한계선을 넘어 남쪽으로 계속 내려오는 북쪽 배를 가로 막고자 참수리 357호는 배의 옆구리로 적선의 진로를 막는 ‘차단기동’을 하고 있었다 한다. 차단기동이 무시무시한 이유 는 서로 간에 배의 옆구리를 고스란히 노출시키게 된다는 점 이다. 이건 피차간에 절대 공격하지 않으리라는 믿음을 전제 로 한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남하(南下)하던 북측 배가 방향을 틀며 옆으로 도는 순간 우 리 장병들의 눈에는 포탑을 돌려 조준하고 있는 인민군들이 보였다. ‘어, 쟤네들 왜 저래?’ 하는 순간 적의 85mm포가 불을 뿜었고 무척이나 가까이 붙 어 있던 우리 배의 함교(조타실)가 명중 당했다. 그리고 우리 의 포탑들이 차례로 가격 당했다.

이때 함교와 포탑에 위치하던 장병들이 대부분 전사했다. 우 리와 같은 전자조준장비도 없이, 수동으로 포를 조준하는 북 쪽 함정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이것은 우리를 노리고 미리 공 격계획을 가진 상태에서만 가능한 일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중앙 통제실인 함교가 무력화되고 대응 사격할 수 있 는 포탑들이 날아간 상황에서 우리 해군은 어려운 전투를 벌 이게 됐다. 유명한 이야기지만 권모 상병 같은 경우는 왼손이 날아간 상태에서 오른손만으로 M60 기관총을 발사하는 투혼 을 보였던 눈물나는 전투는 이렇게 시작됐다.

더욱 황당한 것은 피격당한 참수리 357호가 당하고 있는 동 안 급히 접근한 참수리 358호에서 북측 경비정에 포탄을 퍼 부어댔지만, 그 상황에서도 북측 경비정은 오로지 357호만 공격했다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더 위협적인 상대를 먼저 공격해야 함에도, 참수 리 357호를 침몰시키겠다고 작정을 했던 모양인지 ‘난 한 놈 만 패’식의 공격에 의해 357호는 결국 가라앉아 버린다.

당연히 북측 경비정은 옆에 있던 358호에 의해 신나게 두들 겨 맞아서, 침몰되는 것만 겨우 면하고 퇴각하게 됐고 이후 들리는 이야기로는 북측 사망자만 30명 이상이라 한다.

그렇게 오전을 보낸 가운데, 나는 오중사의 맞은편 침상에서 생존자 중 가장 많이 다친 박 상병을 접하게 되었다. 건장하 고 준수한 청년이었다. 의식은 없었고 인공호흡기가 달려 있 었으며, 내가 군대온 이래로 목격한 가장 많은 기계와 약병들 을 달고 있는 환자였다.

파편이 배를 뚫고 들어가서 장을 찢었고, 등으로 파고 들어간 파편은 등의 근육과 척추에 박혀있었으며, 등과 옆구리는 3 도 화상으로 익어 있었다. 오른쪽 허벅지에도 길쭉한 파편이 박히고, 전신에 총상과 파편창이 즐비했다.

“쟤는…, 왜 저렇게 다쳤어요?”

옆 침상에 누워 있던 부정장 이중위에게 물었다. 그는 포탄에 맞아 왼쪽 발목이 부서져 절단술을 끝낸 상태였고, 그 옆에는 한참을 울었는지 눈이 발그레 부어오른 젊은 아가씨가 앉아 있었다. 약혼자란다.

“우리 배의 의무병 녀석인데, 부상자들 처치(치료)한다고 몸 을 아끼지 않고 뛰어다니다가 그랬습니다.”

참수리 357호의 의무병이었던 박상병은, 첫 포탄에 조타실 이 깨지면서 파편에 쓰러진 정장 윤영하 대위를 몸으로 덮고 함교 계단 아래로 끌고 내려가 심폐소생술을 시도했으나, 방 탄조끼 밑으로 줄줄 흐르는 핏물을 보며 소용없음을 깨닫고 는 다시 나가 쓰러지는 전우들을 치료하기 위해 몸을 숨기지 않고 뛰어다녔다.

당연히, 총을 쏘는 전투병은 엄폐물에 몸을 숨긴 채로 사격을 하게 마련이지만, 부상병을 찾아 이동해야하는 의무병은 전 투 시 가장 위험한 처지에 놓이는 것이다. 총탄에는 눈이 없 다.

이야기를 듣자 울컥했다. 멋진 놈…. 그런데, 이게 뭐냐.

상태는 굉장히 안 좋았다. 출혈이 엄청나서 후송 당시부터 쇼 크 상태였고, 수술하는 동안에도 엄청난 양의 수혈이 필요했 다.

정형외과와 외과 군의관들이 달려들어 가능한 대로 파편과 총탄을 제거하고, 장루를 복벽으로 뽑고, 부서진 오른쪽 허벅 지의 혈관을 이어놓은 상태였다. 엄청난 외상으로 인한 전신 성 염증반응 증후군(SIRS)으로 인해 혈압이 쉽사리 오르지 않아 결국, 순환기내과 전공인 나도 박상병과 인연을 맺게 된 다. 스완갠쯔 도자를 삽입하고 수액과 승압제로 혈압을 힘겹 게 유지해 나가는 가운데, 후송 시부터의 쇽에 의한 급성 신 부전 때문에 신장내과 동료도 힘을 합해 혈액투석을 지속했 고, 외상성 ARDS가 속발해 호흡기내과 동료도 합류한다. 방 광 손상이 발견돼 비뇨기과 동료도 합세하고, 부비동에 문제 가 생겨 이비인후과 군의관도 손을 더했다.

건장했던 박상병은 다행히도 질긴 생명력을 보여주었고, 그 가운데, 나는 테니스 친구, 술친구들에 다름 아니었던 동료군 의관들이 실은 대단한 의사들이었음에 새삼스러워했다.

‘너는 반드시 살려낸다!’

박상병의 숭고했던 행동을 여러모로 전해들은 우리 군의관들 은 암묵적으로 동감하고 있었다. 이기심으로 질펀한 세월을 뚫고 오면서 형편없이 메말라 버린 내 선량함에 박상병의 회 생은 한통의 생수가 되어 줄 것만 같았다. 뭔가 해줄 수 있다 는 것….

레지던트 기간 동안 수없이 지새워냈던 하얀 밤들과 바꿔낸 중환자관리의 기술이 너무나도 기꺼웠다. 하지만, 감염부위 에서 녹농균과 메치실린 내성 포도상 구균이 배양되면서 소 위 항생제의 마지막 보루라 일컬어지는 이미페넴, 반코마이 신, 아미카신으로 배수진을 치게 됐다. 오르내리는 체온에 일 희일비하는 가운데 전신상태는 조금씩 호전되고 있었지만 오 른쪽 다리가 서서히 차가와지며 색이 죽기 시작했다. 부서졌 던 혈관에 문제가 생긴 모양이었다.

결국, 고관절부위에서 절단이 이뤄졌고, 사타구니 아래쪽 오 른다리는 그렇게 사라졌다. 사지(四肢) 손실이 감정적 아쉬 움에 그치는 사건은 아님을 누구나가 알고 있었지만, 다른 길 이 없었다. 아픈 마음과 괜스런 죄책감을 그나마 생명이라도 지속된다는 사실로 슬그머니 달래 버렸다.

그렇게, 3주를 지내며 더 이상의 발열도 없었고 등과 옆구리 화상부위 및 관통창에는 발간 육아조직이 자라고 있었다. 수 술부위의 상처들도 자리가 잡혔다. 인공호흡기도 멈췄고, 기 도절개를 미루며 버텨오던 기도관도 제거했다. 박상병이 말 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사이 바싹 말라버린 박상병은 정신을 차리면서 오 히려 군의관들을 힘들게 했다. 현실을 서서히 깨닫게 되면서 차오르는 불안과 공포와 절망감을 입으로 표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직도 주렁주렁 매달린 약병 사이에서 부서진 육 체로 꼼짝 못하고 누워 흐느끼는 젊은 장정을 바라보는 일은 너무나도 불편했다. 정신과 군의관이 나서서 도움을 주었지 만, 그 역시 박상병의 망가진 육체와 앞으로 닥치게 될 고난 을 대신해 줄 수 없음은 그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어쨌든 박상병은 그렇게 회복돼 갔다. 그 사이 오중사는 방광 수술을 위해 비뇨기과로 옮겨지고, 부정장 이중위도 정형외 과 일반병실로 옮겨졌다. 박상병이 서해교전 환자들 중 가장 늦게 중환자실을 빠져나와 외과병동으로 옮겨지게 됐다.

가장 위중했던 그의 회복으로 서해교전으로 인한 전투 시의 사망자 외 추가 사망자는 단 한명도 나오지 않았고, 이에 고 무된 병원 측은 수고한 군의관들에게 포상으로 위로휴가를 주었다.

많은 젊은이들이 부상으로 인한 고통스러운 사건에서 얻은
개인적인 호사(好事)여서 마음이 불편했지만, 내가 어쩔 수 있는 일도 아니라며 자위를 했다. 따지자면, 6.25 동란, 경술 국치까지도 거슬러 올라가야 할 일이라고….

그렇게 얻어진 휴가로 나는 아내의 출산을 옆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내 딸의 첫 모습을 대한 순 간만큼은 광막한 우주 속에 나와 아이, 단 둘만 존재하는 감 격이었다. 그 때까지 내 삶이 순전히 그 순간을 위한 것이라 해도 아깝지 않을 것 같았다. 다시금 현실로 돌아와서도, 배 냇짓을 하는 딸아이에게 풍덩 빠져 보내는 사이에 또 한달 정도가 흘렀다.

어느 날, 박상병이 다시 중환자실로 내려졌다는 이야기를 들 었다. 의식이 나빠져 CT를 찍어보니 뇌실질 전반에 걸친 세 균감염이 의심된다는 것이었다. 예의 배수진용 항생제들은 계속 사용되던 중이었고, 중환자실에서 다시 만난 박상병은 완연히 수척해진 상태로 인공호흡기와 약병들에 또다시 생명 을 매달고 있었다.

새로 개발된 항생제들을 민간에서 구매해서 사용하기도 해봤 지만 패혈성 쇼크가 이어지며 걷잡을 수 없이 무너져, 결국 9 월 20일 금요일 새벽에 젊은 심장은 마지막 박동을 끝냈다.

이틀 뒤, 가족들의 오열 속에 우리 병원에서 영결식이 거행되 고, 박병장(상병에서 진급)은 대전국립묘지에 묻혔다. 충무무 공훈장도 수여됐다. 하지만 그는 꿈꿔왔을 나머지 인생을 하 늘로 가져가야 했고, 그의 부모님은 아들을 잃었다. 그를 만 났던 군의관들의 가슴에도 구멍이 났다.

