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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보다보면 80년에 대한 이야기들이 무척이나 많다. 물론 그 80년의 이야기 대부분은 광주와 관련된  이야기들이다. 하지만 조각 조각 나오는 이야기들을 보면 벌써 너무나 오래된 이야기가 되어서 그 때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대부분이고 돌고 도는 이야기속에서 그 때의 이미지가 화석화됐다는 느낌도 든다.

한편으로는 80년 5월의 광주는 엄청나게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서 신화가 되가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한다.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전혀 다른 시각의 악다구니가 터저 나오기도 하고 말이다.

이제 근 30여년(한 세대를) 전 이야기가 되었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역사가 되고 역사가들이 좀더 객관적인 시각에서 그 일을 기록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터넷 상에 너무 천편일률적인 이야기들만 떠돌고 있기에 5월 바로 전 4월의 이야기를 해본다.

80년 4월의 다이너마이트

80년 4월에는 무슨 일이 있었는가? 4월의 사건을 미화하는 글들이 최근에는 종종 나오고 있는것도 같지만 5월을 이야기 하는 진보적인 인사들도 4월을 이야기하기는 꺼려했던게 사실이다. 시간이 지나고 4월의 폭력이 잊혀지면서 이를 다시 그리고 있는 시점이다.


고한읍 어딘가에 고래가 산다는 걸 나는 몰랐다.
까아맣게 몰랐다.
'사북사태' 때도 그냥 어용노조만 거기 있는 줄 알았다.
혹등고래가 산 속에 숨어 탄맥을 쌓고 있는 줄은 몰랐다.
그냥 막장인 줄만 알았다.

                                       - 이건창의 '폐광촌을 지나며' 중에서

저 시에 등장하는 사북사태가 바로 80년 4월에 있었던 사건이다. 80년 4월 21일부터 24일까지 강원도 동원탄좌 사북영업소에서 벌어진 폭동이 그 사건이다. 6000여명이 참가한 유혈폭동으로 경찰관 1명이 숨지고 160여 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던 사건이다.

폭동의 발단은 어용노조(사측과 결탁한 꼭두가시 노조)와 작은 임금이 문제였다. 당시 다른 산업 현장에도 어용노조와 관련된 문제는 많았다. 하지만 사북사태는 왜 사망자가 나오고 끔찍한 고문과 린치가 벌어지는 증오(자세히 언급하고 싶지 않다.)의 잔치가 벌어졌던 것이가? 그 일면은 막장인생(2008/09/02 - [숨겨진 이야기/근현대사 이야기] - 막장인생의 어원)이라는 측면이 작용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또 다른 측면이라고 하면 그 곳이 강원도의 외진 곳(지금도 그렇지만 사건 당시는 근 30년 전이다.)이고 다이너마이트 같은 폭발물을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는 거다. 그들은 더이상 물러날 곳이 없는 삶을 살고 있었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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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이 사건이 5월에 끼친 영향

흔히 광주의 일을 이야기하면서 음모론적인 이야기들이 나도는 이유는 광주의 참극이 갑자기 뚝떨어저서 벌어진 것처럼 이야기 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80년에는 그러니까 79년 10월(그 이전까지) 부터의 사건의 계속 연속되었다는 것이다.

사실 저런 이야기는 광주사태 청문회에서 신군부측 인사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었다. 중앙정부 입장에서 바라본 광주의 일은 4월에 있었던 사건의 연속이었고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도 그렇게 인식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4월의 피가 5월의 더 큰 피를 불러온 측면이 있다는 거다.

첨언: 혹시 처음 듣는 사건이라면 이 짦은 그로 어떤 정보를 얻었다고 생각하지 말았으면 좋겟다. 인터넷의 조각글들은 내용 전달 목적에 상관 없이 받아 들이는 사람이 쉽게 외곡된 정보를 가지게 만든다. 당시 신문기사를 직접 읽어볼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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