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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 특히 인터넷에서는 방사능에 대한 포비아 수준의 이야기들을 봅니다. 특히 일본 방사능에 대해서 두려워하는 목소리도 많이 봅니다. 실상 우리 땅에 사는 우리는 방사능 하고 꽤나 친숙합니다. 먼저 아래 자료를 보시고 이야기하겠습니다.

 

대한민국 지하수 중 라돈 함유량 정보대한민국 지하수 중 라돈 함유량 정보


위에 자료는 국가기관에서 공식적으로 조사하고 발표한 자료입니다. 당시에는 혼란을 우려해서 공개를 안했는데 어느 순간 자료가 공개되어 있어서 텔미가 가져왔습니다.

먼저 라돈이 뭔지 모르는 분들을 위해서 이야기해드리면 라돈은 색갈이나 냄새도 없고 호흡기나 위장관을 통해서 체내에 흡수되면 폐암, 위암 등 각종 암을 유발하는 1급 발암성 방사성 가스입니다. 담배에도 포함되어 있어서 담배가 해로운 근거 중에 하나로 언급되지요. 근데 우리나라 우리 땅에는 저 그림처럼 흔합니다…… 우리 땅에서 막 어벤저스 태어날 거 같은 자료입니다.

미국 기준으로 음용가능한 허용기준치가 4000피코 큐리입니다. 근데 저 자료 보시면 4000이 넘는 건 흔하고 8000이 넘는 곳도 많이 있지요. 듣기로 8000을 한참 넘는 곳이 많았다고 합니다.

 

우리가 일본을 방사능 원숭이라고 놀리면 일본에서 너희 방사능이 더 높다고 하는 근거가 저 겁니다. 우리는 국민 혼란을 우려해서 많이 안 알려졌지만 외국에는 유명한 이야기지요.

인용한 자료는 지하수에 포함되어 있는 자료지만 라돈 가스는 그냥 땅에서도 자연적으로 뿜어져 나옵니다. 그게 물에 녹으면 지하수에 포함되는 거고 공기에 섞이면 공기중에 오염으로 측정 되는 거지요. 결국 저 지역에서는 땅에서도 라돈 가스가 많이 나옵니다.

2013년 겨울 조사에 따르면 평균 102Bq/㎥ 였다고 합니다. 미국 기준 140Bq/㎥보다는 낮지만 독일기준 100Bq/㎥보다는 높았다고 합니다. 근데 이건 평균이고 땅에 가까운 단독주택은 134Bq/㎥ 연립주택 79Bq/㎥ 아파트 56Bq/㎥로 지표와의 거리에 따라서 큰 차이가 있었다고 합니다.

결국 땅에 가까운 단독주택이 저 자연방사능이 심한 지역이라면 쉽게 허용기준을 넘을 거라는 사실을 예상할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보면 알고 조심해야 되는 거고 또한 우리 조상 대대로 살아온 땅 임으로 너무 겁먹을 필요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염이 심한 지역에서는 지하수 마시지 말고 특히 몸에 좋다고 약수 마시지 말고요. 저거 많이 먹는다고 헐크 안됩니다. 병만 생깁니다.

추운 겨울이라도 집 환기는 꼭 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겁니다.

  1. 2018.01.11 01:03

    비밀댓글입니다

15소년 우주표류기 홍보전단 전면15소년 우주표류기 개봉 홍보전단 후면으로 1980년 7월 27일 여름방학에 개봉한 에니메이션이다.


15소년 우주표류기 개봉 홍보전단 후면으로 1980년 7월 27일 여름방학에 개봉한 에니메이션이다.

1980727일 국제극장에서 개봉한 15소년 우주표류기 홍보용 전단지 실물입니다.

인쇄상태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당시 인쇄 기계와 기술 문제로 인해서 컬러 인쇄의 경우 4색 핀이 조금씩 어긋나는 현상 때문에 저와 같은 인쇄 품질을 보여주는게 일반적이었습니다. 참고로 당시에 저런 종류의 인쇄물을 만들기 위한 편집이라면 실제로 칼과 가위로 오리고 붙이는 편집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걸로 인쇄용 필름을 만드는 거지요.

지금과는 다른 인간적인 땀과 노력 인내심을 필요로 했습니다. 기술이란 칼과 가위를 얼마나 잘 사용하느냐 하는 거였지요.

 

저기 나오는 국제극장은 광화문에 있던 개봉관인데 지금은 없어진 개봉관이라는 개념을 설명하면 영화를 처음 상영하는 극장을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1급 극장인거지요.

지금이야 전국에서 동시에 신작 영화를 개봉하지만 저 시절에는 서울에 있는 십여개의 개봉관에서만 신작 영화를 상영하고 이후에 서울의 재개봉관과 지방의 극장에서 영화를 상영했습니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당시에는 모든 영화가 필름으로 제작되고 만들어지기 때문에 필름 자체가 고가였던 이유도 있고 필름 자체가 저작권을 가지는 효과도 있었기 때문에 무한정 복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소수의 필름을 전국 극장이 돌려 썼던 거지요.

그리고 개봉이라는 의미는 철로 만든 필름 케이스를 연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개봉관이라는 신작영화 필름 케이스를 처음 열어서 상영하는 곳이라는 뜻이지요.

이런 특성으로 인해서 서울 동시상영관 같은 3류 극장은 인근의 동시 상영하는 극장하고 필름을 돌려 쓰기도 했습니다. 여기서 A영화 상영하고 B필름은 옆 극장에서 틀고 쉬는 시간에 AB를 교환하고….

그러다 오토바이 사고라도 나면 필름 올 때까지 관객들은 마냥 기다려야하 지요. 그러면 할 일없는 동내 아저씨들은 극장 안에서 담배를 하나 물고 피우는 거지요. 당시에는 극장안에서 흡연이 가능했답니다.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서 15소년 우주표류기는 여름방학 흥행을 목표로 727일 개봉했네요. 당시는 여름방학이 길었기 때문에 저 시점이면 방학의 딱 중간쯤 입니다.

15소년 우주표류기라는 에니메이션은 '별나라 삼총사', '타임머신001'에 이은 꿈나라 만화극장 3부작의 마지막 작품입니다.

 

간략한 줄거리라면 쥘 베른의 15소년 표류기의 우주판입니다. 사고로 아이들만 탄 우주선이 발사되고 우여곡절을 격은 후 무사히 구조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애니메이션 품질은 당시의 이전 작품에 비해서 진일보한 모습이었고 해외에도 수출되어서 DVD까지 발매되었다고 하니까 상당한 성공작이라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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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컴퓨터 가격표1994년 상반기 컴퓨터 주변 기기들의 가격표 cad류의 고가 소프트웨어 가격도 볼 수 있다.

1994년 당시 주변기기 가격표입니다.

HP 흑백잉크젯 프린터가 38만원 EPSON 도트 프린터 작은게 36만원임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동서가 하드웨어 전문 유통이 아니기 때문에 당시 시중 가격보다는 좀 비싼 경향이 있지만 그래도 당시 가격은 저랬습니다.

하드 디스크 이름에서는 이제는 없는 삼성하드 코너하드 맥스터하드 등 하드디스크 전성시대였음을 알 수 있네요. 

340메가 초거대 용량이 30만원입니다. ^^

모니터도 20인치가 130만원하는 걸 볼 수있는데 저걸 가정에서 쓰는 경우는 보질 못했습니다. 지금 기준에서는 상상이 안될지 모르겠습니다만 한마디로 엄청난 크기와 무개를 가진 물건이었으니까요.


모뎀은 저렴한 내장 2400bps 모뎀과 초고가의 외장형 9600bps 모뎀을 볼 수 있습니다. CD롬 드라이브 가격이 25만원인걸 보면 첨 옛날 가격이지요.

소프트웨어 가격을 보시면 오토게드류는 지금이나 저시절이나 엄청난 고가를 자랑하고 있는걸 알 수 있습니다. 고가의 소프트웨어에 3D소프트웨가 없는게 보이시는 분은 뭘 좀 아시는 분인데 저 시절 컴퓨터는 3D는 꿈도 못꾸던 시절이었습니다.

한글 입출력이라는 부분을 보시면 저 당시는 DOS시절이고 호환성 문제로 영문DOS를 주로 사용하면서 한글 입출력을 위해서 별도의 소프트웨어를 설치해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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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린세스메이커2 광고지면프린세스 메이커2의 광고와 당시 가격 판매 정책을 알 수 있다.


1994년 2월에 한국에 정식 한글판으로 발매된 프린세스메이커2의 광고이다. 일본에서는 1993년에 발매된 만큼 불법복제가 횡행하던 시절인지라 해볼 사람들은 이미 다 해본 시점이지만 초판 1만부를 찍을 정도로 판매회사는 기대가 컸던거 같다.

사전 예약이니 매진이니하는 생각은 당시 일본에서라면 가능했겠지만 당시 대한민국에서는 불가능한 이야기였다. 물론 극히 일부 사람들은 사전예약으로 구매하기도 했지만 그럼 특전으로 뭐라도 줘야 된다는 생각은 못한거 같다.

하드공간 13메가소요.. 지금 생각하면 가소로운 용량이다.

아마 이시절을 기억하는 분들이라면 저 업그레이드 대행점의 이름에서 추억을 떠올리는 분들이 더 많을거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프린세스 메이커는 육성시뮬레이션 게임의 붐을 가저온 게임으로 육성 시뮬레이션 최고의 명작이라는 평가를 듣는 게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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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미는 최근 갈수록 험악 해지는 북핵문제로 인해서 간혹 올라오는 인터넷 글들 중에서 의외로 화학무기 공격에 대해서 무지하거나 지나치게 겁을 내는 이야기들을 보면서 약간 의아한 생각이 들곤 했습니다. 텔미가 알고 있는 화학무기 공격에 대한 대처방법을 먼저 이야기하고 왜 저런 문제가 생겼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우선 아래 자료는 행정자치부에서 배포하는 전시 화학무기 공격으로부터 대처하는 요령에 대한 공식 자료입니다.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높은 지역으로 대피하고

2.     바람 반대방향으로 대피하고

3.     좌우측으로 회피하라는 것입니다.

무방비 상태에서 실제 화학무기 공격을 당했다면 23번은 현실적으로 시도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공격을 알아채기 전에 당할 가능성이 높고 당연히 오염지역을 안다면 접근하지 안을 테니까요.

가장 현실적이고 도움이 되는 내용은 1번입니다. 화학무기는 참호에 있는 군인을 살상할 목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공기보다 무겁습니다. 공기보다 가볍다면 바로 공기중으로 날아가 버리니 무기로서의 효용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인구밀집지역의 대도시라면 결국 아파트나 빌딩의 고층부 실내라면 그걸로 충분히 안전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겁니다. 물론 외부 공기 유입을 차단한다면 더 좋겠지요.

그리고 반대로 고층건물이 없는 지역이라면 화학무기 공격을 할 이유가 없습니다. 사람이 드문 지역에 쏴 봐야 효과가 없으니까요.

마지막으로 군에서는 왜 이런 정보는 안 가르쳐줄까요? 화학무기의 위험과 방독면을 비롯한 장비 사용법 그리고 재독 키트 사용법은 가르쳐주지만 저런 피하는 방법은 교육 안하지요.

그건 군인은 전선을 이탈하면 안되니까 그렇습니다. 적이 화학무기 공격을 해오는 이유는 전선을 붕괴시키려는 목적인 만큼 방독면을 비롯한 장비를 착용하고 전선을 지켜야지 고지대로 대피하고 바람 따라서 이리 저리 뛴다면 그 전선은 바로 붕괴되고 말 겁니다.

무서운 화학무기 공격이라도 사전에 그 특성을 알고 대비한다면 최악에 상황에서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거라고 텔미는 생각합니다.

  1. 전역자 2017.06.10 23:58 신고

    죄송한데 군대에서 화생방 교육시에 교육하고 있습니다만.. 그리고 교본에도 나와있어요

평소에 다루고자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주제이긴 하지만 요즘 북한에 대한 미국의 공격이 이슈가 됨에 따라서 전쟁이 발발했을 때 구체적인 행동요령을 설명하려고 합니다.

텔미는 인터넷에 떠도는 이야기들을 보면서 명백하게 군대를 갔다 온 사람들 조차도 엉터리 정보를 이야기하고 지나친 걱정을 하는 점이 이해 안되는 측면도 있습니다.

우선 이 포스트에서는 행정안전부에서 발행한 국민전시행동요령을 첨부합니다.

전시국민행동요령.part1.exe

전시국민행동요령.part2.rar

전시국민행동요령.part3.rar


정부는 이전부터 이와 같은 자료를 발행하고 배포해왔지만 막상 이런 내용을 궁금해하는 사람들은 이런 문서를 뭐라고 검색해야 되지는 몰라서 전시 대책’, ‘전쟁 생존범’, ‘화생방 대처법’, ‘전쟁등등으로 검색하지만 이에 대한 공식 명칭은 전시 국민 행동 요령이지요.

사실 텔미는 저 사건이 났을 때 어떻게 저런 일이 발생할 수 있었는지 의문스러웠는데 이 내용을 보고 모든걸 이해하게 됐다.

KT가 과거 정부기관이었던 시절의 영향과 방대한 조직으로 인해서 부실한 관리와 각종 이권을 자기식구끼리 나눠먹는 관행이 난무하는 조직이었다는 건 텔미도 과거 KT와의 업무경험으로 익히 알고 있는 문제였는데 그런 관행의 결정판이 바로 저 사건인 거 였다.

저 당시에 KT의 홈페이지가 미로와 같고 느린 개판 오분 전으로 개발된 사건도 있었는데 일반인들이 자주 접속하는 사이트인 만큼 문제는 쉽게 들어 났는데 원인은 KT의 그런 기업 문화가 남아서 판을 치던 시기가 바로 저 시기였던거 같다.

  1. 케이티사용자 2018.01.05 02:11 신고

    대박 쓰레기케이티

  2. 케이티사용자 2018.01.05 02:11 신고

    대박


먼저 논란이 되고 있는 사진과 글을 보자~


후쿠시마 뿐만이 아니고 체르노빌 등 방사능 누출 사고가 있었던 지역에서는 저런 괴담들이 많이 돌아다닌다. 기형이나 거대한 각종 농산물 말이다.