옴짝달싹 못하는 역사의 틀 속에서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노릇이고, 인류사에 전쟁이 없어지는 일은 아마도 없겠지만, 한 선량한 젊은이의 아까운 죽음을 옆에서 지켜봐야 했던 일은 말할 수 없는 무력감을 안겨줬다. 나도, 내 주위 의 사람들도 남이 일으키는 전쟁에 인생을 맡겨야 할 수도 있는 초라한 존재 일 뿐이었다. 군의관 생활을 하면서 바라본 전쟁은 더욱 두려운 모습으로 저 멀리 서있다. 아득하게 멀지만 언제 달려들지 모르는 그의 섬뜩한 실루엣을 본다. 갖가지 대의명분으로 치장해도 전쟁은 부서지는 육체와 영혼을 제물로 삼아야 한다. 전장에서 맞닥뜨려야 할 맹목적인 폭력들. 그리고 잇따르는 수 많은 이의 비극들. 이를 막기 위한 소위 ‘전쟁억지력’을 키우기 위해 수많은 젊은이들을 군인으로 만들고, 더 많은 무기를 갖춰야 하는 또 다른 아이러니 ….

그렇게 가을을 보내던 중 병원 앞 산책로에서 이 중위와 그의 휠체어를 밀고 있는 약혼녀를 만났다. 처음 중환자실에서 대하던 날의 우울했던 첫인상이 무색하게도 그들은 밝은 모습이었다. 이 중위는 의족 보행 연습을 시작한 뒤 였고, 퇴원 후 다시 해군으로 복귀해 사무직에서 복무할 예정이었다. 그들의 결혼도 예정대로 이뤄질 거란다.

삶은 계속되기에 여전히 아름답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천안함이 인양되고 있습니다. 텔미 천안함이 인양되고 나면 한동안 인터넷에 떠도는 말들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코멘트를 할 생각입니다. 항상 그렇듯이 인터넷에는 자신이 모르는 내용은 의혹이고 세상의 전문가들보다 자신이 더 똑똑하다는 사람들이 넘쳐납니다. 종종 자칭 전문가들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텔미의 텔미게임은 조용한 전쟁 항목이 따로 존재합니다. 정보전 첩보전을 다루는 항목입니다. 따라서 첩보, 정보, 보안에 대해서는 조금(상식 수준이지만) 더 많이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천안함 사건으로 인해서 극비 사항들이 마구 노출 됐습니다.

 독도함

독도함 by roknavy 저작자 표시비영리

일부는 자기도 아는 내용이라고 비밀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마 TOD같은 경우입니다. 하지만 내가알고 너가 알고 우리 모두 알아도 최종 확인만 안된다면 그건 기밀입니다.

 

지진파 관측

가장 먼저 공개된 정보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 정보는 공개할 정보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기상정보 처럼 학술적으로 전세계가 공유하는 정보이기 때문입니다. 성능만 좋다면 이론상 전세계 어디서라도 관측이 가능한 정보입니다. 북핵실험에서도 가장 먼저 쉽게 인용되는 이유입니다.

 

의미는 그 때 거기서 무슨 일이 벌어졌다는 충격이 있었다는 점을 확인하는 의미 이상은 없습니다.

 

공중음파

 

공중음파는 지진파가 아닙니다. 순수하게 공기를 통해서 전달되는 소리입니다. 하지만 우리 귀에는 안들립니다. 엄청난 저주파이기 때문입니다. 기상청에서는 번개가 치는 걸 어떻게 알까요? 이걸 통해서 위치와 세기를 알 수 있습니다.

 

이 정보도 지진파와 마찬가지로 군용정보가 아닙니다. 전세계가 공유하는 정보이고 장비만 좋다면 이론상 전세계 어디서라도 관측이 가능합니다.

 

여기서 주목할 사실은 두 차례라는 점입니다. 지진파보다 명확하게 2개라는 사실을 구별할 수 있었다는 점 입니다.

 

TOD 영상

밤에도 시야를 확보해서 감시할 수 있는 장치입니다. 야시경처럼 작은 장치는 아니고 가격도 고가입니다. 하지만 TOD의 존재는 대단한 비밀은 아닙니다. 다만 운영방식, 시야, 배치 위치 등은 중요한 비밀입니다. 왜냐하면 그걸 알면 TOD를 피해 갈 수 있으니까요.

영화를 보면 은행강도가 은행을 털기 전에 가장 먼저 하는 일은 CCTV의 위치를 확인하는 겁니다 잘 알려진 장비이면서도 공개가 늦어진 이유이고 전면적인 공개가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나마 군 정보 중에서 가장 잘 알려진 만큼 공개된 유일한 정보라고 하겠습니다.

 

미 공개 정보

TOD 영상을 제외하고는 군용 정보는 하나도 공개되지 않은 셈입니다. 왜일까요? 그건 앞에서도 말했지만 우리가 얼만큼 알 수 있는지 아니면 모르는지가 정보전에서 가장 중요한 정보이기 때문입니다.

 

군도 군용으로 특화된 공중음파 관측도하고 백령도 인근에는 공개되지 않은 각종 감시장비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걸 공개하라는 이야기는 북한이던 다른 가상적국이던 우리 정보 수집능력은 이 정도이니 알아서 피해가라고 알려주는 것과 같은 행동입니다. 국회돌이들 조차도 공개하라고 말하는 모습에 경악을 금할 수 없습니다.

 

이전에 정보사령부 책임자가 이름도 비밀은 부대 서류를 흔드는 모습만으로도 지탄을 받았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적은 우리가 아는지 모르는지 알면 안 되는 게 정보전의 가장 기초입니다.

 

텔미는 이번 사건에서 다도해함의 이름이 공개되고 함의 모습이 방송되는 모습을 보면서 무척이나 놀랐습니다. 텔미도 그 배가 있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검정색의 저런 모습일 줄은 몰랐습니다.

 

다도해함은 방송에서 언급된 데로 정보수집 함입니다. 여태까지는 존재가 기밀이었습니다. 뭐 금강이나 백두만큼이나 기밀이지만 북한도 레이더로 볼 수 있는 금강이나 백두하고는 상황이 달랐습니다.

 

사실 텔미 개인적으로는 공개된 공중음파 정보 만으로도 현 시점에서의 의문은 없습니다. 군 비공개 정보에서는 시간을 가지고 정밀하게 분석할게 많이 있습니다.  이후 어디까지 공개할 지는 모르겠지만 기다리면 보다 명확한 내용 공개가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도 막연한 추측 소설에 현혹되지 말기 바랍니다.


금강과 백두 ..................... 위키백과 인용 (서울에서는 날 좋으면 하늘에서 볼 수 있습니다.)

금강/백두 정찰기는 대한민국 국군 정보사령부에서 운용중인 호커 800XP를 기반으로 개발한 정찰기를 말한다. 금강산까지 정찰이 가능하다고 하여 금강정찰기로 불린다. 해상도 30cm급 합성개구레이더(SAR)를 장비하고 있으며, 휴전선 이북 100킬로미터 지역까지 정찰이 가능하여, 한국은 대북첩보의 40%를 자체담당할 수 있게 되었다. 현재 성남 공항에서 운용중이다.[1] 한국은 EO-X 사업으로 휴전선 이북 100킬로미터 지역까지 정찰이 가능한 KF-16용 EO 정찰 포드 10대를 구입하였다.

 1991년부터 「백두 금강사업」이란 암호명으로 비밀리에 추진되었다. 정보사령부는 미군 U2 정찰기와 한국군 금강정찰기 등이 촬영한 정보를 항공사진 전송체계장비(KCITS)를 통해 감청부대인 5679부대에 제공한다.

「금강」이란 이름의 영상레이더 체계(LAIRSⅡ)는 평양 이남의 지상에 있는 축구공 크기의 물체까지도 식별, 이 레이더영상자료를 한국군의 중앙처리장비와 육군 1군 및 3군의 이동처리장비에 전송해 이를 처리하는 영상장비다.

이들 장비를 탑재해 고도 11㎞의 상공을 비행하며 첩보임무를 수행할 정찰기 호크800XP 정찰기는 미국의 기존 U2보다 우수한 성능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군사분계선(MDL)남쪽 40∼50㎞ 지역의 상공에서 작전을 수행하는 이 정찰기는 체공시간이 5시간(항속거리 4천7백㎞). 따라서 24시간 정찰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5교대 임무가 필요하다. 정찰기가 최소 5대 필요하다는 얘기다. 국방부가 이 정찰기를 10여대 구입키로 한 것도 이 때문이라고 당국자는 설명했다.

이들 장비는 이제부터 생산에 들어가 3년후에 제작되며 이 기간 중 한국군 요원이 운영훈련을 받게 된다. 「금강」에는 60여명이, 「백두」에는 36명이 각각 미국에서 훈련을 받는다. 처음 2년동안은 미국측이 기술지원을 한다.[2]

1996년 3월 공개입찰에서 미국의 로랠사가 2억7,000만달러를 제시, 선정됐으며 2001년에 전력화되었다. 당시 입찰에 참여한 캐나다의 맥도널드 뎃윌러사는 2억2,000만달러를 제시했었다.

국방부 관계자는 “백두·금강사업에서 장비를 모두 미국에서 사들이기로 결정한 것은 미국정부가 유일하게 보증을 해주는 대외군사판매(FMS)조건인데다 한미연합정보를 고려한 것이었다”고 말했다.[3]

 

  1. YY 2010.04.15 15:38 신고

    뭐에 공격당했는지 알지도 못하는 군대가 군대인가여?



안중근의사 100주년으로 뉴스마다 여러 가지 보도가 되는데 그 후손들의 이야기를 보면서 너무 한가지 목적으로 포장을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아들 안중생은 후일 이토 히로부미 사당에 참회의 절을 하고 그 아들에게 울며 사죄하고 양자를 자청했다고 합니다. 그 대라고 약국을 차리고 자식은 미국 유학을 가고 그런 삶을 살았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에 김구선생은 안중생의 암살을 지시하기도 했다고 하는데 실행은 되지 않았지만 참 비극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찾아보는 와중에 안중근의사의 큰딸의 수기가 보여서 인용합니다. 기가 봐서 마찬가지로 제가 있었던 니다.

 

아들의 변절에는 집에 먹을게 없을 정도였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저는 변절이니 친일이니 하는 비난은 아래 수기를 봐서라도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안중근의사의 의거와 그 후손이야기가 포장이 아니고 사실대로 솔직하게 다뤄졌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아래 수기는 1956년 실화라는 잡지 4월호에 실렸던 큰딸의 글이라고 합니다.

