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무식한 기자야

우리 집안은 정말 양반인가? 설마 백정...... 2부

1부를 포스팅하자 마자 유입검색어에 [백정 성씨]라는 키워드가 바로 떳다. 2부는 이문제를 중심으로 이야기해본다. 대중적으로 알려진 전설의 진실과 거짓 그 배경을 이야기해본다.

왕족 성씨이니 당연히 양반이다.

나는 양반성인 김이박이라서 당연히 양반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는 아주 흔하고 일반적인 생각이다. 임진왜란 이후에 많은 사람이 돈으로 족보를 사고 팔고 했다는 이야기도 많이들 들어봤을 것이다. 그리고 1909년 일제가 호적을 줄 때는 거성(흔한 성 즉 김이박최 등)으로 대거 편입됐다. 당시에 성이 없던 천민은 자신이 원하는 성을 모두 인정해서 성을 기록했다고 한다. 물론 이전에도 성은 필요에 따라서 바뀌기도 하고 임의로 지어서 사용하기도 했다. 임의로 가질 때는 가장 흔한 성씨가 가장 손쉬웠을 것이라는 건 쉽게 추정해볼 수 있다. 안 그랬다면 지금보다도 훨씬 다양한 성씨가 존재했을 테니 말이다.

성씨 본관별 인구

본으로 하니까 김이박이 아니네..

1909년 당시에 일제가 호적제도를 만들면서 두 가지 괴담이 생겨났다.

첫 번째는 천방지축마골피는 천민성이라는 것이다.

두 번째는 일제의 호적 정리과정에서 성을 맘대로 정하게 한 것은 식민통치의 일환이었다.
 
천방지축마골피는 천민의 성인가?

개인적으로도 저렇게 알고 있던 시절이 있었고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저런 말을 정설로 알고 있는 게 현실이다. 심지어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입장에 있는 사람들 조차도 저런 잘못된 지식(구전되는)을 함부로 공공연하게 말함으로써 어린 학생들에게 상처를 주고 잘못된 지식을 널리 퍼트리기 까지 하고 있다. 재발 선생님들은 확인된 지식 아니면 함부로 말하지 말자……

천방지축마골피라는 말의 진실은 다음과 같다.

천방지축마골피는千方池秋馬葛()皮라는 성씨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天方地丑馬骨皮라는 말로 조선시대에 천대 받던 직업 목록을 뜻하는 것이다.

하늘천-            무당업

본뜰방-            목수업

땅지-               지관업

소축/추할추 -丑  소백정업

말마 -            말백정업

뼈골-              뼈백정업

가죽피-           가죽백정업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조선의 대표적인 천업인 백정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푸른색 글씨는 통칭해서 백정이라고 말하는 직업이다. 백정을 소 도축하는 직업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실상 특정 계층(달단)을 이야기하고 그들의 주요 종사 업종에 도축업이 포함된 것이다. 참고로 가죽백정은 가죽 제품을 만드는 사람 바로 갓바치이다. 또 고리백정(고리백장)은 고리 버들로 키나 고리짝을 만드는 직업이다.

 대표적 천민인 백정으로 유명한 임꺽정의 성이 임()인 것을 봐도 단순히 성만으로 천민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임경업장군도 성이 임꺽정과 같은 임(林)이다. 여기서 상식적으로 알아두면 흥미로운 점은 재인백정(광대와 백정)은 여진족에 속하는 (타타르인 한자로 달단(韃靼))이라는 사실이다. 물론 고려말기 처음 그들이 유입되고 조선전기에 아직까지 혈통이 보존되던 시절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말이다.

 백정이 노비와 동급의 천민이 된 이면에는 이런 속사정도 있다. 생김새와 말이 전혀 달랐으니 그 구분과 차별이 당연하다고 할 수도 있겠다. 물론 농사에 중요한 자원인 소나 말을 도살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시대적 특성도 포함해서 말이다. 너무 나아가면 주제를 벗어 날게 분명한 만큼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

 

1909년의 자유로운 성의 선택은 식민지배 책동인가?

1909년에 일제가 실시한 호적정리 과정에서 천민들에게 자유롭게 양반성씨를 가질 수 있게 한 것은 씨족별 단결을 방해하고 수탈의 대상을 늘리기 위한 식민지 책동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하지만 그건 일본 사정을 모르고 너무 일제 식민통치에 대한 피해의식적인 시각이라고 하겠다. 무슨 말이냐 하면 일본에도 신분제도가 있었고 특히 부라쿠민으로 칭해지는 지금도 차별을 받고 있다는 천민 계급을 평등한 근대적인 사상으로 해방시켰던 개혁적인 모습을 똑같이 조선에도 적용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즉 좋게 말하면 평등 사상을 동일하게 적용한 거고 나쁘게 말하면 식민 통치하기 위해서 통일된 평등제도를 적용한 것이다

지금도 일본에는 성을 가지고 부라쿠민을 구별 한다는 속설이 일본에 있다고 하는데 우리의 천방지축 이야기와 비슷하다. 다만 기존 성으로 편입이 없이 독자적인 성을 선택했다면 실제로 구분이 가능 하리라고 생각된다. 먼저 실시해서 상황을 아는 일본이 새로운 성을 만들어 쓰게 할리는 없었다는 것이다. 계속 차별이 가해질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일제 시대동안에는 형평사운동(일본 부라쿠민이 스이헤이샤(水平社,수평사)를 했다)을 해야할 만큼 신분차별은 계속됐다. 운동회에서 벌어진 백정 집안 여자들에 대한 학대같은 예는 지금 관점에서 보면 상상이 안간다. 이쯤에서 분명히 해둘 것은 천민확인이 이 포스팅의 목적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문화 가정이 늘어나는 현실에서  최소한 조작된 신화가 아닌 조상에 대한 진실을 알고 가자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아프리카에서 온 단일 조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잘난 조상 타령으로 아옹다옹할 필요는 없다.

여기까지 이야기하면 일단 거성에 속한다고 해서 실제로 그 성씨라는 보장은 없다는 사실을 여러분도 동감하리라고 생각됩니다. 이런 문제는 성이 대중적으로 사용하면서 발생한 문제였기 때문에 같은 성씨라도 좀더 구분하는 본관이라는 제도가 있고 좀 따지는 어른들은 꼭 본관을 확인하게 됩니다. 유명한 한남동 라씨 같은 경우를 보면 기존 나씨와는 전혀 다른 성이라는 것을 본관을 들어야만 구별이 가능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단순한 본관 구분만으로도 문제가 있기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 족보인데...... 그럼 조심스러운 족보이야기는 다음편에서 계속 해보겠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