방사능이 돌연변이를 일으킨다는 이야기의 과학적 근거는 방사능의 고에너지가 DNA를 파괴하는 특성으로 인해서 돌연변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인한다. 하지만 저 굴이 정말 후쿠시마의 방사능 탓일까?

아래 사진을 보고 이야기해보자


아무 사전 정보 없이 저 달팽이를 후쿠시마에서 발견된 대량의 돌연변이 거대 달팽이라고 이야기하면 어떨까? 무시 무시한 공포심이 들지 안는가?

사실 저 사진은 아프리카 원산지의 Giant African Snails이 미국에 밀수입되다 세관에서 적발된 사진이다. 밀수입 목적은 식용이라고 한다. 요리하면 골뱅이 맛일까 텔미는 생각해본다.

마지막으로 아래 사진으로 거대 굴 이야기를 마무리할까 한다.


처음 사진보다 좀 작은가? 그래도 충분히 크다는 점에는 여러분도 동의 할 것이다. 저 굴은 우리나라에서 굴로 가장 유명한 통영산굴이다. 이걸 가지고 후쿠시마 방사능이 통영도 오염시켰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텔미는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 뇌가 후쿠시마 방사능에 오염된 게 아닌가 먼저 걱정된다.

사실 돌연변이는 방사능원인보다는 자연적인 상태에서 더 자주 흔하게 발생한다.


텔미는 작년(2015)에 사용하고 있던 PC를 업그레이드 했고 바로 Windows10으로의 업그레이드를 시도했지만 더블 부팅 문제로 인해서 설치가 안되어서 포기하고 있다고 올해 들어서 빌드가 올라가고 설치되는 것을 확인하고 무료 업그레이드 기간 종료 직전에서야 Windows10 64bit를 설치했습니다.

기왕 설치하는 상황이라 메모리를 4GB에서 12GB로 증설하고 6년째 사용하고 있는 라데온 HD6750을 제거할 것인가를 고민했습니다.

자료 조사를 해보면 최근에 나오는 인텔 CPU에 내장되어 있는 그래픽 성능이 별도로 사용하고 있는 HD6750과 성능에 큰 차이는 없고 전기만 더 먹는다는 결론으로 사용 중에 과감하게 HD6750을 제거했습니다.

그런데 별도의 그래픽 카드를 제거하자 자료 조사와는 전혀 다르게 급격한 성능저하를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가상 데스크탑 기능을 사용해서 백그라운드에서 그래픽 동작을 사용하는 경우 CPU 부하가 이전과 다르게 최대치를 사용하는 결과를 보였습니다

그래서 텔미는 다시 자료를 조사했고 이전의 자료들이 Windows10 DirectX12 이전의 이야기들이었다는 사실을 알았고 다음과 같은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 포스팅은 2014년도 이전 기준의 정보들을 가지고 판단해서 텔미같은 시행 착오를 격는 분이 없기를 바라면서 올려 봅니다.


Windows10 출시 전까지의 내장 그래픽의 유용성에 대한 상식

1. 외장 그래픽카드를 꽂으면 내장 그래픽 기능은 자동으로 비활성화된다.
2. 하지만 바이오스 설정 수동 변경으로 내장 그래픽을 활성화할 수 있으며, 3대 이상의
모니터를 동시에 구동하고자 한다면 제법 유용하다.
3. 내장 그래픽과 외장 그래픽의 성능을 합쳐 게임 성능을 향상시키는 건 대개 불가능하다.
4. 예외적으로 AMD APU 내장 그래픽 + 라데온 외장 그래픽 조합으로 게임 성능을 높일 수 있는 기술도 있다.

DirectX 12 Multi GPU다이렉트X 12에서는 서로 다른 회사의 GPU를 함께 사용해서 가속하는 기능을 지원한다.

Windows10 DirectX 12 출시 이후의 내장 그래픽 변화

외장 그래픽카드를 사용하더라도 내장 그래픽은 활성화되어서 보조적으로 그래픽 처리 성능을 향상시킨다. 위에 그래픽에서 설명하는 내용이 바로 서로 다른 회사의 GPU를 이용해서 가속하는 기능을 설명하고 있는데 그림에는 양대 GPU화사를 표시했지만 현실적으로는 Intel의 내장 그래픽도 포함된다.

이미 윈도우7부터 게임이 아니고 평상시 windows 화면 출력에도 DirectX를 사용하기 시작했던 사실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이는 비싼 GPU를 게임에서만 사용하고 놀리던 이전의 Windows하고는 달라진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데 윈도우10부터는 여기서 한발 더 나가서 외장 그래픽 카드를 사용하고 무용지물로 놀고 있던 내장 그래픽을 보조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정확한 기술적 명칭은 DirectX 12 Multi-GPU Support입니다.

이 기능이 게임에서는 DirectX 12를 지원해야지만 활성화되는 만큼 아직까지(2016.8) 체감할 수 있는 기회가 제한되어 있지만 윈도우 자체 기능으로는 충분히 만끽 할 수 있는 이점이라고 하겠습니다.

텔미가 보는 관점에서는 비싼 그래픽카드를 사용하는 사용자라면 윈도우의 일반 동작 환경에서는 충분한 속도가 나오는 관계로 이 차이를 체감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텔미처럼 내장 그래픽과 큰 차이가 없는 그래픽 카드를 사용하는 경우 확연한 속도 향상의 이점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이전에 텔미는 내장 그래픽카드 꽂으면 내장 그래픽은 무용지물이니 참 아깝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MSWindows10을 출시하면서 트렌드에 따른 기술 변화를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Windows10을 사용하면서 느린 컴퓨터가 이전 보다 빨라졌다고 말하는 분들의 대부분이 부분이 이 기술을 체감한 걸로 보입니다.

 

내장 그래픽 성능과 저가 그래픽카드의 성능 차이로 고민하시던 분들은 Windows10을 사용하신다면 고민하지 마시고 저 성능일지라도 그래픽카드를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전체적인 속도 향상을 느끼실 수 있습니다.

 

여기Microsoft에서 사용되는 단축 키들을 모두 정리해 놓습니다. 2015년 5월 4일 기준 가장 최신 자료이며 Windows제품 공통으로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는 내용입니다.

Windows 시스템 키 조합

  • F1: 도움말
  • CTRL + ESC: 시작 메뉴
  • 열려 있는 프로그램 간을 전환 ALT + TAB:
  • ALT + F4: 프로그램 종료
  • SHIFT + DELETE: 항목을 영구적으로 삭제
  • Windows 로고 + L: 컴퓨터를 잠금 (CTRL+ALT+DELETE를 사용하지 않고)

Windows 프로그램 키 조합

  • CTRL + C: 복사
  • CTRL + X: 잘라내기
  • CTRL + V: 붙여넣기
  • CTRL + Z: 실행 취소
  • CTRL + B: 굵게
  • CTRL + U: 밑줄
  • CTRL + I: 기울임꼴

셸 개체에 대 한 마우스 누르기/키보드 보조키 조합

  • SHIFT + 오른쪽 클릭: 대체 명령이 들어 있는 바로 가기 메뉴가 표시 됩니다.
  • SHIFT + 더블 클릭: 실행 대체 기본 명령 (메뉴에서 두 번째 항목)
  • ALT + 두 번 클릭: 속성 표시
  • SHIFT + DELETE: 항목을 즉시 삭제 휴지통에 넣지 않고

일반 키보드 전용 명령

  • F1: 시작 Windows 도움말
  • F10: 메뉴 모음 옵션 활성화
  • SHIFT + F10 (이것은 동일한 개체를 마우스 오른쪽 단추로 클릭 하면 선택한 항목의 바로 가기 메뉴를 엽니다.
  • CTRL + ESC: 시작 메뉴를 엽니다 (항목을 선택 하려면 화살표 키를 사용)
  • Esc 키 또는 CTRL + ESC: 시작 단추 (tab 작업 표시줄을 선택 하거나 SHIFT + f 10을 키를 눌러 상황에 맞는 메뉴)를 선택 합니다.
  • CTRL + SHIFT + ESC: Windows 작업 관리자를 엽니다.
  • ALT + 아래쪽 화살표: 드롭 다운 목록 상자를 엽니다.
  • ALT + TAB을: 다른 실행 프로그램 (ALT 키를 누른 다음 TAB 키를 작업 전환 창을 보려면 보류)으로 전환
  • SHIFT: CD-ROM을 삽입시에 자동실행 기능을 넘기시려면 SHIFT 키를 누른 상태로 유지합니다.
  • ALT + SPACE: 주 창의 시스템 메뉴 표시 ( 시스템 메뉴에서 수 복원, 이동, 크기 조정, 최소화, 최대화 또는 창을 닫습니다)
  • ALT +-(ALT + 하이픈): 다중 문서 인터페이스 (MDI) 하위 창의 시스템 메뉴 표시 (MDI 하위 창의 시스템 메뉴에서 수 복원, 이동, 크기 조정, 최소화, 최대화 또는 자식 창 닫기)
  • CTRL + TAB을: 다중 문서 인터페이스 (MDI) 프로그램의 다음 하위 창으로 전환
  • ALT +메뉴의 밑줄된 문자: 메뉴를 엽니다.
  • ALT + F4: 현재 창을 닫습니다.
  • CTRL + F4: 현재 다중 문서 인터페이스 (MDI) 창 닫기
  • ALT + F6: 같은 프로그램에서 여러 창 사이 전환 (예를 들어, 메모장 찾기 대화 상자가 표시 되 면 ALT + F6 전환 찾기 대화 상자와 주 메모장 창 사이)

셸 개체 및 일반 폴더 또는 Windows 탐색기의 바로 가기 키

선택한 개체:

  • F2: 이름 변경 개체
  • F3: 모든 파일 찾기
  • CTRL + X: 잘라내기
  • CTRL + C: 복사
  • CTRL + V: 붙여넣기
  • SHIFT + DELETE: 선택 즉시 삭제, 항목을 휴지통으로 이동 하지 않고
  • ALT + ENTER를: 선택한 개체에 대 한 등록 정보를 엽니다.

파일을 복사 하려면

키를 누르고 CTRL 키를 누른 채 다른 폴더로 파일을 끌어 놓습니다.

바로 가기 만들기

키를 누르고 CTRL + SHIFT를 누른 채 바탕 화면 또는 폴더에 파일을 드래그 합니다.

일반 폴더/바로 가기 제어

  • F4: 이동 다른 폴더로 상자를 선택 하 고 (도구 모음에서 Windows 탐색기에서 활성 상태인 경우) 항목을 상자 아래로 이동 합니다.
  • F5: 현재 창을 새로 고칩니다.
  • Windows 탐색기의 창 간에 이동. F6:
  • CTRL + G: 폴더로 이동 도구를 (Windows 95 Windows 탐색기에만)를 엽니다.
  • CTRL + Z: 마지막 명령을 취소합니다
  • CTRL + A: 현재 창의 모든 항목 선택
  • 백스페이스: 상위 폴더로 전환
  • SHIFT + 클릭 +닫기 단추: 폴더의 경우 현재 폴더와 모든 상위 폴더 닫기

Windows 탐색기 트리 컨트롤

  • 숫자 키패드 *: 현재 선택 아래의 모든 확장
  • 숫자 키패드 +: 현재 선택 영역 확장
  • 숫자 키패드-: 현재 선택 영역을 축소합니다.
  • 오른쪽 화살표: 현재 선택을 확장 하지 않은 경우, 이동 그렇지 않으면 첫 번째 자식 확장
  • 왼쪽된 화살표: 축소 현재 선택 영역이 확장 되어 그렇지 않으면 상위 폴더로 이동

컨트롤 속성

  • CTRL + TAB / CTRL + SHIFT + TAB: 속성 탭으로 이동

내게 필요한 옵션 바로 가기

  • Shift 키를 5 번: 고정키 설정 또는 해제
  • 누르고 8 초 동안 오른쪽 SHIFT 키를 누른 상태: 필터 키 설정 및 해제
  • 5 초 동안 NUM LOCK 키를 누른 채로 누릅니다: 전환 키 설정 및 해제
  • 왼쪽 ALT + 왼쪽 SHIFT + NUM LOCK: 마우스 키 설정 및 해제
  • 왼쪽 ALT + 왼쪽 SHIFT + PRINT SCREEN: 전환 하는 고대비 켜기 및 끄기

Microsoft 자연 키보드 키

  • 시작 메뉴의 Windows 로고:
  • Windows 로고 + R: 실행 대화 상자
  • Windows 로고 + M: 모든 열린창 최소화
  • SHIFT + Windows 로고 + M: 모든 열린창 최소화 실행 취소
  • Windows 로고 + F1: 도움말
  • Windows 로고 + E: Windows 탐색기
  • Windows 로고 + F: 파일 또는 폴더 찾기
  • Windows 로고 + D: 열려 있는 모든 창을 최소화 하 고 바탕 화면을 표시 합니다.
  • CTRL + Windows 로고 + F: 컴퓨터 찾기
  • CTRL + Windows 로고 + TAB: 포커스를 시작에서 빠른 실행 도구 모음, 시스템 트레이 (오른쪽 화살표 또는 왼쪽 화살표를 빠른 실행 도구 모음과 시스템 트레이의 항목으로 포커스를 이동 하는 데 사용)
  • Windows 로고 + TAB: 작업 표시줄 단추 순환
  • Windows 로고 + 브레이크: 시스템 등록 정보 대화 상자
  • 응용 프로그램 키: 선택한 항목의 바로 가기 메뉴를 표시 합니다.

Microsoft IntelliType 소프트웨어가 설치 된 기본 키보드

  • Windows 로고 + L: 로그 오프
  • Windows 로고 + P: 인쇄 관리자 시작
  • Windows 로고 + C: 제어판을 엽니다.
  • Windows 로고 + V: 클립보드 시작
  • Windows 로고 + K: 키보드 등록 정보 대화 상자를 엽니다.
  • Windows 로고 + I: 마우스 등록 정보 대화 상자가 열립니다.
  • Windows 로고 + A: 시작 내게 필요한 옵션 (설치 된 경우)
  • Windows 로고 + 스페이스바: Microsoft IntelliType 바로 가기 키의 목록이 표시 됩니다.
  • Windows 로고 + S: 전환 CAPS LOCK 켜기 및 끄기

대화 상자 키보드 명령

  • 탭:이 대화 상자에서 다음 컨트롤로 이동
  • SHIFT + TAB: 대화 상자에서 이전 컨트롤로 이동
  • 스페이스바: 현재 컨트롤이 단추 경우이 단추를 클릭 합니다.
  • 선택된 된 (윤곽선이 있는 단추) 단추를 클릭 하 여 해당 하는 입력 합니다.
  • ESC: 취소 단추를 클릭 하는 동등한
  • ALT +대화 상자 항목에서 밑줄이 그어진된 문자: 해당 항목으로 이동 합니다.