 

거사 후에 우리 가족이 더듬어온 길

세상 떠나신 선친에 대해서 여러분이 쓰신 글들을 많이 보았습니다만 저 자신이 붓을 들기는 이것이 처음입니다. 이렇게 청을 받고 붓을 드니 하고 싶은 말도 많고 머리 위에 떠오르는 지난 일도 많습니다만 무엇으로부터 말을 시작해야 좋을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생각나는 대로 대충 적어보기로 하겠습니다. 선친이 돌아가신 것은 지금으로부터 46년 전 326일이었습니다.

그때 제 나이 여덟 살이고 보니 큰 기억이라고는 있을 수 없었습니다만 자라면서 조모님을 비롯하여 여러 선생님으로부터 말씀을 들었습니다. 원래 저의 집 고향은 황해도였습니다만 조부모님 때부터 진남포(鎭南浦)에서 살았습니다. 선친께서는 일찍이 집을 떠나 망명길에 나섰고 숙부 한 분은 서울법정학교에 다녔고 한 분은 진남포에서 일찍이 선친이 창설한 학교 교원으로 있었습니다.

이리하여 어머님과 어린 동생은 조모님과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만 선친께서는 의거하신 해에 노령(露領·러시아 영토) '버그라니스'에 살림을 장만했으니 온 집안 식구더러 오시라고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그러나 살림살이로 보든지 식구로 보든지 솔가할 수는 없었지요. 그래서 조모님 말씀이 비록 망명길을 떠나기는 했으나 가족이 그리울 것이며 그날그날이 적적할 테니 저의 어머님과 어린애들만이라도 보내는 것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시면서 장녀로 태어나 조모님의 지극한 귀여움을 받아오던 저까지 보내면 쓸쓸하셔서 견딜 수 없다고 저만은 조모님께 남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조모님의 말씀대로 어머니는 어린 동생을 데리고 길을 떠났습니다. 딱딱한 사회적 환경과 딱딱한 집안 분위기에서 자란 어머니는 이때 처음으로 기차를 타시게 되었고 처음으로 얼굴을 가리고 다니던 장옷을 벗고 구두를 신었습니다. 이와 같이 여장(旅裝)을 꾸미시고 집을 떠나 기차가 장춘(長春·당시 新京)에 이르렀을 때 정거장에는 총을 메고 칼을 찬 헌병이나 경찰을 비롯하여 유달리 일반 사람이 흥성대고 있었답니다.

그래서 처음 길 떠난 어머니도 의아스럽게 생각하였지만 주위 사람들도 저마다 의아스럽게 보고 있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이등박문(伊謄搏文)의 시체를 실은 기차가 마주 서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이와 같은 중대한 사건이 일어난 줄도 모르고 하얼빈에 도착하여 선친이 연락하신 대로 그곳 김성백(金聖佰)씨 집을 찾아갔습니다. 한데 김성백씨를 비롯하여 집안사람들이 조금도 반가워하는 기색이 없을뿐더러 거의 무표정하게 아무런 말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아는 이라고는 한 분도 없는 하얼빈이라 어머니는 그래도 그 집에 들어갔습니다.

그때 어머니는 그곳에 선친하고 함께 계시던 모씨가 들어오더니 선친께서 이등박문을 죽였다는 소식을 전함으로서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더구나 그분 말씀이 곧 일본 경찰이 잡으러 올 텐데 절대로 안중근의 아내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고 주의를 주셨습니다. 그분 말대로 얼마 후 말소리 요란스럽게 일본 경찰이 와서는 어머니와 어린것을 잡아갔습니다.

어머니로서는 객지에 나선 것도 이것이 처음이요 경찰서에 가보기도 처음이었습니다. 일본 경찰은 선친과 ×××씨의 사진을 내보이면서 잘 알지 않느냐 하고 묻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순간 어머니는 선친의 사진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하면서 한쪽에 밀어내고 모씨는 오빠 되는 분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어머니가 이처럼 고집해도 이미 알아낸 일본 경찰은 "안중근의 아내인 줄 알고 있는데 왜 거짓말을 하는 거야" 하면서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가 끝내 부인하자 그들은 어머니와 어린 것을 유치장에 가두었습니다.

평소 어떻게 생겼는지 생각조차 해본 일이 없는 어두컴컴한 유치장에서 어머니는 어린 동생보고 울라고 시켰습니다. 아마 그렇게 하면 시끄러워서라도 곧 내보내리라 믿었는지 모르지요. 그것은 어쨌든 어린 동생이 자꾸 울기만 하자 일본 경찰은 나오라고 하면서 다시 조사를 계속하는데 그때 어머니는 어린 동생보고 이젠 울지 말라고 하니 "엄마, 아까는 울라고 하더니 왜 이젠 울지 말라고 해요" 이렇게 말하였고 이것을 들은 일본 경찰은 또다시 욕설을 퍼부었답니다. 결국 어머니는 3일 동안 유치장 생활을 하시다가 나왔습니다. 어머니의 외로웠을 심정은 누구든 이해할 수 있는 일이지요. 그 후 선친이 의거하신 소식이 널리 알려지자 이곳저곳에 흩어졌던 여러분들이 하얼빈에 모이기 시작했고 그분들의 주선으로 선친이 마련하신 버그라니스에서 고독한 살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李王의 밀사라고 모계(謀計)하는 일본 경찰

한편 일본 경찰은 진남포 저희 집을 수색하고 서울에서 공부하시는 숙부도 조사하고 야단이었지요. 일이 이렇게 되니 저의 집안사람들이 국내에서 마음 편히 살수는 없는지라 조모님, 숙부님 모두 조국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낮에는 여관에 묵고 밤이면 걸어서 함경도-만주로 해서 노령인 버그라니스에 이르렀고 그곳에서 다시 동청철도(東淸鐵道) 연변에 있는 목릉에 집을 옮겼습니다. 그 후 한 사람 두 사람 숙부님의 가족도 한곳에 모이게 되었고 그리하여 그곳에서 우리 집안사람들이 살게 되었는데 그곳을 지나오고 지나가는 혁명가 분들은 꼭 들러서 위로해주곤 했습니다.

한편 선친의 의거에 대해서 말하면 일찍이 의용군(義勇軍)을 조직하고 두만강에서 일본 사람과 접전(接戰)하시던 선친은 다시 해삼위(海蔘威·블라디보스토크)에서 동지들과 함께 의거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이등박문이 온다는 소식을 듣자 구체적으로 준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동지의 한 분인 우덕순(禹德順)씨는 본래 은방을 한 경험이 있는지라 총알도 몸에 박히면 한층 괴로움을 당하도록 모가 나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하얼빈까지의 지리를 따져 우덕순씨, 유동하(柳東夏)씨 그리고 선친 세 분이 세 곳에 대기하고 있었지요. 그러나 우덕순씨도 그와 같은 의거의 기회를 만나지 못했고 유동하씨도 그러했습니다. 그리하여 마지막 기회인 하얼빈에서 선친이 이등을 죽였지요.

선친은 이등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그와 같이 동지들과 계획을 세운 다음 소련에서 자라 소련말 중국말에 능통한 유동하씨와 함께 하얼빈에 도착해서는 위에서 말한 바 있는 김성백씨 집에 투숙하였습니다. 그리하여 20일 가까이 대기하고 계시다가 마침 1026! 그날이 왔습니다. 이등을 맞이하기 위해서 소련의 고관들도 많이 나왔고 경비도 준엄했습니다만 선친께서는 용의주도하게 이등 가까이까지 뚫고 들어가셨습니다. 그리하여 총을 뽑기 시작했는데 이에 앞서 해삼위에서 동지들과 약속하기를 이등에게는 총 세 발을 발사할 것, 그렇게 함으로서 절명(絶命)을 보장할 수 있으며 나머지 총탄도 주의해서 발사하되 소련 사람이 맞을 경우 국제적인 문제도 있으니 주위에 있는 일본 고관에게 발사하기로 했답니다.

그래서 선친께서 이등을 향해 일 발을 발사했으나 워낙 군악(軍樂)소리가 요란스러웠기 때문에 주위 사람들은 총소리를 듣지 못했고 이 발을 발사하자 그때 비로소 주위 사람들이 총소리를 알아듣기는 했으나 순간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랐답니다. 삼 발을 발사하자 이등은 땅에 쓰러지고 선친은 계속해서 주위에 있는 일본 고관들에게 난사(亂射)하여 팔에 맞은 놈, 머리가 깨지는 놈이 속출했답니다. 이제 뜻했던 바 일에 성공하신 선친은 권총을 내던지고는 바로 그 장소에서 "대한민국 만세"를 힘 있게 외쳤지요. 이리하여 일본 경찰은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는 선친을 마차에 실어 여순구(旅順口)에 이송하였습니다.

취조가 시작되었으나 선친께서 자기의 일거일동을 명백히 하는지라 고문할 필요도 없었고 길게 조사할 것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의 모계(謀計)를 꾸미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선친더러 목숨을 살려줄 테니 공판정에서 이왕(李王)의 명을 받고 이등을 죽였다고 진술할 것을 강요한 것입니다. 이때 선친께서는 "목숨을 아낄 내가 아니요, 그렇게 목숨을 아끼는 나라면 이런 중대한 일을 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천부당만부당한 말을 그만두고 빨리 사형해 달라고 했습니다. 선친의 태도가 그와 같이 확고하니 일본 경찰도 그와 같은 그들의 계획을 단념하지 않을 수 없었지요.

"
나라를 찾거든 고국에 묻어달라!"고 유언

그리고 일본 경찰도 선친께 대해서는 극진한 대우로서 음식은 요구하는 대로 제공했답니다. 의거하신 1026일에서 사형당하시던 다음 해 326일까지의 만 5개월 동안 추운 형무소 생활을 계속하신 선친의 고생이야 이루 말할 수 없었겠지요.

선친께서 사형언도를 받자 그때 서울에 와 있던 프랑스인 홍() 신부님은 선친의 마지막 길에 '연미사'를 올리고 유언을 듣기 위해서 여순구로 왔습니다. 그러나 정식으로 주교(主敎)의 승낙을 얻을 수 없는 일이어서 홍 신부님은 주교에게 비밀에 부치고 개인적으로 그것을 행했기 때문에 나중에 신부 자격을 잃게 되었지요. 즉 홍 신부님은 선친을 위해서 희생된 것인데 그 후 홍 신부님은 비록 신부의 자격은 잃었어도 고국에 가서 그대로 신부의 복장을 하시고 아침저녁으로 기도를 계속했답니다.

사형을 집행하기 전에 홍 신부님이 연미사를 올리고 마지막 유언을 들을 때에는 저의 숙부 두 분도 참석하였습니다. 선친의 유언은 간단했지요. "나라를 찾거든 나의 시체를 고국에 묻어달라"라는 한마디였습니다. 그들은 326일 오전 10시 정각에 정기장치로 사형을 집행했고 그때 숙부님 두 분이 일본 경찰에게 시체를 내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만 일본 경찰은 이를 거절하면서 숙부님을 밖으로 떠밀어냈습니다.

