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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제를 처음 시작하면서 부터 꺼림찍 한 면이 있었다. 짦은 지식으로 이런 이야기를 하는게 옳은가 하는 점과 남의 집안에 대해서 왈가부가 비하하게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두가지 사항이었다. 사실 족보만 전문으로 다루면서 생활을 하시는 전문가 분들이 아직도 많이 있다. 그 분들이 이글을 읽으면 무어라고 할지 모르겠다.
이 글을 계기로 자기 성씨의 유례를 다시 한번 돌아보고 실제 역사와 비교해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여기서는 차마 언급못한 꽤 재미있는 사실들을 찾아 낼 수 있을 것이다.

족보 속의 거짓 말

3부 연제로 이야기를 끝내려고 합니다. 여러분의 족보를 보면서 느끼는 가장 특이한 점은 뭐였습니까? 사실 족보가 입고 없고 상관 없이 인터넷 검색만 조금 해봐도 느끼는 문제지만 족보의 가장 흔한 거짓말은 중국에서 왔다는 중국 시조설입니다. 이걸 진짜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서 조상은 대다수가 중국에 선조가 있다고 착각하는 경우도 있고 또 다른 사람들은 이게 모화주의 즉 중국에 대한 사대사상 탓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실상을 알고 보면 그런 이유가 아닙니다. 족보를 만들 당시의 자존심 문제 때문에 조상들이 중국에 뿌리를 두는 거짓말이 시작된 것일 뿐입니다. 대부분의 족보는 고려 말에서 조선 초 사이에 만들어 지게 됩니다. 고려 때의 귀족이 아닌 조선을 건국하는 신흥 양반들이 필요에 따라서 족보를 만들기 시작했는데 한가지 큰 문제가 있었습니다. 바로 새로 만들어진 족보에서는 윗대의 조상이 나올 수가 없다는 점 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신생족보다라고 말하고 싶은 집안이 어디 있겠습니까? 따라서 윗대가 안 나오는 뿌리깊은 족보를 만들 필요성이 있었고 가장 손 쉬운 방법이 바로 선조가 중국에서 왔다는 시조를 내세우는 방법을 사용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런 경향이 지나치게 심해서 중국의 상고사까지 시조를 올려 버리는 경우가 있었고 이는 가문 내에서도 지나친 감이 있다는 것을 쉽게 느낄 수 있기에 이를 부정하고 추적 가능한 시조까지만 주장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대부분의 족보를 살펴 보면 이런 부분이 쉽게 보이는데 보통 시조에서 고려 때까지의 족보가 얼버무려지고 이후 고려조부터(보통은 고려말)의 실질적인 인물들이 나오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대부분 본관이 고려조에 형성되게 되고 이때가 실질적인 족보의 시작인 경우가 많습니다.  보통 이 시기에 처음 파도 갈리기 시작한다. 무슨 뜻이냐 하면 족보를 만들던 시점에서 실제 알 수 있던 윗대가 저 시점이라는 것이다.

고대 왕을 시조로 하는 왕성(김이박)의 경우를 보면 또 다른 특징을 볼 수가 있습니다. 삼국시대 역대 왕들이 있었음에도 특정 왕을 시조로 하는 후손들 만이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그럼에도 지나치게 숫자가 많지요.

여기서 족보에 대한 실질적인 문헌상의 기록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나라의 족보는 고려왕실의 계통을 기록한 것으로 고려 의종(18, 1146~1170)때 김관의(金寬毅)가 지은 『왕대종록(王代宗錄)』이 처음이다. 그러나『고려사』를 보면 고려 때에도 양반 귀족은 그 씨족계보를 기록하는 것을 중요시하였고, 제도적으로 종부시(宗簿寺)에서 족속의 보첩을 관장했다는 것으로 보아 당시의 귀족 사이에는 계보를 기록 보존하는 일이 실제로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시대에는 사대부 집안에서 사적으로 간행되기 시작하였으나, 1476(조선 성종7)의 『안동권씨 성화보(安東權氏 成化譜)』가 체계적인 족보 형태를 갖춘 최초의 족보이다. 이후 1565(조선 명종20)에는 『문화유씨 가정보(文化柳氏 嘉靖譜)』가 혈족 전부를 망라하여 간행되면서 이를 표본으로 하여 명문세족에서 앞을 다투어 족보를 간행하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 17세기 이후 여러 가문으로부터 족보가 쏟아져 나오게 되었으며 대부분의 족보가 이 때 만들어 지기 시작했다.