출처 : https://support.microsoft.com/ko-kr/kb/126449

ESC Key는 바로 탈출







일반적으로 키보드 좌측 상단에 독립적으로 혼자 위치하는 키 입니다. 중요한 위치로 볼 때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키라고 생각되지만 눌러 보면 아무런 동작도 안 합니다. 이 ESC Key에 대해서 하나씩 알아 보겠습니다.


그럼 먼저 ESC라는 글자를 먼저 알아 보겠습니다. ESC는 escape를 줄여서 표기한 글자입니다. 뜻은 탈주하다, 자유로워지다 이정도 쯤이라 키보드의 용도는 짐작이 가리라고 생각됩니다.


사실 앞에서 다룬 키들 보다는 게임 등에서 많이 써서 어떤 동작을 하는지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으리라고 생각되지만 실제로는 창이라든가 메뉴 등을 빠르게 닫을 때 흔히 사용됩니다.



지금이라도 브라우저의 메뉴를 열고 바로 ESC key를 눌러보면 그 동작을 쉽게 확인 할 수 있습니다. 요즘은 Windows 덕분에 마우스를 가지고 모든 메뉴를 다루는 사람이 많아져서 이 키의 사용 법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진 게 현실이지만 말입니다. 그럼 이 ESC Key의 역사부터 알아보겠습니다.


ESC Key의 역사

앞에서 다루었던 prtscn, scrlk, pause key와 다르게 아직도 유용하게 많이 사용되는 이 ESC Key는 특이하게 처음 만든 사람이 알려져 있습니다. 바로 bob bemer라는 IBM에서 일하던 프로그래머가 1960년에 ASCII 문자를 정의하면서 처음 만들었습니다.


약간이라도 컴퓨터를 정식으로 배운 사람들은 한 번쯤 들어봤을 ASCII 셋을 정의한 거지요. 물론 여기에는 ESC CODE라는


제어 문자들이 연관되지만 여기서는 이야기 하지 안겠습니다.


일반적인 사용자들은 ESC Key에 대해서 잘 모르고 더욱이 요즘은 잘 안 쓰는 경향이 있지만 훈련된 개발자들은 이 ESC Key에 대해서 명확한 인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No, Quit, Exit, Cancel, or Abort의 의미로 사용된다고 교육받고 이 용도로 사용하게 됩니다.

프로그래머들 간의 약속이기 때문에 처음 사용하는 프로그램에서 어떻게 빠져 나와야 될지 모를 때 가장 유용한 키보드가 바로 ESC key 입니다.


내가 지금 한 행동을 가장 빠르게 단 한번에 부정하고 취소하는 키가 바로 ESC Key 입니다. 일반적으로 Ctrl+Z는 내가 입력한 내용을 취소하고 되돌리는 역할을 하지만 내가 조작한 내용을 부정하는 데는 ESC Key가 사용 됩니다.


ESC Key의 특별한 동작

중요하게 별도로 있는 키이기 때문에 다음과 같은 특별한 용도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 Windows Key의 대용

Ctrl+ESS를 누르면 키보드에 있는 Windows키와 동일한 효과를 발휘합니다. 지금 Windows라면 바로 눌러 보시면 용도를 아실 수 있습니다. XP이전에는 이 키를 누르고 U를 누르면 shutdown(컴퓨터 종료)이 시작되는 단축키로도 사용됩니다.


- 게임에서 다르지만 같은 의미

게임에서는 일시 중지, 메뉴 불러오기 용도로 사용됩니다. 게임에서 이렇게 사용되는 이유는 본 게임의 흐름을 끊고 빠져나간다는 옛날 프로그래머 관점의 의미가 사용됐기 때문입니다. 원도우즈 시절인 지금도 이런 식으로 적용됐다면 전통을 따른 겁니다.






매일 뉴스에서 우리를 화가나게하고 분노하게하고 마음아프게하는 이야기들을 이야기하지만 그건 개가 사람을 문게 아니고 사람이 개를 물었기 때문입니다.우리가 사는 세상은 너무나 당연해서 뉴스에 안나오는 이런 이야기들이 매일 있는 곳입니다.






 


  1. playonline zuma game 2013.01.22 19:49 신고

    간담회 현장스케치

2010년 11월 23일 여느 때처럼 아침에 출근을 하면서 소연평을 바라봤었다. 아침 해가  아직 뜨지 않았지만 동이 트는 모습에 오늘 사격이 정상적으로 실시될 것을 알았다.  드디어 오후가 되어 사격이 시작되었고 준비한데로 2문은 사격에 미참가하고 혹시 모를 적의 도발에 대비하여 사격태세를 유지한 채 4문이 사격을 실시했다. 또한 다른 모든 중대원은 각자 임무수행 위치에서 대기하였고, 사격은 절차에 의해 정확히 진행되고 맑은 하늘에 한 가닥 선을 그리며 정확히 표적 위치에 명중했다.


2개 관측반 모두 명중을 통보하고 ATT 우승을 확신하며 마지막 임무를 수행하던 중 4포에서 안전 통제관 역할을 수행하던 포술담당으로부터 격발 불량을 보고 받고 천천히 불발탄 처리절차를 시행 하라고 지시를 했다. 다른 모든 포반은 4포가 사격이 끝날 때까지 숨죽여 기다리고 있던 중 쾅! 하는 파열음이 들렸고 상황실에 있던 모든 대원은 무엇인가 이상한 느낌을 받았는지 나를 가만히 쳐다봤다.
 
나는 직감적으로 뭔가 잘못됐다 판단하고 1층으로 올라가 포상을 바라봤다. 바로 눈앞에는 연병장을 지나 방음벽 틈으로 2포의 모습이 보이고 까만 연기가 중대를 완전히 뒤덮고 있었다. 아주 짧은 시간에 주둔지 주변과 마을까지 포탄이 파열하는 모습이 보였고 여기저기서 화염이 일어나는 모습을 보고 신속히 상황실로 들어가 중대 소산과 방독면 착용을 지시하였다.   그리고 부대장님께 주둔지 포탄 낙하 상황을 보고하고 장비 소산을 시키겠다고 건의했다.
부대장님은 신속히 소산을 지시하셨고 나는 행정관과 포술담당, 정비담당에게 상황파악과  피해현황을 파악해서 보고하도록 지시했다. 포반의 소산완료 보고가 들어오기 시작했고 다시 상황실 밖의 상황을 살폈다. 연기의 색깔이나 아무런 냄새가 없었다. 다시 상황실로 내려와   방독면 해제를 지시했을 때 부대장님의 사격준비 지시 명령이 내려왔다.

 

포탄이 낙하되는 상황에서 즉각 사격준비를 지시했다. 우리 중대원들은 차분하면서 대담하게 사격을 준비했고 6포, 5포가 사격준비 완료 보고를 했다. 6포는 얼마나 화가 났던지 3번이나 “사격 준비 끝!”을 외쳤다. 나는 그 때까지만 해도 적의 기습포격으로 피해 상황이 아직 파악이 되지 않아 우선 준비되는 대로 부대장님께 보고를 했고 잠시 대기하라는 동안 2포가 사격준비가 끝났다는 보고를 받았다. 내 눈으로 본 2포의 모습은 분명히 큰 부상을 입었거나 장비파괴로 임무가 불가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2포가 우렁찬 목소리로 사격준비 끝을 외칠 때 고마움과 자신감이 넘쳐났다. 그래서 부대장님께 3문이 사격준비가 끝났다고 정정보고를   하였고 부대장님은 “사격해!” 라고 단호하게 명령하셨다.

 

그리고 사격을 하는 도중 통신이 되지 않는 1포와 3포는 유선 복구조를 투입시켰다. 언제  어디서 포탄이 날아올지 모르는 상황이지만 전명준 병장은 두려움 없이 바로 달려가 포반의 유선을 개통시켰고 화염에 휩싸인 1포 인원들을 포 밖으로 유도했다.

 

첫 번째로 적을 향해 사격을 하는 우리는 긴장감 보다는 자신감에 찬 모습이었고 적의 기습에도 중대장의 지시에 따라 침착하게 소산을 하고 다시 사격준비를 해서 대응을 한 것이었다. 사격 중에 4포로부터 3포에 부상자가 있는 것 같다는 보고를 받았고 20발을 더 사격하라는 부대장님의 지시가 이어지고 또다시 재타격을 실시했다. 
그러던 중 행정관으로부터 3포 인원이 귀가 잘 들리지 않는다는 보고를 받았고 1포 화재가 크다는 보고를 받아 1포는 즉각 화재를 진압하도록 지시했다. 잠시 후 3포로부터 무전을 받았다. 3포 반장의 목소리였다. “수동으로 사격임무에 가담하겠다”는 보고였다. 나는 환자를 파악했고 “모두 이상 없습니다.”라는 포반장의 보고에 더 힘이 나고 고마웠다. 그리고 적의 2차   사격이 있었고 포병 레이더로부터 사격요구가 들어왔다. 우리를 포격한 적을 찾아낸 것이었다.
 
나는 바로 표적전이를 지시하고 다시 사격을 준비했다. 이번에는 4문이 사격에 가담하게 되었고 또다시 포탄이 떨어지는 중에 3차 사격을 실시했던 것이다. 그리고 적 포탄에 의해 갑자기 정전이 되었고 통신이며 포대 통제기이며 작동이 되지 않는 암흑 속에서 상황실 인원들은 비상조명을 켰다. 나는 신속히 비상 발전기를 가동하도록 지시했고 적 포탄이 비산하는 가운데도 김영훈 상병은 발전기를 가동시켰다. 다행히 발전기가 가동되고 모든 장비가 정상으로 돌아왔고 “사격 끝!” 보고와 함께 정적이 흘렀다.

 

조용한 가운데 나는 상황실에서 올라와 주변을 둘러봤다. 여기저기 화재로 인해 검은 연기와 화염으로 뒤덮히고 간부들과 중대 본부의 해병들은 병사에서 소방호스를 모조리 끌어 연결해서 1포상의 화재를 진압하고 있었다. 또한 추가적인 포격이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포반원들은 계속해서 사격준비태세를 유지토록 지시하였고 나머지 병력들도 계속해서 탄약고 주변과   포상 주변의 화재를 진압하며 포반의 피해사항을 보고 받고 추가 도발에 대비했다.


갑작스런 적의 기습 포격으로 선제 타격을 받은 중대가 적의 포탄에 목숨을 걸고 개인의  임무에 충실하고 상·하간에 서로를 챙겨가며 긴박한 상황에서도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임무를 수행해 준 중대원! 우리 해병들이 너무 고맙고 자랑스럽다. 그리고 살아줘서 고맙다.

 

우리는 단 한명의 인명피해도 없이 이렇게 건재하며 평소 우리가 외치던 ‘대한민국 국가대표 포병중대’라는 자부심을 더욱 실감하였고 우리의 영토와 국민에게 해를 끼친 북괴군에 대한 적개심은 중대장인 나를 비롯해 중대원 모두가 하늘을 찌르고 적이 추가 도발한다면 모조리 가루로 만들어 버리겠다는 강력한 의지로 가득 차 있다.

 

제7포병중대 3포반장 하사 김영복

금일에 평가 ATT평가 사격이 계획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오전부터 사격준비 및 사격대비 비사격 임무를 실시하였다. 오후 13시 30분부터 평가사격이 되었고, 초탄은 우리 3포가 수정임무 사격을 실시하였다. 마지막 사격을 실시하는 도중에 4포가 불발이 나서 FDC에 불발보고를 하였다.

 
그때 우리 포반은 사격이 다 끝나서 기상반장이 수고했다고 마무리 잘하라는 말을 하고 4포로 이동 후에 전장정리를 하는 도중에 갑자기 우리 포반에“쾅”하면서 포탄이 떨어졌다. 그래서 일단 밖에서 격발기를 정리하고 있는 김진혁 일병을 포 내부로 들어오라고 지시하고 포반원들에게 엎드리라고 지시를 하였다.

 
그런데 그 당시에 사격이 막 끝나고 해치들이 모두 열려 있는 상태에서 파편들이 위에서  떨어지고 옆에서 들어오고 뒤에서도 들어오고 있었는데 귀 옆에 파편을 맞아 피가 나고 있었고 상병 임진규에게 상단 해치와 측면 해치를 닫으라고 지시를 하였다. 그리고 해치를 모두 닫고 나서 포반원들에게 괜찮냐고 물어보며 환자를 파악하였고, 포반원 모두 무사해서 안도의 한숨을 돌리고 천만다행이면서 하늘에 감사했다.

 
그리고 나서 장비를 살펴보았는데 전시기에 고장코드에 불이 들어와서 확인을 해보니 구동제어기에 불량 코드가 보였다. 그래서 이대로는 포기할 수가 없어서 일단 장비를 소산시키고 정확히 장비를 재점검하고 자동은 불가하여 반자동으로 사격을 실시하겠다고 중대장님에게 보고를 하였다.

 
맞고만 당할 수 없어 억울하고 분노에 차올라서 포반들과 신속히 탄과 장약을 준비하여   전방포상에 나가서 반자동임무로 3차 사격에 가담하여 사격을 실시하였다. 솔직히 무섭기도 했지만 우리 3포 포반원들을 살리고 싶었고 우리 포반원들이 있어 살 수 있었고 우리 포반원들에게 정말 감사하고 영원히 잊지 못할 2010년 11월 23일이 될 것이다. 
적 포탄이 낙하 되어도 우리 중대는 각 직책별로 임무수행을 하였고, 한 명도 다치는 인원이   없어 하늘에 감사하다. 기준포 3포는 절대 죽지는 않는다 한 번 더 적 포탄이 날아오는 순간  강력한 대응을 하여 북한을 가루로 만들어 버릴 것이다.