숙부님 두 분은 워낙 어리신 때라 눈물이 앞을 가로막아 그대로 여관에 돌아가 밤새 붙잡고 울기만 했답니다. 아침에 배달되는 신문을 보고 선친을 ××에 매장한 것을 알게 되었지요. 한편 선친의 의거가 있기 전에 제정 러시아에서는 교포 7만명을 노령으로부터 퇴거(退去)하도록 명령을 내린 바 있었습니다. 그러나 선친의 의거가 있자 한국에 이와 같이 훌륭한 분도 있느냐고 하면서 퇴거명령을 철회했을 뿐만 아니라 좋은 땅을 제공하기까지 했답니다. 또한 저희들을 감격하게 한 것은 해마다 선친이 돌아가신 327일이면 중국 사람을 비롯한 외국 사람들까지도 그 묘지를 찾아주었다는 사실입니다. 일본 사람들도 그날이면 분향을 했습니다. 얼마 전 향항(香港.홍콩)을 거쳐 중국에서 돌아 온 사람이 전하는바 지금도 그 묘지를 찾아주는 사람이 많다고 합니다.

8
·15 해방이 되면서 선친의 유언대로 고국에 모시려고 했습니다만 국제정세가 미료했던 관계로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셋째 숙부님은 일찍이 중국에서 세상을 떠나시고 둘째 숙부님은 "형님이 그렇게 유언하셨는데 어찌 나만이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느냐"라고 하시면서 고국에 돌아올 것을 거부하고 국제정세가 좋아지면 선친의 유언대로 선친을 모시고 고국에 돌아가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후 공산당이 정권을 잡게 되었고 숙부님은 상해와 대만을 오고가고 하시다가 중국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한편 제가 고국으로 돌아온 것은 해방된 다음해 1111일이었습니다. 이렇게 늦게 돌아오게 된 것은 물론 선친을 모셔야 한다는 데도 이유가 있었지만 다른 돌발사건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해방 당시 중국 상해에 우리 교포 몇 천명이 살고 있었는데 주인(남편)이 한교민단(韓僑民團) 단장으로서 일을 보아오다가 그해 124일 나쁜 사람들로부터 저격을 당해 세상을 떠나게 된 불행한 사실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주인의 유골을 모시고 돌아와야 하였기 때문에 그처럼 늦게 돌아오게 되었지요.

두 딸과 함께 고국에 돌아온 저는 당장 의지하고 찾아갈 곳이 없었습니다. 오직 있다면 제가 어릴 때 약 4년간 불란서 '까이리' 수녀님과 지낸 일이 있어 그 계통을 찾는 일이었습니다. 그리하여 명동 성모병원으로 갔더니 마침 정()의례시나 수녀님이 저를 알아보고 고맙게 대해주셨습니다. 수녀님은 추운 날씨라 제 손을 잡고 자기 입김을 불어주시면서 방으로 안내하였습니다. 그곳에 우선 짐을 맡겨두었지요. 상해에 있을 때 듣기에 입을 옷이며 가구가 귀하다고 하기에 중요한 것만 꾸려 가족 가방 다섯 개와 보통 짐 다섯 개로 만들어 수녀님 댁에 보관시킨 거지요.

조국을 찾은 첫날에 당한 지능적 사기!

한데 고국에 돌아오자 또다시 예기치 않았던 불행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상해를 떠날 때 저와 딸 둘로 여자들만이라 이웃사람의 소개로 어떤 청년과 같이 오게 되었습니다. 그 청년은 짐을 꾸릴 때에도 거들어준다고 하면서 어느 속에 무엇이 들고 어느 속에는 어떠한 것이 들어 있다는 것을 저만큼 알고 있었지요. 그리하여 함께 돌아와 성모병원까지도 같이 왔었고 저는 짐을 그곳에 맡겨두고는 아는 사람들을 찾기 위해서 밖으로 나왔지요.

다음 날 옷을 갈아입기 위해서 수녀님을 찾고 그 뜻을 말했더니 짐을 둔 방문을 열어주셨습니다. 한데 가방 다섯 개가 눈에 띄지 않기에 제 생각으로는 수녀님께서도 가방 다섯 개만은 중요한 것이 들었으리라 믿고 자기 방에다 따로 보관했으리라 믿었지요. 그래서 "수녀님, 가방은 방에다 보관하셨군요"라고 한마디 하자 순간 수녀님은 매우 당황한 표정이 되어 잠시 말이 없었습니다. 다음 순간 말씀하기를 전날 저와 그 청년이 나간 지 한 시간 후 청년은 다시 돌아와서 지금 호텔 방을 하나 얻고 당분간 그곳에 투숙하기로 되었기 때문에 제가 시켜서 왔다고 하면서 가방 다섯 개를 갖고 갔다는 것입니다.

실로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수중에 돈은 없고 이제 입을 옷까지 잃었으니 앞으로 어떻게 하나 생각해봐야 도리가 없었습니다. 그 청년은 처음부터 계획적으로 한 일이라 다시 찾을 수도 없으리라 단념하고 우리 세 모녀는 막연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지요. 한데 고마웠던 것은 이() 신부님이 신학교 기숙사 방 하나를 빌려주셨습니다. 비록 다다미방이기는 했으나 의지할 곳 없는 우리 모녀에는 사랑스러운 보금자리였지요.

이제 방은 얻었으나 먹을 것이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정의례시나 수녀님의 소개로 금강전구주식회사 사장인 박정근(朴定根)씨를 방문하고 그곳에서 생산되는 전구로 장사를 하기로 했습니다. 이와 같이 장사하기로 이야기는 됐습니다만 우선 전구를 100개 받아오려면 낡은 전구 100개를 가지고 가야 하는데 제 주위에서는 그것을 구할 도리가 없었지요.

이것 역시 교회 안에서 모아가지고 전구를 받아서 팔기 시작했습니다. 이집 저집, 이 가게 저 가게 찾아다녔지만 그리 잘 팔리는 장사도 못될뿐더러 아는 사람을 만날까봐 퍽 어색했습니다. 그러나 하루 이틀이 지나면서 다소 익숙해지기도 했고 밥 세끼를 먹을 만한 최소 한도의 수입은 있었습니다. 전구 하나를 팔면 20전이 이익으로 남았고 그리하여 하루 이삼백원 수입으로 세 식구는 그날그날을 보냈지요. 그러나 전구가 제대로 생산되면 100개건 200개건 받을 수 있었으나 생산이 제대로 되지 못할 때에는 최소한의 수입마저 끊어지는 날도 있었습니다. 더구나 전구를 잘못 받아 오면 몇 개씩 손해를 보게 되는지라 공장에서 하나하나 시험을 해가면서 100 200개를 받는 수고는 그때가 추운 겨울이라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최소한의 생활도 다시 풍파를 만나게 되었으니, 그것은 학교에서 기숙사를 수리하여 학교에서 써야 하는지라 저와 같이 방을 얻어 쓰고 있던 몇 사람은 부득이 방을 비워야 했습니다. 이와 같이 방은 꼭 비워드려야 했으나 우리 세 모녀는 당장에 갈 곳이 없었지요. 그래서 저는 며칠을 두고 생각했답니다. 누구를 찾아가면 꼭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하고 이 사람 저 사람을 머리 위에 그려보면서 하나하나 판단을 내렸지요.

그러던 끝에 선친을 잘 아시고 저와도 중국에서 학교 시절 가까이 지냈던 주모씨를 방문하고 사정 이야기를 했더니 그분이 그때 돈으로 적지 않게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선 안국동에 방 하나를 얻고 나머지 돈을 밑천으로 해서 우리 모녀의 살림을 확립하기로 했습니다. 그리하여 김모씨의 말이 된장, 간장을 받아서 군부에 납품하면 생활은 유지할 수 있다기에 그 사람 말대로 안국동에 '안생공사(安生公司)'라는 간판을 걸고 그 사람과 함께 장사를 시작했습니다.

또다시 사기당하는 온정의 거금


그것이 1947 7월이었습니다. 한데 그 김모씨는 장사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고국 사정에 어두운 저를 속이고 장사밑천으로 고스란히 사복을 채웠지요. 속았다는 괘씸한 생각은 물론이거니와 주씨로부터 얻은 그 적지 않은 돈을 이렇게 헛되게 없애버린 미안스러운 생각이 앞서 몹시 괴로웠습니다. 이제 또다시 생활이 곤란한 데다가 방세도 다시 내야 할 텐데 제 힘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었습니다.

또다시 어는 누구를 찾아 동정을 바랄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울히 지내는 어느 날 저의 사정을 잘 아는 신모씨가 퍽 동정하시면서 8군단에서 지은 후생주택 하나를 주선하여 주셨습니다. 그것이 지금 살고 있는 집이지요. 서울시에 가서 집 열쇠를 받아들고 우리 세 모녀는 너무도 기뻐서 손을 마주잡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제 좋든 나쁘든 집은 장만이 되고 남은 것은 먹고살아 나갈 생활방도였습니다.

그 당시 저는 인사를 드리기 위해서 민정장관(民政長官) 안재홍씨도 방문하고 경무부장 조병옥씨도 방문하였던바 조병옥씨 말씀이 모자 무두 경무부에 나와서 일을 하면 어떠냐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주위 사람들의 만류도 있고 해서 양자로 있는 사람을 경위(警衛)로 취직시켰습니다. 다만 이러니 저러니 해서 두 달인가 석 달 후에야 비로소 발령을 받았지요.

근무는 인천이라 추운 겨울날 북아현동 산 밑에서 새벽 일찍이 출근하여 밤늦게야 돌아오고 그렇게 지내다가 마침내는 폐가 나빠서 신음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그 수입으로 근근이 살아오기는 했으나 여순반란사건 때 전투대에 참가하여 부상을 입고는 병상에 눕게 되었지요. 이래서 생활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참혹했습니다. () 여사가 때때로 쌀을 갖다 주셨고 찬값도 이삼천원씩 주셨습니다.

그러다가 그때 신한공사(新韓公司) 총재로 계시던 C씨가 영등포에 있는 땅 천평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곳에서 돼지를 치고 집에서는 닭을 쳤습니다. 이것이 6.25 직전까지 돼지 서른다섯 마리, 닭 백 마리가량으로 늘었습니다. 6·25동란을 맞이하여 양자 되는 사람이 경찰이라 해서 영등포에 있는 돼지는 그들이 죄다 가져갔습니다.