 

조선 초기에 간행된 족보의 대부분은 족보간행을 위해 초안을 하고 관계 자료를 충실히 보완한 뒤 간행에 착수하여 내용에 하자가 없었다. 그러나 이후의 족보들은 초안이나 관계 자료의 검토, 고증도 없이 자의적으로 기록하여 간행된 것이 많았다. 그리하여 자의적인 수식이 가하여 졌음은 물론이며 조상을 극단적으로 미화하고, 선대의 벼슬을 지나치게 과장하거나 조작하고, 심지어 명문 집안의 족보를 사고 팔거나 훔치는 경우도 있었다. 뿐만아니라 사대주의 사상에 젖어 시조의 유래를 중국에 두어 기자(기원전 1122년 우리나라에 왔다고 함)를 따라 우리나라에 왔다고 하거나, 중국의 인물을 고증도 없이 조상 이라고 하는 식으로 족보를 꾸미기도 하였다.

 

위의 내용을 보고 의문을 표하는 분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고려조의 귀족 가문은 기록을 했으니 오랜 족보가 있을 거라고 하지만 실제로 현존하는 고려 귀족 성씨의 족보를 보면 그 때의 기록은 없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족보에는 너무 많은 거짓이 포함되는 것이다. 따라서 조상에 대한 진실을 알고 싶다면 성이나 족보에 의지하기 보다는 자신의 3대조의 실질적 내용을 아는 게 중요하다.

여기서 성에 대해서 집고 넘어가야 하는데 조선초기까지도 성이 없는 사람이 80%가량이었다고 한다. 성은 삼국시대부터 사용되어 왔지만 성이 불멸의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왕이 성을 하사하기도 했고 왕조가 무너질 때는 쉽게 자신의 성을 만들거나 바꿀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어느 시점에서 필요에 따라서 자신의 성을 선택한 조상이 있었다는 사실을 쉽게 유추해 볼 수 있다. 이와 관련된 진실을 알고 싶다면야 유전자 조사를 통해서 쉽게 추적할 수 있지만 우리 특성상 그런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된다. 특정 성씨에 몇 명의 시조(아버지)가 있고 언제 적 사람인지 알아 낼 수 있는 과학적 기술은 아주 일반적이기 때문에 차후에 유전관련 질병 검사가 널리 보급되는 시점에는 의료적 문제로 조사를 하게 되겠지만 말이다. 시재에 참석하는 사람들 유전자만 조사해도 쉽게 알 수 있지만 아마 당장하고 싶어하는 가문은 없을 것이다. 따라서 족보의 가짜 여부를 확인한다는 것은 고려조 이후 족보가 완전하게 구축된 이후에 편입된 경우를 가짜 족보라고 말해야 한다.

개족보

개족보라는 말을 들어봤나? 견종의 족보라고 오해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남의 집안 족보를 비하할 때 사용하는 말이 저 개족보라는 말이다. 보통은 조작된 엉터리 족보라는 뜻이된다. 족보가 진짜인지를 확인하는 가장 기본은 본관지역에 어느 선조가 거주하였는가를 알면된다. 농업국가의 특징은 땅에서 벗어나서 사는 경우가 아주 드물기 때문이다. 서울에 올라와서 사는 경우에도 결국은 토지가 있는 고향에 기반을 두게 되는데 그건 다른 생존 수단이라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요즘 사극 드라마에서는 상업적 기반을 가지는 이야기가 많이 나오지만 우리 역사의 대부분의 기간에 그런 경우는 거의 없었다고 봐야 한다. (특히 족보와 관련되는 양반들은 말이다.)

이런 사실은 당시 선조들이 더 명확하게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가짜 족보에 대해서는 적당한 변명거리가 들어가게 된다. 유배라던가 전란 같은 죽고 사는 종류의 사유가 보통 사용된다.  다르게 보면 저런 종류의 큰 사건이 아니면 지역을 멀리 벗어나지 않는 다는 것을 반증하기도 한다.