 

제7포병중대 자주포 조종병 상병 박태민

11월 23일. 이 날은 휴가를 나가는 날이었다. 모든 걸 마치고 배터에 가서 표를 끊기 위해 매표소 앞에서 기다리는데 배가 보이기 시작하는 동시에 마을 쪽에 포탄이 한두 개 떨어지더니, 소나기가 오듯 수십 발의 포탄이 마을을 뒤엎었다.

 
순식간에 건물들이 날라 다니고 이곳, 저곳에서 불이 나기 시작했다. 민간인들은 도망치란 소리에 일사분란하게 반대편으로 뛰기 시작했고, 사격하는 중대마다 전화를 받지 않고, 북한쪽에서 쏜 실상황이라는 걸 듣고 휴가자들은 콤비를 타고 당섬 분초로 일단 대피해 있다가   휴가자들 각 중대로 복귀하라는 전화를 받고 콤비를 탔는데 중대와는 거리가 있는 곳에서  포7중대는 여기서 가라고 했다.

 

 
처음에 당섬 분초로 대피하면서 우리 중대 위치를 제일 먼저 확인 했는데. 검은 연기와 불이 나고 있어 걱정을 하고 있었는데, 내리자마자 중대로 뛰어가는데 어느 정도 뛰니깐 숨도   심하게 차고 코도 따갑고 해서 걷고 뛰고 반복하면서 중대 위병소에 들어서니, 사람들은   보이지 않고 포상 쪽과 주변 산에서는 불이 나고 있었고, 건물 안으로 들어오니 식당 쪽 천장이 무너져 있었다. 상황실로 바로 가보니 중대장님은 분주하게 사격을 지시하고 계셨다.

 
그러다 잠깐 틈을 타 전투복으로 갈아입고 불 끄는 곳으로 가서 호스를 가져오고 물이 나오지 않아 휴지통 등을 이용해 물을 퍼 나르다가 어느 정도까지 진압을 했지만 산 쪽에는 계속 불이 번지고 참으로 비참해 보였다. 그리고 다시 상황실로 내려가 있는데 하나포 반장님이 허겁지겁 내려와 날 찾더니, 포옹을 하였다. 그리고 반장님과 같이 포로 뛰어 올라가 임무수행을 하였다.  

 

의무실 예방의학담당 하사 이재선

23일 아침 어느 때와 다름없이 관사에서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고 나와 같은 버스를 타고 가는 선후임들에게 인사를 하며 시작하였다. 부대에 도착하고 나서도 어느 때와도 하나 다름없이 평화롭다면 평화롭고 계획된 일과가 진행되었다. 그날 오후 우리 부대 사격훈련이 시작되었고 그때까지만 해도 몇 발을 사격하였는지 세어보면서 북한의 연평도 도발이라는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날지는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그 순간 우리 부대가 사격하는 소리가 아닌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다른 느낌의 진동이 느껴지기 시작하였다. 당황도 잠시 당시 행정관님의(상사 송영복) ‘엎드려’란 소리에 모두 엎드려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당시만 해도 어리둥절해 하며 단지 오발이라고만 생각하였고 정확한 상황이 파악되지 않았을 때 또 다시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앞산에 폭발이 일어났고 진동이 느껴졌다.

 
행정관님의 ‘실전상황이야 뭐야’라는 말에 ‘실제 상황인 것 같습니다’라고 보고하고  주변상황을 살필 시간도 없이 북한의 무차별한 폭격을 계속되었고 1차 폭격이 끝나고 서둘러 의무실로 복귀하였으나 항상 평화롭고 우리가 집처럼 생각하던 의무실은 폭격에 따른 파편으로 수십 장의 창문이 깨져있었다. 
현실을 느낄 새도 없이 환자가 발생하였다는 연락이 왔고 정비소대 하사와 수색팀장이 환자가 발생하였다고 올라왔다. 안내에 따라 환자발생지역으로 치과군의관님을 비롯한 나와 몇 명의 대원들은 들것을 들고 달려가 보니 그곳은 드라마·영화·뉴스에서 보던 처참한 실제 전쟁 현장이었다.

 
자신의 야전상의 내피를 벗어 지혈을 해주는 대원, 소리치며 의식을 잃어가는 전우를 부르는 대원 등 모두가 파편으로 인해 고통을 호소하고 동시에 출혈이 심하였다. 대량전상자 처치법에 따라 즉각 처치하여야 하는 환자를 찾아 지혈을 하고 부상부위를 살펴보고 있을 때 다른   의무요원과 전투병들은 들것을 이용해 후송하였고 나와 거동이 가능한 일부환자는 마침 도착한 AMB를 이용하여 의무실로 향하였다.

 

다시 도착한 의무실에서는 모두가 바쁘게 응급처치를 하고 있었고 항상 깨끗하고 정리정돈이 잘 되어있던 응급실은 한순간에 피바다가 되었다. 나와 같이 온 대원은 팔과 다리가 아프다고 하였는데 정확한 환부를 찾으며 군화를 벗겨보니 군화에 담겨있던 피가 쏟아졌고, 얼굴에  파편을 맞아 입술주위가 다 찢긴 환자도 있었다. 간단한 응급처치를 끝내고 환자를 파악하기 시작했다.

 
평소 부대TTT훈련으로 대량전상자처치법 연습을 지속적으로 실시한 우리 의무요원들은  의무실장님의(대위 김혜강) 지시에 따라 응급처치표를 작성하고 환자를 즉각, 지연, 최소,  기대로 구분함과 동시에 환자들을 좀 더 안전한 장소로 옮겼다. 
그리고 계속적으로 환자 인적사항 및 부상부위를 파악 중 또 다시 폭격이 시작되었고 우리 모두 엎드려 대피하던 중 대피하지 않고 들것에 눕혀있는 김영철 일병의 손을 붙잡고 있는 해병을 보게 되었다.

 
2차 폭격이 끝난 후 응급처치가 완료될 중 지휘통제실 및 상급 부대에 상황 관련 전화가 계속 왔고 또 다른 장소에서도 발생한 환자들이 지속적으로 후송 되어 왔다. 2차 폭격 당시 의무실 뒤편으로 불이 번져 유류고 쪽으로 불이 번지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나와 몇 명 대원들은 소화기를 들고 불을 끄는 등 일촉즉발의 상황이 지속적으로 발생하였다. 그 뒤에 환자후송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고 최소처치환자를 뺀 나머지 모두를 안전하게 해군 2함대 의무대로 후송을 보낼 수 있었다.

 
몇 시간에 걸친 폭격과 환자 분류 및 처치, 후송을 겪고 난 의무실의 모습은 말 그대로   처참하였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상황과 모습에 그 누구도 먼저 말을 꺼내지 못했고 암담한 현실만 눈앞에 있었다. 하지만 그 날의 해군 해병대 연평부대 우리 모두는 최고였고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군인 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아들이었다.  

 

의무실 의무병 이병 윤성문

2010년 11월 23일 포 훈련을 하고 있던 중 알 수 없는 소리가 들려오고 땅이 울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이것도 훈련인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연기가 피어오르고 동기가 파편에 맞는 것을 보고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여기저기에서 포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와 공포는 물 밀 듯이 나를 엄습했다.

 
환자가 발생했다는 연락을 받고 의무실로 돌아와 보니 의무실은 파편에 맞아서 유리창이  다 깨진 상태였다. 의무실로 들어가고 조금의 시간이 흘렀을 때 환자를 후송해야 한다는   명령을 받았다. 환자를 후송하기 위해 밖으로 나가는데 하늘에서 눈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러다가 내가 죽는 것은 아닐까’라는  공포가 한 번 더 밀려오고 심장이 어느 때보다 빨리 뛰기 시작했다. 환자가 있는데 도착하고 환자의 상태를 파악했다. 너무나 참혹했다.   여기저기에서 환자들의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환자들의 신음소리는 나를 더 공포에 떨게   했지만 환자를 후송해야 한다는 생각에 공포가 조금씩 사라졌다.

 
의무실에 환자를 후송하고 응급처치를 시작했다. 하지만 그때 또 다시 2차 폭격이 이어졌고 의무실 사람들도 모두 엎드렸다. 계속되는 포격 속에 환자들에게 응급처치를 한다는 건 쉬운 게 아니었다. 
환자를 수도병원으로 후송을 나섰다. 환자들은 RIB에 옮기고 해상전진기지를 거쳐 참수리호까지 옮기는 동안 연평도에서는 불이 섬을 집어 삼키고 있었다. 2함대에 도착하고 환자들을 헬기로 후송했다. 의무대원들은 헬기에 타지 못하고 버스로 수도병원까지 갔다.

 
모든 취재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병원에 들어가니 부상당한 대원들의 가족들이 응급실 앞 로비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환자들의 부모님들과 친척들의 얼굴은 너무나 슬퍼보였다.   내가 너무 미안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 부대원들의 빨간 명찰과 전투복을 보고 상황이 어땠냐며 묻기 시작했다. 이런저런 말에 대답을 해주고 사람들이 빠져나가자  몸에 힘이 빠져 축 늘어져 버렸다.

 
환자들을 입실시키고 연평도를 돌아왔을 때 의무실의 모습과 연평도의 모습은 참혹했다. 우리가 더 강해져야 북한이나 타 국가의 위협을 안 받고 우리 땅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을 몸으로 깨닫는 하루였다. 타 부대에서 증원 부대가 오면서 복구 작업이 시작되고 전기가 들어오기 시작했을 때 마음이 조금씩 놓이기 시작했다. 

 

의무실 의무병 이병 강병욱

연평도에 입도한지 3개월이 지났다. 항상 평화롭기만 하였던 이 섬에 그날의 참사가 생길 줄은 어느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다.


2010년 11월 23일 화요일, 이날은 부대에 포사격 훈련이 예정되어 있었다. 당시 당직을 보다가 한 꼬마 아이와 그 아이의 어머니가 진료를 받으러 왔다. 아이에게 처방된 약을 짓고 있는데 아이가 포 소리로 인해 무서워하는 것을 보았다. 그 모습을 보니 아름답고 좋은 소리가 아닌 섬뜩한 포 소리를 듣는 아이가 너무 안쓰러웠다. 아이에게 약을 주며 잘 가라고 인사를 한 뒤 당직을 다시 보았다.

 
그런데 14시 20분 경 갑자기 꽝하는 소리와 함께 의무실이 흔들리고 유리창이 깨졌다.   순간 나는 바로 방탄모를 쓰고 당황하여 어쩔 줄을 몰라 하였다. 그러는 사이 의무실 앞에 있는 건물에 포탄이 떨어졌고 그 파편과 진동으로 의무실이 아수라장이 되었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도 모르겠고 뭘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당황하고 있는데 2층에서 입실환자 2명이 내려왔고 그제야 나는 내가 의무병인 걸 인식하고 우선 그들을 진정시켰다. 그리고 곧 치과 군의관님이 내려오시고 우리들을 방사선실로 대피시킨 뒤 우리들을 진정시키셨다.

   
포 소리가 잠잠해지자 갑자기 전화가 계속 울렸고 환자가 생겼다는 보고가 계속 왔다.    그 사이 간부들과 의무병들이 오고 환자가 왔다. 그 환자는 머리에 파편을 맞아 상처가 많이 깊었다. 머리가 너무 아프다고 죽을 것 같다고 하며 환자는 극도의 흥분 상태였다. 우선 그의 상처를 세척하면서 그를 진정시켰다. 그리고 그의 상처를 지혈하였다.

 
그리고 故 문광욱 일병을 비롯한 많은 환자들이 의무실에 왔고, 의무실은 신음소리와 피로 가득 찼다. 지나가야 할 통로마다 환자로 가득 차 의료물품 전달은 잘되지 않았다. 실장님과 문세인 상병은 서로 번갈아가며 故 문광욱 일병에게 CPR을 실시하고 있었고 나머지 요원들은 다른 환자들에게 응급처치를 하였다. 나는 수액을 놓기 위해 환자에게 주사를 꽂으려 했지만 너무나 떨려 실패를 하였다.

 

옆에 계신 군의관님께서 대신 주사를 놓고 나는 마무리를 하였다. 발목에 파편이 박혀 발목이 휘고 상처가 깊은 한 해병의 신발을 벗겨 처치를 하려고 했는데 환자는 너무 고통스러워하였다. 신발을 벗기니 상처가 너무 심하여 얼른 상처 세척을 한 뒤 지혈을 하였다. 어떤 해병은    흉부에 생긴 상처에서 장기가 보였다. 그래서 얼른 보고를 하고 처치를 하였다.

 
환자를 처치하는 동안 2차 포격이 시작되었다. 정말 무서웠다. 모두들 처치를 중단하고   책상과 의자 밑으로 숨었다. 살고 싶었다. 하지만 환자를 살려야만 했다. 북한이 포를 쏜다고 모두 대피하라는 방송이 들려 왔지만 모두들 방송을 무시한 채 환자를 처치하였다.

 
의무 물자가 떨어지자 물자를 옮기기 위해 1, 2층을 왔다 갔다 거렸다. 언제 포탄이 떨어질 줄 몰라 두려웠지만 잠깐 이었다. 의무물자를 전달하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그러다   의식을 잃고 죽어가는 문광욱 일병을 보았다. 그를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랐다. 두려웠다.    몸 색깔이 파랗게 변해가고 있는 그에게 다가가기가 두려웠다.

 
환자 후송을 위해 의무실 밖에 있던 창고에서 들것을 들고 와야 했다. 정말 밖에 나가기가 싫었지만 발은 벌써 창고 쪽으로 달리고 있었다. 들것을 들고 의무실로 돌아오는데 몸이   무거워 속도가 좀처럼 나지 않았다. 언제 포탄이 내 옆으로 떨어질 줄 몰라 들것을 버리고 의무실로 들어가고 싶었지만 환자들을 포기하기 싫었다. 들것을 옮기고 문광욱 일병을 보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하얀 천으로 덮여 있었다. 정말 화가 났다. 북한이 무엇이길래 이렇게 한 인생을 빼앗아 가는지 도대체 왜 이 수많은 사람들을 다치게 하고 공포와 불안에 떨게  하는지 우리가 무엇을 잘못 했고 저들이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었다.