집에 있던 닭은 파편을 맞아 죽기도하고 나머지는 생활이 궁할 때라 잡아먹기도 하고 이러하여 모두 없어졌지요. 6·25 때 공산당 사람들이 여러 차례 찾아오기는 했으나 양자는 병으로 누워 있고 집안 살림도 말씀이 아닌지라 별반 해롭게 굴지는 않았습니다. 더구나 9.28수복 때 제가 살고 있는 북아현동이 최전선이 되어 이웃집들은 적지 않게 피해를 입었습니다만 저희 집 장독대와 우물에는 파편 하나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1
·4후퇴 때 양자는 끝내 세상을 떠나고 저와 딸 둘은 대구에 내려가 저는 천주교에서 세운 효성여자대학에서 불문학을 가르쳤습니다. 대구시장께서 쌀 배급을 주셔서 그럭저럭 생활은 유지되었고 큰딸은 육군중령으로 있는 지금의 사위와 결혼을 하였지요. 제가 효성대학에 나가다가 하루는 얼음판에서 넘어져 절골을 당하고 그때 혈압이 230으로 고혈압에 몹시 신음한 바 있었는데 지금도 그 병세 때문에 적지 않은 괴로움에 잠겨 있습니다.

이렇게 모진 고생을 하면서도 저는 늘 선친의 교훈을 잊지 않습니다. 고생하고는 모진 고생이기도 하지만 선친에 비한다면 이것이 무슨 고생이 될까 자탄하면서 지내왔습니다. 서울로 돌아올 때에는 그곳 학생들이 모아둔 고마운 전별금도 있었고 그리하여 다시 옛집으로 들어왔습니다.

안중근 의사를 역이용하는 사람들?

생활은 사위 몫으로 배급 나오는 쌀로 그럭저럭 유지해왔고 해가고 있습니다. 둘째딸은 리더스다이제스트 사에 근무하여 집안 살림도 조금씩 도우면서 저금을 계속해오다가 이제 시집갈 나이가 되었으나 좀 더 공부를 해야 한다고 지난 120로스앤젤레스로 떠났습니다.

서울에 돌아왔어도 생활 때문에 네다섯 명의 개인교수도 했으나 혈압이 자꾸 높아가고 그래서 그것도 그만두었지요. 다만 집주위에 꽃을 재배하는 것을 일삼고 그날그날을 보내왔습니다. 앞으로 저의 오직 하나 큰 희망은 선친의 유언대로 선친을 고국으로 모셔오는 일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이와 같은 국제정세에서는 당분간 어려우리라 생각되어 퍽 마음이 괴롭습니다.

또한 제가 불쾌하게 생각하는 것은 선친의 이름을 이용하는 사람들입니다. "나는 안중근 의사의 어떻게 되는 사람이요" 하면서 이곳저곳을 찾아다니며 불미한 일을 하고 있다는 풍문을 허다히 듣고 있습니다. 풍문만이 아리나 실제 만나본 일도 있습니다.

지난번에 '안희자'라는 여성이 저를 찾아와서는 언니라고 하면서 자기도 선친의 따님이라고 해요. 그래 세상에 이런 일이 어디 있습니까! 저는 하도 어처구니가 없어서 딸은 저 혼자뿐이라고 간단히 대답해 주었지요. 그랬더니 그 사람 말이 자기는 어릴 때부터 홀로 객지에 나왔기 때문에 기억이 확실치는 않으나 그렇다면 질녀가 되는지도 모른다고 엉뚱한 말을 하지 않아요. 그래 질녀가 있기는 해도 이미 세상 사람들이 아시는 바와 같이 안미생, 안련생 두 사람밖에 없어요.

또 자기가 일본에서 자랐다고 하기에 그럼 일본 어디서 자랐느냐고 물었더니 기억할 수 없다고 대답해요. 우리 집안사람은 일본에 갈 리도 없고 갈 수도 없다는 것은 누구든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에요. 저는 길게 말할 흥미조차 없어 저를 찾아온 목적이 뭐냐고 했더니 태연스럽게도 다음과 같이 말하는 거예요. 지금 땅도 얻게 되고 그리하여 학교를 짓고 저를 교장으로 모시겠는데 다만 필요한 것은 자기가 선친의 따님 혹은 질녀가 된다는 것을 증명해달라고 하지 않아요. 세상이 혼란하기로서니 이런 일이야 어찌 꾸며질 수 있겠습니까. 저는 다시는 찾아오지도 말라고 하면서 돌려보냈지요.

평소 하고 싶은 말도 많았고 느낀 바도 않았던지라 두서없는 말 길게 늘어놓은 것 같습니다. 저는 하루바삐 선친을 고국에 모실 수 있는 그날이 돌아오기를 빌면서 끝을 맺습니다.





일본 요코하마에는 일본과 교전을 벌이다 자폭한 북한 무장 공작선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오래된 사건도 아닌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런 사건이 있었는지 조차도 기억하지 못하는 게 현실입니다.

그렇다 보니 일본이 북한에 대해서 가지는 공포심 또는 혐오감의 본질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측면이  생기게 됩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일본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던 북한 공작선과 일본의 교전 사건을 소개합니다. 


전투의 시작
2001
12월 22일 일본 연안경비정은 한 수상한 배를 추적하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밀항이나 밀수 선박으로 알고 추적했지만 결국은 정선을 거부하고 총격전을 벌이게 됩니다. 단순 총격전이 아니고 RPG 로켓 공격까지 가하면서 저항 아닌 전투를 벌이던 공작선은 결국 도주가 불가능 하다고 판단되자 결국 자폭하게 됩니다.

일본 순시선과 간첩선

북한 간첩선을 추적하는 일본 순시선


사실 북한 공작원들 사이에서 남한 침투는 어려운 일로 성공을 큰 자부심으로 삼지만 일본 침투는 아주 쉬어서 그 성과를 그렇게 크게 취급하지 않는다고 하기도합니다. 그토록 쉽다는 일본에 대한 북한의 침투공작이 들통난 사례가 바로 저 전시된 공작선 사건입니다.


사실 김정남의 일본 밀입국 사건에서도 드러났지만 일본 밀입국에는 대단한 공작이 필요한 일도 아니긴 합니다. 다만 특별한 임무 그러니까 민간인 납치나 무기 반입 반출 또는 마약거래 등에는 공작선의 침투가 필수적이겠지요.

 

아래 동영상은 사건 당시의 실제 교전 장면입니다. 처음 추적 시점에는 단순한 밀수선으로 알고 추적을 시작하지만 필사적인 도주와 북한 간첩선의 선제 공격으로 상황은 전투로 변질되게 됩니다.

동영상의 마지막 장면 도주를 포기한 간첩선이 자침하는 것으로 끝나게 됩니다. 만화가 아니고 현실에서 자폭으로 끝을 내는 모습은 북한 정권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일본의 전시물로의 전락
이 배는 이듬해 2002년에 인양되고 지금은 요코하마 전시관에 전시되게 됩니다. 이 사건은 전쟁의 위협에 만성이 우리와는 다른 일본인에게 충격으로 다가오게 됩니다.

  

 
영상 말미에 보면 일본은 이 점이 정당방위였다는 사실을 꼭 강조하고 있습니다. 침략의 업보이기도 하고 자위대라는 이름 그대로이긴 하지만 사족이라는 느낌은 지울 수 없습니다.
다음은 현제 전시 중인 간첩선의 모습과 인양직후의 사진들입니다.

교전 상황

교전 당시의 열상화면


간략한 사건 개요를 보여주는 안내문 입니다. 우리도 그렇지만 이런 류의 사건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있는 관광자원입니다.

전시관의 모습입니다. 일본은 간첩선 하나를 위해서 저런 집까지 지어 주는 정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아마 저 배가 북한에 정박해 있는다면 저런 호사를 누리지는 못했을 겁니다. 우리 동해안에는 잠수함 조차도 저런 집이 없는데 말입니다.

아마 실제 간첩선의 유지비보다도 저 전시관의 유지비용이 훨씬 클 거 같습니다. 일본까지 와서 비싼 주택도 마련하고 월세 한푼 안내고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한 상팔자를 사는 저 간첩선에서 참 아이러니를 느낍니다.

지울 수 없는 의문
물론 차가운 바닷 물속으로 사라진 북한 공작원들의 죽음 앞에서는 무엇을 위해서 그들이 자폭을 했는가 하는 의문을 지울 수 없습니다. 자신들의 마약판매와 자폭이 조국과 민족을 사랑하는 애국이요 애족이라고 생각했을 까요? 아니면 기계적인 훈련의 결과였을 까요?

요코하마 전시관

북한 공작선의 마이 하우스


공작선 전시관 내부

안내와 관람을 위한 시설


일본인들에게는 저 총탄 자국 하나 하나가 큰 충격으로 느껴질 겁니다.
총탄 자국

총알 구멍이 슝슝


사건 개요도


자폭 했기 때문에 상부 구조물은 온전하지가 않습니다. 잠수함 사건 때도 그렇지만 말로만 듣던 자폭이나 자결을 감행하는 모습을 보면 뭐라고 말을 해야 될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간첩선 상부

간첩선의 선수 모습


김일성 배지

수령 아바이와 최후를 김일성 희장

아래 사진은 자폭용 타이머입니다. 저런 장치를 사전에 준비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이미 자폭이 명령되어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만화도 아니고 실제라니...

저 전시장을 찾는 외국인들 눈에는 저 자폭 장치가 사건보다도 더 충격으로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자폭용 타이머 만화냐? 좌측 상단 글씨



간첩선의 주무장은 zpu-2 기관포였으며 이후 사진에도 나오지만 각종 로켓 발사관등의 중화기로 무장하고 있었다. 저런 무장을 한 배를 타국의 영해로 침투시키는 북한의 무감각함에는 참 어이가 없습니다.

zpu-2

주무장인 14.5mm 기관포 zpu-2


치열한 교전상황을 말해주는 총탄작국이 선명한데 최근의 서해 교전에서도 그랬지만 소화기 공격만으로는 배를 침물 시킬 수 없다는 것을 다시 보여준다.

총탄자국

총알로 벌집이 됐다


배에 실려있던 각종 무기들의 사진입니다. 그 유명한 7호 발사관부터 대공용 미사일까지 정말 중무장을 하고 있었습니다.

간첩선 무장

일본인 입장에서는 정말 무서울 거다.

무반동총

이 무기들이 정확하게 사용됐다면 순시선도 큰 피해를 봤을 것이다.

각종 소총

각종 소화기도 잔뜩


여기서는 생략했지만 이 선박은 모선으로 내부에는 고속 침투용 자선을 싫고 있었으며 우리가 이전 간첩사건에서 잘 알고 있는 수중 침투용 잠수정도 실려 있었습니다.

간천섭 구조

침투용 잠수정도 있었다.