따라서 자신이 현재 알 수 있는 3대조 이상의 선조 거주지를 알면 자신의 집안에 대한 진짜 내력을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사실은 그냥 생존하는 어른께 여쭈어보면 진실을 알 수도 있겠지만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물론 상업이나 기술관료 같은 집안이 있겠지만 그 비율은 너무나도 적기 때문에 각자 알아보면 될 거라고 생각한다.

일본은 아직도 천민이 존재한다

앞에서 언급했지만 일본은 아직도 부라쿠민이라는 천민계층에 대한 차별이 존재하고 있다 신분제가 철폐되고 세상이 이렇게 변했는데도 어떻게 그럴 수 있으며 우리는 주변을 아무리 찾아봐도 백정집안은 찾을 수가 없는데 말이다.

우리 사회에 더 이상 백정 차별이 없는 이유는 6.25전쟁 덕분이다. 마을을 떠나서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신분으로 정착할 수 있는 기회를 줬기 때문이다. 앞의 연제에서 언급했지만 일제시대까지도 백정에 대한 차별은 극심했고 이런 상황은 당시 신문에 보도될 정도로 큰 사건으로 번지기도 했다.

지금 시점에서 보면 학교 운동회에 백정 여자들이 참가했다는 이유로 옷을 벗기고 재갈을 물리고 말 몰이를 하는 차별이 할아버지 세대에 있었다는 것이 상상이 안되겠지만 말이다.

따라서 형평사운동같은 백정들의 신분차별 폐지 운동까지 있을 정도였다. 그런 차별이 6.25전란을 통해서 순식간에 사라져버린 것이다. 임진왜란이후 조선 사회가 변했던 것과 같은 이유다.

하지만 전쟁을 격었지만 마을을 떠날 일은 없었던 일본은 그 신분에 대한 흔적이 계속 남아있기 때문에 벌어지는 문제이다. 우리나라 시골에서도 어른들은 저 집안은 머슴집안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는 모습을 지금도 볼 수 있다.

조상의 신분을 현재에 바라보는 시각

워낙 민감한 부분이기 때문에 언론이나 공식적인 매체에서는 다룰 수 없는 이야기를 마구 다뤄봤는데 이제 마무리를 겸해서 당부의 이야기를 해야겠다.

빼대 있는 양반 집안이나 천민 백정집안이라고 현대에 와서 자부심을 같거나 비하 당할 이유는 전혀 없다. 왜냐하면 결국은 우리 모두는 같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후손이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에서 선조가 나오는 시점까지 올라가지 않더라도 우리의 조상이 되는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렇게 숫자가 많지 않다는 사실이 근간의 유전자 추적 연구의 결론이 되었다.

결국 우리 모두는 형제 자매 사이의 관계라는 것이다. 족보 자랑하고 조상의 신분 자랑해봤자 너와 나는 똑 같은 부모의 자식일 뿐이니까 말이다.

이 포스팅은 그저 족보나 성씨의 진실을 알고 넘어가자는 의미 이상도 이하도 없다.

  1. 음... 2010.08.09 20:16 신고

    글 잘 쓰셨네요. 잘읽고갑니다.

  2. 나그네 2013.10.07 15:09 신고

    저는 백정집안 후손입니다. 항시 화를 자제하며 살기가 올라오지 않도록 조심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3. 리얼리스트 2013.12.16 13:35 신고

    양반 천민 차별과 6.25이후 민주주의에 비판은 아닙니다만 급격한 산업화까지 겪으면서 한국사회 노블리스는 붕괴되었지요 결국 금권주의 국가 천민평준화 곧 천민시대 붕괴가 예상되는데 정작 문제의 천민들은 주제를 모르니 걱정이군요

    • 텔미 tellmegame 2014.01.17 10:27 신고

      ? 대한민국 사회에도 문제는 많지만 다른 나라 생활을 직접 보시면 대한민국 정도면 살기 좋은 나라 됐구나 하고 생각하실텐데 싶습니다.

      그리고 웃자고 하는 천민이라면 모르겠지만 정말 천민이라는 말을 쓴다면 그 말 쓰는 사람이 천민이라고 생각합니다.

1부를 포스팅하자 마자 유입검색어에 [백정 성씨]라는 키워드가 바로 떳다. 2부는 이문제를 중심으로 이야기해본다. 대중적으로 알려진 전설의 진실과 거짓 그 배경을 이야기해본다.

왕족 성씨이니 당연히 양반이다.

