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should I be afraid?" he replied. "I was a soldier."
2007
그의 이름은 아쉬라프 마완(Ashraf marwan)으로 환갑을 넘긴 나이지만 특별한 지병이 있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는 이집트 사다트 대통령의 사위이자 헤롯 백화점 소유자 모하메드 알 파예드(다이에너 왕비의 시아버지가 될뻔한 그 사람)의 사업파트너이기도 했다. 한 마디로 요약하면 부와 권력을 모두 가진 부자였다.
사업가의 두 얼굴
그저 성공한 사업가로 보이는 그의 죽음에 왜 많은 정보기관과 언론 그리고 블로그에서 그렇게 많은 관심을 가졌던 것일까? 그건 그가 알려진 가장 성공적인 2중 스파이 중 한 명이있기 때문이다.
사망 정황은 이런 그의 이력과 함께 관심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했다. 부검에서 사인이 뇌동맥류파열이라는 결과가 나왔지만 정보기관의 보복성 암살이라는 의심은 지울 수가 없었다. 그 의혹을 받는 기관은 이미 수 차례 보복성 암살을 저지른 이력이 있는 모사드 였기 때문이다. 런던 경시청은 그가 사망 당시 신발을 신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단순한 추락사라는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과연 그는 어떤 인물인가? 처음 대중에게 그의 존재가 알려진 건 2002년 9월이었다. 런던의 역사가 아론 브레그먼이 이스라엘의 최고위 첩보원에 대한 힌트로서 “the in-law”(며느리, 사위 누구냐 너는..)라고 말하면서 시작되었다. 이집트 언론은 즉각 이에 반응해서 그 인물을 추적하기 시작했고 곧 마완이 그 용이자로 지목되었다. 하지만 그가 스스로 이스라엘 정보기관인 모사드에 접근해서 스파이가 됐다는 주장에 많은 의문이 따랐다.
부유한 사업가이며 대통령(당시 사다트는 군 사령관이었고 전쟁 이후 그 인기로 대통령이 된다.)의 사위인 인물이 왜 스스로 조국을 배신하고 파멸의 위험이 큰 스파이가 되었겠는가? 결국 많은 추측들이 난무하게 된다. 모사드가 그의 영국 사업을 도와주었다는 즉 막대한 사업의 이권 설이나 가족(처가)간의 불화같은 개인적 문제 또는 순수한 사상적 이유 등이었다.
이러한 공개와 소란 속에서도 이상하게 이집트 정부는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았다. 마완은 스파이 행동이 발각되었을 때 응당 따를 법적 조치나 은밀한 보복도 받지 않았으며 2003년에는 마완 자신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공식적으로 혐의를 부인하기까지 했다. 그러던 와중 2004년 모사드의 감시망에 한가지 정보가 포착된다. 그건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으로부터 환대를 받는 마완의 모습이었다. 상황은 명확해지기 시작했다.
이에 아론 브레그먼은 단 하나의 결론만이 남아 있다고 주장했다. 마완은 2중 스파이인 것이다. 하지만 객관적이고 명확한 증거는 없었다.
마완의 알려진 스파이 활동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자 2004년 10월 9일 이스라엘 제이라 중장은 이스라엘 최고의 첩보원 암호명”The Source”가 마완이라고 공식적으로 밝히게 된다. 그에 따르면 마완은 1969년 모사드와 처음 관계를 가지면서 런던에 있는 이스라엘과 요르단의 비밀 접촉 거점이었던 병원에서 이집트의 기밀 문서를 건내주었다고 한다. 그 이후 헤롯 백화점에서 쇼핑을 위장하여 모사드 비밀 요원과 3일에 1번꼴로 접촉하면서 스파이 활동을 해왔다는 것이다.
마완은 이런 활동의 대가로 런던에 있는 모사드 안전가옥에서 5만 파운드 씩을 받았다고 한다. 이때 종종 당시 모사드의 최고 책임자인 즈바이 자미르를 면담했고 마완의 진술은 녹음되어 이스라엘 수상에게 직접 보고 되곤 했다고 한다. 이쯤이면 마완은 모사드 최고의 스파임 중 하나임이 틀림 없다고 하겠다.
이상한 정보
1973년 4월 마완은 이집트와 시리아가 그 해 5월 15일 이스라엘에 대해서 기습공격을 감행할 것이라는 정보를 제공한다. 하지만 그날은 그저 평온한 하루였을 뿐이었고 어떠한 공격 징후도 없었다.
그럼에도 이스라엘은 마완의 정보에 따라서 긴급 전투준비를 해야만 했고 그 준비에는 3천5백만 달러라는 막대한 비용이 소모되었다. 마완은 다시 6개월후 (윰키프로 전쟁이 발발하기 직전이다.) 자미르 정보부장을 새벽 2시 30분에 깨워서 런던으로 호출하다. 마완은 자미르 정보부장에게 일출경의 공격을 경고했고 이 정보는 즉각 이스라엘 내각에까지 전달 되었지만 이 또한 사실이 아니었다.
마완은 전쟁이 발발하는 순간까지 계속적인 역정보와 조작된 경고를 발하면서 이스라엘 군을 혼란스럽게 했다.
저 공작의 결과로 윰키프로 전쟁은 철저한 보안과 전략적 기습을 성공 시킨 이집트와 시리아의 우세로 시작되게 된다. 비록 전쟁 중반 이후의 상황은 초반과는 달라졌지만 말이다.
모사드 바보가 되다.
하지만 이 모든 내용은 마완이 2중 스파이라는 결론을 내리기에는 직접적인 증거가 되지 못했다. 결국 이런 모든 의혹은 마완의 장례식이 이집트 고위 성직자의 주관하에 그것도 국장으로 치루어지면서 결론이 나고 만다. 장례식에 참석한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은 “(마완은) 아직은 밝힐 때가 되지 않은 애국적이고 영웅적인 행동을 했다.”라고 기념사를 남겼다. 이 자리에는 오마르 슬레이만 이집트 정보부장도 참석했다.
"이스라엘의 보복이 두렵지 않소?"라는 질문에 "내가 왜 두려워 해? 나는 군인이요!"라고 답했다고 한다.
하나도 부러울 거 없는 부와 권력을 가졌으면서도 조국을 위해서 목숨을 건 마완의 저 말은 가볍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토록 명성이 드높은 모사드도 저런 인물이 설마 위험한 작전을 펼치리라고는 생각을 못해서 역공작에 당했다고 조심스럽게 추측해본다. 그리고 그의 죽음은 모사드의 비밀기록이 해제될 때까지 의문으로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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