자폭까지 했지만 숨길 수 없는 진실
마지막으로 아래 나와있는 전화기로 인해서 저 선박의 실체가 들어납니다. 휴대전화기의 통화기록으로 한국인 유모씨(57)가 저 간첩선에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밝혀내는데 이 사람은 이미 일본 야쿠자로부터 도난 차량들을 구입한 혐의로 일본 경찰에 체포된 인물로 은행계좌에는 야쿠자 자금 수백만엔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 간첩선은 결국 일본에서 마약거래를 했던 것으로 의심받고 있는데 저 유모씨는 한국, 일본, 북한을 오갔던 것으로 보아서 단순한 마약 밀수꾼이 아니라 북한의 간첩으로 보입니다. (요즘 세상에 간첩이라고 하면 비 웃는 사람이 많지만 우리 주변에는 아직도 걸어다니는 돈다발들이 많이 있는게 현실입니다.)

  1. 자유아시아방송 2009.11.24 02:01 신고

    잘 읽었습니다. :) 이 글 링크를 자유아시아방송 Delicious account에 추가합니다.



최근의 유입 키워드 중에 황당한 유입이 바로 제목처럼 [간첩이 되는길]이었다. 아니 스파이도 아니고 간첩이 되고 싶다니 무슨 생각으로 검색을 한걸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유입 키워드를 살펴보면 종종 직접 답을 해주고 싶은 내용을 검색하는 경우도 있지만 저처럼 황당한 검색을 하는 사람들도 종종 볼 수 있다.

간첩이라는 말은 그쪽 업계(검은 안경에 검은 양복)사람은 사용하지 않는 용어다. 일상에서는 적국의 정보요원이라는 뜻으로만 통용된다. 좋은 뜻으로는 사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저 키워드만 보면 적국의 정보요원이 되어서 우리 기밀을 팔아 넘기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뜻이 되기 때문에 황당히기 이를데 없다고 하겠다. 결국 북한의 정보원이 되겠다는 뜻인데...

설마 돈을 많이 벌고 싶어서?
흔히 간첩 사건이 나면 보이는 착각 중에 하나가 북한 간첩이 되면 공작금 조로 돈을 많이 준다고 착각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간혹 상당한 거액을 주는 경우도 있었지만 냉전시대 미국이나 소련조차도 그렇게 넉넉한 공작금을 지급하지는 않았다. 심지어는 껌값이 경우도 종종 있었다.

새련되고 멋진 간첩생활을 기대한다면 그건 착각이다. 영화속에서나 첨단 장비와 멋진 모습의 간첩이 존재할 뿐이다. 실상은 예상을 깨는 허접함과 허술함으로 무장한 간첩이 대부분이다. 심지어는 적국의 노숙자가 되어서 임무를 수행하라고 할지도 모른다.

긴첩질의 현실이 이렇게 폼나지도 돈을 많이 주지도 않다보니까 저 서두의 기사처럼 직원(?)모집에는 각종 협박과 음모가 동원되게 된다. 저런 미인계와 협박은 아주 표준적인데 특히 요즘은 중국이 많이 사용하는거 같다.

수년전에는 저런 종류의 협박을 당한 일본 외교관(소속이야 외교관이지만)이 자살한 사건도 있었다.

자 간첩이 되는 길을 알려준다
저 유입키워드가 진심이라고 생각하고 북한의 간첩이 되는 길을 한번 생각해보자. 일단은 자신이 쓸모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최근의 북한은 단순한 월북은 받지 않고 돌려보낼 정도로 매정해졌다. 아마 자진 월북해올 정도의 지적 수준(지상 낙원이라는 말은 그들도 안 믿는 말이다)이라면 북한에서도 필요없다고 판단하는거 같다.

그렇다면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어야만 채용해준다는 말인데.... 북한이 특히 좋아하는 부류는 정치 조직과 연계된 사람들을 특히 좋아한다. 현실적으로 그외의 부류가 북한과의 어떤 관계를 가질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기도하고 그런 사람 만이 정치 사상 때문에 북한정권에 충성한다는 믿음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간첩선

도주 중인 실제 간첩선 욺직이는 로또..


우리측 정보요원이 되는 길을 찾는 것을 잘못 검색한거라면 공부열심히해서 국가정보원 공체에 응시하면 되겠다. 물론 특채도 있다. 국가정보원 홈페이지에서 직원 모집 공고가 수시로 나온다.

취업전선의 대학생이라면 이미 알고 있겠지만 공무원 중에서도 고급직장이라서 입사는 정말 어렵다. 업무는 영화나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일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미리 답해주는 센스
저 기사처럼 적국의 간첩( 정보제공자 )이 되라는 협박을 당한다면 어떻게 처신하는게 현명한 방법일까? 저런 미인계에 위한 협박 또는 공금횡령이나 업무상의 실수 ((?)등으로 협박을 당하게 된다면 이때는 자국 방첩기관과 접촉하면 간단하다.

얼마전에는 독일 정보기관이 이런 문제로 구설수에 올랐는데 해외에서 미성년자와 성매매를 자행한 극회의원들을 감시했던 사실이 들통났기 때문이다. 독일에서도 치명적인 범법행의지만 그 점보다는 협박의 재료가 되어서 적국의 간첩이 되는 사실을 막고자하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자신의 비밀을 감시당하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 독일 정보기관은 한바탕 곤역을 치뤘던 것이다.

자수하여 광명찾는 길은 당연히 위험이 따르지만 이미 자신이 자초한 잘못이라면 최선의 방법은 저 방법뿐이다. 방첩기관은 여러분의 잘못에는 관심이 없다. 간첩으로의 활용과 효용에만 관심이 있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 국가정보원 소비자 상담실 전화번호는 111번이다.

그리고 사실 일상 생활에서조차도 혼자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처한다면 솔직하게 정면대결하는 쪽이 일을 정리할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인 경우가 많다.

1부에 이어서...

스포일러가 가득 들어있는 글입니다. 개봉한지 오래된 영화임으로 별 상관은 없다고 생각하지만요

영화는 실제 인물과 사건을 왜곡했지만 정말 잘 만들어졌다. 따라서 그냥 실제 인물 없이 허구의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영화를 보는 편이 마음은 편하다. 더욱이 원작 소설이 탄생한 배경을 또 알고 난다면 말이다.

탕웨이색계의 왕자즈는 남자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영화에 집중해보자

왜 이선생은 자신의 목숨을 살려준 왕자즈를 구해주지 않았나?

실제 역사적 사건에서는 영화 같은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는 개미 눈곱만큼도 찾을 길 없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는 왕자즈의 사랑으로 목숨을 구한 이선생이 왜 왕자즈의 처형을 지시했을까? 자기가 책임자이니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사랑하는 애인 목숨도 구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영화 속의 대사를 보면 그 문제에 대한 이선생의 위험한 입장이 나온다.

 

색계 호텔3년후 그들의 재회는 충격적이다.

바로 왜 그들에 대해서 알면서 진작 자신에게 보고 하지 않았느냐는 이선생의 힐난에 그의 부하가 한 말 “두 분의 관계에 확신이 서질 않아서….... 물론…... 지금은 확실해 졌고”라고 말하는 부분이 답이다.

 

부하 직원이 왕자즈 일당에 대해서 보고하면서 이선생 자신도 감시대상이었으며 왕자즈와의 관계를 의심받고 있었다는 것을 이야기한 것이다.

 

마지막에 이선생이 부하직원이 주는 반지를 보면서 하는 “내 꺼 아니야!란 말은 그 시점에서는 이미 왕자즈에게 준 선물이라는 이야기를 하는 줄 알았지만 마지막 처형 집행을 보면서 그 말은 자신의 안전을 위해서 그녀와의 관계를 완전하게 부정하는 말이라고 해석하게 되었다.

 

왕자즈를 구명하는 행동은 바로 이선생 자신이 함께 죽자는 의미일 뿐이었다는 것이다. 영화에서 이선생은 왕자즈를 구명할 수 없는 입장이었고 더 이상 고문당하지 않도록 심문을 종료하고 빠른 처형을 집행하는 방법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사랑을 왕자즈에게 보답한 것이다.

 

양조위와 탕웨이시선 묘하다.

이선생은 정말 친일파이며 매국노인가?

적어도 영화 속에서는 이선생의 진정한 정체에 대해서 약간의 의문을 남겨 놓는다. 바로 미군이 제공한 무기를 가로챘지만 일본군은 아직도 그 무기를 찾고 있다는 짧은 이야기가 그 부분이다. 일본의 괴뢰정부라면 당연히 그 무기를 일본에게 줬어야 했을 텐데 말이다.

 

이 부분은 이안감독이 기존에 중경정부와 남경정부에 대한 보편적인 정치판단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고도 보인다.

 

색계 중문 포스터정말 색계라는 주제를 보여주는 포스터

실제 주인공의 이력을 참고해서 마음대로 상상력을 발휘해볼 수 도 있다.

개인적인 망상으로는 이선생은 미국이 제공한 무기를 중경정부 손에 들어가기 전에 빼돌려서는 공산당에 넘겨줬다고 생각해본다.

 

그가 이중스파이로 국민당 중경정부에 잠입하고 다시 남경정부로 잠입한 공산당의 애국적 스파이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실제 인물은 중경정부와 공산당의 스파이를 모두 체포 처형했지만 영화에서는 중경정부의 전쟁만을 이야기한다..

 

아마 이런 장치는 감독이 중국 본토 개봉을 위한 작은 아부였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편집과정에서 아부가 심하다는 판단으로 두리뭉실하게 전달 됐을 수도 있다고 무책임하게 추측해본다. (원작 소설 – A4 13장짜리 소설을 30년 동안 써서 1980년에 탈고했다고 한다. –은 왠지 문장이 끊긴다고 한다. 아마 원작자는 남편에게서 뭔가 더 많은 이야기를 들었겠지만 그 내용을 담는데 정치적 부담을 느낀 건 아닌가 하고 생각해본다. 우리가 현대사를 다룰 때 느끼는 압박처럼 말이다.)

 

중국 본토인 시각으로 색계를 보면 영화 초반에 흐르는 애국주의적 맹세에 꽤나 공감하는 듯 하다. 그래서 영화의 결말(애국이 전혀 아님으로... 아마 영화 속의 연극 마지막처럼 영화의 처형 장면에서도 중국만세라도 외치면서 끝나길 기대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영화는 상을 못 받았겠지만 말이다.)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겪게 된다고 한다.

 

트로피와 이안감독정치 줄타기 실패

이안감독의 약간은 갈팡질팡하는 듯 한 정치적 태도가 그래서 심정적으로 이해된다. 하지만 이안감독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색계는 매국노 영화로 중국에서는 판정 났다. 이안감독은 중국 공산당에게 망설이지 말고 좀더 아부했어야 했을 거 같다. ^^

아직도 항일전쟁시절의 군벌들과 정치적 이해득실이 시퍼렀게 눈뜨고 있는 중국이니 말이다. 중국 인민들이 그들(군벌과 공산당)을 좀더 객관적으로 보게 되는 시절은 언제쯤 올지 모르겠다.

