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 경고에도 읽게 된다면 본 글에서 기술한 내용이 모든 진실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사전에 인지할 것을 권고합니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개인적으로 싫어하는 부분 중에 하나가 역사적 진실과 거리가 있는 왜곡이다. 최근 방송에서 바우덕이 남사당패 이야기를 중심으로 한 방송을 보면서 왜곡과 미화의 향기를 느낄 수 있었다.
방송이라는 특성이 주제에 따라서 내보내는 만큼 어쩔 수 없는 면이 있지만 다른 측면을 모르거나 무시해서 다른 측면만을 부각 시킨다면 그건 잘못된 방송이라고 할 것이다.
이 포스팅을 준비하면서 검색을 해보니 사물놀이패를 남사당패의 전통 계승자 이냥 광고하는 홍보기사들 까지도 있었다. 사물놀이와 남사당 놀이는 전혀 다른데도 말이다. 아니 징치고 북치면 남사당이란 말인가?
folk music by JaeYong, BAE 밝고 경쾌한 전통 놀이 남사당놀이...
바우덕이 이야기를 하기 전에 우선 남사당패에 대한 이야기부터 해보자 남사당패의 실제 모습을 알아야 바우덕이 이야기가 쉬울 것이기에 바우덕이 이야기는 다음 포스팅에서 다루겠다.
일단 흔한 남사당패에 대한 인식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인식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이것들은 그때 그때의 단편적인 기록에 불과한 것으로 유랑 예인집단의 연원까지를 가늠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또한 민중의 이해와는 거의 대립적인 입장에서 기술된 문헌들이므로 한결같이 패속패륜집단(敗俗悖倫集團)으로 몰아붙이기에 급급한 나머지, 그 내용상의 분류조차 못하고 있다.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한 그 밖의 사서류(史書類)나 문집이나 잡기 등에서도 시종 의도적으로 깎아내리는 말을 되풀이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봉건적 질곡 속에서 싹튼 민중의 자생적 연희집단에 대한 지배계층의 도식적 평가로 해석되어야 할 것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중에서
개인적으로도 남사당패를 좀더 현실적인 시각으로 보기 전까지는 저런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거기에는 남사당패에 대한 양반들의 탄압과 착취에 대한 만화나 소설의 영향도 컸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그런 소설이나 만화는 저런 평가에 영향을 받은 것이 분명하다.
물론 그 이전 마지막 남사당패 꼭두쇠였던 분의 증언(뿌리깊은 나무 연재를 통해서 읽었다. 물론 그 잡지 발행 당시에 바로 읽었다는 뜻은 아니다.)을 통해서도 실체를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저런 인식에서 벗어나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동일 정보를 가지고 나이에 따라서 이런 인식의 차이가 벌어진 이유는 내가 세상을 몰랐기 때문인데 역시 어린이에게 세상은 아름답고 쉽고 단순한 곳이다. 하지만 현실의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도 아름답지도 않다는 것이다. 서론이 길어 졌는데 우선 저 인용문이 정당 한가부터 따져 보자.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사당패 말
남사당패의 용어 중에 우리가 일상에서 아직도 쓰고 있는 말이 있다. 특히 10대 청소년들이라면 자주 쓰고 듣는 말이다. 이렇게 말하면 놀랍지 않은가? 어린 사람들이 남사당패의 용어를 쉽게 일상에서 쓴다니? 방송에서는 이 용어가 나오지 안는다.
그 용어는 바로 “좆삐리”라는 말이다. 그렇다. 욕으로 속어로 사용하지만 ‘좆’이라는 말을 사전에서도 속어라고 표현하지만 순 우리말이고 국어 사전과는 그 본 뜻이 다르다.
“삐리”라는 단어도 국어 사전에 나온다. 남사당패의 초보자 여장을 하였다고…… 남사당 놀이에서 어른 위에 무등탄 아이가 삐리이다.
사실 저 ‘좆삐리’라는 말을 직접 언급할지에 대해서 상당히 고민을 했었지만 ‘개고생’이라는 말이 사전에 있다는 이유로 광고용어로 사용된 것을 봐서 저 말을 직접 언급하는 것이 옳다는 결론을 내렸다. (바로 전에 포스팅했던 꿀벅지 문제와도 연관 지어서……)
The Damm Family in Their Car, Los Angeles, CA, USA, 1987, By Mary Ellen Mark by Thomas Hawk 남사당패같은 떠돌이 생활에는 필연적으로 어두운 구석이 있다.
저 “좆삐리”라는 단어의 정확한 글 뜻은 몰라도 어감으로 무슨 뜻인지는 다 알고 욕으로 사용한다. 그리고 거기에 남사당패의 어두운 면이 모두 들어있는 것이다.
남사당패의 기예가 전통적으로 문화적으로 예술적으로 가치가 있고 멋진 것은 명백하지만 저 “좆삐리”라는 말이 가지는 어두운 면도 명백하게 남사당패의 한 모습인 것이다.
