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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로는 safe house 또는 safehouse라고 표기되는 안전가옥 흔히 뉴스 등에서는 안가라는 약칭을 많이 사용하는 안전가옥에 대해서 알아보자. 안전가옥이라고 하면 흔히 안전한 집을 연상하기 쉽다. 하지만 안전가옥이라는 존재는 단순히 안전한 집을 뜻하는게 아니다. 이제 그 안전가옥을 자세히 알아보자.

안전가옥 - 안가 - safehouse - 초대소 - 아지트

저 단어들은 모드 한가지 목적의 시설을 뜻한다. 바로 철저한 보안이 있는 시설이다. 우리가 가장 최근에 접했던 안전가옥 이야기는 이명박대통령이 취임전에 머물던 시설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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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위에 사진은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 전에 머물렀던 삼청동의 안가(안전가옥)의 모습이다. 원칙상 존재 자체가 비밀이어야 되는 안가지만 정치적 목적으로 사진과 위치 등 자세한 정보가 공개 된거 같다.

일반적으로 안전가옥은 국가기관이나 특수 정보기관 등이 비밀 유지 등을 위해 이용하는 집을 뜻한다. 따라서 일반 보안시설들 그러니까 청와대나 각급장관의 공관 등은 비밀이 아니기 때문에 안가라고 할 수는 없다.

실상 가장 유명한 안가는 박정희 대통령이 마지막 술잔을 기울였던 궁정동 안가라고 할 수 있다. 영원히 역사에 남게 된 이 시설은 국정원의 전신인 중앙정보에서 관리하던 시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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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사건으로 고급 술의 대명사가 되어 버린 시바스리갈이 보인다.

저 때 중앙정보부에서 관리하던 요인용 안전가옥은 12채가 있었다고 한다. 그 대부분을 김영삼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철거해버린다. 안전가옥이라는 시설 자체는 철저한 보안이 생명이다. 가장 확실한 보안이란 무었일가? 존재 자채를 지우면 그게 가장 철저한 보안이다. 시설이 노출되지 않는 다면 경비원 할아버지 한 분만 있어도 그 시설의 경비는 보장 될 수 있다. 따라서 일반적인 안전가옥은 그 존재 자체가 비밀이다.

안전가옥은 왜 필요한가?

박정희 대통령이 최후를 술자리에서 맞으면서 안가의 이미지는 상당히 퇴패적인 곳으로 인식되는 부작용을 낳았다. 하지만 안전가옥이라는 곳은 보안을 요하는 일들을 편리하게 행사하기 위한 시설이다.

예를 든다면 대통령이 외부인사를 만나서 의견을 듣고 싶을 때 이용할 수 있다. 청와대에서 면담할 경우에는 출입 사실이 기록에 남고 여러곳에서 지켜보는 눈이 있기 때문에 그 사실이 누출되기 싶상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측근이 싫어하는인사를 대통령이 만나고 싶다면 어디서 만나야 겠는가?

비공식적인 개인적인 행사를 치루기 위해서도 안전가옥은 필요하다. 대통령도 개인 사생활이 필요하고 개인적인 휴식이 필요하다. 청와대에서 벌어지는 일은 아무리 사적인 행위라고 하더라고 세상의 이목을 끌고 공적인 평가를 받을 수 밖에 없다.

예를 들어서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자 신분으로 이용했던 삼청동 안가는 금융연수원 맞은펴에 있으면서 청와대와 직접 연결되어 있는 시설이라고 한다. 테니스 코드가 잇는 정도만 특이하고 방이 4개 있는 일반 가정집 수준의 시설이라고 한다.

물론 안전가옥 답게 방탄유리와 도청 방지시설 등이 갖춰져 있고 24시간 CCTV로 주변이 감시된다는게 좀 다르지만 말이다. 물론 이런 이야기는 순수한 정치적 목적의 안전가옥을 이야기한거다.

존재가 들어나지 않는 안전가옥

간첩 원정화 사건에서도 그랬고 현재 북한에서는 황장엽씨가 머물고 있는 안전가옥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서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과거 이한영씨의 암살 사건을 겪은 우리 정보당국에서는 황장엽씨의 안전을 위해서 이 안전가옥은 철저한 비밀로 하고 있다. 이런식으로 첩보활동과 관련된 안전가옥은 철저한 비밀로 관리 되고 있다.
CIA 안전가옥

무지막지하게 거대한 CIA 훈련장


미국 CIA의 경우를 보면 소련의 스파이가 망명을 하면 그가 진짜 망명자인지 위장 망명자인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철저한 감시설이 있는 안전가옥에서 상당기간을 신문하고 조사했다고 한다. 이 안전가옥의 경우 실내 벽은 물론이고 정원의 바위나 나무에까지 카메라와 도청장치가 장치가 교묘하게 설치되어 있어서 24시간 감시와 기록을 했다고 한다.