 

중국 정부가

대만 감독이 연출한 영화 '색계(色戒)'가 심각한 정치 문화적 문제를 야기한 때문이라고 간략히 설명하면서, 중국내 전 매체에서 탕웨이와 '색계'에 대한 모든 언급을 금하라는 처분이 내려온 상태라고 전했다.

 

중국 언론들은 또 '색계'가 중국의 독립운동 가치를 폄하했으며, 당시 장제스, 마오쩌둥과 대립하며 상하이 친일정부 수립을 추진했던 왕징웨이(汪精衛) 정부를 찬양했다고 덧붙였다.

 

중국 언론들은 이 영화가 목숨을 걸고 독립운동에 나섰던 1940년대 전후 중국 청년들의 애국활동을 왜곡했다는 비난과 함께, 중국의 기강을 흔드는 대만의 정치적 야욕이 영화 속에 일부 반영됐다는 혐의도 제기하고 있다.



  1. 어멍 2009.04.23 11:40 신고

    아부의 제 1 원칙
    '하려면 화끈하게 하라'

    하지만 영화의 전체적인 톤이 섣불리 화끈하면 오히려 코미디가 되었거나 오히려 불경이나 괘심죄에 걸렸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드네요.

    개인적으로는 아직 중국에 남아있는 군벌의 영향력, 흔적이 궁굼하군요.

    • 어멍 2009.04.23 17:38 신고

      그렇군요. 어디든지 지방유지, 실력자, 토호세력이 있지만 생각보다 분권화, 토착화, 파편화되었다고 봐야하겠네요. 생각보단 군이 강한 것 같기도 하구요(당에 비해 상대적으로)

    • 어멍 2009.04.24 16:50 신고

      황제와 제후라...봉건제네요?
      1당 독재 공산주의식 봉건제라고 해야 하나요?(하긴 이젠 전통적인 공산주의라고 말하기도 뭣하지만...)

  2. 김쫑 2011.09.19 12:22 신고

    제가 찾던 분석글이 바로 이 블로그에 있었군요!!! 죄다 정사씬에만 초점을 맞추고 사랑이 어쩌니 저쩌니 정도에서 그치는데 과연 그정도만으로 대작이라는 평가를 받았을까에 대해 의심을 계속 품고 있었습니다. 올려주신 글 잘봤습니다~! 덕분에 영화를 이해하는 데에 큰 도움을 받았네요^^

  3. 2014.07.06 19:41

    비밀댓글입니다

  4. 유쾌상쾌 2014.11.10 00:17 신고

    부하 직원 장면을 이해 못 하고 봤었는데..-.-"
    이제 이해가 되네요 잘 봤습니다

 

뒤 늦게 색계(色戒)를 봤다. 개봉(2007)한지 벌써 수년이 흘러버린 영화였지만 계속 미뤄 오다가 이제서야 영화를 보게 됐다. 아무래도 에로가 강조된 홍보덕분에 영화에 대한 흥미가 떨어졌던 게 원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영화 홍보전문가에게 해주고 싶은 말 하나 작품성을 강조하면 장사가 안되고 에로를 강조하면 장사가 된다는 생각은 버리자 인터넷에 에로는 질리도록 넘친다 그것 때문에 극장 갈 사람 이제는 없고....

 

영화를 보고 나서 이안감독에 대한 부러움 섞인 욕지기가 나올 정도로 영화는 잘 만들어졌다. 난 남의 뛰어난 창조적 능력을 보면 질투심이 용솟음 친다. 실상은 쌀리에르도 못되면서...

 

그래서 이안감독에 대한 찬사의 의미로 처음으로 영화 이야기를 포스팅 해보려고 했지만 가뜩이나 블로그의 포스팅 주제가 난잡한데 되지도 않는 영화 평론까지 하면 난잡함이 지나칠 거라는 걱정에 주제를 색계(色界가 아니고 정식 제목은 色, 戒라는 사실) 속의 스파이 전에 한정하기로 했다.

물론 영화의 주 내용이야 주인공들의 위험하고 애절한 사랑 이야기이고 첩보전 이야기는 그런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위한 무대 배경에 지나지 않지만 말이다.

 

먼저 이 영화의 실제 주인공들 -영화 속의 인물이 아니고 역사 속의 인물들-을 살펴보자. 개인적으로는 영화를 보면서 극 중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이 실제 인물일 거라고 짐작했는데 역시 실제로 존재했던 인물들의 이야기였다.

 

색계 영화속의 실존 인물

여주인공

탕웨이 좡자즈와 정핑루

여주인공은 실제 인물을 모사했다

영화 속의 여주인공 왕자즈(탕웨이 분)는 정핑루(鄭蘋如 1918- 1940)라는 인물이 실제 모델이라고 한다. 30년대 상하이 사교계의 꽃이라고 불릴 정도의 미모와 인기를 누렸다고 한다. 실제로 장개석(蔣介石: 1887-1975)의 중경정부 스파이 활동을 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상하이의 교수출신 검사이며 어머니는 일본인이라고 한다.

 

그녀는 상하이 정법학원(법과대)에 재학 중 良友(좋은 벗(?))’라는 잡지의 표지모델이 되면서 상하이 사교계의 주목을 받게 됐다고 한다. 이런 그녀에게 중경정부 첩보조직(조사통계실)의 천바오화가 접근해 항일운동에 동참할 것을 설득했다고 한다. 처음에 그녀는 일본인을 상대로 정보를 수집하는 일을 하게 된다. 일본인 혼혈 여성에게 중국에 애국하라는 요구를 하다니 싶지만 일반적으로 흔한 포섭대상이다.
일본인 입장에서도 혼혈이라는 이유로 쉽게 마음을 열고 그녀를 대했을 것이다.

 

남자주인공

이선생 이목성의 실제 모습

양조위는 너무 미남이다. 고문할거 같은 딩모춘의 모습.

영화 속의 남자주인공 이묵성(黙成)( 량차오웨이 분)은 영화 서두에서 언급되는 괴뢰 왕정웨이(汪精衛)정권의 첩보기관 ‘76의 책임자 딩모춘( 1901~1947)이다. (영화에서 괴뢰라고 칭해서 그렇지 엄밀하게는 국민당 남경 정부이고 정치적 해석에 따른 평가는 승자의 몫이기 때문에 남경정부는 괴뢰가 됐다. 이안 감독은 이부분에 대한 정치적 해석을 했고 그게 중국정부의 심기를 크게 건드리고 만다.)

 

76호의 의미는 남경정부의 방첩본부가 상하이 제스필드로 76호에 위치했기 때문에 그렇게 불렸다. 달리 말해서 본부의 주소가 76호이기에 76호라고 불린 것이다.

 

그는 중국 공산당에 입당했다가 다시 중경정부 조사통계실에서 근무를 하고 다시 남경정부에서 일을 하게 된 특이한 인물이다. 국민당과 공산당의 관계를 생각해보면 그의 행적은 변절이라고 말하기 충분하다.

 

이런 이력을 가지고 있는 그가 국민당과 공산당의 첩보조직에 크나큰 위협이 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실제로 그는 도살자’, ‘색정광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영화 속에서야 그래도 매력적인 인물로 그려졌지만 사진을 보면 저 별명 쪽에 가까운 얼굴이다.

 

그들 남녀의 관계

딩모춘의 방첩활동에 위협을 느낀 중경정부 조사통계실은 정핑루에게 딩모춘에게 접근하라는 지령을 내리고 1939년에는 그에 대한 암살명령을 내린다. 영화에서처럼 그녀의 집 앞까지 오지만 다른 일을 이유로 집안에 들어오지 않음으로써 실패로 끝난다.

 

그 해 1221크리스마스 선물로 모피 코트를 사주기로 하고 그녀와 딩모춘이 모피 가게에 들어섰지만 뒤따라 들어오는 남자에게서 수상한 느낌을 받은 딩모춘은 영화에서처럼 바로 뛰어 달아난다.

 

딩모춘은 다시 나이트 클럽에서 만남을 약속하지만 그 약속은 이미 상황을 파악한 딩모춘의 함정이었다. 정핑루는 약속장소에서 76호의 행동대원들에게 체포되고 만다.

 

최후의 모습

정핑루 1940 2월 중순 22살의 나이로 상하이 교외의 벌판에서 총살을 당하고 만다. 딩모춘은 전후 일본 부역혐의로 체포되어 1947 7 46세의 나이로 난징 교도소에서 총살당한다.

 

색계 국내 포슽터

영화는 영화다 사랑하는 사이라니..

실제 그 이후

정핑루의 막내 여동생은 영화 개봉 후 자신의 언니는 영화 속의 인물과 전혀 다른 순수한 애국투사였다고 울분에 찬 성명을 발표했다고 한다. 실제로 정핑루는 처형직전까지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서 입을 다물었고 아버지는 이듬해 병사했고 그녀의 남동생은 전투기 조종사로 일본군과 싸우다 전사했다고 한다.

 

사실 실제 역사인물을 보면 영화 속의 인물들은 상당히 왜곡됐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미화되고 더욱이 사랑에 빠진 걸로 묘사하다니 남은 가족이 느꼈을 분노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된다. 마치 논개가 일본 적장과 사람에 빠져서 동반자살했다고 미화하는 모습을 보고 우리가 분개하는 것처럼 말이다.

2부에서 계속 됩니다.....



우리는 흔히 사랑의 유효기간이니 하는 말로 사랑이 과학적으로 어떤 건지 알려졌다는 사실을 은연중에 말하곤 한다. 과학의 발달은 사랑을 과학적으로 분석해내는 단계에 와있기 때문인데 막상 정리된 내용은  쉽사리 눈에 띄지 않는다. 본 포스팅에서는 지금까지 알려진 내용을 최대한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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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 사랑의 3단계
미국 럿거스대 헬렌 피셔 교수의 연구결에 따르면 남녀간의 사랑은 다음 3단계의 과정을 거쳐서 완성된다고한다.

                                 
   1. 갈망   -----------> 2.끌림   ------------> 3. 애착

일반적으로 인간 본성을 연구하는 내용에서 나오는 단어에는 너무 집착하지 말자 본성이 먼저이지 단어가 먼저가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은 있는 본성에 말을 만들었지만 그 말은 그 본성을 모두 담아내지 못하니까말이다.

즉 저 3단계 갈망, 끌림, 애착은 그저 최대한 그 상태를 표현해서 구분한 것 뿐이다. 즉 구분되는 어떤 심리 상태를 나타낸다는 것 정도만 알려주는 말이다. 핵심은 사랑이 3단계로 발전한다는 사실이다.

사랑의 뇌 구조사랑에 빠진 뇌의 모든 것


다음 내용을 읽어보면 좀더 명확해지는데 다 읽은 후에 위의 그림을 보면 각 호르몬의 생성 작용 역할을 한눈에 알아 볼 수 있다.