 
환자 후송이 시작되었다. 4인조로 들것에 환자를 올려 AMB에 환자를 옮겼다. 피 범벅이 된 AMB는 배터로 후송을 하러 갔고 그사이 환자를 재정렬 하고 군의관님들은 환자들을 진료하였다. 깁스를 씌우기도 하고 파편을 빼기도 하였다. 그리고 모든 환자들에게 항생제를 한방씩 놓았다. 후송을 갔던 AMB가 돌아오고 2차 후송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故 문광욱 일병의 시신도 후송 되었다. 그를 AMB에 싣는 동안 정말 죄송하였다 살리지 못해서 차갑고 파랗게 변한 그를 차마 볼 수가 없었다.

 

갑자기 펑하는 소리가 들렸다. 의무실 옆 건물인 교육대의 연료탱크가 터지고 교육대는   순식간에 불바다가 되었다. 우리는 바로 가지고 있던 소화기를 모두 모아 주위의 불을 진화시켰다. 그리고 마지막 환자를 후송한 뒤 일은 일단락되었다.

 
하늘은 연기 때문에 어두웠고 해는 저물어 갔다. 모두 지쳐있었다. 전부 앉아 뻗어있었다.  연평도는 언제 포탄이 떨어졌냐는 둥 고요하였다. 하지만 그 고요함 속에 공기는 화약 냄새와 연기로 인해 목이 따가울 정도로 매캐했다. 나는 유리창 밖으로 보이는 연평도를 보았다.   그때 보았던 연평도는 한마디로 지옥이었다. 
불타는 연평도를 보며 생각했다. 우리가 얼마나 잘못하였기에 이렇게 많은 이들이 다치고 공포에 떨어야 했는지 우리는 그들을 위해 쌀과 비료와 소 등을 보내 주었다. 하지만 그들에게 돌려받은 건 수십 발의 포탄이 아니다. 수많은 생명과 아름다운 연평도 그리고 대한민국의 평화를 빼앗아 갔다.  

 

군종과장(목사) 대위 하승원

굉음이 울리고 눈앞에서 포탄이 떨어졌습니다. 마을에서 연기가 올라왔고, 시선이 닿는 곳곳에 탄흔이 보였습니다. 급히 올라간 의무실은 이미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아이들이 누워있었습니다. 복도에는 아이들이 흘린 피가 흐르고 있었고, 응급실 안쪽에는 서서히 숨이 멎어가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피로 얼룩진 손을 잡고 기도를 해주었지만, 아이의 숨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들, 곧이어 추위와 불안함에 쌓여있는 그들에게 해줄 수 있는 건, 기도 밖에 없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도 지혈이 되지 않아 피가 계속해서 흘러도, 오히려 저를 보며 웃어주는 해병의 모습에 얼마나 제 자신이 무능력한지 깨달았습니다. 두 명의 전사자. 그 중에 한명은 연평도에 와 처음으로 상담과 기도를 해주었던, 매주 인사하며 장난치고 함께 예배드리던 아이였고,  한명은 제 눈앞에서 숨을 멈추었습니다.

 
군종장교. 군인이며 종교인인, 그러나 종교인과 군인의 사이에서 끊임없이 혼란스러워 하는 존재. 포격사건이 있은 후, 쉬지 않고 아이들을 만나고, 위문품을 전달하고 무언가를 하지만, 정말 제가 이들에게 힘이 되는 지, 알 수 없었습니다. 21명 중 1명이 죽고 5명이 다쳤던  정비소대에 처음 찾아갔을 때, 그들의 눈을 보며 저는 말문이 막혔습니다. 힘내자는 말을   횡설수설 하듯이 하고 나오는데, 그들의 눈이 잊혀지질 않았습니다. 마음이 너무 다시 올라갔습니다.

 

 “내가 기도해줘도 될까?..” 조심스레 기도하고 눈을 떴을 때, 눈물을 흘리는 해병을 봤습니다.

 
아직도 귀에 포탄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습니다. 아이들의 눈빛이 잊혀 지지 않고 눈만 감으면 의무실 찬 바닥에 누워서 웃으며 저를 바라보던 해병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저는 솔직히 이 곳 연평도가 처음 겪는 군대입니다. 그래서 잘 모르는 것도 많고, 눈치도 없고, 군이 어떤 지 잘 모릅니다. 할 말 안할 말이 어떤 것인지 조차, 잘 모르는 너무나 부족한 사람입니다.

 

이번 일이 터지고 나서는 군종장교의 역할을 생각합니다. 저는 우리 부대원들이 다치지   않길 바라고, 그들이 마음이 다치질 않길 바라고 몸이 건강하길 바랍니다. 이를 위해서 기도하고 만나고 이야기하고 들어주고 용기를 주고 위로를 주고 싶고, 그렇게 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번 일을 통해서 군종장교 또한 군인이라는 사실을 크게 느꼈습니다. 전쟁이 일어난다면, 군종장교 또한 부대와 생사고락을 같이 해야 한다는 것과, 이를 위해서 훈련되어져야 한다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본부중대 행정관 상사 한훈석

'10. 11. 23. 화요일 14시 35분 청명한 초겨울 하늘에 검은 흉악한 포물선이 그려지고 서해5도 중 가장 평화롭고 아름다웠던 연평도가 무간지옥과 다를 바 없는 아비규환으로 물들기 시작한 것은 찰나의 순간이었다.


이 날은 해상 사격훈련이 있는 날이라 대원들에게 거점작전에 대하여 교육을 하고 난 뒤 행정병과 함께 중대 건물로 내려와 서류를 챙기고 있었다. 그리고 이어서 귀에 익숙한 포성과 함께 임시건물인 컨테이너가 흔들거리기 시작했다. K-9사격이 있을 때면 으레 있는 일이였기에 “행정관님, 오늘 7중대가 어마어마하게 때려 붓는 것 같습니다”라고 경상도 사투리로 너스레를 떠는 행정병에게 실소를 띄며 서류를 들고 부대본관으로 출발하려 하는 도중이었다.

 
햇살이 부서지는 연평도 바다를 창가로 바라보고 있는데 멀리서 연기가 보여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하여 상황병에게 물어보려 하는 순간 대기를 찢어발기는 굉음이 들리고 컨테이너가 미친 듯이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즉시 상황병에게 상황실을 폐쇄할 것을 지시하고 행정병과 상황병을 이끌고 소산진지로 향하였다. 
잠시 승파관 벽에 기대어 상황을 판단하며 마을을 둘러 본 순간 중대를 벗어날 때만 하여도 설마 하였던 일이 벌어졌다. 아름다운 우리의 연평도가 북한군의 기습공격으로 화마에 휩싸이고 있었던 것이다. 동서남북 할 것 없이 눈이 가는 모든 곳에는 잿빛연기가 하늘로 불타오르고  있었다.

 
상황이 정확하게 파악되고 나니, 반드시 대원들을 살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우리는 급히 발길을 거점진지로 돌려 이동하는 와중에 부대본관에 들러 아직까지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업무를 보고 있는 참모부서 간부들에게 상황을 알려 모두 거점으로 이동할 것을 전파하고 나서 다시 거점까지 질주 하였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지만 철모 위로 들리는 포탄소리는 당장이라도 등 뒤에 떨어져 나와 대원 두 명을 덮칠 것 같았기에, 나만 믿고 따라오는 대원들이 있었기에 움직이지 않는 다리를 의지로 이끌어 모두가 무사히 소산하였다.

 

거점입구에 도착하여 한숨 돌린 순간 등 뒤로 들리는 폭음소리에 뒤를 돌아보자 불과 5분전까지 내가 있었던 승파관에 포탄이 떨어져 있었다. 전신에 소름이 돋는 아찔한 순간이었다. 나의 판단이 조금만 늦었어도 나의 목숨뿐만 아니라 대원 두 명을 부모님의 곁으로 돌려보내지 못할 뻔한 위기의 순간을 무사히 넘겼음에 평소 신을 믿지 않는 나였지만 그 순간만큼은 신이 존재함에 감사를 드렸다.


아직도 쿵! 쿵! 울리는 폭음이 뇌에 꼽혀서 빠지지 않았는지 심장소리처럼 계속 귀에서 울렸다. 먼지와 섞인 방사포 연기가 하늘을 덮어 구름을 삭제 시켰다. 참담했다. 거점에 앉아 생각을 했다. 진짜 전쟁이 일어나나 하지만 나는 싸울 것이고 살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앉아 있었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2차 사격이 시작 됐고 거점이 심장박동처럼 계속 울렸다. 중대원들은 크게 동요 했지만 간부들의 지시로 안정을 찾았고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19시경 마을의 화재를 진압하라는 지시가 내려졌다. 나는 제독차의 물로 마을의 화재를 진압하고자 하는데 나는 자원을 했고 급수장에서 물을 채운 뒤 마을로 갔다.
포를 맞은 흔적을 지우기 위해 애쓰는 사람은 없었고 거리는 하늘을 향해 치솟는 불길만이 우리를 반겼다. 화염을 향해 제독차의 살포총이 갔다. 마을에 맞은 포와 그 위에서 사는 화염 그리고 그것을 잠재우기 위해 애쓰는 분대원들이 겹쳐졌다.


벽이 허물어지고 곳곳에 불이 번졌는데 소방차가 1차적으로 많이 꺼놓은 상태에서도 우리는 계속 불을 껐다. 마을을 향해 방사포를 던진 북한에 대한 적개심이 끓어오르기도 24시가   넘어 하루가 지나갔다. 하루가 참 길었고 거점으로 돌아오는 길은 짧았다. 하루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았는데 달이 점점 낮아지는 모습을 봤다. 연평도의 수많은 별들이 무슨 일이라도 있냐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듯 했다.


나는 담배를 태우며 하늘로 향하는 연기 속에서 14시 34분에 떨어진 포의 자취를 볼 수   있었다. 내 두 눈에 박혀있는 2010년 11월 23일은 계속 정지 한 채 두 눈에서 잠자고 있다. 하루를 맞이하는 태양을 보며 북한의 도발에 대해 생각을 한다. 우리는 지지 않았다.     그 때를 지우는 일은 내 인생의 과제일 것이다. 

 

본부중대 인사병 병장 백종협

2010년 11월 23일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6시30분 총기상과 동시에 조별과업 정렬을 떠났다. 간단한 인원 파악 및 국군도수체조, 조별과업을 부여받고 해산을 한 뒤 근무표를 확인했는데, 근무표를 보니 13시 ~16시까지 주간 3직 근무였다. 오늘 14시에 대 해상사격훈련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훈련에 참가 하지 못하는 마음 한구석에는 꺼림칙함이 있었다.

 
점심을 먹고 난 뒤 난 근무 준비를 하고 중대원들은 방탄복을 준비하고 무장을 몸에 맞게 최적을 하고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13시 근무 진입 후, 후임병인  김태우 해병과 평소와 같이 근무를 서고 있었다.

 
그 때, 14시 35분 헬기장에서 ‘씨~웅 꽝’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순간 “무슨  소리지” 하고 그 방향을 쳐다보았다. “포 7중대의 K-9 자주포 사격이 왜 이렇게 크고, 큰 진동으로 느껴질까”라고 생각할 틈도 주지 않고 마을에서 포탄 소리가 2회 들렸다. 흰 연기가 무섭게 피워 오르고 있었다.

 
나는 선임근무자로서 후임 근무자를 이끌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김태우 상병과 함께 배수로 달려가 몸을 피했다. 배수로 들어가 있는데, 폭음과 충격파에 대비해 중대에서 교육받은 복지부동 자세를 취했다. 자세를 유지하고 있는데 위병소 배수로 바로 옆 탄약반에서 ‘꽝’하는 소리가 들리는 동시에, 배수로에는 진동이 울리면서 위병소 창문이 깨지고, 내가 엎드리고 있는 머리 위로 총알 같은 파편이 흩어졌다. 나는 가슴이 뛰고 순간적으로. “아! 전쟁이 났구나!, 도대체 어디서 날라 온 포탄인가!, 포탄은 언제까지 떨어지는가! 어떻게 하면 살아남을 수 있는가!, 나는 절대 저 포탄에 맞지 않는다!” 등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배수로 바닥에는 전투복과, 얼굴이 젖어 들 만큼 물이 흐르고 있었지만, 나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폭음 소리가 멈춘 뒤 나는 위병소 전화기로 중대에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아니나 다를까 전화기는 먹통이었다. 나는 상황이 어떻게 된 것인지 알아보기 위해 거점으로 가는  도중 중대 들릴 생각을 했다. 그리고 김태우 상병에게 긴장 하지 말고, 침착하자며 아무 일도 없을 거라고 재차 말하고 중대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정신없이 뛰어갔다.

 

사실 김태우 상병보다 내가 더 겁에 질려 나 자신의 마음의 안정을 찾으려고 이렇게 격려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중대로 가니 이미 중대는 소산을 마치고 텅 비어 있었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중대의 잔류인원을 다시 확인하고 혹시나 있을 화재에 대비하여 김태우 상병과 함께 중대의 차단기를 모두 내렸다.

 
그 순간, 나는 중대로 뛰어오는 중 탄약반 주위에 불길이 번지기 시작 했다는 것이 떠올랐다.김태우 상병과 나는 포탄이 떨어질까 두려움이 밀려왔지만, 불길을 그냥 방치하면 걷잡을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죽지 않는다는 신념으로 소화기를 들고 불이 번지기 시작한   탄약반으로 달려갔다. 탄약반 앞에서 소화기를 뽑고 진화를 시작했다. 초기 진압을 하는 도중 옆에서 소화기를 들고 목사님이 달려오셨다. 두려움을 안고 있던 나는 목사님이 오시자 마음이 안정되고 자신감이 생겼다. 화재를 진화한 후, 거점으로 뛰는 도중 나는 내 뺨을 때리면서  마음속으로 “정신 차려야 한다”며 계속 되새겼다.