나는 양반성인 김이박이라서 당연히 양반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는 아주 흔하고 일반적인 생각이다. 임진왜란 이후에 많은 사람이 돈으로 족보를 사고 팔고 했다는 이야기도 많이들 들어봤을 것이다. 그리고 1909년 일제가 호적을 줄 때는 거성(흔한 성 즉 김이박최 등)으로 대거 편입됐다. 당시에 성이 없던 천민은 자신이 원하는 성을 모두 인정해서 성을 기록했다고 한다. 물론 이전에도 성은 필요에 따라서 바뀌기도 하고 임의로 지어서 사용하기도 했다. 임의로 가질 때는 가장 흔한 성씨가 가장 손쉬웠을 것이라는 건 쉽게 추정해볼 수 있다. 안 그랬다면 지금보다도 훨씬 다양한 성씨가 존재했을 테니 말이다.

성씨 본관별 인구

본으로 하니까 김이박이 아니네..

1909년 당시에 일제가 호적제도를 만들면서 두 가지 괴담이 생겨났다.

첫 번째는 천방지축마골피는 천민성이라는 것이다.

두 번째는 일제의 호적 정리과정에서 성을 맘대로 정하게 한 것은 식민통치의 일환이었다.
 
천방지축마골피는 천민의 성인가?

개인적으로도 저렇게 알고 있던 시절이 있었고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저런 말을 정설로 알고 있는 게 현실이다. 심지어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입장에 있는 사람들 조차도 저런 잘못된 지식(구전되는)을 함부로 공공연하게 말함으로써 어린 학생들에게 상처를 주고 잘못된 지식을 널리 퍼트리기 까지 하고 있다. 재발 선생님들은 확인된 지식 아니면 함부로 말하지 말자……

천방지축마골피라는 말의 진실은 다음과 같다.

천방지축마골피는千方池秋馬葛()皮라는 성씨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天方地丑馬骨皮라는 말로 조선시대에 천대 받던 직업 목록을 뜻하는 것이다.

하늘천-            무당업

본뜰방-            목수업

땅지-               지관업

소축/추할추 -丑  소백정업

말마 -            말백정업

뼈골-              뼈백정업

가죽피-           가죽백정업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조선의 대표적인 천업인 백정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푸른색 글씨는 통칭해서 백정이라고 말하는 직업이다. 백정을 소 도축하는 직업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실상 특정 계층(달단)을 이야기하고 그들의 주요 종사 업종에 도축업이 포함된 것이다. 참고로 가죽백정은 가죽 제품을 만드는 사람 바로 갓바치이다. 또 고리백정(고리백장)은 고리 버들로 키나 고리짝을 만드는 직업이다.

 대표적 천민인 백정으로 유명한 임꺽정의 성이 임()인 것을 봐도 단순히 성만으로 천민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임경업장군도 성이 임꺽정과 같은 임(林)이다. 여기서 상식적으로 알아두면 흥미로운 점은 재인백정(광대와 백정)은 여진족에 속하는 (타타르인 한자로 달단(韃靼))이라는 사실이다. 물론 고려말기 처음 그들이 유입되고 조선전기에 아직까지 혈통이 보존되던 시절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말이다.

 백정이 노비와 동급의 천민이 된 이면에는 이런 속사정도 있다. 생김새와 말이 전혀 달랐으니 그 구분과 차별이 당연하다고 할 수도 있겠다. 물론 농사에 중요한 자원인 소나 말을 도살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시대적 특성도 포함해서 말이다. 너무 나아가면 주제를 벗어 날게 분명한 만큼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

 

1909년의 자유로운 성의 선택은 식민지배 책동인가?

1909년에 일제가 실시한 호적정리 과정에서 천민들에게 자유롭게 양반성씨를 가질 수 있게 한 것은 씨족별 단결을 방해하고 수탈의 대상을 늘리기 위한 식민지 책동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하지만 그건 일본 사정을 모르고 너무 일제 식민통치에 대한 피해의식적인 시각이라고 하겠다. 무슨 말이냐 하면 일본에도 신분제도가 있었고 특히 부라쿠민으로 칭해지는 지금도 차별을 받고 있다는 천민 계급을 평등한 근대적인 사상으로 해방시켰던 개혁적인 모습을 똑같이 조선에도 적용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즉 좋게 말하면 평등 사상을 동일하게 적용한 거고 나쁘게 말하면 식민 통치하기 위해서 통일된 평등제도를 적용한 것이다