갈망(lust)
성적 충동과 욕망의 단계이다. 관련 호르몬은 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과 에스크로겐으로 이들 호르몬은 성호르몬으로 익히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이다. 모든 사랑관련 사건 사고의 시작이고 원흉이바로 이 호르몬이다. 간단하게 말해서 사랑의 방아쇠 되겠다.

화산처럼 폭발하는 성호르몬이 넘처나는 10대 사춘기라고.. 이성을 성호르몬이 압도하는 시절을 이렇게 표현하기도 하는데 바로 순간 순간 성적 갈망이 폭발하는 시절이다. 이런 반응은 자연스러운 상태이니 죄의식을 가질 필요는 없다. 그저 자기 자신의 상태를 이해하고 마음의 평화를 찾기 위해서 노력하면 그 뿐이다.

왜 10대에 하는 사랑이 그토록 뜨겁고 격한지를 알려주는 단초이기도하다. 나이를 먹고 성호르몬 수준이 안정화된다면 그토록 격정적인 사랑의 시절도 끝나는 것이다.

끌림(attraction)
갈망의 단계를 우리는 사랑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저 하룻밤 불장난 심하면 발정났다는 원색적인 말을 사용하기도 하는 격한 충동일 뿐이다. 그래서 갈망의 단계를 사랑이라고 말하는 사람을 우리는 흔히 이렇게 부른다.

짐승!

최소한 끌림의 요소가 포함되었을 때만 사랑이라는 아름다운 말이 성립된다고 우리는 생각한다. 이단계에서 연인들은 식욕을 잃고 잠도 못자고 앉으나 서나 당신생각♬~이라는 상태에 빠지게 된다. 어른이 되어서도 이런 경험이 없다면 참 무미건조한 삶이라고 단언하겠다.



이 단계에 작용하는 호르몬이 도파민, 노레피네프린(일명 아드레날린), 세로토닌이다.

이들 호르몬의 특징은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랑의 상태가 어떤건지 아주 명확하게 보여준다.

도파민은 쾌감을 느끼게 한다. 니코틴이나 코카인을 사용해서 쾌감을 느끼는 이유는 바로 도파민이 활성화되기 때문이다. 코카인 안먹어도 사랑하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뜻이다. 활홀한 꿈속같은 사랑의 느낌은 여기서 오는 것이다.

노레피네프린은 심장을 뛰게하고 땀이 나게 한다. 사랑하는 사람 손을 잡을 때 그에게 말을 걸 때 심장 뛰고 땀나고 하늘이 노래지기도하는 현상은 이 호르몬 탓이다. 만화적으로 기절하는 현상도 이 호르몬탓이다.

마지막 세로토닌 꽤나 다양한 기능이 있지만 어떤 사람은 간단하게 사람을 일시적으로 미치게 만든다고 말하기도한다. 사랑에 눈멀게 하고 물불 안가리고 맹목적으로 매달리고하는 것은 모두 이 호르몬 탓이다.

미시간대 로버트 프라이어 교수는 “사랑에 빠졌을 때 분비되는 세로토닌 등은 상대의 결점을 인식하지 못하게 해 사람을 눈멀게 만든다”며 “이때가 되면 뇌에서 화학물질이 마구 쏟아져 나오므로 주변에서 아무리 얘기해도 소용이 없다”고 말한다.

이 호르몬이 평상시에 부족하면 우울증 또는 강박신경증에 걸리게 되는데 노처녀 히스테리와 연관 지어도 재미있다. 그리고 이 끌림의 단계를 적절히 활용 못하면 이 짐슴만도 못한 놈! 소리를 듣게 된다.

사랑의 묘약사랑의 묘약 - 약은 약사에게 진료는 의사에게


애착(attachment)
사랑의 최종 단계는 어떤걸까요? 그건 결혼과 출산 즉 가족을 이루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결혼은 사회 제도로써의 결혼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좀더 원초적으로 부부가 아이를 낳고 키우는 관계를 이야기한다. 이 단계의 기본적인 심리는 관계가 지속돼고 더욱 밀착되기를 원하게 된다.

이 단계에서 작용하는 호르몬은 옥시토신과 바소프레신이다. 

옥시토신은 수유 때도 분배되는데 엄마의 아기의 결합력을 공고히 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물론 섹스때도 분비가되어서 부부의 애착관계를 깊게 만들어준다. 실제로 들쥐에게 옥시토신을 주사하면 애착 행동을 보인다고 한다. 아가패적 사랑의 호르몬이라고도 하겠다.

코에 옥시토신을 뿌리면 상대에 대한 신뢰감이 증가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그토록 찾던 사랑의 묘약이 여기 있다.  옥시토신은 바로 숭고하고 아름답고 세속의 때가 없는 아름다운 사랑의 호르몬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실제로는 욕망의 본질을 잘 보여주는 호르몬이다. 바로 갈망에서 부터시작되는 단계없이 그냥 순수한 사랑이 존재하지 않는 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이니 말이다. 사랑은 욕망과 집착 그리고 순결한 요소까지 모두 함께 존재하는 복합적인 감정인 것이다.

바소프레신은 항이뇨호르몬이다. 사랑하고 무슨 관계가 있는가? 필자는 사랑에서 이 호르몬의 역할을 찾아 봤지만 뚜렸한 답을 찾지 못했다. 아마 호르몬이 분비되는 상황은 감지가 됐지만 역할은 찾지 못한거 같다. 호르몬은 단순하지 않아서 아직 그 작용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옥시토신같은 경우도 출산시의 자궁수축호르몬으로 초기에 널리 알려졌다.

사랑은 마약
앞에 세로토닌 설명에서 이야기했지만 마약을 먹는 행위는 세로토닌과 관련이 있고 사랑도 세로토닌을 활성화 한다고 했다. 따라서 이와 관련된 연구가 상당하다.

영국 세미르 제키 교수는 사랑에 빠진 사람이 마약을 먹은 사람과 마찮가지로 전두피질 네군데가 똑같이 활성화되는 상태를 확인했다.

미국 브룩헤이븐국립연구소 노라 볼코 박사는 실연의 고통이 마약중독자에게 마약이 떨어졌을 때와 비슷하게 슬퍼하며 탄식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사랑의 저런 본질적 특징에 따라서 우리가 경험으로 알고 있는 사실들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예를 들면 위기속의 사랑인데 전쟁, 부모의 반대, 스릴은 좀더 쉽게 사랑을 불태우게 만든다. 이유는 저 사랑의 호르몬이 저 상태에서는 분비가 가속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포영화, 번지점프, 롤러코스트, 절벽위 산책 등의 연예는 그 사랑의 약효가  과학적으로  보증된다고 하겠다.

또한 이쯤에서 우리는 사랑에 잘 빠지는 사람에 대한 이해 비극적 사랑 불행한 사랑만하는 사람에 대한 이해의 단초도 얻을 수 있다. 각 호르몬이나 그로 인해서 영향을 받는 도파민 등에 대해서 모든 사람이 똑같은 반응을 보이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작은 양에도 민감한 사람도 있고 많은 양에도 둔감한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요소들이 사람의 성격이고 개성으로 표출 되는데 사랑에 대한 반응도 마찮가지라고 하겠다.

사랑의 유효기간
호르몬들이 사랑으로 인해서 분출(평소보다 높은 호르몬 농도를 유지)되는 기간은 2년정도로 알려져있다. 따라서 4,5년이면 그 유효기간이 끝나게 되고 이걸 우리는 사랑의 유효기간이라고 보통말한다.

이렇게 포스팅을 뚝 끝내면 찝찝해진다. 왜? 사랑의 유효기간이 지나면 남남이란 말인가?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유효기간 있는 사랑은 가슴이 콩닥거리고 눈을 감아도 아른거리는 그런 뜨겁게 타오르는 사랑을 말하는 것입니다. 세상에 어떻게 그런 상태로 평생을 살 수가 있겠는가 당연히 유효기간은 짧게 끝나야 사람이 살거 아닌가?

가족의 사랑 또는 유대관계는 저 유효기간 있는 사랑과는 다르다. 누구라도 자기 가족을 생각하면 쉽게 알 수 있다. 이 사랑(보통은 정이라고 말하지만)은 유효기간이 있다는 말은 못들어봤다. 우리가 말하는 사랑은 한가지 종류가 아니고 다양한 여러가지 종류의 사랑을 모두 지칭하는 것이다.

아직 연구중인 내용
여기까지 나온 내용은 사랑의 모든 것은 아니다. 왜 사랑하는지 누구와 사랑하게 되는지 이런 내용들은 여기에 나와 있지 않다. 그저 사랑이 시작되었을 때 우리 뇌의 반응만을 정리한 내용이다.

예를 들어서 사랑에 빠지는데 필요한 시간은 90초에서 4분이면 족하다는 사실이 알려져있지만 이와 관련된 과학적 내용은 아직 연구중이다. 연구중에 나온 내용들을 대략 살펴보면 사랑에 빠지는 대상은 자신의 유전자를 보완하는 유전자를 가진 상대이고 생김세가 대칭된 균형을 가지고 있어서 유전적으로 완벽함을 보여줘야 된다고 한다.

물론 현대인의 사랑에는 다른 조건들이 따른다. 경제적요건 사회지위 학벌 종교 등등 하지만 이런 조건을 모두 감안한 프로그램이 개발될것이다. 최상의 짝을 찾아주는...결혼정보회사 망하는 소리가 들린다.. ^^


  1. 2010.04.25 02:25

    비밀댓글입니다

검색 유입으로 라디오 채널을 찾으시는 분들이 많아서 총 목록을 인용해봅니다. 서울에서만 생활을 하는 입장이라 지방 방송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는데 이렇게 정리된 내용을 보니 지방 분들은 듣지 못하는 방송이 많이 있네요. 일부 부족한 부분은 기 포스팅된 수도권 라디오 주파수 내용과 함께 참고 하시면 되겠습니다.

♨본 표에서 동일 지역임에도 중복되는 주파수는 중계소 주파수입니다. 지방이라서 못 듣는 방송이 있다면 요즘은 인터넷을 통해서 청취가 가능한 만큼 이전에 비해서 문화적 소외감은 많이 줄었다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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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교육방송

 

국악방송(GugakFM)

 

교육방송

FM 104.9

국군방송(DEMA)

FM 96.7

MBC 표준FM

AM 1242/FM 102.5/
FM 92.7

교통방송(TBN)

FM 105.9

MBC FM4U

FM 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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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중) 

AFN eagleFM

 

CBS 표준FM

FM 91.5

 

 

 

라디오 채널 정보 - 강릉/속초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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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방송(BBS)

FM 100.1

kbs 2FM

 

원음방송(WBS)

 

사회교육방송

 

국악방송(GugakFM)

 

교육방송

FM 104.9

국군방송(DEMA)

FM 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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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방송(TB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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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M 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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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M 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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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3 라디오(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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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방송(DE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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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M 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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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민방(GTB)

FM 10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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