 
거점으로 들어가니 마침 중대장님과 행정관님이 위병소 근무자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아무 이상 없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살아있어서 고맙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이렇게 나를 신경 써주고 관심을 가져주신 분들이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15시 20분경 북한의 2차 포격이 시작되었다. 거점 입구와 가까이 있던 중대는 거점 안쪽으로 위치를 옮겼다. 거점 안에서 지진과 같은 진동이 울렸다. 나는 거점이 무너지는 것은 아닐까 하고 걱정이 되었고, 후임들의 눈빛에는 두려움이 가득 차 있었다. 나 또한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중대의 선임병으로서 겁에 질린 표정을 보이게 된다면 후임들에게 좋지 않다고 판단해 오히려 후임들에게“걱정하지 말라며, 이 상황에서 살아남게 되면 우리는 영웅이 될 꺼라고, 북한군과 한번 싸워 멋지게 영웅이 되자”고 후임들을 격려 했다.

 
그 뒤 몇 시간동안 더 이상의 포격을 이루어지지 않았다. 적의 포격이 멎자, 부대본부 주위가불타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중대장님은 선임병 몇 명을 뽑아, 밑으로 내려가서   모든 소화기, 등짐펌프, 물수건, 방화벨트 구성하기 위한 삽과 대비를 가져오라고 지시했다.  
방화벨트를 구성할 곳은 지금 연평부대에서 제일 중요한 지휘통제실 주위, 거점, 거점 발전기였고, 불을 끄지 않는다면, 모든 곳에 불이 번지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나와 몇몇 인원들은 중대장님의 지시를 받아 지통실 주위에 삽과 대비, 등짐펌프로 지통실과 거점 발전기로 더 이상 불이 넘어 오지 못하게 방화벨트를 만들었다.

 

주요 시설물 주위 3m를 삽과 대비로 나뭇가지, 잎들을 제거 하고 그 주위에 등짐펌프로 물을 뿌려서 완벽한 방화벨트를 만들었고, 불이 번져 오는 곳들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불을 껐다. 큰 불을 거의 끈 뒤에도 혹시나 불씨가 다시 살아나 불이 다시 번질까봐 2시간 동안이나 지켜보며, 다시 살아나는 불씨들을 제거했다. 화재를 진화하고 거점으로 들어가니 22시가 지난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중대 총원은 밖에서 고생하는 대원들을 생각하며 행정관님을 비롯하여 총원이 식사를 하지 않고 대기하고 있었다. 정말 위급할 때야 말로 전우애가 최고조에 오른다는 것이 사뭇 느껴졌다. 
다음날 새벽 위병소 근무에 임하게 되었다. 근무 중, ‘피~웅’이란 소리만 들어도  후임근무자와 정색을 한 뒤, 북쪽 하늘을 쳐다보는 버릇이 생겼고 포탄이 언제 떨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생겼다. 하지만 적의 예기치 못한 도발에도 해병으로서, 연평부대원으로서, 본부중대원으로서의 내 자부심과 이 나라를 내 손으로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은 흔들림이 없다.

 
난 오늘도 주어진 임무들이 내 전우와 나라를 지킨다는 마음가짐으로 최선을 다했고, 앞으로도 11월 23일 뜨거웠던 그날을 떠올리며, 내가 가졌던 생각과 마음들을 뼛속 깊이 새기고,    적의 어떠한 도발에도 목숨을 걸고 싸울 것이다. 우리는 반드시 이긴다!

 

인사과 일보담당 중사 안준오

뒤돌아보면 마땅히 기여한 바도 없으며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다는 생각이지만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준 인사과 간부들에게 감사하고 교훈으로 간직하고자 수기를 기록합니다.


우리 연평부대 인사과는 그날도 여느 때와 같이 각자가 맡은 임무의 수행을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인사과장과 관사담당은 군 주택 시설물 확인을 위해 마을 인근에 산재 해 있는 군 주택 시설물 점검을, 보임담당은 사격훈련 관측 업무를, 출도담당은 선착장에서 휴가자 통제 중에 있었으며 행정담당은 22일 휴가를 출발하였으나 늦은 시간 인천에 도착하여 23일 고향으로 향하였다. 각종 감사 자료를 정리하고 밖으로 나와 보니 멀리 당섬 선착장에는 평소처럼 여객선이 입항하고 있었다. 평화롭고 소박한 섬마을의 풍경은 그때까지였다.


멀리서 포사격을 하는듯한 소리가 들려왔고, 이내 “슝”하는 소리와 함께 헬기장 부근에  포격이 가해졌다 그 순간 머릿속은‘혹시 오발인가’최소사거리? 고각의 최대화? 앞뒤가   맞지 않았고, 머리가 혼란스러워지는 찰라 마을과 부대시설 주변으로 연속적으로 적 포탄이 떨어졌다. 도발이 가해지고 있음을 확신하고 근무담당과 제2회의실 주변의 인원들을 대피시설로 이동시키며 달려가 인근 대피소 총안구를 통해 주변을 관측하였다.


그 시각 임무수행을 마치고 복귀 중이던 인사과장과 관사담당은 포격이 어디에 떨어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민간인 보호를 위해 어린이집의 어린이들과 교사, 길거리에서 공황상태에 빠진 주민 및 어린이 등 수 십여 명을 대피시설로 이동시켰고, 출도담당은 선착장에서 휴가대기자를 버스 승차책임자에게 인계하여 각 부대로 복귀시키고 지통실로 돌아 왔다.


그 자리에서 우리 팀은 급히 임무를 분담했다. 우리의 임무는 전투행위가 아니라 적 공격으로부터 주민의 안전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근무담당이 먼저 도착한 버스로 출발했고 나는 혼자 주차장 주변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중 1차 포격으로 발생한 화재를 진압하기 위해 이동하던 중사 박용철을 또 다시 포격이 가해질지 모르니 대피호로 이동할 것을 지시하였다. 
잠시 후 버스 도착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주차장에 나와선 순간 또 다시“슝”하는 소리가   들려 건물 안으로 몸을 피하는 동시에 부부대장실 쪽으로 떨어진 포탄에 의한 파편더미가 건물 속으로 쏟아져들어 왔다.

 

파편 가루가 채 가라안기도 전 본관 앞으로 선착장 업무를 마친 출도담당의 차에서 내린 헌병근무자를 불러 건물 내부로 대피 후 또 다시 포탄이 본관 주변에 떨어졌다. 잠시 뒤 포격은  멈추었고 소강상태인 것으로 예상한 나는 버스가 오지 않은 것으로 보아 문제가 생긴 것으로  판단하고 먼저 출발하여 주민과 연평어린이집 대피를 담당한 중사 정용균에게 연평 초등학교도 확인해줄 것을 요청하려는 순간 휴대전화가 불통인걸을 확인, 건물 밖으로 나와 문자 메시지를  통해 의사를 전달하고 헌병근무자와 지통실로 이동 헌병대장에게 신변을 인계한 후 전시업무로   전환 피해현황 및 사상자 파악에 나섰고 그러면서 부대의 피해상황이 속속 확인되었다.

 
전·사상자 가운데 故 서정우 하사는 22일 환한 웃음으로 만난 기억이 있어 너무도 가슴이 저려 왔다. 잠시 후 또다시 포격이 가해져왔고 우리 모두는 각자의 임무수행을 위해 쏟아지는 포탄사이를 거침없이 달렸다.
연평도 적 포격은 이렇게 지나갔고 그날 저녁에도 우리 인사과는 조를 나누어 대피시설에 있는 주민들의 안전과 인원수를 확인하고 긴급물자를 지원토록 부대에 건의 지원하였다.

 
그날 밤 대부분의 주민들이 지원에 나선 병원선, 해경정 및 개인선박을 이용해 섬을 빠져나갔다. 24일 인사과 간부들은 부대 통제에 따라 남아있던 민간인 170여명을 개인 차량 및 부대차량을 이용하여 선착장으로 이송하여 해군함정에 탑승시켜 인천으로 대피시켰다. 이때의 상황은 마치 성경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를 연상케 할 정도였다. 다행이 휴가 중이던 행정담당이 인천항에서 주민들을 안전하게 안내하여 임시 대피소로 이동하였다.
혹시 몸이 불편하거나 대피소식을 듣지 못해 마을에 남아있을 주민들의 소재를 파악하기 위해 불이 켜진 건물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이상 유무를 확인하고 인적사항을 기록하여 추가도발에 대비하였다. 그 이후로도 사실상 치안공백상태에 빠진 마을 및 군 시설을 중심으로 순찰을 실시하는 등 임무를 이어나갔다.


연평어린이집 유아들과 수 십 여명의 민간인을 대비시킨 인사과장과 관사담당, 적 포격 순간에도 관측소를 점령하여 임무를 수행한 보임담당, 민간인의 대피계획을 실천한 근무담당, 선착장의 동요를 막고 휴가자를 포함한 민간인을 대비시켰던 출도담당, 연평도 적 포격 소식을 듣고   고향땅을 밟아 보지도 못한 채 휴게소에서 다른 차와 미래해운 선박을 이용 복귀한 행정담당  이들의 질주가 있었기에 피해현황파악, 민간의 안전, 육지로의 안전한 철수, 빠른 안정화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곳곳에서 많은 연평부대원이 강한 동료애와 근성을 보여주었으나 사기를 드높여야할 순간에 잘잘못을 논하는 이들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들에게 말하고 싶다.


“우리는 포격의 순간에 최소한 자신의 안녕을 위해 자세를 숙이지는 않았다.”


전투현장에는 사기충천한 연평부대원이, 불타는 마을에는 인사과 팀이 달리고 있었다. 

 

포7중대 기상반장 중사 신 용 한

2010년 11월 23일. 날씨는 어느 날보다 좋았다. 난 오늘도 평상시와 동일하게 보급업무를 수행하고 오후에 있을 중대 ATT평가 사격 통제관으로써 탄종, 신관, 장약, 발수를 확인한 후 사격 시 15분전에 3포상으로 이동하여 사격준비 상태 및 3포 인원들에게 장비 이상 유무와 안전 교육을 실시한 후 중대 ATT마지막 사격 최선을 다하라고 격려한 후 3포 2번 포수인 김진혁 일병과 포상 후면으로 이동하여 사격대기를 하고 사격 시 한발 한발 체크를 하고 마지막 발수 사격을 한 후 포반장에게 장비 이상 유무와 뇌관, 들기고리를 확인 후 반납 하라고 지시하였다.


 이동 전 갑자기 격발기에 이상이 있다며 넷 포 불발이라고 96K로 송신되어 무슨 일인가 하여 넷 포로 이동하는 중 2분 후 맑은 하늘에서 쉬~우~웅 소리가 가까이 들리며 3포상 정면에 둥~! 하는 소리와 함께 엄청난 불꽃이 튀었다. 그리고 하나포상, 병사 쪽에서도 둥~! 펑~! 하는 소리와 연기가 나기 시작하고 5초 후에 66고지 능선에 여러 발의 적탄이 떨어졌다. 난 순간 적 폭격이라고 생각하여 주위를 둘러보고 주위에 사진을 찍고 있던 정훈하사를 데리고 넷 포상 환풍구 쪽으로 들어가 대피하고 있었다. 얼마 후 정훈하사가 정훈관이 넷포상 위에서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고 하였다.


 난 다시 확인 하기위해 바깥쪽으로 나와 확인을 하였지만 정훈관은 없었다. 적탄 소리가 줄어들기 시작하여 난 정훈하사와 둘포상 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하였다. 갑자기 K-10 포상에서 정훈관이 보여 정훈하사를 정훈관에게 가라고 지시하고 난 기상반으로 이동하였다. 도착 후 기상병을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난 다시 정비반으로 이동하였다. 몇 몇 대원들이 있었다. 그 후 중대장이 96K로 대원들을 통제하라는 지시를 하였고, 난 인원들을 통제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다시 적탄소리가 들리기 시작하였다. 이제 마을 쪽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였다.


 최초의 적탄에 피격당한 하나포상에는 화재가 발생하였지만 적탄 때문에 이동할 수가 없었다. 몇 분이 지나자 사격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하나포상에는 엄청난 화재가 발생중이였다. 난 박진관해병과 기상반에 있는 소화기를 들고 하나포상으로 이동하여 화재진압을 시도하였지만 소용이 없었다.

우리는 다시 정비반으로 뛰기 시작하였다. 상황이 어느 정도 정리되고 얼마 후 중대장이 적탄으로 전기가 차단되어 발전기를 가동 중인데 유류보급을 지시하여 박진관 해병과 다시 유류탱크로 이동하여 휘발유를 들고 상황실에 휘발유를 건내주고 다시 정비반으로 이동하여 중대원, 간부들과 하나포상 화재진압을 하였다.

 

이번 연평도 폭격과 피격을 당하여도 열심히 싸워준 우리 대한민국 대표 K-9중대 총원에게 감사하고 자랑스럽다. 영원한 포7중대 화이팅!


겔럭시 씨리즈의 아이나비의 버그와 팅크웨어시스의 처신 문제를 이야기해보겠습니다. 현재 아이나비는 겔럭시 씨리즈에 아이나비 화이트라는 무료 버전이 제공되고 있으며 여기에 다시 유료 버전으로 아이나비 블루와 아이나비 레드가 제공되고 있습니다.

텔미 자신도 스마트폰을 네비게이션으로 사용해 온지 오래이기 때문에 상당한 기대를 가지고 겔럭시 탭을 구매했고 아이나비에서 모든 기능을 가진 아이나비 레드를 판매하기 시작하자 판매 개시 당일 날 구매를 했습니다.

사실 갤럭시 탭에 기본 탑제된 아이나비의 무료버전에서부터 문제가 있었는데 유료 신 버전이 나오면 당연히 너무 명백한 버그는 수정되어서 나올 거라고 낙관적으로 생각했습니다. 텔미 자신도 오랫동안 개발에 관련 업무를 진행했었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의 원인이 뻔이 보였기 때문에 유료 버전을 내보낸다면 당연히 버그를 수정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겁니다.

하지만 텔미의 이런 생각을 아이나비는 간단하게 무시해버렸습니다. 한마디로 개무시 당했습니다.

그러면 현재 아이나비가 겔럭시 씨리즈에서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버그를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상황은 아주 간단합니다.

작동 중에 통신(3G, WIFI) 접속이 불안정해지면 통신접속이 불가능한 상태(속칭 비행기모드)로 바뀌면서 네비게이션이 멈추어 버리게 됩니다. 이 버그는 100% 발생합니다.

여기에 대한 아이나비측의 답변은 다음과 같습니다.