지금도 일본에는 성을 가지고 부라쿠민을 구별 한다는 속설이 일본에 있다고 하는데 우리의 천방지축 이야기와 비슷하다. 다만 기존 성으로 편입이 없이 독자적인 성을 선택했다면 실제로 구분이 가능 하리라고 생각된다. 먼저 실시해서 상황을 아는 일본이 새로운 성을 만들어 쓰게 할리는 없었다는 것이다. 계속 차별이 가해질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일제 시대동안에는 형평사운동(일본 부라쿠민이 스이헤이샤(水平社,수평사)를 했다)을 해야할 만큼 신분차별은 계속됐다. 운동회에서 벌어진 백정 집안 여자들에 대한 학대같은 예는 지금 관점에서 보면 상상이 안간다. 이쯤에서 분명히 해둘 것은 천민확인이 이 포스팅의 목적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문화 가정이 늘어나는 현실에서  최소한 조작된 신화가 아닌 조상에 대한 진실을 알고 가자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아프리카에서 온 단일 조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잘난 조상 타령으로 아옹다옹할 필요는 없다.

여기까지 이야기하면 일단 거성에 속한다고 해서 실제로 그 성씨라는 보장은 없다는 사실을 여러분도 동감하리라고 생각됩니다. 이런 문제는 성이 대중적으로 사용하면서 발생한 문제였기 때문에 같은 성씨라도 좀더 구분하는 본관이라는 제도가 있고 좀 따지는 어른들은 꼭 본관을 확인하게 됩니다. 유명한 한남동 라씨 같은 경우를 보면 기존 나씨와는 전혀 다른 성이라는 것을 본관을 들어야만 구별이 가능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단순한 본관 구분만으로도 문제가 있기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 족보인데...... 그럼 조심스러운 족보이야기는 다음편에서 계속 해보겠다.

  1. ㅁㄴㅇㄹ 2010.02.10 15:29 신고

    좋은 글이네요 그런데 타타르족은 몽골족에 속합니다.

  2. 슈게이저 2010.08.02 22:15 신고

    일본도 근대화 과정에서 국민들에게 성씨를 마음대로 짓게 했습니다. 그때 일어났던 소동들과, 웃지못할 이야기들도 책으로 나와있지요.

  3. ASD 2013.07.28 22:39 신고

    임꺽정은 당시 산에 무리를지어 생활하였기때문에 생모가 나무의 이름을 본따 수풀림 자를 사용했습니다.

  4. 2014.07.06 15:51 신고

    운동회에서 무슨일이 일어났길레... 어디서 찾아볼수있나요?

    • 텔미 tellmegame 2014.10.22 17:30 신고

      백정 말타고 달리기 또는 백정 각시 타기로 검색하시면 내용을 찾아 보실 수 있습니다.

      요즘 기준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백정 각시 놀이라는 식으로 무지 막지한 일들이 있었습니다.

요즘은 초등학교에서는 조상 알아오기 등의 숙제가 많이 있는 것 같다. 쉽게 생각하면 자기 조상과 뿌리를 알게 한다는 좋은 취지로 보이지만 조금 깊이 생각해보면 학생들에게 거짓말을 강요하는 것은 아닌가 의문이 든다.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지만 조선시대까지도 우리는 신분사회였다. 천민, 노비가 있고 양인이 있고 양반이 있는 그런 사회였던 것이다. 조선시대라고 하면 무척이나 먼 옛날처럼 느껴지지만 따지고 보면 그다지 먼 옛날도 아니다.

1824년 갑오개혁 때 노비들은 모두 해방되었지만 1909년 일제가 민적법을 시행할 때까지도 저런 신분적 굴레가 남아있었다고 할 수 있고 실상은 일제시대 내내 신분 차별은 존재했다. 100년도 안 되는 최근까지도 그 신분제의 그림자가 남아있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한 세대를 30년으로 잡는 일반적인 예를 본다면 3대 전만 보면 조상의 신분을 쉽게 알 수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하지만 어떤 아이가 우리집안은 머슴이었어요~ 백정이었어요~ 하고 숙제를 제출하겠는가? 결국은 미화되고 윤색된 내용을 진실인양 제출하게 되고 만다. 아이가 거짓말을 하던지 거짓말을 진실로 착각하게 강요하는 꼴이다.

