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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감상평

윤봉길 의사의 도시락 폭탄은 무슨 도시락인가?

윤봉길 의사

유명한 한인애국단 입단식 사진

윤봉길 의사가 도시락 폭탁을 던저서 상하이 홍구 공원에서의 일본 전승행사를 쑥대밭으로 만든 사건은 우리 모두 알고 있는 유명한 사건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거기까지가 아는 지식의 끝인게 현실이다.

문득 도시락 폭탄의 실체가 궁금해져서 그내용을 찾아 보고 포스팅해본다. 유명한 사건이지만 대부분 실제 내용은 잘 모르는게 현실이니 말이다.

상해에서 야채장사를 하던 윤의사가 홍구 공원에서 거사를 결행하기 까지는 정치적 군사적 배경(색계(色戒) 실제 역사속의 인물과 그 이야기 1부)이 있다. 훗날 새로운 시각으로 다시 영화화 되는 날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늘 그렇듣이 글이 삼천포로 빠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그 도시락 폭탄에만 집중 해본다.









의거 3일전 거행한 한인애국단 선서문(위 사진에서 목에 걸고 있는 내용)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나는 적성(赤誠)으로써 조국의 독립과 자유를 회복하기 위하여 한인애국단의 일원이 되어 중국을 침략하는 적의 장교를 도륙하기로 맹세하나이다. 대한민국 14년 4월 26일 선서인 윤봉길.”



폭탄은 누가 어디서 만들었는가?
상해 강남 조선소 내에 있는 병공창에서 물통 모양과 도시락 모양으로 만들어서 무료로 20여개를 제공 받았다. 이봉창 의사의 거사가 폭탄 성능 미비로 실패했던 만큼 수차례의 사전 성능 시험을 거쳤다고 한다.

이를 병공창측에서 차로 주임 김홍일의 집으로 운반해주고 다시 김구 선생이 교포들 집에 분산 은익했다. (폭탄인줄 주인도 모르게 귀한 약이니 불조심 하라는 말과 함께 분산 시켰다고 한다. 보안도 중요했지만 좀 무섭다.)

폭탄 투척
흔히 도시락 폭탄이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투척된 폭탄이 도시락 폭탄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 사용된 폭탄은 수통(물병) 모양 폭탄이었다. 식장에는 수통 모양과 도시락 모양 폭탄을 각각 들고 들어갔지만 거사 직전에
거사직후 윤봉길의사

거사직후 연행되는

가지고 있던 도시락 폭탄은 땅에 내려 놓고 수통 폭탄의 덮개를 벗겨 안전핀을 뽑으면서 당산을 향해서 2미터 가량 돌진해서 폭탄을 던지게 된다.

1932년 7월 당시 일본 내무성 문서에 따르면 크기는 성인 남성 손바닥만하고 타원형에 어깨에 멜 수 있는 가죽끈이 달려있다고 한다. 하얀 헝겁으로 폭탄 전체를 감쌓아서 영락없는 수통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크기가 좀 큰 수류탄이었다.

도시락 폭탄에 대해서는 자폭용이었다는 이야기도 있으며 모양은 평범한 각진 알루미늄 도시락에 천으로 싼형태에 발화 끈이 나와 있는 형태이다.



<유촉시(遺囑詩)>
청년제군들에게

피 끓는 청년제군들은 아는가 모르는가.
무궁화 삼천리 내 강산에
왜놈이 왜 와서 왜 광분하는가.

피 끓는 청년제군들은 모르는가.
되놈이 되 와서 되가는데
왜놈은 와서 왜 아니가나.

피 끓는 청년제군들은 잠자는가.
동천에 여명은 밝아지려 하는데
조용한 아침이나 광풍이 일어날 듯

피 끓는 청년 제군들아 준비하세.
군복 입고 총 메고 칼 들면서
군악 나팔에 발맞추어 행진하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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