북한이 남파간첩들을 교육하는데 사용하는 초대소도 일종의 안전가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알려진 안가들

1993년 김영삼 대통령이 취임하고 기존에 정치적 목적으로 운영되던 안전가옥들을 대대적으로 정리하면서 일단에게도 안전가옥이 공개되게 된다. 박정희 대통령이 최후를 맏았던 안전가옥을 포함해서 청와대 인근에 있던 12개의 안가가 대거 정리되면서였다.  당시 궁정동에 6개, 청운동에 3개, 삼청동에 3개 그리고 나머지는 구기동과 한남동 등에 있었다고 한다. 현재 일부 안가는 비서실장이나 헌법재판소장의 공관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인터넷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이야기 중에 하나는 독재자 박정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인터넷으로는 일반적으로 그의 철권 독재를 비판하고 특히 일제 시대 만주군관학교 출신이라는 이유로 친일파로 몰아세웁니다.

비판하는 분들의 많은 분들은 박정희 시절을 살아 보지 못한 분들이 대부분이고 그 시절에 반정부 활동을 하던 분들의 글을 그것도 인터넷에서 조각난 글을 읽고 그런 경향을 보이는게 눈에 띄입니다. 그리고 박정희의를 이야기할 때 쉽게 부정하지 못하는 그의 경제발전 성과입니다.

솔직히 그의 경제발전성과 마저도 폠하하려는 글들이 보이지만 역사에서 가정은 의미가 없고 더군다나 그가 그 시기에 국가를 이끈 대통령이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외국에서 권의주의적인 독제가 초기 경제 발전에 얼마나 효과적인가에 대해서 연구하는 사태까지 만들어낸 장본인이 박정희지요.

사실 우리는 동남아 국가들에서 우리보다 민주화를 먼저 얻었지만 경제가 불안정함으로 정치가 흔들리고 다시 경제가 나빠지는 악순환을 아직도 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민주화를 늦게 얻었지만 경제를 얻었고 그를 바탕으로 흔들리지 않는 민주화를 얻었습니다.

혹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진정한 민주화의 바탕은 경제 발전없이 이룰 수 없는 거라고.." 네 배고픈 사람은 도를 논할 수 없습니다.

박정희의 5.16과 친일논란은 다음 기회에 한번 포스팅해보겠습니다.



박정희는 조국근대화에 확고한 철학과 원대한 비전을 바탕으로
시의적절한 제도적 개혁을 단행했다. 매우 창의적이며 능률적이었다." - 카터 에커트 (하버드대학 교수)

"아시아에서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한 위대한 세 지도자로 일본의 요시다 시게루와 중국의 덩 샤오핑 그리고 한국의 박정희를 꼽고 싶다" "오직 일에만 집중하고 평가는 훗날의 역사에 맡겼던 지도자" - 리콴유 (전 싱가포르 수상/현 싱가포르 고문장관)

"세계 최빈국의 하나였던 한국이 박대통령의 새마을운동을 시작으로 불과 20년 만에 세계적인 무역국가가 되었음을 경이롭게 본다." - 폴 케네디 (예일대학 교수)

"박정희는 한국경제 발전의 유공자" -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박대통령의 역사적 큰 공헌은 그의 뛰어난 지도력 하에 한국을 저개발의 농업국가에서 고도로 성장한 공업국가로 변모시킨 것이다." - 앰스덴 (MIT 정치경제학 교수)

"박정희 정권 18년 동안의 목표는 자립경제력을 갖춘 현대국가의 건설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그 목표를 성공적으로 달성했다." - 맨스로프 (러시아 안보연구소 교수)

"중국의 덩 샤오핑은 세계 유례없는 한국의 연 10% 급성장과 경제부상에 놀라며 박정희식 경제개발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 마홍 (중화인민공화국정책과학연구회장)

"박정희 대통령은 매우 강한 지도자였으며 대기업을 일으켜 국부(國部)를 증진시킨 훌륭한 지도자이다" -  마하티르 (말레이시아 전 총리)

"박정희 근대화 성공으로 중산층 창출이 되고 이것이 한국 민주주의 토대가 되었다. 박정희야 말로 한국 민주주의 발전에 가장 크게 기여하였다." - 2005. 2.4 오버홀트 (美 카터 전 대통령 수석비서관)