여기까지 이야기 했을 때 대략 눈치 빠른 분이라면 무슨 이야기인지 이해를 했을 것이고 순수한 영혼을 가진 분이라면 아직 이해를 못했을 것이다.
일단 저 인용문에서 말하는 ‘패속패륜집단(敗俗悖倫集團)’이 정확한 표현이라는 것이다. 또한 마을에 힘있는 양반들이 남사당패의 진입을 막으려고 한 것은 결코 사리 사욕의 욕심만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더욱이 마을 사람 모두가 환영할 상황도 아니었는데 그건 저 ‘삐리’의 존재 이유와 충원방법의 문제 때문이다.
삐리의 충원
떠돌이 남사당패가 자기 자식도 아니고 어디서 어린이 ‘삐리’들을 충원한다는 말인가? 당연히 유괴가 횡행한 것이다. 서두에서 언급한 마지막 남사당패였던 분은 자발적 가출을 하였다고 말하지만 부모입장에서는 그 것도 유괴나 다름없었다. 어린 아이를 어른이 유혹해서 가출을 시켰으니 말이다.
요즘 죄명으로는 ‘미성년자 약취유인’이다. 다른 문헌을 보면 각 남사당패는 ‘삐리’의 확보에 열을 올렸고 이유는 수입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여장한 삐리가 사당패의 수입에 큰 영향을 준다면 물정 아는 어른이라면 쉽게 상황을 상상할 수 있다.
사당패와 남사당패
우리가 요즘 아는 놀이 패는 남사당패이다. 하지만 남자 사당패라고 특정하는 것은 여자 사당패가 일반적이고 먼저 있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여자들로 이루어진 떠돌이 기예 집단이 어떤 존재였는가는 쉽게 연상할 수 있을 것이다. “좆삐리”보다 아름다울 거 없는 모습이었을 것이다. 무조건 도덕적 잣대를 들고 설치는 모습을 혐오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무어라고 평가할 생각은 없지만 적어도 쉽게 미화할 모습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도 여자 사당패야 쉽게 상상할 수 있는 웃음 파는 직업의 모습을 가진다지만 남자들로 이루어진 남사당패는 그런 모습이 쉽게 상상이 안 간다.
사당패에서 삐리가 왜 좆삐리인가?
삐리가 왜 남사당패의 중요한 수입원이며 좆삐리라는 호칭까지 듣는 존재인가? 그것은 삐리가 남사당패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암동모(아내)가 되어서 숫동모라고 칭해지는 기존의 단원관 성적인 관계를 가지게 되고 거기에 더해서 머슴이나 떠돌이 장사들에게 남색까지 팔아서 허우채(화대)를 벌어 오는 존재가 됐기 때문이다.
이에 관한 증언은 내가 읽었던 “뿌리깊은 나무”라는 잡지를 통해서 알 수 있는데 연재물을 모아서 현재는 ‘숨어사는 외톨박이’라는 단행본으로 출간되어 있다..
이쯤 되면 ‘패속패륜집단(敗俗悖倫集團)’이라는 호칭이 결코 근거 없는 폄하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수 있다.
문제는 저 인용문을 작성한 저자들도 이런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저런 식으로 기술하는 왜곡을 하였다는 것이다. 마을을 책임지는 양반이라면 당연히 남사당패의 마을 진입을 막으려고 하는 것이 정상인 것이다. 어린아이 가진 부모들도 달가워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상황을 아는 저자들도 좋은 말을 써 놓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실상 여기서 언급되는 사실보다 훨씬 심한 경우도 종종 있었을 것이다.)
물론 무료한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없는 프로 놀이패를 반기는 사람들도 많았을 것이다. 지금 유흥가를 극구 반대하는 사람들과 거기서 즐기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 유흥가를 양반지배층과 대립되는 민중들의 어쩌구저쩌구로 기술 할 수 있겠는가?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SG101302 by sicrone 멋진건 멋진거다.. 연예계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결국 남사당패 자체의 문화에 대해서는 지나친 미화의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그 당시 사회에서 그들은 필요악인 존재였고 마냥 환영 받을 수는 없는 그런 존재였던 것이다.
그리고 저런 그들만의 생활을 알고 있던 개인적 감상에서 영화 ‘왕의 남자’는 짜증나는 측면이 많이 있었는데 그들의 일상의 삶은 영화 속에서의 그런 상황이 그런 갈등을 만들어 내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충분히 특수하고 비정상적인 상황이 일상인 그들인데 말이다.
참고로 남사당패의 저런 용어 중에는 “이얏 동모”라는 호칭도 있다. 삐리가 아닌 성인의 경우 여자 역할을 하는 동성애자를 칭하는 호칭이다.
마지막으로 인터뷰를 인용하고 다음 바우덕이 포스팅을 약속한다.
[숨어사는 외톨박이](1977. 뿌리깊은 나무)
+ 이 포스팅은 당대의 도덕적 잣대와 상황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이미 역사속의 이야기인 만큼 현대의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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