사용에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고객님께서 이용 중이신 갤럭시 플레이어에서 아이나비3D 이용과 관련하여 안내 드립니다.

갤럭시 플레이어 최신 펌웨어(버전 2.3.6) 업그레이드 후 아이나비3D에서 일부 예상치 못한 사항이 발생하고 있어

아직 펌웨어 업그레이드 전이시라면 잠시만 기다려주시고, 이미 업그레이드를 진행하셨다면

이를 개선한 아이나비 SW 신규버전을 근시일 내 삼성앱스를 통해 제공해드릴 예정이오니 잠시만 기다려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우라질…… 자신들의 잘못을 삼성 탓으로 돌리는 군요. 저 문제는 처음부터 있어왔던 문제이고 플레이어에서만 발생하는 문제도 아닙니다. 저런 식의 답은 문제 파악도 못하고 있다는 말인데……

텔미가 관련업계 종사했던 입장에서 이야기 좀 해보겠습니다.

가장 해결하기 힘든 버그는 언제 발생하는지 모르는 버그입니다. 동일 조건에서 항상 발생하는 버그는 문제 해결이 쉽습니다. 저 문제는 3G끄고 WIFI 접속 돼있는 상태에서 아이나비를 실행하고 운행하던 중 WIFI 신호가 없어지면 100% 발생하게 됩니다. 이 말은 운행 중 3G접속이 순간적으로 원할 하지 못하면 동일한 문제가 발생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쯤이면 관련 개발을 해본 사람이라면 어떤 루틴이 문제인지 바로 파악이 됩니다. 아이나비 개발진이 통신하고는 거리가 있었을 거라고 충분히 예상할 수 있지만 그 이후에 보여주는 회사차원의 대응은 한 마디로 요약해서 개판입니다.

가장 문제가 심각한 버그가 저 버그고 저 문제로 운전 중 당황해서 교통사고 낸 분들도 이미 여럿입니다. 그 외 느려지고 다운되고 재 부팅되는 저 문제가 없다면 심각한 문제들이 있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삼섬앱에서 판매를 중지한 것 이외에는 판매 중지에 대한 공지도 없고 사용자에 대한 사과도 없고 문의하면 저런 말도 안 되는 장님 문고리 만지는 답변이나 내 놓고 있습니다.

사용자들의 반품요청에 대해서 반품 불가가 계약 조건이었다고 답변하고 있습니다.

텔미도 개발자였기 때문에 버그에 대해서는 상당히 너그럽습니다. 개발자가 신이 아니니까 말입니다. 하지만 문제가 발생했을 때 뒷수습의 자세는 매우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솔직하게 문제를 인정하고 문제 확산을 막고 문제를 해결하는 일련의 과정 말입니다.

아이나비는 이런 점에서 점입니다.

지금도 겔럭시 씨리즈에 들어가는 아이나비로 고생하시는 분들에게 간단한 팁을 드리겠습니다. 아이나비를 실행하기 전에 3G, WIFI를 모두 끄고 실행하신다면 급한 데로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어느 정도 정상적인 동작은 보장이 됩니다.

물론 텔미 경험으로 6시간 정도 연속으로 사용하는 장거리 운전에서는 재 부팅되는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에서 보기 힘든 경험을 하시게 되겠지만 말입니다.

저런 버그가 기기 탓이라고 생각하고 보드 교체한 분들도 많이 있는데 삼성은 파트너사를 잘 못 선택한거 같습니다. 삼성과 사용자모두 아이나비측에 손해 배상이라고 청구해야될거 같습니다.

  1. ghost 2012.01.11 14:07 신고

    장시간 실행시 재부팅되는 현상이라면 메모리 릭일 가능성이 있겠군요. ㄷ ㄷ ㄷ

  2. 김박 2012.01.14 07:48 신고

    기본적으로 삼성앱과의 충돌이 아닐까 싶습니다. 루팅 후 삼성앱 삭제를 하니 그런 현상이 말끔히 없어졌습니다. 물론 실행속도도 엄청 빨라지구요.

    • 김박 2012.01.14 07:51 신고

      삼성 기본앱들을 말합니다.
      메모리, 리소스만 잡아먹고 아무 쓸모가 없는... 루팅하지 않으면 지우지도 못하는...



사회 현상에 대해서 분석한다는 기사가 저런식으로 작성되어도 되는건가? 50년전에는 기차표고무신 30년전에는 나이키, 아디다스 등 메이커 운동화 20년전에는 메이커 청바지10년전에는 이스트팩 지금은 저 노스페이스인데

다 당시에는 상대적으로 고가의 메이커였다는 공통점이 있다. 초고가의 명품하고는 다른 나름대로의 고가의 메이커 물품들이 휩쓰는 현상을 유행 그 이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유행이라는 부분에 대해서야 전문적인 분석이 산더미만큼 있으니 따로 논할 필요 없고 말이다. 

정말 지금 저 유행이 과거와 다른건가? 당시에도 자존감 있는 학생은 저런 유행에 민감하지 않았다. 나이키가 처음 유행하던 시절에는 교복 자율화로 적당한 운동화가 필요했지만 아직 그런 제품이 다양하게 공급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인 측면도 있었다.

사회현상을 정말 분석한 기사를 쓰고 십다면 전화 몇통해보고 인터뷰 몇개 따고 끄적이지 말자 왜 홍보, 마케팅 측면은 기사에 없나? 정말 단순히 학생들이 계급상승의 도구로 쓰고 있는 건가?

나이키 운동화를 그냥 필요로 신던 학생과 맹목적으로 거기에 위안을 삼은 학생 양자가 모두 있었고 그걸 못사서 빼았고 홈치고 하던 사회 문제도 존재했었다. 기자 생각대로 몰아가기 위해서 함부로 제단하는 기사는 기사가 아니고 선동일 뿐이다.

훗날 누군가 대한민국의 유행에 대해서 연구하기 위해서 검색을 하다 저 기사를 본다면 뭐라고 할까? 


얼마 전 중국에서 있었던 2살짜리 어린 아이가 뺑소니 교통사고를 당하고 이를 무관심하게 지나치는 중국의 모습에 경악을 했고 이를 국내에서는 약간의 회화적 시각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텔미는 사건 내용이 너무 끔찍해서 여기서는 그 부분은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그런 이유로 사건 동영상도 링크하지 않겠습니다.

사실 중국인들의 저런 태도는 특별한 일이라기 보다는 그들 문화의 어두운 단면입니다. 선의로 접근했다가 책임을 져야 되는 상황에 처할 수 있기 때문에 처음부터 관여 안 하려는 문화가 있다고 합니다.

'물에 빠진 놈 건져냈더니 보따리 내놓으라 한다.'는 속담이 중국에서는 실제로 벌어진다고 합니다. 물론 이런 일은 우리나라에서도 벌어지기는 합니다. 초년차 레지던트가 식당에서 사탕이 목에 걸려서 질식한 아이를 정석대로 구했지만 그 과정에서 갈비뼈가 부러졌다고 치료비를 청구했다는 이야기가 유명하지요. 그래서 '착한 사마리안인 법'을 만든다고 보도가 나왔는데 그 이후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런 위험이 있다고 해도 문명국가라면 어린아이가 피를 흘리고 쓰러져있는데 그걸 무시하고 지나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당연히 중국사회에서도 충격적인 사건입니다.

그 뺑소니 사고를 당한 아이와 그 부모의 뒷 이야기를 보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볼 일입니다.

이번 중국 뺑소니 사건의 여자 아이입니다. 나이는 2살인데 현재 혼수상태라고 합니다. 끔찍한 사고상황을 본다면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상태지요. [사진 / CFP]

여자 아이의 무모가 처음으로 여자아이에게 관심을 가진 할머니를 찾아와 감사겸 오열하는 모습입니다.

[사진 / CFP]

58세의 이 할머니는 2009년에 도시에서 일하는 아이들과 함께 살기 위해서 시골에서 왔다고 했는데 그래서 아이에게 관심을 보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진 / CFP]

왕위 가족의 가족 사진입니다. [사진 / CFP]

추가. 아래는 이 사건에 보인 중국인의 보따리 논입니다.


2011-10-18 20:32:17 晨临雾逝 (得闲饮茶)
만약에 가족들이 너 붙잡아 놓고 니가 애 밀어서 넘어졌는데 그러고선 차에 치인 거라고 한다면?
만약에 가족들이 애가 넘어지려고 할 때 니가 옆에 있었는데 바로 안 잡아줘서 차에 치인 거라고 한다면?
우린 지금 CCTV로 찍힌 거 보고 다들 행인의 냉담함을 욕하는데,
그 때 상황에서 그 사람들이 진짜로 CCTV있는 줄 몰랐고, 괜히 연루될까 걱정한 거라면?

2011-10-18 21:59:09 莫噗噗 (呸..)
저번에 친구랑 기차에서 내리는데 어떤 사람이 플랫폼에 누워있더라고.
길가는 사람들은 다 걍 한 번 보고 지나치고. 
친구가 상의해서 직원을 불러온 적이있어.
사실 그 때 나도 꽤 걱정이 되긴 했다. 
알려진 안 좋은 사건들이 너무 많잖냐. 
그리니 다들 냉담하다고 욕만 할 순 없다고.

아이는 2011년 10월 21오전에 사망했습니다. 첫번째 뺑소니 운전자는 치료비보다 사망 보상금이 쌌기 때문에 그와 같은 일을 저질렀다고 하는 보도가 있습니다. 두번째 뺑소니 운전자도 경찰에서 조사 중이라고 합니다.

짧은 생을 마감한 아이의 명복을 빕니다. 

 



 
 

  1. 2011.10.20 08:21 신고

    저부모의반응도중국식이군요
    저할머니가뭘그렇게잘했습니까?
    바닥을피로적셔가며시체되가는애느적느적길한모퉁이로툭갓다놓은것이단데

    저같으면
    아니중국을제외한양심의흔적이있는나라사람이라면저봉고는물론저카메라에찍힌방관자들모두를잡아들일것같습니다
    감정적인것이아니고최소한의사랑만있으면말이죠
    공범자입니다

    물론저할머니의손마저없었다면그대로세네차량이더으스러트리고지나갔을수도있겠죠
    약속이라도한듯이말이죠
    그것에비하면감사한것이죠
    감사라는말이상당히아쉽네요

    솔직히짜고친고스톱같단생각이떠나질않네요
    주민들이짜고애잡을려고말예요

    트럭도고의성다분하고주민굳이피투성이애를쳐다보려고하지도않는것이너무부자연스럽니다
    단지개인주의와는다른문제인것같습니다
    저런상황을매일보는사람들이아니라면적어도개라도저러면
    놀라서피하거나하지않을까요

    말도못하게처참한꼴을굳이쳐다보려고도하지않고그옆을지나가는모습들이
    마치짜고쳐죽였는데그모습을차마볼수가없다는태도같이보여요
    저는그렇게믿을려구요

  2. asdfgh9592 2011.10.20 20:34 신고

    자식을 키우는 아버지로서 정말 가슴이 시리네요....

  3. 별이 2011.12.28 15:11 신고

    오. 아이기사라잇네. 아무성~~|

  4. 중국미친새기들 2012.01.16 22:45 신고

    아나;;아까그냥할꺼없어서중국시발치니깐
    어떤블로그에 중국시발뻉소니 이렇게되있어서가니깐
    ;;;;진짜충격적이네요;;진짜답이없네;;;
    근데아까그블로그에서밨는데지금보니깐갑자기동심이깨진거같음
    어덯하지?


요즘 많은 분들이 스마트폰을 사용하면서 기기에 내장되어 있는 GPS를 많이 활용하는 추세입니다. 하지만 GPS의 특성을 잘 못 이해하는 관계로 정상적인 상황을 GPS가 불량이라고 오해하는 경우도 많고 자신의 GPS가 정상 동작하는지 위심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심지어는 서비스 센터의 기사님들 조차도 그 특성을 이해 못해서 소비자들을 엉뚱하게 호도하는 경우까지 보입니다. 본 포스팅에서는 안드로이드를 기준으로 GPS의 동작을 확인해 보는 방법을 최대한 자세히 설명해 보겠습니다.

내 스마트폰의 GPS는 정상인가?

이전 포스팅에서 언급했던 내용들은 최대한 줄이고 간략하게 시작하겠습니다
가장 먼저 일반적인 사용자가 혼동하는 부분은 기지국 위치정보와 인터넷 위치정보는 GPS 위치정보와는 구분해서 생각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GPS의 기능 특성상 수십Km의 엉뚱한 위치를 알려준다면 GPS정보가 아니고 IP를 사용한 위치정보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정확한 구분은 이전 포스팅을 참조해주시고 여기서는 GPS의 정상 작동 여부를 확인하는데 중점을 두겠습니다.


먼저 GPS 기능을 활성화 시켜주시기 바랍니다. 설정 -> 위치 및 보안 -> GPS 위성 사용을 활성화 해주시면 됩니다.































위 화면은 마켓에서 받을 수 GPS Status라는 무료 앱을 실내의 텔미 책상에서 실행한 화면입니다. 북쪽에 모든 위성 표시가 뭉처있는게 보입니다. 총 9개입니다. 위치는 못 잡고 있습니다.

먼저 이 화면을 간략하게 설명 드리겠습니다.

화면 설명

Fix/Sats는 정확한 위치정보를 주는 GPS 위성수 / 현재 전파가 수신되는 GPS위성수를 뜻합니다.

커다란 원은 중앙을 내 기기로 놓고 주변 상공에 있는 GPS위성의 상대적 위치을 표시해줍니다. 따라서 정 중앙이 기기의 수직 위치이고 가장 바깥 원이 수평선입니다.

하단의 막대표시는 수신되는 위성전파의 세기를 표시해줍니다.

화면 해석

현재 책상 위에 있는 텔미의 겔럭시 탭이 감지할 수 있는 위성은 총 9개입니다. 그리고 북쪽의 창문을 통해서 위성 전파가 들어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전파의 세기도 비교적 강한 편입니다.

하지만 9개의 위성 전파를 수신하고 있지만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위성은 한 개도 없습니다.