"20세기의 위대한 아시아 지도자들 중 20명중에 한명" - 뉴욕타임스

"박정희는 비록 민주화운동을 억압하였으나 역설적으로 민주주의에 필수적인 중산층을 대폭 창출시켜 한국 민주주의 발전에 가장 크게 기여하였다." - 1991.4.2 김상기 (충남대학 교수)

"민주화란 것은 산업화가 끝나야 가능한 것입니다. 자유라는 것은 그 나라의 수준에 맞게 제한되어야 합니다. 이를 가지고 독재라고 매도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2001.6.7 앨빈 토플러 (미래학자/뉴욕대학 명예박사)


"1965년 필리핀의 1인당GNP가 270달러였을 때 한국의 1인당GNP는 102달러 였지만 2005년 필리핀의 1인당 GNP가 1030달러였을 때 한국의 1인당GNP 16500 달러로 변하였다"

"가난한 절대빈곤의 후진국에서 조국보다 잘살던 동남아 나라들을 따돌리고 산업화의 기틀을 마련한 박정희 대통령의 지도력이 존경스럽다" - 아로요 (필리핀 대통령)


"중국의 덩 샤오핑의 개혁은 박정희 모델 모방" - 美, RAND 연구소

"매 회의마다 우리 농촌과 국토에 가졌던 뜨거운 애정, 빈곤했던
우리 역사에 대한 한에 가까운 처절한 심정, 그리고 빈곤을 극복하여 경제대국을 이룩하려는 치열한 집념에 숙연해지곤 했다"- 고건 (대한민국 전 총리)

"많은 몽골인들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리더십과 개발모델에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나 또한 그렇다. 한국은 박 전 대통령의 지도 아래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고 경제개발의 금자탑을 쌓아올렸다" - 잔라빈 차츠랄트 (前 몽골 총리)

“1960년까지도 남한은 성인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79달러로 가나나 수단과 같은 지구상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였다. 그 당시 세계은행 보고서는 버마와 필리핀의 앞날을 장밋빛으로 보았다. 천연자원이 부족하고 에너지원이 없는 남한은 경제적 전망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남한은 오늘날 세계 11대 무역국이며 1996년부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이다. (중략) 불리한 자연 공간적 전제에도 불구하고 남한은 경제기적을 이루어 냈다.” 독일 국정 교과서(고교 상급반 지리 92쪽)

“남한은 세계경제로 통합되었다. 대통령 박정희(1961∼79)는 강력한 손으로 남한을 농업 국가에서 산업 능력을 가진 국가를 형성했다. 수도 서울은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독일 국정 교과서 (중학교 지리 109쪽)

"박정희 대통령은 나의 롤모델" -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아프리카에서도 한국의 새마을운동을 해 보는 게 어떨까요." -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신화를 만든 한국경제의 건축가!" - 美, 뉴욕타임스

"어렵던 시절, 한국을 이끌어 고도로 공업화된 민주국가로 변화시킨 역사적 역할을 담당한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 깊은 존경심을 가지고 있다. 그는 후임 대통령들이 본보기로 삼을 만한 유산을 남긴 한국에서 가장 성공적이었던 지도자들중 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 무샤라프 (파키스탄 대통령)


"박정희가 없었다면 오늘날의 한국도 없다. 박정희는 헌신적이었고, 개인적으로 착복하지 않았으며, 열심히 일했다. 그는 국가에 일신을 바친 리더였다" - 2006.11.11 에즈라 보겔 (하버드대학 교수)

  1. 어멍 2009.04.24 17:40 신고

    "박정희가 없었다면 오늘날의 한국은 없다"
    긍정적 의미든 부정적 의미든 이말은 진실에 가깝죠.
    개인적으로는 박정희씨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지만 그가 경제발전으로 근대화에 기여한 것도 사실이고 이로 인하여 아이러니컬하지만 어느정도 안정적 민주주의의 토대를 쌓은 것도 사실이지요.
    고교평준화, 그린벨트, 수도이전 등의 정책은 지금도 의미있고 개인적으로 지지하는 정책입니다.

    아이러니, 새옹지마가 어디 인간사뿐이겠습니까? 한국전쟁만해도 혹자는 전근대의 잔재를 청산한 긍정적의미를 강조하기도 하더군요. 일종의 리셋, 포맷이라고 해야겠죠.

    동영상을 보니 노래실력은 별로인 듯...수줍음도 타고...
    박정희씨 사망 때 어린 마음에 뭣모르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렀던 기억이 새롭네요.

    • 어멍 2009.04.25 11:35 신고

      저보다 연상이신 것 같군요.^^
      한국전쟁 포스팅 기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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