사회생활을 하면서야 남의 조상을 꼬치꼬치 캐물을 일도 없고 그럴 만큼 나이를 먹은 것도 아니라서 알 수 없지만 인터넷 상에서는 이런 저런 경우로 그 집안의 내력을 알 수 있는 기회가 있는데 일반적으로 자기 3대 이상의 선조가 무슨 일을 했는지 정확하게 모르는 경우가 많다.

왜 그럴까? 사실은 그 집안의 어른은 당연히 3대조가 어디서 무슨 일을 하셨는지 알고 있다. 할아버지의 아버지가 무슨 일을 하셨는지 고아가 아닌 다음에야 모를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그런데 왜 모르거나 대충 얼버무린 상태로 알고 있을까?

광화문 해태상과 조선 어린이

저 시절이 그리 옛날이 아니다.

그건 일제시대 일반적인 환경만 알고 있어도 쉽게 유추할 수 있는 일이다. 집안 어른들이 말하고 싶지 않은 비밀 뭘 숨기고 있는 걸까? 우리 집은 뼈대 있는 양반(멸치)이 아니란 말인가?

1.     일제시대에는 신분제도가 법적으로는 폐지된 상태이다. 하지만 폐지 된지 얼마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마을의 모두들 그 집안의 신분을 서로 알고 있었다.

2.     대부분의 직업은 농업(지주를 포함해서)이었다. 새롭고 다양한 직업이 나타나던 시대이긴 하지만 전형적인 농업국가이고 농업이 직업의 대부분이었다.

3.     농업이 직업이긴 하지만 땅을 소유한 것은 소수의 지주였고 대부분은 소작농 또는 머슴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네 할아버지는 소작농 또는 머슴이었다라고 말하고 싶은 어른이 있겠는가? 물론 지주집안은 기본적으로 양반(진짜던 가짜던)집안일 가능성이 높다.

 결국 조상을 조사해오라는 숙제는 조상이 양반이라는 전제가 깔려있게 된다. 누가 너희 할아버지는 노비 또는 소작농이나 머슴 또는 백정이었다는 사실을 적어올 것을 기대하고 숙제를 내겠는가? 그리고 당연히 할아버지가 그런 직업이었다고 말하는 경우를 본적이 없고 그건 당연한 일이다.

 따지고 보면 조사할 가치도 없는 경우가 많다. 직업의 대부분이 농업이고 그 중에 소수만이 지주(선비)인 상황에서 조사할게 뭐 있겠는가? 지주 양반을 제외하면 소작농 그도 아니면 천대받던 직업일 뿐인데 말이다. 이러다 보니 진짜 내력보다는 조작되고 윤색된 내력이 진짜 인양 남게 된다.

 조상이 관직에 나가고 학문을 했다는 게 그렇게 흔하게 가능한 일일까? 생원, 진사만 해도 벼슬처럼 불러줄 정도로 어려운 관문인 게 현실이었는데 말이다. 다음 편에서는 누구나 가지고 있는 성씨 문제 이야기 해보겠다.

  1. 호박 2009.03.06 12:51 신고

    그러고보니 호박을 비롯해.. 주변에 우리집안은 다 내놓라했던 양반집이였어! 라는 분들만
    계시네욤^^ 그럼 누가 양반이 아니였을까.. ㅋㅋㅋ


    즐거운 금욜입니다^^
    어제 내린 비로 날씨가 조금 쌀쌀해졌네요~
    이럴때 고뿔조심^^ 오늘하루도 웃음꽃이 활짝 피시길요^^ 방긋!

    아참! 즐점하세요오오오^^

  2. 뭐가 문제죠? 2009.03.06 13:18 신고

    그 숙제가 자신의 조상들이 양반이였나 상놈이였나 조사하는게 아니고 자신의 할아버지, 할머니, 증조, 고조 할아버지 존함이 어떻게 되는지 언제 태어나서 언제 돌아가셨는지 알아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입니다.. 거기다가 자신의 조상 중에 높은 관직에 있었다면 자긍심도 가질 수 있구요... 연예인 신변잡기까지 줄줄 외는 요즘 아이들에게는 더욱 그러합니다...
    논리가 너무 삐약 된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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