그 이유는 현재 실내이기 때문입니다. 텔미의 책상이 창가에 있고 창문이 무척 넓은 상태이기 때문에 위성전파가 수신되기는 하지만 모든 위성 전파가 기기까지 직접 들어 오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전 포스팅에서 자세히 언급했지만 GPS신호는 위성과 기기가 직선으로 연결 수신되어야만 위치 파악을 할 수 있습니다.

일반 가정이라면 실내에서는 3개이하의 위성 전파가 수신될 것이고 창가에 바짝 간다면 일부 위성은 위치를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텔미가 가지고 있는 겔럭시 탭이 정상적으로 GPS위성의 전파를 수신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위성 전파를 수신한다면 일단은 GPS는 정상입니다. 나머지는 수신환경과 특별한 오류 유무가 문제입니다.


 전파를 수신하고 있다면 정상이라고 판단할 수 있는 이유는 GPS는 전문회사의 단일 칩과 GPS 안테나로 구성되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일반적으로 전파를 수신한다면 고장 날 부분이 없다는 뜻입니다.

실외에서 완벽하게 작동하는 경우의 화면

  

위 화면은 완벽하게 GPS신호를 수신하고 정확한 위치 정보가 나오는 화면입니다.

원 안에는 9개의 GPS위성이 표시되고 있습니다. 위성 옆의 번호는 각 위성의 고유 번호입니다. 북쪽에 있는 20번 위성은 정확한 위치를 주지 못하는데 그 방향에 건물이 있었기 때문에 갤럭시 탭에서 위성신호를 직접 수신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장애물이 있으면 전파가 수신되더라고 위치파학용으로는 활 용 될 수 없습니다.

9개의 위성 중에서 8개가 정확한 위치정보를 주고 있습니다. 아래 신호 수신 상태도 8개는 무척 양호하고 20번 위성만 미약한 신호를 수신하고 있습니다.

 다음 포스팅에서는 특수한 경우에 GPS Status를 사용해서 GPS를 조정해야 되는 상황을 이야기하겠습니다. 참고로 일무 서비스 센터 기사분들이 이 기능을 난발하는데 아주 특별한 경우에나 필요한 기능이지 잘 못된 GPS를 고치는 기능은 아닙니다.




  1. 2011.10.20 22:58

    비밀댓글입니다

  2. 이건웅 2011.11.07 20:01 신고

    제가 아트릭스를 쓰는데여 5개월동안 잘잡히다가 몇일전부터 gps가 용인으로 잡히네여
    신기한점은 제동생은 미라크a를 쓰는데 동생도 용인으로 똑같이
    잡히네여 저희집은 인천인데여 가끔 구글은 인천을 잡지만 다음지도와 버스 어플은 무조건 용인으로 잡히네여
    위에있는 어플을 실행했을때 인천으로 잘잡았어여 머가 잘못된지 모르겠네여

  3. 이건웅 2011.11.08 18:11 신고

    정말궁금했는데 감사합니다

 

텔미는 많은 안드로이드 사용자들이 검색버튼을 필요 없는 버튼으로 여기고 활용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곤 합니다. 많은 사용자들이 검색 버튼을 단순한 구글 인터넷 검색 버튼으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추측되는데 텔미 이번에 검색 버튼이 어떤 기능을 하는지 이야기해봅니다.


구글 검색은 기본


읽는 분들의 시간절약을 위해서 우선 검색버튼으로 할 수 있는 걸 요약해봅니다.

1.     당연한 구글 인터넷 검색

2.     번호 눌러서 전화 걸기

     3.     전화번호 초성검색과 전화 걸기

4.     회사명으로 전화번호 찾기

5.     애플리케이션 검색

6.     스마트 폰 안의 음악 검색

7.     사용중인 앱 내부 검색

위의 내용은 검색 설정 상태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습니다. 검색버튼 누르고 메뉴 버튼을 누르면 아래 화면처럼 검색 항목을 설정 할 수 있습니다.

아래 설정화면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스카이프나 스케치메모 같은 앱의 내부 검색도 포함합니다.

검색 대상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검색 버튼의 전화 걸기

검색 창에다 전화번호를 입력하면 바로 전화를 걸 수 있는 목록과 전화번호부에 번호를 추가할 수 있는 리스트가 나옵니다. 검색모드는 빠르게 전화 거는 한가지 방법입니다.

전화 걸기도 되고 전화번호 부 검색도 됩니다.


초성검색으로 전화 걸기

검색 창에 초성을 입력하면 바로 전화번호부의 초성 검색된 내용이 리스트로 나옵니다. 그 리스트에서 바로 전화를 걸 수 있습니다. 기본 다이얼러가 초성 검색을 지원 안 하는 경우에도 이 기능은 작동합니다.

 

화사명(부서명)으로 전화번호 찾기

주소록을 잘 정리해 놓았는데도 불구하고 전화번호부에는 이름만 뜹니다. 업무상 연락처 중에 담당자 이름을 모른다면 일일이 이름을 눌러서 내용을 확인해야 하는 문제가 있는데 그냥 검색 창에 회사명을 입력하면 해당 전화번호가 모두 나옵니다.

기껏 입력한 내용이 전화번호부에서 무용지물이라고 생각했던 분들은 아마 답을 찾았을 겁니다.

이쯤이면 검색버튼은 사실 전화버튼이기도 합니다.

전화를 거는 가장 빠르고 손 쉬운 방법이 검색버튼을 통하는 방법입니다. 초성검색은 물론이고 직접 전화번호를 입력해서 전화를 걸 때도 편리합니다. 단 하나 안 되는 기능은 단축 다이얼이지요.

 

내 스마트폰에 들어있는 소녀시대 노래는 몇곡

궁금하면 검색버튼 누르고 소녀시대를 치면 됩니다. 이 때 앞에서 언급한 검색 대상에 음악이 지정되어 있어야 합니다.

검색 범위를 한정 할 수 있습니다.


이미 되어있다면 좌측 상단에 검색 항목 설정을 음악으로 설정하면 됩니다. 해당되는 곡 리스트가 뜨게 됩니다. 원하는 곡을 가장 빨리 듣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애플리케이션을 검색해서 실행할 수도 있고 검색기능이 있는 앱이라면 그 기능을 바로 불러올 수도 있습니다.



  1. 최경환 2011.12.22 11:05 신고

    회사명 검색이 안되어 고생했었는데,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북한의 GPS 교란과 관련해서 인터넷에서 이야기되는 몇 가지 이야기들에 대해서 텔미가 아는 상식 수준에서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요즘은 자동차 네비게이션과 스마트 때문에 GPS 시스템이 우리 생활과 상당히 밀접한 관계가 됐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GPS에 대해서 잘 모르는 면들이 있습니다.

원리는 단순하기도하지만 또 다른 측면에서는 기술적으로는 상상하기 어려운 정밀도와 이론들이 적용되기 때문입니다. 흔히 전문가들이 GPS를 이야기 할 때 하는 비유는 인공위성 괘도에 떠있는 백열등을 가지고 위치를 찾는다고 합니다. 이 비유는 GPS 위성의 아주 약한 전파를 지상의 기기들이 직접 수신해야 되는 어려움을 이야기합니다.

Ready to Fly? All you really need is just another shot...
Ready to Fly? All you really need is just another shot... by williamcho 저작자 표시동일조건 변경허락


또한 GPS에 사용되는 이론 중에는 상대성이론이 실제로 실생활에 적용되는 드문 경우이기도 합니다. 이 부분은 GPS 시스템의 정밀함을 이야기할 때 인용됩니다.

그러면 이번 북한의 GPS교롼과 관련되어서 인터넷에 떠도는 댓 글들에 대한 답을 약간 해봅니다.

1.     미국에 종속적인 GPS

-       GPS 시스템은 미국이 운영합니다. 이전 포스팅에서 언급했지만 초기 미군이 군용으로 개발 사용했지만 현재는 민간에 개방되고 민간기관에서 책임 운용합니다.

-       미국 맘대로 GPS를 끌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 경우 전세계에 벌어질 대 혼란을 미국도 감당할 수 없습니다. 민간여객기 선박 자동차 등 미국 맘대로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그래서 민간기관으로 운용을 넘긴 거지요.

-       유럽과 러시아는 독자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유럽 갈릴레이 시스템에 지분참여하고 있습니다. 즉 우리도 미국이 아니고 유럽 시스템을 통해서 독립적인 GPS 시스템을 구축 중입니다. 앞에서 언급했지만 민간차원에서는 미국 시스템을 사용해도 문제가 될 건 없습니다. 하지만 군용 채널은 이야기가 다르기 때문에 참여한다고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군용 채널이라는 것은 정밀도와 관련됩니다.

2.     북한의 이번 GPS 교란이 대단한 기술이다.

-       삐딱한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 분들 중에 GPS교란이 대단한 기술인 것 인양 이야기하면서 허황되다는 말을 하는 분들이 있지만 알려진 바에 따르면 교란 시스템은 러시아 시스템이라고 합니다. 더욱이 군용 채널에 비해서 보정 신호가 적은 민간용은 단순한 전파 방해에도 취약합니다.

-       텔미의 추측으로는 이번 사태가 주로 핸드폰 중계기 쪽에 영향을 줬다는 이야기는 더 잘 수신하도록 만들어진 고정 기지국 장비가 더 먼 곳의 교란 신호까지도 잘 수신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       오히려 스마트폰 같은 수신기는 수신능력이 떨어지는 만큼 교란 전파 수신에도 영향을 들 받았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사용해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건물 그늘 만으로도 쉽게 신호가 끊어지니까요.

3.     군용 GPS와 민간 GPS가 같은 시스템인가?

-       자세한 정보가 필요하신 분들께서는 위키백과 사전을 보시면 되겠지만 같은 위성을 사용하지만 사용하는 채널이 다릅니다. 민간용 + 군용신호 = 군용 GPS입니다. 더 많은 보정신호를 통해서 더 정밀하고 빠른 처리를 합니다. 군용 신호는 암호가 걸려있기 때문에 미군만이 사용할 수 있으며 우리가 사용하는 미제 무기도 그 신호를 사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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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214-F-9899A-375 by Official U.S. Air Force 저작자 표시비영리


4.
    
북한의 GPS 교란이 실전에서 우리군에 장애가 될까?

-       이라크 전에서도 이 GPS교롼 장치가 사용된 걸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미군에게 약간의 혼란을 줬지만 결과적으로는 별 소용이 없었던 걸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유는 교란장치가 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자체가 대 레이더 미사일(전파 발신 원으로 유도되는 미사일)의 좋은 먹이 감이기 때문입니다.

-       실전이라면 미사일로 문제를 해결하겠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귀찮은 문제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적응 훈련하는 효과도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GPS 교란으로 핸드폰 시계가 틀리고 통화품질이 떨어진 이유

우리 잘 모르는 분야는 원전이나 신뢰성 있는 자료 검색이라도 해보고 이야기해보자. 원전을 못 찾거나 봐도 모른다면 그건 내가 정말 모르는 이야기니까 함부로 말을 하지 말자 누군가 자신 있게 아주 엉터리 정보를 적어 놓아서 이 부분을 추가합니다. 텔미 A-GPS는 항간에 알려진 그런 거 아니라고 이미 포스팅했습니다.


휴대폰의 시간은 기지국에서 받아옵니다. 기지국 시간은 어디서 받아올까요? GPS에서 받아옵니다. 설마 기지국이 움직이기 때문에 위치 파악하려고 GPS를 사용한다고 생각하신 분 있나요?

물론 이동 기지국도 있으니까 기지국도 움직이기는 하지만 기지국은 GPS 위성의 시간 정보를 사용합니다. GPS위성 시계는 원자시계이며 너무 정밀해서 상대성이론의 속도에 따라서 시간이 느려지는 효과가 적용됩니다. 덕분(지구의 물리적 시간 보정도 안() 합니다.)에 현재 위성 내부의 시계는 지상의 시간과는 아주 많이 다릅니다.

아무튼 기지국이 GPS 신호 수신에 장애를 가지면 시간이 틀려지게 되고 그 기지국 내의 핸드폰도 시간이 틀려지게 됩니다. 그리고 이 정밀한 시간이 필요한 이유는 핸드폰 통신이 시분할 방식이기 때문인데 삼천포행을 방지하기 위해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합니다. 다만 이 시분할 방식이기 때문에 한 기지국 시계가 잘못되면 핸드폰 통화품질에도 문제가 생깁니다.



  1. YL 2011.06.19 22:27 신고

    수행평가에많은도움이되었습니다.

    감사해요 :)



옛날과 다르게 먹을 거리가 다양해지다 보니까 전통적인 먹거리인 번데기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먹는 번데기를 사전에 나오는 애벌레가 고치상태에 있는 과정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텔미 입장에서는 신기하기도합니다. 우리가 먹는 번데기는 저 사전적인 의미의 온갖 벌레의 번데기가 아니고 누에의 번데기입니다.

우리가 몸에 좋은 약으로 알고 있는 동충하초도 저 누에에서 나옵니다. 물론 텔미는 저런 종류의 약효는 불신하지만요.

누에고치에서 실(비단)을 뽑기 위해서는 삶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먹는 번데기는 이 과정에서 나오게 됩니다. 그리고 누에는 정성으로 키워지는 곤충이기 때문에 먹이도 뽕잎뿐이고 병균이나 각종 오염으로부터 보호됩니다. 원칙상으로는 상당히 위생적인 식품재료입니다.

기본적인 맛은 고소하고 미원이나 당원 등으로 맛을 내서 달달합니다. 흔히 알려지기를 고단백식품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다만 이 번데기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이 상당해서 이런 분들은 조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목숨 걸고 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텔미 개인적인 경험으로도 번데기 국물에 오염된 노가리를 모르고 먹은 술친구가 큰 고생하는 모습을 본적도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먹는 전통적인 곤충종류로는 메뚜기가 있습니다. 볶아 먹는데 이것도 고소합니다.

요즘은 라면이나 피자, 햄버거, 다양한 과자 등이 있어서 저런 곤충류를 간식으로 잘 먹지 않지만 룸사롱이라고 하는 곳에서는 고급양주와 폭탄주가 난무하는 가운데 번데기와 메뚜기 같은 음식도 종종 불 수 있습니다. 실상은 햄버거 속의 다진 고기에 비하면 고급음식이니까요.

하지만 아쉽게도 국내 양잠산업이 위축된 관계로 인해서 많은 번데기가 중국에서 수입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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